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81
– 181화에 계속 –
181화 전운(戰雲)
공수동맹에서 협의되었으나 비공개된 사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조선과 일본은 향후 1개월 이내로 군대를 편성한다.
조선은 8개 여단, 16개 연대, 상비군 4만 5000명, 예비군 2만 7000명, 의용군 3만 명 이상.
일본은 7개 사단, 12개 여단, 28개 연대, 상비군 6만 4000명, 예비군 9만 1000명, 국민군 10만 6000명.
“외침에 대비하여, 개국 503년(1894) 9월 1일을 기해 전국에 계엄을 선언한다.”
조선군의 명목상 통수권자는 대군주였지만, 실질적인 통수권은 내각이 행사했다.
내각은 전시체제에 돌입, 군정권(軍政權)을 행사하는 군무부와 군령권(軍令權)을 행사하는 원수부를 중심으로 전쟁에 대비했다.
“군무부는 이미 동원령을 내린 바 있습니다. 예비군과 개국 504년도 징병 대상자는 순차적으로 동원되고 있으며, 의용군도 편성할 예정입니다.”
군무대신 이선은 현재 군대의 상황에 대해 각의에서 보고했다.
1894년 9월 현재, 조선군은 16개 연대, 상비군 4만 5000명이었다.
조선보다 인구가 2배 이상 많은 일본의 상비군이 6만 4000명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현재 각 부대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국 503년 군사 현황’이라고 써 있는 커다란 칠판 아래 원수부 군무국장 윤웅렬 부장이 직접 써 나갔다.
조선군은 프로이센 군사교리의 영향을 받은 독일군 편제와 러시아군 편제가 섞여 있는 방식이었다.
근위여단(한성) – 근위 1연대, 2연대. 4개 보병 대대, 2개 기병대대, 2개 포병대대로 구성.
친위여단(한성) – 친위 1연대, 2연대. 4개 보병 대대, 2개 포병대대, 공병대, 치중대.
수도 방위를 맡은 근위여단과 친위여단은 조선군 최정예 부대로, 1개 연대 정원 3000명과 보병-기병-포병의 삼각 편제를 갖춘 부대였다. 근위여단과 친위여단은 징병이 아닌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이하는 지방에 주둔 중인 진위대로, 대부분 각 지역에서 징집된 병력들이었다.
진위 1여단(경기 강화) – 1연대 경기 강화. 2연대 경기 수원.
진위 2여단(경북 대구) – 3연대 경북 대구. 9연대 경남 부산.
진위 3여단(전북 전주) – 7연대 전북 전주. 10연대 충북 청주.
진위 4여단(평남 평양) – 4연대 평남 평양. 6연대 평북 강계.
진위 5여단(함남 함흥) – 5연대 함북 종성. 8연대 함남 함흥.
진위 6여단(황해 황주) – 11연대 강원 원주. 12연대 황해 황주.
진위 1여단은 친군영에서 정예로 꼽혔던 강화 심영(沁營)과 남한산성 방위군을 기반으로 창설된 부대로, 경기도 일대의 방위를 담당했다.
진위 2여단과 3여단은 국민개병제의 상징과도 같은 부대로, 주로 삼남에서 징집된 장정들을 중심으로 편성된 부대였다. 2여단은 경상도를, 3여단은 충청도와 전라도 방위를 담당했다.
진위 4여단은 친군영에서 최고 정예였던 서영(西營)을 기반으로 창설된 부대로, 4연대와 6연대는 청국과의 전쟁에 대비한 부대이니만큼 진위대 중 가장 믿을 만한 부대였다.
진위 5여단은 친군 북영(北營)을 기반으로 창설된 부대로, 날래기로 소문난 함경도 포수들이 부대의 주류를 차지했다. 특히 5연대는 간도 국경분쟁에서 실전을 경험한 유일한 부대였다.
진위 6여단은 새로 편성된 부대로, 인구가 비교적 적은 지역인 강원도와 황해도에서 징집된 부대였다.
“진위대 편제상으로는 1개 보병연대에 3개 보병대대, 1개 포병대대, 기병, 공병, 위생병, 치중대가 있어야 합니다. 1개 보병대대는 4개 보병중대, 1개 보병중대는 4개 보병소대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1개 소대의 정원은 50명, 1개 중대는 200명, 1개 대대는 800명, 1개 연대는 3000명이 정원입니다.”
윤웅렬은 한창 설명을 하다가 조건을 달았다.
“다만, 현시점에서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난 10년간 조선은 1년 예산의 3할 이상을 군비에다가 아낌없이 쏟아부었지만, 준비가 완벽할 수는 없었다.
편제는 진위대별로 편차가 컸다. 근위대나 친위대처럼 편제를 완비하고 있는 부대는 드물었다.
“진위대 중에선 1연대, 4연대, 5연대, 6연대 정도만 완전 편제된 부대입니다. 동원 계획에 따르면, 전시에는 예비군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윤웅렬은 계속 칠판에 적어나갔다.
“문제는 예비군의 수지요.”
징병 4년 차인 조선군은, 예비군이 편성된 지 불과 2년이었다. 1년 차인 1891년에 징병 되어 병역 이행까지 완료한 병사가 1만에 불과했고, 2년 차에 대폭 증가했다지만 1894년 시점에서 예비군 총병력은 2만 7000명이었다.
징병 22년에 접어든 일본군은 약 20만의 예비군과 국민군을 보유했고, 이들은 모두 전시에 동원 가능했다. 일본군이 전시에 동원하기로 한 병력은 26만, 조선은 10만 이상을 약속했다.
‘일본이랑 비교하면 대략 1877년 세이난 전쟁과 비슷한 상황이지. 예비군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서 구 사무라이들을 경찰로 징집해야 했던…….’
“그래서 내놓은 대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선례를 따라, 옛 포군에 소속된 이들과 자원병을 의용병의 형태로 선발하는 겁니다.”
군무부와 원수부에서는 병력 동원을 놓고 고심하던 끝에, ‘국민의용군’을 3만 이상 선발하기로 했다.
상비군과 예비군을 전선에 투입하고, 의용군은 후방을 맡길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애국심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제 곧 청의 위협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것이니 삼전도의 치욕을 씻자는 여론을 조성해야 합니다.”
“대군주 폐하와 왕태자 전하, 국태공께옵서 종묘로 나아가 북벌을 선언하시고, 정부는 총동원령을 내림이…….”
“북벌 선언은 아직 이릅니다. 우리가 먼저 선제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선제공격은 일본에 맡겨야 합니다.”
“청국이 먼저 선제공격을 할 수도 있지요. 원수부와 일본 참모본부가 정보를 공유한 바에 따르면, 청군의 현재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은 1880년대부터 청국의 군사 상황을 세밀히 조사했다. 이선 역시 정확한 정보력을 자랑했으므로, 양측이 파악한 정보는 거의 일치했다.
“1894년 현재, 청국의 병력은 대략 100만입니다.”
“배, 백만 대군!”
군사에 어두운 대신들은 입을 짝 벌렸다.
“하지만 그 병력은 대부분 허수입니다.”
이선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전통적인 정규군인 만주 팔기군(八旗軍) 26만 명, 한족 녹영군(綠營軍) 59만 명이 있으나, 아편 전쟁과 태평천국 전쟁에서 그 실태가 드러났듯이 이들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만주족의 중국 제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팔기군과 녹영군은, 청말이 되면 군대라기보다는 사회계급이나 치안대에 가까웠다.
실질적인 병력은 각지의 유력자가 선발한 향용(鄕勇軍, 용군) 10만 명, 그중에서도 서양식 훈련을 받은 단련군(團練軍, 연군)이었다.
북양대신 이홍장의 지휘를 받는 회군(淮軍) 3만 명과 만주의 연군 1만 3000명은 신식 장비를 갖춘 정예 병력으로, 이들이 청군의 주력이었다.
동북 3성에 주둔하는 병력은 편제상으로는 17만 5000명에 달했지만, 실제 전투에 투입 가능한 부대는 7만, 그중에서도 근대적 군대는 연군 1만 3000명이었다.
“즉, 청국은 백만 대군을 운운하지만, 실질적으로 조선을 위협할 수 있는 병력은 회군과 만주 연군이 전부입니다. 이들을 제압한다면, 전쟁은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백만 대군이라고 하지만, 허깨비로군.”
“충분히 해 볼 만한 싸움인 것 같군요.”
각의에 낙관론이 활성화되자 이선은 냉철함을 유지했다.
“문제는 해군입니다. 북양함대는 동양 최대의 함대로, 막 창설한 단계인 조선 해군이 감히 비교할 대상이 못됩니다. 우리 해군으로 북양함대에 맞서 싸우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개전 초기, 저들은 해군의 우세를 기반으로 연안에 상륙을 기도할 겁니다.”
조선은 최근에야 해군을 창설했고, 1894년 현재 보유하고 있는 군함은 영국에서 수입한 포함 1척과 어뢰정 5척이 전부였다. 모든 군비는 육군의 강화에 초점을 맞췄기에, 돈이 많이 드는 전함에 군비를 쓸 수 없었다.
북양함대의 웅장한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이 칠판에 붙자 대신들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바로 그래서 일본과 공수동맹을 체결한 것입니다. 일본 연합함대가 북양함대를 격파하고, 황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북양함대만으로 일본의 해군력을 능가하는데.”
“물론 수치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지휘하는 장교의 자질 차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승리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선은 일본의 해전 승리를 예상하고, 일본 참모본부와 조선 원수부가 함께 논의한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황해 제해권이 확보되면, 일본은 5개 사단을 요동 반도에 상륙시키기로 했습니다. 요동 반도가 점령되면, 이어서 북양함대의 본거지인 산동 반도를 공격할 것입니다.”
큼지막한 크기의 동아시아 지도에 화살표가 놓였다.
“조선군은 압록강을 넘어, 봉황성, 요양, 봉천을 공격하는 걸 목표로 합니다.”
한반도에서 만주 방향으로 화살표가 놓였다.
“봉천, 즉 심양…….”
“효종 대왕과 소현세자, 수십만 조선 백성의 원한이 묻어있는 바로 그 심양이로군요.”
“그렇습니다. 심양을 공격하여 삼전도의 치욕을 씻고, 북벌을 완수할 것입니다.”
북벌의 완수라는 말에 자리에 앉아있던 모두가 흥분과 우려를 동시에 느꼈다.
“물론 이 모든 전제조건은, 조선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위는 청국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청국은 필히 선제공격하려 할 것입니다. 병력의 신속한 동원이 필요합니다. 일본과 동맹을 맺은 이상, 후방에 대한 걱정은 덜었습니다.”
화살표가 한반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저들에게 함대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철도지요.”
내무대신 서리 박영효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경인선 부설이 완료된 후, 조선은 조속한 경의선과 경부선 부설에 나섰다. 상당한 액수의 프랑스 차관이 철도 부설을 위해 쓰였다. 청과의 분쟁이 시작된 1892년부터 철도 부설이 급격히 속도를 냈다.
1894년 현재, 일부 구간의 철교와 터널이 완성되지 못해 민간 영업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경부선은 대부분 부설이 완료되었다.
경의선은 한성-개성, 개성-평양, 평양-의주의 3구간으로 나누어 공사를 진행했다. 1894년 현재 2구간까지 공사가 완료되어 대동강 철교를 제외하고 한성-평양 구간이 완성되었다.
“1866년 보오 전쟁과 1870년 보불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물론 프로이센 군대와 참모부의 우월한 지도력의 요인이 크지만, 철도로 인한 원활한 수송이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철도는 이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삼남의 병력과 자원은 철도를 통해 북방으로 진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개병과 군제개편, 신속한 병력 동원과 수송까지, 지난 10년간 노력해 온 성과가 마침내 빛을 발휘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전쟁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조선의 국토방위와 자주독립을 달성할 조국 방위 전쟁이 되어야 합니다. 이 전쟁에 조선의 운명이 달렸습니다.”
설명을 마친 이선은 자리에 앉았다.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쟁을 각오했다.
각의에서 내각은 전쟁 계획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다.
총리대신 김홍집을 필두로 각의를 재가받기 위해 임금을 찾아갔다.
“대군주 폐하! 청국의 부당한 압박에 맞서, 조정은 방위 전쟁을 계획하였습니다. 신등(臣等)은 폐하의 승인을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조일 공수동맹에 이어 전쟁계획안까지 올라오자 임금은 전쟁이 임박했음을 인지했다. 작전 계획을 살펴보던 임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쟁을 피할 수는 없는가? 청국과 대화로 해결할 수 없겠는가? 일본과 동맹을 맺었으니 청국도 함부로 나서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박영효가 고개를 조아리고 답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한 일이오나, 이제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수순은 지났습니다. 오직 힘만이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짐은 이 전쟁으로 종묘사직에 위기에 처할까 두렵다. 또한, 조선이 전쟁에 휘말리면, 신민이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홍집이 공손한 어조로 답했다.
“전쟁은 실로 비극적인 일이므로, 되도록 피해야 한다는 폐하의 성심은 지당하십니다. 하오나 이 전쟁은 조선이 아니라, 청국이 강요한 것입니다. 백성을 아끼는 폐하의 성심을 헤아려, 국토와 국민의 피해는 최소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이 이길 수 있는 것인가? 청국이 아무리 국세가 약해졌다고는 하나, 중국을 지배하는 대국이다. 만약 일을 그르치면…….”
임금은 확신이 없는 듯, 여전히 불안해했다. 이선은 단호하게 답했다.
“전쟁은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법입니다. 하오나, 갑신경장 이래 조선의 관민이 함께 노력한 지난 10년의 세월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 국민은 군주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이오나, 청국은 그리하겠습니까? 조선은 비록 작으나, 하나로 단결되어있습니다. 사분오열된 청국이 결코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고민하던 임금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좋다! 병자년의 치욕을 씻고, 인묘(仁廟)와 효묘(孝廟)의 한을 갚을 수 있다면 후손 된 이로서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전쟁 계획을 승인한다. 반드시 북벌을 완수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최종 결단은 내려졌다. 동양의 하늘에 전운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