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86
– 186화에 계속 –
186화 평양 전투
서쪽의 칠성문 방향으로 진격한 회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군은 태평천국 전쟁 이래 이홍장의 직계 부대로, 청군 중에서 가장 이르게 근대화한 부대였다. 무기도 독일의 최신 소총인 게베어 1888(Gew88)과 크루프 야포로 무장했다.
문제는 지휘관에게 있었다. 이들은 근대전에 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섭지초와 지휘부가 마지막으로 경험한 전쟁은 30년 전 태평천국 전쟁이었다.
“돌격! 돌격하라!”
칠성문 맞은편 고지대인 기자릉(箕子陵)에서 진을 친 회군 지휘부는 포격이 끝나자 무조건 돌격 명령을 내렸다.
엄폐물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문자 그대로 지옥을 향해 돌격하는 셈이 되었다.
칠성문을 지키는 방위군은 조선군에서 최고 정예인 근위사단이었다. 근위사단은 러시아제 최신 소총 모신-나강(Mosin–Nagant M1891)과 크루프 야포, 맥심 기관총으로 무장했다.
모신나강은 러시아군의 제식소총으로 채택된 지 얼마 안 되었으나, 이선과 니콜라이 황태자의 특별한 관계 덕분에 조선으로 수출되었다. 러시아는 흔쾌히 기술이전에도 동의하여 소총과 탄약을 조선에서 생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격 개시!”
근위사단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참모장 한규설이 명령을 내리자 일제히 총구에서 불을 뿜었다.
콰앙! 콰앙!
탕! 탕! 탕! 탕!
드르륵드르륵……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당!
“으아아악!”
“내, 내 다리!”
“저, 저게 다 뭐냐?”
“도, 도망쳐라!”
성벽을 향해 무작정 돌격하던 회군 병사들은 기관총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전방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쓰러지자, 그 꼴을 본 병사들은 더는 진격하려 들지 않았다.
“이, 이래서 무작정 공격하면 안 되는 거라니까!”
고지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회군 지휘부는 기관총의 위력을 보자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섭지초가 거느린 병력은 회군 전체의 3분의 1이었다. 만약 궤멸하기라도 한다면, 이홍장의 진노는 자신이 다 받아내야 할 상황이었다.
“공격 중단! 병력을 후퇴시켜라!”
공격하던 청군 부대들은 전투 개시한 지 얼마 안 되어 전의를 상실했다. 그나마 북쪽을 맡은 좌보귀의 봉천군만이 분투 중이었다.
“무조건 돌격하지 말고, 지형을 이용하여 공격하라!”
평양성의 북쪽은 고지대였고, 좌보귀는 먼저 현무문 밖의 보루들을 정리한 후에 현무문으로 진격하려 했다. 돌출되어 있는 첫 번째 보루는 혈투 끝에 함락시켰으나,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 보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북쪽을 맡은 4연대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평안도 출신들로 구성된 4연대는 진위대에서도 손꼽히는 부대였고, 그들의 도시인 평양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은 그 누구보다 강했다.
“만주 간나새끼들한테 날래 피양 사람의 힘을 보여 주라!”
“오오!”
콰앙! 콰앙!
모란대와 현무문에서 북쪽으로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보루에서는 기관총이 총알을 쏟아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당!
“으아아아악!”
봉천군이 상대적으로 잘 싸웠다지만, 신속한 공격을 주장하던 좌보귀조차도 이 이상 병사의 희생을 늘리는 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으음…… 조선군을 너무 얕보았구나.”
“사령관님의 명령입니다! 전군에 공세를 중단하랍니다!”
섭지초의 명령이 떨어지자, 좌보귀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공격을 중단한다! 철수하라!”
“적이 도망친다!”
“이겼다!”
“와아아아아!”
청군의 공세는 정오에 시작되어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종료되었다.
청군이 다수의 사상자를 낸 것과 달리 조선군의 사상자는 극히 적었다. 초반 포격의 희생과 북쪽 보루에서의 격전을 제외하면, 청군과 비교해서는 피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장병 제군, 모두 노고가 많았다. 조선의 위대한 첫 승리는 그대들이 쟁취해 냈다. 전쟁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개화의 성과를 적에게 똑똑히 보여 주었다. 청군이 허명과 달리 얼마나 허약한지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전투가 끝난 후, 적의 공격이 계속될지 모르니 위험하다는 주위의 우려에도 이선은 성벽을 돌며 장병을 격려했다. 군의 행정과 보급, 사기를 끌어 올리는 일은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서전의 승리에 불과하다. 침략자를 완전히 분쇄하고, 삼전도의 치욕을 되갚아 주자!”
“와아아아!”
“대조선국 만세!”
“대군주 폐하 만세!”
병사들은 이선의 격려에 환호성을 보냈다. 이선이 각 보루를 돌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병사들을 열렬한 환호로 화답했다.
“만청 오랑캐놈들, 생각보다 별 게 아니던데?”
“우리의 무기가 강한 거지. 저 기관총이 만들어낸 승리나 다름없어.”
“무기가 아무리 좋아도, 전쟁하는 건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완화군 대감의 말씀을 못 들었나?”
“맞아. 그만큼 우리가 잘 싸운 거지.”
“오랑캐 놈들은 줄행랑치느라 정신없고. 하하하!”
“아예 끝장을 봐 버렸으면 좋겠군.”
“암, 다시는 조선 땅을 노리지 못하도록 해야지.”
병사들은 서전의 승리에 기뻐하며 도취해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청군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단 하루 만에 2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좌 공의 말만 듣고 공격을 했다가 결과가 이게 뭐요? 병사들만 희생시키고 얻은 게 없지 않소!”
섭지초는 책임을 좌보귀에게 돌렸다. 좌보귀도 지지 않고 맞섰다.
“나는 총사령의 명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그래도 봉천군은 분투하여 적의 보루를 빼앗았습니다. 대체 회군과 다른 부대는 무엇을 한 겁니까?”
“뭣이! 지금 모든 부대를 모욕한 것인가!”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게 봉천군이 용맹하면, 다음 전투는 혼자서 싸우면 되겠습니다그려.”
위여귀가 조롱하는 어조로 말하니 좌보귀가 성을 냈다.
“총사령의 명령도 떨어지기 전에 제일 먼저 도망쳐놓고서는 뭐가 잘났다고 하는 소리요!”
“도, 도망이라고? 병사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불기한 조치지!”
각 군의 지휘관들끼리 책임을 전가하는 꼴사나운 상황이 벌어졌다.
5군의 지휘관들은 명목상 계급이 같았다. 단지 섭지초가 이홍장의 안휘 파벌이라는 이유로 원정군 총사령을 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섭지초는 대군을 지휘할 능력이 없었고, 지휘관간의 알력을 중재할 신망도 없었다.
안휘 출신이 주류를 차지하는 원정군의 지휘관들은 산동 출신, 더욱이 회족인 좌보귀를 따돌렸다.
그나마 용맹한 좌보귀도 근대전에 무지하기는 매한가지라, 청군 지휘부는 지리멸렬한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격론이 오고 가는 중에, 전령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섭지초의 얼굴이 희색이 돌았다.
“중당께서 요동의 명군(銘軍)과 여러 부대들을 원군으로 보내셨소. 그 수는 총 3만. 대동구에 상륙해, 압록강을 넘어 진격할 것이라 하오. 이들의 합류를 기다립시다.”
“아니, 왜 진남포로 바로 오지 않고요?”
“일본 해군이 계속 황해를 돌아다녀서 진남포까지 항행하기에는 너무 멀게 느껴진 거겠지.”
“우리 처지에서는 압록강에서 평양이 멀게 느껴지는 건 매한가집니다.”
“각개격파가 걱정됩니다. 차라리 병력을 청천강까지 후퇴시켜서, 남하하는 원군과 합류한 후에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평양을 눈에 앞두고 떠나려니 속이 쓰리지만…….”
섭지초도 퇴각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그런데 무작정 퇴각만 하면 조선군이 분명 후방을 공격하려 들 겁니다. 방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맞는 말이오. 좌 공이 용맹하니, 봉천군이 후위대를 맡아주었으면 하는데.”
섭지초의 말에 장군들의 시선이 모두 좌보귀에게 향했다. 결국, 좌보귀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봉천군이 후방을 맡지요. 단, 무질서하게 철수해선 안 됩니다. 병가(兵家)에서 이르기를, 진격보다 퇴각이 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전략적인 퇴각이 되어야 무작정 도망쳐서는 안 됩니다.”
좌보귀는 다른 군영들이 봉천군만 내버리고 도망칠 걸 우려했다. 특히 위여귀는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아, 물론이오. 사흘 뒤 전군이 함께 퇴각하도록 합시다. 적도 5만이나 되는 병력을 함부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오.”
원정군에 퇴각 명령이 내려졌다. 목적지는 청천강이었다. 이미 사기가 떨어져 있던 청군 병사들은, 명령에 기뻐하며 퇴각을 준비했다.
하지만 상황은 청군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조선군은 이미 야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2사단장 한성근(韓聖根) 장군의 보고입니다. 1여단이 대동강을 건너 강서(江西)에 이르렀습니다. 17일이면 평양 외곽에 도착할 것입니다.”
“음, 때맞춰 와 주었군.”
경기도 해안 일대를 지키던 진위 1여단도 북상을 했다. 삼남의 3사단 병력이 한성과 경기도에 진입하여, 수도 방위에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1여단은 한양에서 경의선을 타고 신속히 북상했다. 중화군(中和郡)에 도착한 1여단은 열차에서 내려, 북쪽 평양 방향이 아닌 서쪽으로 진격했다.
대동강 하류의 십이포에서 도하한 후, 우회하여 청군의 북서쪽을 향해 진격했다. 청군을 배후에서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보고 드립니다. 원산에서 평양을 향해 행군 중인 5여단이 강동(江東)에 도달했습니다. 곧 대동강을 도하할 예정입니다.”
함경도의 5여단은 전쟁 초기부터 평양으로 병력으로 향하게 했지만, 산맥을 관통해야 하는 험악한 도로 사정상 진격이 느려졌다.
“예정보다 좀 늦어지긴 했지만,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예상 도착 시각은?”
“18일이라고 합니다.”
“안 돼, 늦어. 17일까지 평양 동북방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네. 최대한 빨리 진격하도록!”
1사단장 윤웅렬은 5여단에 신속히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고 드립니다. 적의 후방을 공격하던 4여단 6연대와 의용군이 남하하여 순안(順安)에 도착했습니다.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계속 순안을 지키면서, 청군의 배후를 견제하며 유격전을 계속하도록 하라.”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청군에 대한 포위망이 완성되기 직전이었다.
이는 본래 조선군이 계획했던 바가 아니었다. 때맞춰 평양에 집결하려고 했는데, 상황의 변화 혹은 부대마다 진격 속도가 달라서 제각기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만약 청군이 확실한 정보망과 전략을 갖고 있었다면 각개격파를 당할 수도 있는 위기였겠지만, 청군은 그 어느 쪽도 결여되어 있었다.
조선군은 전보와 전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빠르게 정보를 취득했다. 그 덕으로 원활하게 작전을 짜고 수행할 수 있었다.
“장군, 이만하면 굳이 평양에 농성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1여단과 5여단이 합류하는 대로 세 방향에서 공격하시지요.”
“야전에서 전투를 벌이면 우리의 방어적 이점을 스스로 저버리는 게 아닐까?”
“청군의 실태를 잘 보지 않으셨습니까? 적은 혼비백산하여 무너질 겁니다.”
평양성 안의 조선군은 근위사단, 4여단 4연대, 6여단 11연대, 12연대, 평양 의용군을 합쳐 3만이었다.
여기에 세 방향에서 오는 1만 7천의 병사를 합치면, 충분히 청군과 일전을 벌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적을 우습게 보았다간 우리가 역으로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야전 경험이 부족합니다.”
야전파와 신중파 간에 의견대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장교들은 말없이 상석에 앉아있는 이선의 의견을 구했다.
“군무대신 각하의 의견은 어떠신지…….”
이선은 지금껏 군사작전에 개입하지 않고 장교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군무대신에게는 군정권은 있어도 군령권은 없었고, 이선은 권한의 경계를 철저히 지켰다. 명목상의 근위사단장이기도 하지만, 지휘도 참모장인 한규설에게 맡겼다.
물론 왕족이라는 지위를 내세워 밀어붙여도 될 일이지만, 이선은 그런 나쁜 선례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나는 전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의견을 물었으니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말하지요.”
이선은 전략지도에 표시된 청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가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청군은 지휘관과 각 군의 알력이 심각합니다. 이홍장의 회군 파벌에 속하는 자와 아닌 자, 지역 간의 갈등도 심하지요. 특히 총사령인 섭지초는 지도력이 졸렬하기 짝이 없다고 합니다.”
“호오, 역시 각하의 정보력은 대단하십니다.”
“뭐, 나야 한동안 청국에서 머물렀고, 이홍장과도 친분이 있었으니까요. 적의 지휘관들이라면 대략 누군지 다 압니다.”
“과연 그렇군요.”
엄밀히 말하면 그 정보의 출처는 이선의 역사적 지식이었다. 역사가 바뀌었다지만, 청군 지휘부의 인적 자원은 그대로였다. 이들의 무능과 추태는 실제 청일전쟁이나 바뀐 역사나 크게 변한 게 없었다.
“한번 공세가 실패했으니, 분명 섭지초는 소극적인 전략만 취하려 할 겁니다. 어쩌면 이 시점에서 퇴각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적은 결코 아군의 공세에 유기적인 대응을 할 수 없습니다. 일전을 벌인다면, 승리는 아군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선의 의견이 더해지자 야전으로 기울어지던 조선군 지휘부의 의견은 확정되었다.
“17일에 출성하여 전면 공세를 단행합니다. 서남쪽의 1여단과 동북쪽의 5여단이 적의 좌익과 우익을 공격하도록 합니다. 6연대와 의용군은 후방으로 퇴각하는 적을 사냥하도록 하면, 완벽한 포위 작전을 구사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야전을 결정한 조선군 지휘부는 10월 17일의 평양 결전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