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05
– 205화에 계속 –
205화 동양의 균형
사내의 돌발 행동에 경비를 서던 헌병과 순사들이 뒤를 쫓았지만, 총을 빼든 사내는 이홍장의 인력거 앞까지 접근했다.
휘익-!
탕!
순간 총성이 울려 퍼졌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나, 나는 괜찮다…….”
총알은 이홍장이 쓰고 있던 금테 안경의 테 부분을 스치고 비켜나갔다. 안경이 부서지면서 유리알이 조각났지만, 다행히도 이홍장이 눈을 감고 있었기에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만약 총알이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왔다면, 이홍장은 중상을 피할 길이 없었다.
“범인을 잡았다!”
총을 쏘고 도망치던 범인은 얼마 못 가 잡혔다.
“으으윽…….”
완전히 제압당한 범인은 피를 흘리며 부들거렸다.
일본 대표단이 머무르고 있는 춘범루에 관리 하나가 사색(死色)이 되어 달려 들어왔다.
“가, 각하! 비상 상황입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이토가 불길함을 느끼며 물었다.
“어떤 폭한(暴漢)이 이홍장 공을 습격하였습니다!”
“뭐라고! 이중당은 괜찮으신가?”
무쓰는 마치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얼굴이 사색으로 변해버렸다.
“예, 불행 중 다행히도 총알이 비껴가 가볍게 상처만 입었다고 합니다. 폭한이 총을 발사하려는 순간, 누군가 무언가를 던져 방해했다고…….”
일본 대표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무쓰가 탁자를 내리쳤다.
“이제 어쩔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서둘러 조건 없는 휴전 협상에 동의하지 않으면, 우리가 곤란해집니다. 상대국의 최고 대신을 불러 놓고 습격을 허용하다니! 세계 여론이 비난할 겁니다.”
늘 냉철함을 유지하던 무쓰가 처음으로 감정조절에 실패했다. 그는 분노를 토했다.
“분명 어떤 머저리 같은 놈이 애국을 빙자해 이런 짓을 저질렀겠지요! 오쓰 때도 그렇고, 이 나라에는 테러를 애국으로 여기는 머저리가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우리의 외교적 노력이 일순간에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무쓰의 분노에 이토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우리 업보지. 애초에 이 전쟁으로 국민의 애국주의를 자극한 건 정부였으니…….”
“속히 최고의 예우로 문병을 해야 합니다.”
“알겠네. 내가 직접 가서 사죄의 뜻을 보여야겠군.”
불행 중 다행으로, 이홍장은 무사했다.
결정적인 순간, 누군가 총을 쏘려던 범인에게 단검을 던져서 맞춰 총구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는 바로, 조선군 호위대 부령 장무영이었다.
이선은 장무영에게 습격에 대비해 이홍장의 이동을 늘 감시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과거 차르 암살을 막은 바 있었던 장무영은 이번에도 이홍장 암살을 저지하였다.
‘도대체 군 대감께서는 어찌 이 모든 일을 예상하고 계셨단 말인가.’
장무영은 치하를 받으면서도, 새삼 놀라웠다.
“감사합니다. 완화군께서 보낸 호위무관 덕에 부친께서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홍장의 양자이자 전권부사인 이경방이 이선을 찾아 감사를 표했다.
“중당께서 무사하시다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런데 완화군께서는 어찌 폭한의 습격을 예상하고 미리 호위무관을 파견할 수 있었습니까?”
알렉산드르 2세, 니콜라이 2세, 이홍장에 이르기까지. 암살을 막는 데에는 언제나 이선의 예측이 있었다.
“4년 전 러시아 황태자 전하를 습격한 전례가 있어서, 나는 일본의 자칭 애국지사가 이중당을 습격할까 매우 우려가 되었습니다. 오쓰 사건 때도 그렇지만 일본의 경찰력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없었지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가장 믿을만한 이에게 비밀리에 호위를 지시했습니다.”
이선의 답에 이경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일 공사를 지낸 이경방은 일본의 과열된 애국주의와 빈번한 정치적 테러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역사가 바뀌어도, 일본 우익들의 테러는 바뀌지 않는군.’
이선도 비밀리에 호위를 지시하면서 반신반의했다. 역사가 바뀌었는데도 테러 기도가 있을 것인가.
역시나 있었다. 막부 말기부터, 일본은 정치적 테러가 일상화되었다. 이는 메이지 유신이 진행되고 근대적 정치체제가 수립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극우파들은 일본 정치가들을 빈번히 습격했고, 오쿠보 도시미치와 같은 최고 권력자가 피살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암살되거나 미수에 그친 대신들의 목록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적국으로 간주하는 외국의 고위 인사도 습격했다. 단적인 예가 오쓰 사건과 이홍장 암살 미수사건이었다.
이런 자들은 법적인 처벌은 받을지언정 극우파들 사이에서 ‘지사(志士)’라고 떠받드는 경향이 있었고, 이번 사건의 범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범인은 26살인 고야마 도요타로(小山豊太郎). 군마 출신으로 극우 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지사를 꿈꾸는 영웅주의에 도취한 단독범이었다.
범인은 이홍장 습격에 대한 동기를 실토했다.
“우리가 연전연승하고 있는데, 협상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이홍장을 죽이고 협상을 깨트릴 목적으로 총을 쏘았다. 협상이 깨져야 대일본제국이 북경으로 진격하여 완승하지 않겠는가.”
범행 동기는 너무 뻔했다. 일본 대신들은 한숨을 쉬었다.
무쓰의 예상대로 일본에 대한 서양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홍장, 이 70대의 노인은 생전 처음 바다를 건너 외국으로 향했다. 패전으로 신음하는 국가의 운명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 노인에게 굴욕을 강요하다가, 심지어 테러까지 저질렀다.”
“일본은 전쟁에서는 이겼으나, 도의에서는 패배했다.”
“일본은 문명의 가면을 쓰고 있으나, 때때로 본성을 폭로한다.”
오쓰 사건에 못지않은 열강의 비난에 직면한 일본은 재빨리 사죄에 들어갔다.
메이지 천황이 직접 칙어를 반포하여 이홍장에게 사과의 뜻을 표하고, 큰 부상이 아님에도 황실 주치의와 군의총감을 파견해 치료하게 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필두로, 일본의 대신과 각계 인사들이 이홍장을 찾아와 문병했다.
일본 여론도 일변했다. 이홍장을 노회한 악당으로 묘사하던 선전은 다 사라지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늙은 충신으로 묘사되었다.
각지에서 전보가 쏟아지고, 위문품이 들어왔다.
이홍장에게 더 중요한 건, 일본이 조건 없는 휴전에 동의하겠다는 뜻을 표했다는 점이었다.
청국 사절단으로서는 뜻밖의 소득이었다.
“차라리 총알에 맞아 중상을 입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러면 일본은 더욱 비난에 직면하지 않았겠는가.”
“아버님, 어찌 그런 말씀을…….”
“이 늙은 몸이 피를 흘려 나라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어찌 마다하겠는가?”
이홍장의 비장한 말에 수행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어찌 보면 제일 이득을 본 건 조선일지도 모르겠군. 습격을 막음으로써 내게는 생명의 빚을 지게 했고, 호위의 책무가 있는 일본에도 빚을 지우지 않았는가.’
이홍장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의아함을 느꼈다.
‘완화군에게는 매번 행운이 따르는군. 도대체 어떻게 매번 암살을 예측하고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이홍장뿐만 아니라 일본도 의아함을 느꼈다. 오쓰 사건에 이어 또다시 요인 암살을 막았으니 우연이라면 놀라운 우연이었다.
혹시 범인 고야마의 배후에 조선이 있는 게 아닐까 문초했지만, 전혀 상관없는 극우파 단독범이었다.
오히려 이선이 ‘오쓰 사건의 전례로 인해 걱정이 들어 이홍장의 습격에 대비했다’라고 언론에 밝히자 러시아를 필두로 서양 언론은 이선에게 찬사를 보냈다.
“러시아 차르를 구한 조선의 왕자, 이번에는 적국 대신 이홍장마저 구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는 놀라운 예측력과 비상한 임기응변을 지니고 있다.”
“생명을 구한 이홍장뿐만 아니라, 외교관 호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일본은 이선 왕자에게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다.”
일본은 이선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국을 대신해 완화군께서 대비를 하신 덕에 곤란한 상황을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토가 공손하게 감사를 표하자, 이선은 정중히 화답했다.
“만약 중당이 암살당했더라면, 우리의 처지가 매우 곤란해졌겠지요.”
“그 말씀대로입니다.”
“만약 이대로 협상이 결렬되면 곤란합니다. 다행히도 중당이 무사하니, 차분히 협상을 이어나갈 수 있겠습니다. 중당을 문병하는 길에 설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선은 이제 이홍장과 단독으로 협의를 할 명분이 생긴 셈이었다.
이선과 조선 사절단은 이홍장이 머무르는 병원을 찾아 문병했다.
이경방은 이선에게 다시금 감사를 표했다.
“중당과 직접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괜찮으실지요.”
“물론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이선이 병실로 들어가자 누워있던 이홍장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중당께서 무사하시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완화군 덕이지요. 감사드립니다.”
이홍장은 의료진을 비롯하여 주위를 물리게 했다.
“완화군과 따로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모두 물러가 주시오.”
병실에는 이홍장과 이경방, 이선만 남았다.
“괜찮으니 너도 잠시 나가 있거라. 완화군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이경방이 병실 문을 닫고 나가자,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이홍장은 맞은편에 앉은 이선을 보며 온갖 회한이 들었다.
“완화군. 공께서 어린 나이에 처음 천진으로 왔을 때, 이 사람은 공의 총명함을 높이 평가하여 힘껏 도왔소이다. 공이 조선으로 돌아와 대원군의 재집정을 도왔을 때도, 나는 공을 믿고 조선의 일을 일임하였소. 공은 분명히 내게, 조선이 일본과 아라사를 막는 동쪽의 울타리가 되겠다고 하였소. 그렇기에 나는 조정의 반대도 무릅쓰고 공을 믿었던 것이외다.”
이홍장은 지난 일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오늘날, 이 상황은 무엇이오? 조선이 동쪽의 울타리가 되기는커녕 일본에 부화뇌동하여 중국을 침략하는 데 앞장서고 있지 않소!”
이선은 차분히 답했다.
“중당께서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중당이 전함을 동원해 나와 조선 대신들을 납치하려고 했고, 조선의 반역을 징벌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보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건 청국이지, 조선이 아닙니다.”
“이는 내 본의가 아니었소. 북경이 원한 일이었지. 하지만 조선이 제후국의 도리를 지키며 상국을 대했더라면, 어찌 북경에서도 조선을 정벌하길 원했겠소? 임진년 국경분쟁 이후로는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해졌소.”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조선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청국은 구습에 얽매여 사대 질서를 강요하지요. 조선인은 이를 매우 굴욕적으로 여깁니다. 청국이 조선을 속국이 아니라 동맹처럼 대우했더라면, 오늘날 어찌 전쟁까지 왔겠습니까?”
“수천 년 내려온 중화 질서를 어찌 한순간에 깨트릴 수 있겠소? 황실과 조정에서는, 여전히 중화 질서가 영원하리라 믿고 있소. 이 전쟁으로 그 기대가 깨지긴 했겠지만…….”
이홍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 대군주께서 청국에 밀서를 보냈다는 게 사실입니까? 전쟁 명분을 조작하기 위함입니까?”
이선의 물음에 이홍장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내가 뭐라고 하든 완화군께서 믿겠소?”
“나는 진실을 원합니다. 진실을 답해 주시면, 그에 대한 보답을 드리지요.”
“흐음…… 좋소.”
이홍장은 잠시 생각하던 끝에 말했다.
“조선에서 밀서가 온 건 사실이오. 외교를 전담하는 총리아문이나 북양통상 관저로 온 건 아니고, 전통적으로 조선 문제를 관리하는 예부(禮部)를 통해서 왔지. 조정으로 바로 들어갔고, 그러니 내가 손을 쓸 수가 있나.”
“보내온 시점이 언제입니까?”
“개전 직전. 하지만 조선에서 밀서가 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오. 돌이켜보면 계미년과 을유년에도 있었지.”
계미년(1883)과 을유년(1885)이라면 임오군란과 갑신경장 이후의 일이었다.
“내용이 어찌 됩니까?”
“대원군과 완화군의 불법적인 권력 장악과 정국 농단을 비난하고, 중국에서 이를 바로잡길 원한다는 내용이었지.”
“허허.”
이선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때는 북양통상 관저로 밀서가 와서, 그냥 내가 조정에 알리지 않고 무시해버렸소. 애초에 어보도 안 찍혀있으니 국왕의 친서인지도 미심쩍고.”
“누가 밀서를 전달했는지 아십니까?”
“조선의 궁인이었소.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기에 조선으로 사람을 보내 확인하지도 않았소. 그때만 해도 나는 완화군이 국왕보다 훨씬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완화군은 조선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유능하오. 솔직히 말해서, 공이 처음 청국으로 왔을 때, 아라사로 떠나게 하는 대신, 청국의 벼슬을 주고 눌러앉게 해야 했소. 그럼 오늘날, 이 지경은 안 됐겠지.”
이홍장은 계속 쓴웃음을 흘리다가, 곧 정색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의 일을 논해야겠지. 정녕 이렇게 과도한 요구를 관철할 생각이오? 할양할 영토도 지나치고, 배상 액수도 예상 밖이오. 이렇게 되면 중국은 파산이오.”
“일본이 워낙 강경하게 나와서 말이지요. 협상이 결렬되면, 저들은 직례 결전을 강행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럼 우리는 천도 항전하는 수밖에. 전쟁이 장기화하면 귀국도 곤란해지지 않을까?”
“전장이 될 청국이 더 곤란하겠지요.”
이홍장은 더 이상 기 싸움을 하기에는 피곤했다.
“진실을 말하면 보답을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일본이 계속 요동 반도를 요구하게 놔두십시오.”
“말했다시피, 내줄 수 없는 곳이오.”
“때가 되면 그러지 못하도록 개입할 겁니다.”
이선은 손가락을 들어 북쪽을 가리켰다. 이홍장은 재빨리 그 뜻을 간파했다.
“중당께서 알아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청국의 몰락이 아닙니다. 일본의 패권은 더욱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서 조선만 어부지리를 챙길 생각도 없습니다.”
“그럼 무엇을 원하시오?”
“내가 원하는 건 세력균형입니다. 그동안 조선이 너무 약해서 동양의 균형이 무너졌지만, 이제는 그 균형을 지켜줄 겁니다. 나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회담에서 우리 몫은 챙길 겁니다. 중당께서도 세력균형을 원한다면…….”
이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