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85
– 185화에 계속 –
185화 서전(緖戰)
대동강 서안의 평양은 강에 접한 동쪽을 제외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성벽이 견고히 버티고 있다.
북쪽에는 5개의 보루가 설치되었는데 을밀대(乙密臺)가 지휘부 역할을 했다. 제1보루는 외성 북쪽 끝에 있는 모란봉(牡丹峰)이었으며, 성벽으로 둘러싸여 오직 북문에 해당하는 현무문(玄武門)을 돌파해야만 진입할 수 있었다.
남쪽과 서쪽에도 성벽을 따라 보루가 건설되고, 특히 서쪽은 능선을 따라 성이 축조되어 상당한 급경사를 이루었다. 외성 남서쪽에 돌출되어 대동강과 보통강으로 둘러싸인 안산에도 보루가 설치됐다.
평양성에는 총 16개의 문이 존재하고, 각 문과 성벽을 따라 보루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평양의 견고한 수비 상황을 보고받은 청군 지휘부는 놀랐다.
“알려진 것보다 평양의 방어가 훨씬 견고하지 않은가?”
“쉽게 함락시킬 수 없다.”
10월 10일, 평양 북서쪽에서 회군과 만주군이 만났다.
“합류 시간을 맞추느라 고생했구려. 이제 우리 군이 모였으니 함께 평양을 공략합시다.”
하지만 회군과 달리 제대로 보급도 받지 못한 채 무작정 평양으로 진격한 만주군의 사기는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보급이 넉넉한 회군을 만난 만주군은 일단 식량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열을 재정비한 청군은 평양성 공략을 놓고 군의(軍議)를 열었다.
“생각보다 평양의 성곽은 높고 튼튼하오. 단기전으로 쉽게 함락시킬 수 없을 듯하오.”
자신만만하던 회군 사령관 섭지초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원정을 온 건 적이 아니라 아군입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아군이란 의미지요.”
봉천군 사령관 좌보귀의 말에 섭지초가 반박했다.
“정보에 따르면 평양에 있는 조선군은 3만이라고 하오. 아군 5만으로 평양을 함락시킨다는 건 무리요. 그래서 중당께 지원군을 요청했소이다. 만주에서 지원군이 당도할 것이오.”
“언제 지원군이 온단 말입니까? 육로든 해로든 아군의 지원군이 오는 걸 기다리는 것보다 조선군이 보강되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애초에 단기전을 계획하고 평양으로 신속히 진격한 거 아닙니까? 장기전을 벌일 거면 적을 만주로 끌어들였어야지요.”
좌보귀의 말은 정론이라 섭지초는 불쾌하면서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조선 땅에 들어온 이상 신속히 전투를 개시해 일전을 벌이든가, 장군께서 병사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면 아니면 퇴각해서 장기전을 계획하는 게 낫습니다.”
섭지초는 말꼬리를 잡았다.
“어허, 어찌 퇴각이란 말을 함부로 입에 담는 거요!”
“적지에서 이도 저도 아니게 주저앉는 것보단 낫단 뜻입니다.”
“좌 공은 어찌 그렇게 극단적인 의견만 내놓는 겁니까? 중당께서 임명한 사령관의 명을 따라야지요.”
좌보귀와 사이가 나쁜 위여귀가 섭지초의 편을 들었다.
위여귀는 ‘고리대금업이 주업이고 군 지휘관은 부업’이라는 악평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군대 운영비와 병사들의 급료 등을 횡령하여, 고리대금업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다. 그 때문에 위여귀 부대는 청군 중에서도 군기가 가장 문란한 오합지졸이었다. 뇌물과 정치적 처신으로 줄을 잘 탄 덕에 지휘관 자리를 유지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자가 목숨 건 전투를 원할 리가 없었다.
“위 공, 나는 무장으로서 전략적으로 필요한 방안만 내놓았을 뿐이오. 누구처럼 장사나 하러 온 게 아니란 말이오.”
좌보귀의 경멸적인 말에 위여귀가 발끈해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요! 나를 모욕하는 건가!”
서로 한판 붙을 분위기가 되자 섭지초가 말렸다.
“아군끼리 이 무슨 추태요? 이래서야 제대로 된 전투나 하겠소? 오늘 군의는 여기서 마치겠소. 다들 머리나 식히시오.”
조선군의 신속한 동원과 방위 체계에 보고를 받은 이홍장은 놀랐다. 하지만 일본군이 신경 쓰여 총공세를 펼치기도 어려웠다. 이홍장은 3만의 병력을 추가로 파병하기로 결정하고, 요동에 주둔하던 군대를 압록강 일대로 보내기로 했다.
청군이 평양 외곽에 도착하고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조선군 지휘부는 의도를 궁금해 했다.
“저들이 왜 움직이지 않는 걸까요?”
“평양의 견고한 방위를 먹고 지레 겁먹은 탓이겠지요.”
“하하! 대국이라고 온갖 건방은 다 떨더니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니 아무것도 못 하는군요.”
“이대로 적의 군량이 소모되기만을 기다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1사단장 윤웅렬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제해권을 상실하지 않았으니, 적은 해로로 보급을 받으려고 할 겁니다. 추가 원병을 파견할 수도 있고요. 적이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린다는 건, 원병을 기다린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평양 요새화에 공을 들였는데, 적을 끌어들여 손실을 입히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적이 먼저 공세를 펼치지 않는데, 방어하는 입장인 우리가 나서서 싸울 이유가 있겠습니까?”
“선공을 가해서 적이 공세로 나서지 않을 수가 없도록 끌어들이지요.”
잠자코 듣고 있던 이선이 나섰다. 이선은 지휘관의 의견을 존중해 군의 행정적인 측면만 맡고, 전략적인 논의에는 일절 끼어들지 않고 있었다.
“적은 내가 있다는 걸 알면, 분명 달려들 겁니다. 완화군 이선의 이름을 내세워 선공을 가해 봤으면 합니다.”
“음, 그도 그렇겠군요.”
“하지만 적이 도발에 응하겠습니까?”
“저들은 나만 잡으면 전쟁이 끝날 거로 생각할 겁니다. 분명 달려들려고 하겠지요. 설령 실패해도 손해 볼 건 없지요.”
“좋습니다. 그리하시지요.”
“그렇다면 지리에 밝은 4연대와 근위 기병대가 나서서…….”
이튿날 밤.
평양 외곽에 늘어져 숙영하고 있던 청군은 갑작스러운 포성 소리에 깼다.
쾅! 쾅!
“적습이다!”
“조선군이 성 밖으로 나왔다!”
“반격, 반격하라!”
탕! 탕!
어둠 속에서 총알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조선군이 큰소리로 외쳤다.
“겁쟁이 되놈들아! 기껏 공격해놓고서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숨어 있기만 하느냐!”
“대국이랍시고 나대더니만, 숨어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느냐?”
“대조선국 군무대신, 완화군 이선이 너희를 토벌하러 왔다!”
“네놈들이 자신 있다면 어디 덤벼보라!”
한밤의 전투는 빠르게 끝났다. 조선군 기병대가 한바탕 군영 밖을 휩쓸고 갔을 뿐, 대대적인 교전은 없었던 탓이었다.
보고를 받은 청군 지휘부는 모여들었다.
“완화군이 평양에 있다고? 확실한가?”
“예, 저들이 분명히 그렇게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렇다면 척후의 보고와도 일치합니다. 평양성에 태극기 외에도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있다고 했습니다. 왕족이 출정했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 왕족이 바로 완화군이란 말이지.”
좌보귀가 속전을 주장했다.
“장군, 다시 없을 기회입니다. 적의 수괴인 완화군만 잡으면 조선 전쟁은 끝이 납니다. 적은 항전할 의지를 잃을 것입니다.”
“음, 적의 함정이 아닐까? 아군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섭지초는 또다시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병자년의 빛나는 승리도, 태종 황제께서도 신속히 조선을 공격하여 왕을 붙잡아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었지요. 그 선례를 따르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서…….”
좌보귀는 정말로 병자호란 당시 홍타이지의 전략을 다시 따르겠다는 게 아니라, 열성조를 내세워 섭지초를 압박하는 것이었다.
“장군, 제발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시간이 갈수록 군량은 계속 줄어들고, 적의 보강은 늘어날 겁니다. 현 상황은 5만이 먹을 군량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일전을 벌이든가 퇴각하든가 양자택일해야 합니다.”
“중당께서 지원군과 보급품을 보내준다고 하셨소. 원군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그건 우리가 완전히 해로를 장악하고 있을 상황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지요. 일본 해군이 황해를 횡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 제독은 해전을 회피하는 상황이니 모험을 하지 않으실 겁니다. 바로 원군을 평양으로 보내주지도 않을 거고, 육로 진격으로 온다면 언제 원군이 오길 기다립니까? 우리만 이도 저도 아니게 고립될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좌보귀의 현실 인식은 정확했다. 전투를 벌이든가 퇴각을 하든가 둘 중 하나가 되어야했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도 있었다. 조선군을 얕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조선군은 실전 경험이 없습니다. 막상 대포가 평양 성내로 떨어지면 겁을 집어먹고 제대로 싸우지 못할 겁니다. 평양을 함락시키면, 그 공은 모두 섭 공께 돌아갈 겁니다.”
좌보귀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회군과 만주 연군은 청군에서 정예라고 꼽힐 만했고, 무기의 질도 좋았다. 전군이 독일제 마우저 소총으로 무장했고, 크루프 사에서 제조한 강철 야포와 산포를 보유했다.
마침내 섭지초는 결단을 내렸다.
“좋소. 전군을 동원해 평양을 공격하겠소. 좌 공이 북쪽의 현무문을 맡아 주시오.”
좌보귀에게 가장 방어가 두터워 보이는 모란봉 공격을 맡겼지만, 그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회군은 서쪽의 칠성문(七星門)을 넘겠소. 성자군은 남서쪽의 안산 보루를 정리하고 진격하시오.”
“명을 받듭니다.”
섭지초는 북쪽에서 남쪽에 이르기까지, 5개의 부대가 맡을 전선을 지정했다.
“신속히 평양을 함락시키고, 은혜를 저버린 역적 완화군을 잡아 황제 폐하께 바칩시다. 공격은 9월 17일, 경인(庚寅) 일에 개시하겠소.”
“옛!”
1894년 10월 15일, 갑오년 9월 17일 정오.
청군 5만이 총공세를 개시했다.
“포격 개시하라!”
섭지초의 명령에 크루프 야포가 불을 뿜었다.
쾅! 콰앙!
야포는 평양성과 각 보루의 성벽을 두드렸다. 어느 정도 적의 기세를 꺾었다고 생각한 섭지초는 명령을 내렸다.
“적을 모조리 죽여라!”
“殺!!”
청군이 함성을 내지르며 평양을 향해 돌격했다.
남서쪽, 안산 보루.
안산은 12연대가 방어를 맡고 있었다. 12연대장 이창환(李昌煥) 부령은 안산의 방비를 엄중히 했다.
12연대는 대부분 황해도 출신이었다. 안산의 보루 중 하나를 맡은 건 3대대장 안태훈(安泰勳) 참령이었다.
올해 서른셋인 안태훈은 지방군인 포군 지휘관 출신으로, 포군이 진위대로 재편될 때 군직에 남았다. 신식 편제에 따른 장교 교육을 다시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해 참령까지 순탄하게 진급할 수 있었다.
안태훈은 망원경으로 적정을 살피다가 곁에 있던 젊은 부교(副校)의 어깨를 툭 쳤다.
“보아하니 전투가 임박했군. 김 부교, 긴장되나?”
“아닙니다. 언제가 되었건, 나라를 위해 싸울 기회를 얻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그 순간이 오게 되어 기쁩니다.”
“내 아들놈도 똑같은 소리를 하더군. 의용군에 자원하겠다고 얼마나 난리를 치든지.”
“부전자전이라더니, 대대장님을 닮아 용맹한 아드님이군요.”
“어린 녀석이 총은 제법 잘 쏜다네. 하지만 전쟁이란 게 총만 잘 쏜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아드님의 나이가?”
“기묘년생이니까, 이제 열여섯이라네. 전쟁터에 나서기에는 너무 어려.”
“아직은 이르지만, 장차 용맹한 군인이 되겠군요. 저는 다행히 가까스로 나이를 넘겨 참전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좋네. 영광을 얻는 것도 좋지만,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살아서 함께 영광을 누리자고.”
“넷!”
청년은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 그는 이제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대대의 무관들 중에서 가장 어렸다. 청년을 보면 아들 생각이 나서, 안태훈은 특별히 그를 아꼈다. 청년은 마침 동향 사람이기도 했다.
평민 출신인 청년은 개화의 세례를 받은 1세대답게 애국심이 강했고, 입신양명을 원했다. 그 두 가지를 충족하는 길은 군인이라 생각한 청년은 부사관 입대 자격이 주어지는 18세가 되자마자 입대하였다.
청년의 이름은 해주 사람 김창수(金昌洙)였다.
콰앙! 콰앙!
“적이 공격한다!”
“방포하라!”
“전군 사격!”
조선군도 반격의 포탄을 쏘아 올렸다. 포격과 총격을 뚫고 청군이 보루로 접근하자, 조선군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기관총 발사!”
조선군에는 영국에서 수입한 맥심 기관총이 있었다.
맥심 기관총은 영국군에 도입된 게 1886년이었고, 싱가포르 주둔군에 도입된 게 1889년의 일이었다. 조선군은 1892년에 수입하여 배치했으니, 동양군대 중에서는 제일 먼저 도입한 셈이었다.
드르륵드르륵 소리와 함께, 기관총의 총열이 불을 뿜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으아아악!”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알에 청군은 혼비백산했다.
청군도 개틀링 건을 다수 보유했지만, 개틀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맥심 기관총의 위력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전방의 청군은 엄폐물조차 없었고,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한 채 픽픽 쓰러져 나갔다.
“으아아아! 도망쳐라!”
“죽고 싶지 않으면 튀어라!”
남서쪽의 안산을 공격하던 위여귀의 성자군이 제일 먼저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니, 도망치는 건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퇴각, 퇴각! 퇴각해서 전열을 다시 정비한다!”
위여귀와 성자군 지휘관들이 병사들보다 먼저 혼을 빼고 도망쳤다. 전투 개시 2시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생애 첫 전투, 안산 보루를 방어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기다리던 12연대 장병들이 황당할 정도의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