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0
– 20화에 계속 –
20화 상승군(常勝軍)
이선은 송금덕과 장여원을 내세워 중국 내륙에서 홍삼 무역을 진행하게 했다. 당장 필요한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에서 들여온 홍삼 1천 근 중 절반을 천진에서 판매하고, 받은 돈으로 개항장의 서양 면직물들을 구매했다.
“이를 개성에 실어 나른 후, 다시 홍삼을 천진으로 싣고 오겠습니다.”
“부탁하겠소.”
송금덕은 면직물을 싣고 개성으로 돌아가고, 이선은 수익의 일할을 약속한 대로 ‘관세’로 내기 위해 북양 대신 관저로 갔다.
“저희가 직례성에 납부하는 관세입니다.”
이선의 명을 받은 안영흠이 은자가 담긴 상자를 전달하자, 이홍장이 상자를 열어 보았다가 닫았다.
“군은 계산이 빨라서 좋구려.”
“중당의 도움을 받아 천진에서 무역을 하고 있는데, 마땅히 개항장을 관할하는 북양 대신께 관세를 드려야 맞지요.”
“하하, 좋소. 무역이란 그렇게 하는 거지. 저 양이의 무리는 부를 쫓아서 세계 곳곳을 안 누비는 곳이 없소. 앞으로 조선도 대외 무역으로 부를 축적해야 할 거요.”
“예, 그리해야지요.”
‘고려 홍삼이 중국 내륙에서도 수요가 높고, 그 가격이 폭등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당장 무역을 통해 개혁 자금으로 삼을 수 있는 건 역시 홍삼이다.’
가난하고 상공업이 뒤떨어진 조선이란 나라에서, 즉시 가치를 갖고 판매할 만한 대외 무역 상품은 홍삼 정도였다. 이선은 일단 홍삼으로 개혁 자금을 확보할 생각이었다.
“완화군, 혹시 상해로 가 볼 생각은 없소?”
“상해라 하오시면, 어떠한 일로?”
이선도 천진에만 있기가 좀이 쑤시던 차였다.
“상해에는 내 별장이 있지. 거기서 잠깐 쉬다 올 생각이오. 군도 동행함이 어떤가 해서.”
이선은 천진을 능가하는 중국 최대의 개항장인 상해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홍장이 지금 같은 시국에 단순히 여름 휴가나 가자고 상해를 가는 건 아닐 터.’
“중당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오나 지금 아라사와의 마찰로 인해 북경이 혼란스러운 듯한데, 중당께서 상해를 가신다는 건…….”
이선의 말에 이홍장이 껄껄 웃었다.
“과연 군은 눈치가 빠르군. 친구를 만나러 간다오.”
“친구라 하시면?”
“전우라고 하는 게 낫겠군. 장발적(태평천국)과의 전쟁에서 함께 싸운 전우요. 서양인치고는 여러모로 괜찮은 사람이라, 군에게도 소개해 줄까 해서.”
‘이홍장의 서양인 전우? 누구지? 아아!’
이선은 순간 생각이 미치는 바가 있었다. 이홍장의 회군과 함께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청군 최초의 서양인 지휘관인 영국 장교 찰스 조지 고든(Charles George Gordon)이라 짐작했다.
“혹시 상승군의 고든 장군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군이 고든을 아오?”
이홍장이 놀랍다는 식으로 말했다.
“저야 중당을 마음 깊이 존경하는데, 중당과 더불어 역도를 토벌한 고든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이선은 일부러 이홍장을 추켜세웠다.
“흠, 하긴. 대청의 식견 있는 이 치고 고든을 모르는 이는 없지. 아무튼 서양인 중에 드물게 중국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 이번에 다시 중국으로 불러들였소.”
“제가 고든 장군을 만날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조선도 개국을 하게 되면 서양인과 관계를 맺게 되지. 특히 군대를 재조직할 외국인 고문이 필요할 거고. 고든과 같이 유능하면서도 동양에 대해 존중이 있는 이면 좋지.’
“좋소. 그럼 함께 가는 것으로 알겠소.”
6월, 이선은 이홍장과 함께 북양 수사의 기선에 올라 상해로 향했다.
“신식 군함에 타보니 어떻소?”
“새삼 대청의 위엄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선은 빈말로 하는 말이었다. 아직 북양 수사는 연안 방어에 중점을 두고 있어, 근대식 군함은 포함이 전부였다. 서양 해군과 비교하면 어림도 없었다.
“허허, 고맙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소. 서양의 해군은, 특히 영국 해군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오.”
이홍장은 올해 영국에 순양함 2척을 구매했고, 정여창이 영국으로 인수하러 갈 예정이었다.
“세상을 뒤엎을 기세인 아라사도 영국 앞에서는 벌벌 떨지.”
이홍장은 조선의 왕자인 이선을 서양식 군함을 태워, 세계 최강국으로 꼽히는 영국의 장교를 소개할 생각이었다. 즉, 서양 기술과 무기를 받아들인 양무운동의 성과를 조선에도 전할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육군은 어떠한지요?”
“육군은 아라사가 더 강하지……. 중국은 아라사와 국경을 면하고 있으니, 그래서 고민인 것이오. 이는 또한 조선의 고민이기도 하고.”
이홍장이 고든을 불러들인 건,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비해서였다. 청나라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이홍장은 러시아와 전쟁하면 필패라고 여겼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고든을 군사 고문관으로 초빙했다.
“제가 아라사 영사관을 몇 번 방문해 보니, 아라사 역시 결코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이선은 러시아와 청이 전쟁을 하지 않으리라고 알고 있었다.
“나도 그러길 바랄 뿐이오.”
이홍장은 그 누구보다 전쟁 없이 위기를 넘어가길 바라고 있었다.
북양 수사의 군함이 상해에 이르렀다.
상해부터는 남양 수사(南洋水師)의 관할이지만, 이홍장의 양무파 동료이기도 한 양강총독(兩江總督) 겸 남양대신 심보정(沈葆楨)이 얼마 전에 죽어 공석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홍장이 임시로 남양 수사의 지휘권도 대행하고 있었다.
이홍장이 상해에 도착하니, 청국 관리들이 일제히 도열하여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각하!”
“모두 노고가 많소.”
이선은 새삼 이홍장이 청국 최고의 실력자임을 깨달았다. 북경의 조정에서는 서양에게 유화적이라고 허구한 날 공격받고 있는 이홍장이지만, 서양식 근대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홍장을 중심으로 단결했던 것이다.
이홍장의 별장에서 머무르는 동안, 이선은 상해 조계지를 구경했다.
상해는 청국의 개항장 중 가장 번영하는 곳이었다. 개항 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포구였던 상해는, 개항 이후 서양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화양별거(華洋別居)의 원칙에 따라 서양 조계는 중국인이 사는 공간과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서양 각국이 자치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조계는 마치 중국 속의 서양과 같은, 공간적 단절이 이루어졌다. 조계에는 넓은 대로에 서양식 건물이 세워졌고, 항구에는 서양 각국의 기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상해는 이미 동아시아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엄청나군요. 여기가 중국인지 서양인지…….”
천진에서 이미 개항장을 경험했다지만, 훨씬 서양에 가까운 상해를 보고 안영흠과 장무영은 눈이 돌아가는 듯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진짜 서양은 이보다 더 번영하고 있다오.”
이선도 상해의 번영에 솔직히 감탄했지만,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서양이 중국의 영토를 빼앗아 이룬 성과이니, 좋아만 할 일도 아니다. 근대화는 필요하지만, 서양이나 외부 세력에 의한 근대화가 아닌 주체적인 근대화가 필요하다. 일본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중국은 안 되고 있지. 이는 체제의 경직성과도 관계있지만, 외압의 강도와도 상관있으니…….’
당연히 메이지 일본이 청나라보다 훨씬 빠르고 급진적으로 서양 문물을 흡수하여 개혁을 실시한 덕이기도 했지만, 외세가 중국에게 가하는 강도는 일본과 비교할 수 없었다.
현재 일본을 위협하고 있는 나라는 없지만, 청나라는 영국·프랑스·러시아·일본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영국과는 버마, 프랑스와는 베트남, 러시아와는 신강, 일본과는 류큐를 놓고 분쟁 중이었다.
‘이래서 나라가 너무 넓으면 신경 쓸 일도 많고, 힘을 하나로 합치지도 못한다. 사실 조선 입장에선 아주 나쁜 것도 아니지. 청나라가 외세로 인해 정신없을 틈을 타 조선 개혁의 기회가 있을 터…….’
이홍장이 이선의 속내를 알게 되면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는 족속으로 여길 터였다.
하지만 이선은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청나라의 국력과 이홍장의 능력에 진정으로 감탄한 태도를 유지했다.
6월의 어느 날. 인도를 출발한 영국 육군 대령 찰스 고든이 상해에 입항했다. 이홍장은 직접 고든을 맞이하러 나갔다.
“어서 오시오, 제독. 대청은 제독을 진심으로 환영하오.”
고든은 영국군 대령이지만, 청나라로부터 종2품 제독 관직과 황제의 황마괘(黃馬褂)를 받은 이기도 했다.
“간만에 뵙게 되어 기쁩니다. 각하께서는 여전히 활력이 넘쳐 보이시는군요.”
이홍장과 고든은 서구식 예법에 따라 악수했다.
“못 본 사이에 풍채가 더 좋아지셨군.”
“각하만 하겠습니까. 수염은 하얗게 변했지만 훨씬 위풍당당해 보이십니다.”
두 사람은 덕담을 나누며 껄껄 웃었다.
고든은 회군 사령관 이홍장의 추천으로 서양 무기로 무장한 신식 군대, 상승군(常勝軍, Ever Victorious Army)을 지휘하며 태평천국 진압에 상당한 공을 세웠다.
청나라의 실권자인 서태후는 고든의 공로를 인정하여 천은 1만 냥을 선물로 줬는데, 고든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사실 이는 이홍장 때문이기도 했다.
고든이 소주(蘇州)를 탈환하면서 항복하는 태평천국군의 목숨을 살려 주기로 약속했는데, 항복을 접수한 이홍장이 반란군 지휘관과 병사들을 전원 처형한 것이다. 이홍장 입장에서는 그동안 태평천국이 청군을 학살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겠지만, 고든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이 짓밟히자 격노했다.
고든은 총을 빼 들고 이홍장을 죽이겠다며 결투를 요구했고, 이홍장은 정말 고든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줄 알고 한동안 집에 숨어 있었다. 고든은 항복한 병사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죽이는 청나라의 전후처리에 실망하여 서태후의 은사금을 거절한 것이다.
이유야 어쨌건 거액을 거절한 고든의 처신에 서태후와 청나라 관리들은 크게 감복했고, 종2품 제독 관직과 신하로서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있는 황금빛 관복, 황마괘를 수여했다.
고든이 영국으로 귀환할 때, 상해의 부자들이 거액의 사례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청렴한 고든은 이 또한 거절하고 맨몸으로 귀국했다.
영국 언론은 고든의 활약을, 이른바 ‘차이니즈 고든(Chinese Gordon)’이라 부르며 극찬했다.
1870년대에는 이집트군에 초빙되어 근대화를 지원했고, 이집트에서도 ‘파샤(Pasha)’라는 존칭을 받았다. 이집트의 수단 총독으로 재임하며 노예 무역을 근절하려고 애쓰는 등, 자신의 기독교적 원칙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이홍장이 고든과 애증의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시 군사 고문관으로 초빙한 데에는 그만큼 동양에 대해 잘 알고, 중국을 존중하는 서양인 장교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고든 역시 오래전 악연은 잊어버렸고, 인도 총독의 보좌관을 지내다 문서 작업에 지루함을 못 견디고 막 사임한 상황에서 이홍장의 초빙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제독,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현재 대청은 러시아의 전쟁 위협에 놓여 있소. 이에 대한 제독의 조언을 듣고 싶소.”
이홍장은 자신의 저택에서 고든과 단둘이 자리를 잡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예, 들었습니다. 저는 군인이기 때문에 외교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답해 드리겠습니다. 청은 절대 러시아와 전쟁하면 안 됩니다.”
고든의 단호한 답변에, 이홍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동의하오. 유감스러운 일이나 대청은 러시아를 상대할 국력이 못 되오. 하지만 북경의 주전론자들이 일을 크게 만들고 있소.”
“러시아도 청과 전쟁할 생각은 없을 겁니다. 협상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것입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오.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오. 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겠지.”
이홍장은 차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심각한 표정의 이홍장을 보며, 고든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각하께서는 예전보다 영어 실력이 훨씬 좋아지셨습니다.”
이홍장은 고든과 함께 군을 지휘하며 영어 습득의 필요성을 느꼈고, 40 넘어서 영어를 배워 자유로운 회화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늙어서 배우려니 고생이오. 그에 비하면 어린 나이에 언어를 배우면 확실히 습득이 빠르더이다.”
“하하, 그야 그렇지요.”
“말 나온 김에, 소개할 사람이 있소.”
이홍장은 이선을 불러들여 고든에게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