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01
– 201화에 계속 –
201화 요양 회전(遼陽會戰)
3월 중순, 조선군은 안산에서 북진하여 요양 방향으로 진격했다.
안산에서 요양까지는 탁 트인 평야로 조선군의 진격은 순조로웠다. 산발적으로 기습을 가하는 소수의 기병대를 제외하면, 방해하는 적군도 없었다.
조선군은 봉황성을 떠나 본격적으로 북진을 개시하면서 격문 여럿을 작성해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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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고 령
만주의 중국 인민에게 고함!
충용(忠勇)한 우리 조선군은 청조의 부당한 침략에 맞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만주 진격도 독립전쟁의 일환이다.
이 전쟁은 조선국의 독립을 위한 조선과 청조의 전쟁이지, 그대들 인민의 전쟁이 아니다.
조선군은 애민(愛民) 정신을 갖고 싸운다. 조선의 적은 무능하고 부패한 청 황실과 조정 관리들이지, 결코 중국 인민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청의 관리들, 지주들이 그대들을 얼마나 억압하고 착취했는가? 그대들이 힘써 수확한 농작물들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가는가?
전쟁 중에도 호화로운 사치를 누리는 청 황실의 행태를 보라! 관리란 자들은 백성들에게는 가혹하면서도, 전쟁터에서는 도망치기만 바쁘다. 백성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애민 정신조차 없다.
그대들도 소문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조선국은 공평한 조세, 합리적인 행정, 각종 신문물의 도입, 선진적인 의료 등 여러 혜택으로 인민을 우대한다.
조선군은 무능하고 부패한 착취자들로부터 그대들을 해방할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함을 약속한다. 조선국은 인민의 생명과 재산소유권을 존중한다. 그대들 인민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
단, 조선군에 대하여 반항하거나 또는 공공안녕을 문란 시키는 행위에 대하여는 엄하게 벌한다.
점령 지역의 모든 인민은 즉시 조선국 민정청의 명령과 진주하는 조선군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법률과 공공안녕을 준수한다면,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다. 그대들 인민에게 밝은 미래가 있음을 엄숙히 약속하는 바이다.
위와 같이 포고함.
대조선 개국기원 504년, 서력 1895년 3월 1일
조선국 군무대신 정청군(征淸軍) 총사령관 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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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조선군의 점령 지역은 인구가 희박했지만, 안산을 넘어 요하 평원에 들어선 시점부터는 인구가 대폭 늘어났다.
이들은 대부분 봉금령 해제 이전부터 만주에 들어와 있던 한족들이었다. 만주의 토지를 소유한 자들은 대개 만주족 귀족이므로, 고향을 떠나 만주에 정착한 이들은 대개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이전부터 조선과 갈등을 빚었던 국경 일대의 만주족과 한족들은 조선의 통치에 저항하며 유격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요하 일대의 주민들은 조선에 대한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아직 근대적 의미의 중화민족이란 개념이 형성되기 전이었고, 변방인 만주에선 더욱 그랬다. 구태여 이들을 자극하여 적으로 돌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조선군은 대민 선무공작에 나섰다.
조선군의 격문을 받아든 주민들은 무덤덤했다. 이들은 진격하는 조선군을 딱히 적대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전쟁이 끝나고 일상생활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식량이 부족합니다. 작년이 흉작이었던 데다가 군량미로 쓴다며 군대가 죄다 징발해갔습니다. 겨울은 어떻게 버텼지만 봄이 걱정입니다.”
백성을 대표하는 촌장들이 조선군에게 호소했다. 현지에서 군량을 보급하려 했던 조선군 사령부는 난감했다. 그저 좋은 말로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저런, 과연 청군은 억압자요. 아군이 반드시 억압자를 무찌르겠소. 아군이 요양을 점령하면, 군량고를 풀어 그대들에게 돌려주겠소.”
“谢谢! 谢谢! 大人!”
북벌군과 별동대를 포함하여 만주에 진주한 병력은 약 7만. 이들이 소모하는 군량과 탄약의 양은 엄청 났다. 더욱이 조선은 일본군의 군량도 책임지고 있으니 소모량은 엄청 났다.
국내 생산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제 막 태동한 조선의 산업 생산력은 총력전을 결코 버틸 수 없었다.
그나마 일본이 전비의 8할을 부담하고, 소총과 야포, 탄약과 포탄 등 각종 군수물자를 지원해 주는 덕에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도로 사정은 열악하고, 보급은 계획과 달리 차질을 빚었다.
만약 청군이 북벌군과 교전을 피하고 청야 작전으로 계속 버티기에 들어간다면, 조선도 전쟁 수행에 한계를 느낄 상황이었다.
“조속히 결전을 벌여서 적의 주력을 격퇴하고, 요양을 점령한다. 요양을 점령하면 보급은 모두 충원할 수 있다.”
요양에는 만주군 사령관 송경이 지휘하는 6만의 병력이 있었다.
해성의 일본군에 대한 4차례 공세가 잇달아 실패하고, 일본군이 역습으로 우장과 영구를 함락하자 청군의 사기는 크게 위축되었다.
일본군은 요하를 넘어 청군의 총사령부가 있는 전장대(田庄臺)까지 위협했다. 요서에는 7만의 청군이 있었으나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다.
70대의 노장 송경은 전투를 회피하고 싶어 했다. 그가 생각할 때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아군의 미숙한 훈련과 낮은 사기로 인해, 야전에서는 번번이 패퇴를 면치 못하고 있다. 봉천이라는 전리품을 미끼로 내걸면, 조선군은 계속 북진할 것이다. 야전을 벌이는 대신 청야작전으로 조선군을 보급의 한계선까지 밀어붙인 뒤에 역공을 가하면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조정에서 닦달이 쏟아졌다.
“일본군이 요하를 넘어 요서까지 위협하려 한다. 조선군은 열성조의 고도였던 요양과 봉천을 노리고 있다. 대체 만주군 사령관 송경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만약 전투 없이 요양을 내준다면, 송경의 목이 위태로울 판이었다. 결국, 송경은 결단을 내렸다.
“요양에서 일전을 벌여 조선군을 격퇴한다.”
송경 휘하의 기병대장 장훈(張勳)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 됩니다! 본래 계획대로 청야 작전으로 조선군을 더 깊숙이 끌어들여야 합니다. 봉천까지 끌어들이면, 적의 보급선은 곧 한계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기병대가 계속 적을 괴롭히겠습니다.”
청불전쟁에서 공을 세워 장교가 된 장훈은, 삼국 전쟁이 발발하자 사천제독 송경의 부름을 받아 만주로 향했다.
장훈은 송경의 휘하에서 기병대를 이끌었다. 비록 압록강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장훈의 기병대는 유격전으로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있었다. 송경 휘하의 만주군에서 유일하게 제 역할을 하는 부대였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조정에서는 우릴 겁쟁이로 취급하고 있네. 요양을 싸우지 않고 내줬다간 우리 목이 남아있지를 않을 판이야.”
“무인으로서 전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야전을 벌이기에는 아군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제독께서도 잘 알지 않으십니까!”
“태조 황제께서 천명을 받아 국도로 삼은 요양을 적에게 그냥 내준다면, 우리가 어찌 죽어서 열성조를 볼 수 있겠소이까?”
부사령관 이크탕가는 결전에 동의했다. 그는 압록강 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길 원했다.
“맞는 말이네. 우리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조선군을 무찌르는 수밖에.”
말은 그렇게 해도, 늙은 송경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자신이 죽어서 요양을 사수할 수 있다면 상관없지만,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이 야전에 제대로 응할지 의문이었다.
“요양은 대청의 사직이 시작된 곳이다. 태조 황제께서 천명을 받아 도읍으로 삼은 성지다! 절대 적에게 내줄 수 없다. 반드시 싸워서 승리하자!”
송경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병사들을 독려했다. 요양은 후금을 선포한 누르하치가 첫 수도로 삼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4년에 불과했고, 곧 성경(盛京, 심양)으로 천도했다.
“태조 황제의 성지를 지키자!”
“와아아아!”
이크탕가와 만주족 병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 병사들은 영혼 없이 손뼉만 칠뿐이었다.
“쳇, 봉천이면 몰라도 요양이 무슨 성지야.”
“봉천에는 방어하기 좋은 요새들이라도 있지, 요양은 허허벌판이잖아.”
“조정에서 퇴각하지 말라고 그랬다던데.”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놈들이 여기 상황을 어떻게 알아? 자존심 지키려다가 다 죽을 판인가?”
“이미 우장과 영구도 함락됐다더라. 이제 요동에 남은 건 우리 부대뿐이야.”
“우리가 이 먼 타지에서 죽을 이유가 있나?”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청군 병사들은 싸울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조정과 지휘관이 시키는 대로 전선에 내몰릴 뿐이었다.
청군은 요양 남쪽에 진을 치고, 조선군의 진격에 대비했다.
조선군 역시 결전에 대비하여 옛 역사를 언급했다.
“장병 제군, 봉황성을 출발할 때 완화군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요양은 옛 고구려의 요동성으로, 수나라 백만 대군을 격퇴한 우리 민족의 성지다. 또한, 오백 년 전, 우리 태조 대왕께옵서 원나라 잔당을 무찌르고 수복하셨던 바로 그곳이다!”
“을지문덕과 태조 대왕의 위업을 계승하여, 만청 오랑캐를 무찌르고 요동을 수복하자!”
“와아아아아아!”
“요동을 수복하자!”
청군과 반대로, 조선군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이길 수 있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말이야.”
“암, 그라제잉.”
“만청 오랑캐 놈들, 지금쯤 오줌 지리고 있을걸.”
“흐흐! 길티, 길티.”
“하모요! 참교님 말씀이 맞심더!”
용병이나 다름없는 청군과 달리 조선군은 국민군이었다.
지역 단위별로 나뉘어 있던 부대들도, 전쟁을 거치면서 단일한 균질체로 성장해갔다.
전군이 총동원되면서 북벌군에는 전국 13도에서 온 병사들이 섞여 있었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전장을 누비며, 이들은 전우애와 동지애가 싹텄다.
이전에는, 평안도 산악지대에 살던 포수와 전라도 해안가에 살던 농민이, 한양 도성에 살던 상인과 경상도 향촌에 살던 유생이 한자리에 만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조선 땅이라지만 끝에서 끝, 서로 알지 못하는 세계였다.
하지만 근대화와 국민개병은 이들을 한 장소에 모이게 했고, 같은 깃발 아래서 싸우게 했다.
이들은 이제 단일한 ‘국민’ 혹은 ‘민족’이었다.
“전군, 포격 개시!”
3월 15일, 조선군의 포격으로 요양 회전(會戰)이 시작되었다. 조선군 약 5만 5천, 청군 약 6만으로 합계 10만이 넘는 병력이 맞붙었다. 조선과 청이 교전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전투였다.
콰앙! 콰앙!
조선군의 포격은 격렬했다. 남은 포탄을 이 전투에서 다 쓰겠다는 듯 조선군의 야포는 거침없이 불을 뿜었다.
청군도 야포를 쏘며 반격했지만, 정확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제2사단, 공격 개시!”
“부대, 착검!”
선봉부대가 총에다 총검을 꽂았다. 모신나강 소총에 총검을 꽂으니 엄청 길고 커 보였다. 러시아제 소총과 총검은, 두꺼운 옷을 입는 추운 지방의 전투에 대비해 유독 길고 날카로웠다.
“전군, 돌격!”
빰빠라밤!
군악대의 나팔 소리와 함께 돌격이 시작되었다.
“와아아아아!”
조선군의 전략도 획기적인 건 아니었다. 일제 포격 후 착검 돌격. 요양 전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다다다당!
청군은 참호에서 개틀링 기관총을 쏘며 저항했다. 엄호가 있다지만 엄폐물 없는 개활지에서 조선군 병사들이 픽픽 쓰러져나갔다. 하지만 조선군 병사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죽어라!”
“殺!”
청군의 참호에 도달한 조선군은 냅다 질렀다. 격렬한 육박전이 벌어졌다. 피가 튀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순간이 오갔다.
“1사단, 진격하라!”
조선군의 좌익, 청군의 우익 방향에서 1사단이 공세를 퍼부었다.
격렬한 포격과 착검 돌격, 이번에도 같은 방식이었다.
청군이 근대전에 무지했다고는 하지만, 신식 교리를 연구한 조선군 지휘부도 근대전에 익숙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특히 이런 대규모 회전은 처음이었다.
청군이 착실하게 방어에 나선다면 충분히 격퇴할 수 있었지만, 조선군의 착검 돌격은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
큰 모신나강 소총에 유난히 긴 총검은 시각적으로 상당한 위압감을 주었고, 사기가 떨어진 청군은 근접전에 거부감을 보이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퇴각! 퇴각!”
“병력은 여전히 우리가 우세하다! 겁먹지 말고 진지를 사수해!”
기병대장 장훈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청군의 붕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청군은 아직 예비대가 남아있기에, 전선이 뚫리는 대로 병력을 보내 틀어막을 수 있었다.
송경과 만주군 지휘부는 이번만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군을 몰아붙였고, 송경 직계부대인 의군(毅軍)과 이크탕가 직계의 흑룡강군은 상당한 전의를 보여줬다.
조선군도 전례 없었던 혈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조선군의 희생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어 1사단장 윤웅렬, 2사단장 한성근, 근위사단 참모장 한규설 이하 조선군 지휘관들은 저도 모르게 표정을 찡그렸다.
그때였다.
“청군의 전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뭣이? 왜지?”
조선군 지휘부는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청군이 우왕좌왕하며 전열이 무너지고 있었다.
3사단이 보낸 전령이 도달한 후에야 지휘부는 이변을 깨달았다.
“보고! 3사단이 태자강 도하에 성공!”
“오, 그래! 생각보다 빨리 도하했군!”
“우리 3사단은 그동안 전공을 세운 바가 별로 없다. 조국의 운명이 달린 이번 전투에서는 반드시 승리하도록 가장 크게 기여하자!”
적의 좌익 방향으로 크게 우회기동을 한 3사단이 태자강을 건너, 청군의 배후를 위협하게 된 것이었다.
허를 찔린 청군 지휘부는 필요 이상으로 당황했다. 포위당할 것을 우려한 청군은 정면에 있던 병력을 빼내서 좌익으로 보냈다.
“근위여단, 돌격!”
지금껏 예비대로 아껴놓은, 조선군 최정예인 근위여단이 돌격을 개시했다.
근위여단의 목적은 요양 정면의 고지대인 수산보(首山堡)였다. 수산보를 점령해서 감제하면 전술적으로 크게 유리했다.
“병사 제군, 나를 따르라!”
근위여단 1연대 1대대장 이학균(李學均) 참령의 부대가 가장 먼저 수완보에 도달했다.
“정상에 태극기를 꽂아라!”
3중대장 박승환(朴昇煥) 정위의 부대가 치열한 격전 끝에 수완보 정상에 태극기를 꽂자, 청군의 전열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