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02
– 202화에 계속 –
202화 요동 수복
수완보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조선군이 고지대를 감제하기 시작했다. 이제 조선군의 우세는 결정적이었다.
청군 지휘관들은 전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애썼지만, 병사들은 총과 무기를 내던지고 후퇴하고 있었다.
“기병대, 돌격!”
이크탕가는 예비대로 두었던 기병대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그나마 청군이 우위를 갖고 있는 게 기병 전력이었다. 전세를 뒤집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조선군의 가속화될 공세를 무너트리기 위함이었다.
“끼랴아아아앗!”
“죽여라아아아!”
만주군 기병대가 전방의 근위여단을 향해 일제히 돌격을 개시했다.
한때 청조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만주 기병대. 이들은 조선군을 향해 최후의 돌격을 감행했다.
“사격 준비! 발사!!”
탕! 탕탕! 탕탕탕!
근위 보병이 기병대를 향해 일제히 총탄을 퍼부었다. 기병대는 전방의 전우들이 쓰러짐에도 굴하지 않고 돌격했다.
“멈추지 마라!”
시대가 200년, 아니 100년만 빨랐더라도, 기병대의 돌격은 보병대를 굴복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시대는 19세기 후반이었다.
“기관총! 빨리빨리!”
사령관의 채근에 기관총 부대가 신속히 전선에 자리 잡았다.
“준비 완료! 발사!”
드르르드르륵……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영국제 맥심 기관총이 불을 내뿜자, 총탄이 비오듯이 전방에 쏟아졌다.
“으아아아악!”
히이이이잉!
인간과 말이 내뿜는 처절한 비명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관총 총탄은 전방에 있던 기병대를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요양 회전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한때 만주 기병대는 조선을 굴복시키고 산해관을 넘어 중국 전역을 짓밟아 천하를 제패하게 했던, 청조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만주 기병대의 거침없는 진격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이제는 징병 된 조선 농민들에게도 격퇴당하는 신세였다. 아니, 일방적인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근대의 효율적인 전쟁 기계들이 작동하자, 만주 기병대의 옛 영광은 한 줌의 흙으로 사라져 버렸다.
만주에도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아주 잔인할 정도로 각인시키고 있었다.
“이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하다. 퇴각! 퇴각해서 활로를 찾아라!”
기병대장 장훈은 남은 부대를 이끌며 퇴각 명령을 내렸다. 대장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인간과 말은 공포에 떨며 전진할 수 없었다. 이들은 누구보다 빠른 기동력으로 후방으로 퇴각했다.
“이래서 대규모 회전은 벌이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어리석은 조정 놈들……! 이 병사들이 흘린 피의 대가는 대체 누구에게 받아낸단 말이냐!”
장훈은 이를 부득 갈았다. 여전히 청조와 황제에 대한 충심이 변하지 않은 장훈이었지만, 무능하고 무책임한 조정과 장군들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청조가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이 전쟁에서 살아 돌아간다면 남은 인생은 개혁에 바치겠다.”
장훈은 속으로 분루를 삼키며 변화를 다짐했다.
사령관 송경은 임박한 패배를 부정할 수 없었다.
“요양을 포기하고 봉천으로 퇴각한다. 전력을 유지해야 한다. 질서 있게 퇴각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
“요양에 쌓인 군량과 물자를 조선군에게 넘겨줄 수 없지 않습니까? 모두 태워버릴까요?”
송경이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70대의 노장 송경은 하룻밤 사이에 더 늙고 기력이 쇠해 버린 느낌이었다.
“요양은 태조 황제께서 국도로 정하신 성지인데 불을 지르면 도시 전체가 상할 수 있다. 백성의 원망은 또 어찌하겠는가? 그냥 퇴각하라.”
송경의 퇴각 명령이 떨어지기 전부터 청군은 모두 요양 북쪽, 봉천 방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송경은 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남은 힘을 쏟았다.
청군이 요양을 포기하고 전 전선에서 퇴각하자 조선군은 굳이 공을 다투며 추격하는 것보다 요양에 입성하는 길을 택했다.
“신속히 물자부터 확보하라.”
송경이 불을 지르지 않은 덕에 조선군은 상당수의 군량과 대포, 소총, 포탄, 탄약을 노획할 수 있었다.
요양 점령에 만족감을 느낀 조선군 사령부는 질서 있는 진주를 명령했다.
“도시와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질서 있고 차분하게 요양에 진주하라.”
청 태조 누르하치의 고궁 앞에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병자호란의 치욕이 완전히 씻겨나가는 순간이었다.
장교와 병사 가릴 것 없이, 태극기에 경례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우리가 있는 요양이 바로 고구려가 수나라를 격파한 요동성, 태조 대왕께서 수복하셨던 바로 그 요동성이다. 마침내 요동을 수복했다!”
고구려와 이를 계승한 발해가 멸망한 지 9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성계가 일시적으로 요동성을 점령한 후로도 525년이 지났다.
실로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한민족 군대가 요동에 진주하게 된 것이었다.
조선군을 따라온 종군기자들은 요양 회전의 결과를 전 세계에 타진했다. 조선군이 보무당당하게 요양에 입성하여, 태극기를 게양하는 순간이 사진으로 담겼다.
조선군이 조국 방위 전쟁을 넘어 대외 원정에서도 혁혁한 성과를 거두자 세계는 놀라워했다.
전쟁의 의미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인, 예리한 관찰자는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누가 청조가 조선에 패배하리라 생각했겠는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현실로 일어났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청조의 패배는, 아무리 거대한 제국이라 할지라도 전근대 제국으로는 단일한 근대 국민국가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동양에서, 이제 중화제국의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국민국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말대로였다. 1895년, 오랜 세월을 내려온 중화질서는 종말을 고했다. 중화제국의 시체 위에서, 새로운 국민국가의 시대가 떠올랐다.
요양 함락 소식은 북경의 황실과 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여순이나 위해위와 비교하면 전략적 가치는 떨어져도, 정치적 충격이 엄청났다. 청 태조 누르하치가 후금을 선포하고 수도로 삼은 요양이, 그동안 속국이라고 무시했던 조선에 함락된 것이다.
“태조 황제께서 천명을 이은 요양을 적에게 빼앗기다니……. 어찌 죽어서 열성조를 뵐 수 있겠는가!”
광서제는 눈물을 흘리며 자책했다. 이제 주전파도 어쩔 수 없었다.
공친왕의 조언을 받은 광서제는 이홍장을 북경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이홍장은 북양함대 궤멸 이후 병을 이유로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아, 지난 30년의 사업이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구나!”
이홍장은 분통을 터뜨리며 눈물을 흘렸다.
북양함대, 아니 1860년대 이래 진행됐던 양무운동이 파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청조 자체가 파산의 징조를 보인 것임에도 몰랐다.
자신이 평생에 걸쳐 충성을 바친 왕조가 몰락한다는 사실에 냉철한 정치가 이홍장도 분노와 회한의 눈물을 참을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홍장은 집에 앉아있을 수만 없었다. 요양 함락 소식이 전해지고, 광서제는 거듭 이홍장을 불러들였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놓였으니, 이홍장의 의무감이 그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3월 22일, 이홍장은 건청궁에서 광서제를 알현했다. 이홍장은 이 자리에서 의례적인 미사여구를 걷어치우고 현실을 일깨웠다.
“영토의 할양 없이는 강화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할양은 불가피합니다.”
무거운 침묵이 건청궁을 떠돌았다. 주전파를 대표하는 호부상서 옹동화가 답했다.
“배상금이라면 얼마든지 좋지만, 할양은 안 됩니다.”
“호부에서는 배상금을 얼마나 준비할 수 있습니까?”
“음…….”
옹동화가 입을 열지 못하자 이홍장이 내질렀다.
“이미 배상금 지불로 협상할 수 있는 시간은 지났습니다. 여순과 위해위가 함락되기 전, 북양함대가 궤멸하기 전에 협상에 나섰더라면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동안 조정은 강경론으로 시간만 끌어왔습니다.”
이홍장은 진작부터 영토 할양과 강화를 주장하는 자신에게 매국노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홍장을 탄핵하는 주전파의 상주문에는 온갖 비난이 있었다.
이홍장이 조카이자 양자인 이경방 전 주일 공사를 통해 위장회사를 차려 대일 무역으로 이득을 보고 있고, 은 수백만 냥을 일본에 은닉시켰다든지 하는 낭설이 실려 있었다. 이로 인해 이홍장이 의도적으로 패전을 유도하고, ‘패배를 들으면 좋아하고, 승리를 들으면 근심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비난까지 실려 있었다.
“적이 신을 전권 사절로 원하고 있다고 하니, 늙고 병든 몸이나 몸소 외국으로 가겠습니다. 단, 호부상서 옹동화가 동행하길 원합니다.”
이홍장은 황제의 측근이자 주전파인 옹동화에게 동행을 권했다. 말로만 용감하게 떠들지 말고, 실제 외교에서 그게 통할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본래 내가 외교에 관여했다면 마땅히 동행에 응하겠으나, 그렇지 않으니 어찌 동행하겠습니까. 나는 외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옹동화의 궁색한 답변에 이홍장이 냉소를 흘렸다. 스스로 외교에 무지하다고 자복했으니, 더는 강화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적이 원하는 할양지는 어디인가?”
“일본은 팽호 열도와 대만을, 조선은 조선인이 다수 거주하는 간도 일대라고 생각합니다.”
이홍장은 이 정도는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과 조선이 원하는 요동 일대는 그 자신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반대에 부딪혔다.
“대만을 일본에 할양하느니, 차라리 영국에게 대만의 이권을 넘겨주고 일본과 조선을 막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호광총독 장지동(張之洞)의 제안에 조정은 반갑게 받아들였다. 어차피 넘겨야 할 대만을 일본 대신 영국에게 넘기고, 영국을 끌어들여 이이제이(以夷制夷)가 가능하다면 해 볼 만한 일이었다.
총리아문은 영국 공사에게 제안했지만, 답변은 싸늘했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북경 조정은 또 잔머리를 굴리다 망신만 당한 꼴이었다. 이홍장은 비웃었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인제 와서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인가.”
이홍장은 상주문을 올렸다.
—–
오랑캐가 변경을 엿보는 건 중국 역사에서 늘 있었던 일입니다. 당은 토번(吐蕃, 티베트)에게 하황(河湟, 감숙)을 내주었지만 원화(元和, 헌종)의 중흥을 손상시키지 않았으며, 송은 요(遼, 거란)와 하(夏, 서하)에 할양하였지만, 인종과 영종의 전성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 장차 능력을 키워서 자강의 계책을 꾀하면, 잠시 굽히더라도 어렵지 않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
이홍장은 중국의 옛 역사를 상기시켰다. 광서제와 주전파도 이제 할양이 불가피함을 깨달았다.
3월 31일, 광서제와 서태후의 친견 하에 공친왕, 예친왕, 옹동화, 이홍조 등 군기대신 모두가 참석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홍장은 다시 한 번 할양 불가피론을 내세웠고, 더 이상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날, 이홍장은 광서제와 서태후의 부름을 받아 다시 자금성으로 나갔다. 다른 군기대신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이홍장의 독대였다.
“경에게 전권 사절을 맡긴다. 사신의 인선부터 조약의 조건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의 지모에 맡기고자 한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이 늙은 신하는 죽음을 각오하여 황은에 보답하고, 나라의 이익을 지키겠나이다.”
이홍장은 각오를 다지며 전권 사절을 받아들였다.
요양 함락 소식이 조선으로 전해지자 조선도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삼전도의 치욕을 씻고, 선대왕의 한을 갚았다!”
“태조 대왕께서 가셨던 길을 그대로 따라 왔도다!”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를 되찾았다!”
의주에서 후방을 총괄하고 있던 이선에게도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군무대신 각하, 경하드립니다. 아군이 요동을 수복할 수 있었던 건 각하의 공입니다!”
이선이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우리 장병들의 노고가 컸지요. 찬사는 조선의 장병들이 받아야 합니다.”
이선도 진심으로 기뻐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일본군은 요하를 넘어 전장대로 진격, 격렬한 전투 끝에 요서의 청군도 격퇴했다. 하지만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다시 요동으로 돌아왔다.
일본군의 다음 목표는 직례 결전이었다. 요동의 1군과 산동의 2군에 해군이 합류, 북경 인근에 상륙하여 최후의 결전을 벌이겠다는 계획이었다.
일본군은 직례 결전을 5월 초로 예상했다. 일본군의 통보를 받은 조선군은 비슷한 시기에 봉천을 점령하기 위해 북진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북경과 봉천이라는, 청나라의 양대 국도를 점령하여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군부와 달랐다. 일본 총리 이토 히로부미는 직례 결전을 피하려 했다. 대신 조속히 대만을 확보하라고 군부에 촉구했다.
“서양 열강은 결코 전투가 북경까지 확산하는 걸 원치 않소. 북경 함락과 청조의 붕괴는 어떤 열강도 원치 않는 일이오. 그동안 군인들의 노고가 많았소. 이제 우리 정치인들에게 맡겨 주시오.”
이토는 승리에도 좌불안석이었다. 숙적인 영국과 러시아가 모처럼 의견을 일치하여 일본에 은근한 압박을 넣고 있었다. 열강의 간섭을 두려워하는 그는 이제 협상을 원했다.
“이제 협상에 나서시지요. 청국도 영토 할양을 각오하고 협상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전쟁이 이 이상 확대되면, 청국에 막대한 이권을 가진 영국이 개입할지도 모릅니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이선에게 열강의 동향을 조언했다.
“러시아에서도 협상을 원합니까?”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조선이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고, 승전의 대가를 종전 협상을 통해 향유하길 바랍니다.”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협상이 이뤄질 겁니다. 종전 협상은 조선이나 일본이 일방적으로 청국을 징벌하는 게 아니라, 동양 평화를 위해 균형을 맞추고자 합니다. 러시아의 극동 정책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협상 추이를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역시 각하께서는 현명하십니다.”
종전 협상에 나서는 시점부터 조선과 일본은 완전한 동맹이 아니었다.
전쟁이 총과 칼로 하는 정치라면, 정치는 펜과 혀로 하는 전쟁이었다.
각국이 이익을 얻기 위해 치열한 계산과 논쟁이 있을 터였다.
이선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총동원해서 조선이 얻을 이익을 극대화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