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193
– 193화에 계속 –
193화 문명과 야만
1사단 4여단이 수구진 대안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흑룡강군이 급히 퇴각하면서 산포와 다수의 탄약을 노획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어 5여단도 도하에 나섰다. 수구진을 통해 압록강을 건넌 5여단은 빠르게 진격하여 구련성 동북방 유수구(揄樹構)를 점령했다.
“동북 방면이 뚫렸다! 급히 지원군을 보내라!”
섭사성이 이끄는 회군, 유성휴의 명군이 급히 동북방으로 기동해서 5여단의 전방을 가로막았다.
“공격!”
“물러서지 마라!”
청군의 반격이 쏟아지자, 5여단은 방어선을 뚫는데 고전했다.
4여단도 공세에 나섰다. 선봉에 선 6연대가 지나치게 돌출되는 바람에 청군의 화력에 노출되었고, 한때 위기에 처했으나 4연대가 구원한 덕에 적을 격퇴할 수 있었다.
구련성 동북방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1사단이 고전을 겪는다는 보고에, 조선군 지휘부는 결단을 내렸다.
“부교를 넘어 도하하라!”
의주 방면의 압록강 부교를 통해 2사단 1여단과 6여단이 진격을 개시했다.
콰앙! 콰앙!
조선군에서 가장 강력한 야포를 보유하고 있는 근위사단 포병대가 압록강 대안의 적 진지를 향해 포격을 쏟아냈다.
“도하를 저지하라!”
타다다다다다당!
구련성 전면, 호산을 지키는 송경 직할의 의군은 포격으로 도하를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선군의 포화가 계속 진지를 두드려댔다. 가뜩이나 낮은 청군의 사기는 계속 떨어져 갔다.
청군의 주력은 동북방에서 교전 중이었고, 조선군 2사단은 피해를 감수하고 계속 진격해 나갔다.
“퇴각! 퇴각!”
호산 방어 부대는 조선군 선두가 도하에 성공하자, 급격히 전의를 상실하고 진지를 포기하고 구련성을 향해 퇴각하기 시작했다.
1사단과 교전을 벌이던 동북방의 청군도 반격이 실패하자 전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흑룡강군이 도망치는 바람에 적이 계속 밀려오는 거 아닌가? 총병은 뭐 하는 거야?”
“급보! 후산을 지키는 의군도 도망쳤다!”
“젠장, 그러면 우리만 싸울 이유가 있나?”
회군과 명군도 급격히 전의를 상실하고, 구련성 방향을 향해 퇴각했다.
마치 전염병이라도 퍼지는 것처럼 청군의 한 부대가 도망치면 다른 부대도 전열이 무너지고 도망치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1사단이 수구진을 넘어 구련성 동북방 유수구에 교두보를 확보하고, 2사단은 구련성 전면의 호산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이윽고 근위사단도 도하에 성공하면서, 조선군 주력은 순조롭게 압록강을 넘어 만주에 들어섰다.
한민족의 군대가 만주를 향해 진격하는 건 약 500년 만의 일이었다.
피해가 적잖이 있었지만, 조선군은 사기가 충천했다. 구련성에 대한 공세는 다음날로 예정하고, 조선군은 숙영에 들어갔다.
그날 밤.
이크탕가는 구련성 방위를 포기하고 퇴각을 지시했다. 사령관도 이미 전의를 상실한 부대를 이끌며 더 싸울 의지가 없었다.
“봉황성으로 철수한다. 신속히 퇴각하라.”
사령관의 퇴각 소식을 알게 되자 각 군영도 봉황성(鳳凰城)을 향해 퇴각했다. 무기나 물자는 허다하게 버려두고 몸만 야반도주하는 꼴이었다.
11월 24일 오전. 조선군 선발부대가 구련성에 입성했다. 청군은 이미 퇴각했으므로, 아무런 저항조차 받지 않았다.
조선군은 구련성과 적의 진지에서 상당한 전리품을 노획하는 데 성공했다. 조선군은 노획 물자를 바로 점검했다.
“야포 75문, 기관총 5문, 소총 4,500정, 포탄 3만 7천 발, 총탄 430만 발입니다.”
“많이도 버리고 갔군. 청군의 환영 선물인가? 고맙게 잘 쓰겠다고 전해 주면 좋겠는데, 이미 도망치는 바람에 들을 사람이 없군.”
이선의 농담에 주위 장교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노획 물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분명 청군의 무기는 좋고 물자도 넉넉했다. 제대로만 싸운다면, 조선군의 도하를 충분히 저지할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무능하고,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기었다. 전쟁 수행에 대한 의지 자체가 없었다.
아무리 겉보기에는 그럴싸해도 청군의 추태는 결국 전쟁은 사람이 한다는 걸 증명한 셈이었다.
구련성을 점령한 후, 조선군 2사단 6여단은 남쪽 압록강 하류의 안동현을 확보했다.
5개 여단으로 구성된 조선군의 주력은 북쪽을 향해 진격했다. 목표는 옛 고구려의 고토, 봉황성이었다.
일본군은 요동 반도의 대부분을 석권하여 여순으로 진격하고, 조선군도 압록강을 넘어 만주를 향해 진격했다.
조선과 일본에 보낸 밀사들도 소득이 없었다. 두 나라는 모두 휴전을 거부했다.
보고를 받은 이홍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조선에 봉황성을 내줘도 상관없다. 하지만 여순이 함락되면 북양함대의 대재앙이다.”
여순 함락에 대비해 북양함대를 모두 산동의 위해위로 피신시키긴 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큰 항구와 드라이 독을 갖춘 여순과 달리 위해위는 제대로 된 수리 시설도 없었다. 여순을 빼앗길 시 북양함대의 작전 능력이 급감하게 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송경은 여순 방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들려오는 전황은 비관적인 것뿐이었다.
지난 16년 동안 구축했던 여순의 해안요새만을 믿을 뿐이었다.
하지만 북경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태후의 60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진연이 성대하게 이뤄졌다.
서양 각국 공사들은 서태후의 진연에 초대되어 자금성에서 황제를 알현하였다.
외교관은 새로이 부임한 주재국의 국가원수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여전히 중화라는 우월 의식이 있었던 청나라는 온갖 핑계를 대가며 각국 공사가 황제를 알현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열국의 대표가 함께 태후 폐하의 생일을 축하하면, 이는 대청의 위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광서제는 서태후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외국인의 출입이 금지되던 자금성 내원에서 서양 공사들을 접견하는 행사를 했다.
자신은 서태후나 예전의 황제들과 달리 서양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천하의 대국이라 생각했던 중국이 서양도 아니고 일본과 조선에 연전연패하고 있다는 현실은, 황제의 위기의식을 일깨웠다.
진연은 극도로 화려했다. 금은과 각종 보화가 진상되고, 온갖 산해진미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귀족 출신인 서양 외교관들도 입을 딱 벌릴 정도였다.
“이렇게 성대한 진연은 난생처음 보오.”
“중국은 가난한데 청 황실의 부는 참으로 엄청나군.”
“거참, 이 나라가 지금 전쟁 중인 나라가 맞나?”
“누가 보면 이미 승전한 줄 알겠소.”
서태후는 전 중국과 ‘오랑캐’를 향해 청 황실의 부를 과시할 목적이 있었을지 몰라도, 전쟁 중인 나라의 일로 어울리지 않았다.
북경의 관료들은 물론이고, 전국의 총독과 순무들도 의무적으로 세액의 상당수를 서태후 진연을 위해 상납했다.
그렇게 진연을 위해 쓰인 돈이 은 700만 냥이라 했고, 일설에는 1000만 냥도 넘었다고 한다. 청나라의 1년 예산이 약 8000만 냥이니, 10분의 1을 써 버린 것이다.
“올해 북양함대에 배정된 예산이 얼마지?”
진연 소식을 들은 이홍장이 저도 모르게 주위의 막료에게 물었다.
“150만 냥에 못 미칩니다.”
이홍장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700만 냥이면, 대체 군함이 몇 척이란 말인가.”
일본 해군과의 결전에 대비해 이홍장은 순양함 3척의 추가 구매를 건의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결과, 황해 해전에서 북양함대는 쾌속 순양함 중심의 일본 해군에게 두들겨 맞았다. 특히 맹활약한 순양함 요시노는 애초에 북양함대가 구매하길 희망했던 배였다.
군함 몇 척을 더 샀다고 해서 전황이 바뀌진 않았겠지만, 이홍장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 자신도 실권자인 서태후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뇌물을 바쳤지만, 결국 참담한 현실에 직면했다.
‘최고위층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개혁을 할 수 없구나. 일본은 물론이요, 조선에까지 밀리다니.’
이홍장은 실패를 절감했다.
대련을 점령한 일본군은, 이윽고 여순을 포위했다. 만주군 사령관 송경은 여순 방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보고했지만,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그는 여순의 상황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만주군의 주력은 압록강과 요동 반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뒤늦게 금주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순은 북양함대의 모항이자, 청국이 16년 구축한 포대와 요새가 있었다. 영국이 방어하는 홍콩보다 시설이 우수하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항구는 언덕진 지형과 강력한 포대로 보강되었으며,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지고 있다.
병력 2만이 여순에 주둔 중이었으므로, 요새를 활용해 굳건히 버티면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지휘관이 문제였다.
북양함대가 위해위로 철수하자, 청군 상당수는 전투 의지를 상실했다. 여순의 행정책임자인 도대 공조여와 통령 황사림, 조회업, 위여성은 전투 직전 도주해 버렸다.
통령 강계제(姜桂題)가 여순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지만, 이미 청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전군, 포격 개시!”
“돌격!”
11월 28일, 일본군 1군이 여순 요새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청군은 초기에 격렬히 저항했다. 포대와 요새에 근거해서 저항하면서, 일본군의 초기 돌격은 적잖은 사상자를 냈다.
하지만 일본군의 포화와 공격이 점점 더 강해지고, 청군의 포대가 잇달아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자 전투 의지를 상실했다.
일본군이 공격을 개시한 지 하루 만에, 청군 지휘부는 여순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퇴각을 시작했다.
전투 자체는 수월하게 끝났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발생했다.
조선과 일본은 그동안 국제법을 존중하여 청국 포로를 잡으면 국제법에 따라 대우를 해 왔다.
하지만 청군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예전처럼 포로를 가혹하게 대하고, 전사자의 시신을 능욕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순 전투를 전후해서 거듭된 패배에 악에 받친 일부 청군이 전사한 일본군의 시체에서 목을 잘라 효수(梟首)하는 일이 빈번히 있었다.
이는 일본군의 분노를 자아냈다. 요새를 함락시킨 일본군은, 전사한 전우들의 잘린 목이 줄줄이 내걸린 모습을 보고 격노했다.
“역시 청국놈들은 야만인이다. 전혀 문명화되지 않았다.”
“야만인들에게는 야만적인 대우를 해 줘야 한다.”
프로파간다의 영향으로 일본은 장교와 병사를 막론하고 중국인을 야만인으로 여겼고, 전쟁이 지속하면서 멸시관은 더욱 강해졌다.
“야만적인 청국놈들은 죽어야 정신을 차릴 거다!”
“청국놈들을 죽여라! 전우들의 원수를 갚자!”
“저놈들이 군복을 벗고 도망치니, 군인인지 양만인지 알 길도 없다. 일단 사내라면 무조건 죽여라!”
여순을 함락시킨 일본군은 군인과 포로,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남자라면 모조리 죽이기 시작했다.
기관총의 총탄이 비무장한 포로들을 향해 쏟아지고, 총검이 꽂혔다.
여순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이러고도 문명국을 자처할 수 있는가?”
연락장교로 일본군에 파견되어 있던 조선군 장교 이회영은 참상에 격분했다.
조선과 일본 양군은 서로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연락장교를 파견했고, 일본군 1군에는 영어와 일본어가 능통한 정보장교 이회영 정위가 파견되었다. 그동안 이회영은 일본군 지휘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왕도를 잊으면 안 되는 것이거늘!”
시체가 쌓인 학살의 참상을 본 이회영과 조선군 연락 장교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개중에는 헛구역질을 하는 이도 있었다.
본래 명문가 태생으로 유학적인 교육을 받고 훌륭한 인품을 갖춘 이회영에게 국가가 수행하는 전쟁이란 정정당당한 것이어야 했다.
이회영은 그동안 일본군을 높이 평가했다. 지휘관은 유능하고 병사들은 군기가 잘 잡힌 정예병들이고, 작전 수행에 차질이 없었다.
그에 비해서 청군 지휘관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병사들은 싸울 의지가 없었다.
이회영 자신도,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익숙해졌다. 문명국이 승리하고, 야만국이 패배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여순의 학살을 보면서, 문명과 야만에 대한 본질적인 회의감이 들었다.
“영국과 법국이 문명의 이름으로 원명원을 불태우고 중국인들을 죽였지. 이제 일본이 서양의 흉내를 내며 문명의 이름으로 학살을 하는구나. 누가 문명이고, 누가 야만인지…….”
분명 청군은 ‘야만적’으로 일본군 포로를 참살하고, 효수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는 군 차원에서의 범죄가 아닌 일부 병사들의 일탈이었고 전쟁 수행에 효율적인 행동도 아니었다.
그에 비해 일본군은 ‘문명적’인 수단을 이용해 청군 포로와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기관총과 총검으로 상징되는 일본군의 학살은 분명 ‘효율적’이었다. 희생자 수도 비교할 수가 없는 정도였다.
이회영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홀로 살아남아 울부짖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호했다.
‘이걸로 전쟁이 끝난 것인가? 아니,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중국인들은 침략자에 대해 누대의 원한을 품을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조선도 같은 실수를 저질러선 안 될 터인데…….’
이회영은 동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태양은 붉은빛을 띠며 찬란하게 떠올랐지만, 지상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