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15
– 215화에 계속 –
215화 국가 구상
이선은 궐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자 김옥균이 재빨리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연초(煙草)와 성냥은 모두 국산이었다. 특히 연초는 국가 전매로 정부의 중요한 소득원이었다.
“고균도 같이 핍시다.”
“제가 어찌 감히…….”
왕족과 맞담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김옥균이 황송해했다.
“나도 대신이고 경도 대신인데, 안 될 게 뭐겠소. 고균이 흡연을 안 한다면 모를까.”
이선의 거듭된 권유에 김옥균도 궐련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맞담배를 피우면서, 김옥균은 새삼 완화군의 진보성과 평등 지향적인 태도에 감탄했다.
김옥균 본인도 명문 양반 출신임에도 하층민과 같이 어울리며 동지로 삼았다. 신분 평등을 개화당의 중요한 목표로 삼은 이단적인 인물이지만, 왕족인 완화군은 늘 그보다 더 한발 나가고 있었다.
“앞으로의 정세에 대해 고균의 생각은 어떻소?”
“국태공께서 쉽게 물러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이제 소문이 번지는 건 시간문제지요.”
“일은 터졌으니 해결책을 생각해 봐야지.”
“대군주가 신뢰를 잃었으니 문제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개화당 내부에서도 성상께 실망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목숨 걸고 싸운 군부는 더 실망감이 클 겁니다.”
“원래 개화파는 성상께 실망이 많았지. 이번은 정점을 찍은 거고. 나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지.”
이선은 궐련을 재떨이에 지져 껐다. 자연스럽게 궐련갑에 손이 갔지만 참았다.
“일단 내각에서는 왕권을 제약하고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 입헌정치 실시로 타협을 봤는데 상황이 달라졌으니 계산을 달리할 수도 있겠군.”
“그 입헌 문제 말씀인데, 좀 속도 조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헌정 실시를 주장하는 서광범, 서재필, 유길준, 윤치호 등이야 미국 유학하고 서양 생활하면서 헌정의 좋은 점을 체득했지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헌정이 뭔지도 모릅니다.”
개화당 내부에서도 약간의 의견 차이가 존재했다.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은 헌법은 제정하되 선거와 의회 개설은 미루자는 입장이었고, 서광범·서재필·유길준·윤치호 등은 조속한 헌정 실시를 주장했다. 그런데 이선이 후자 쪽으로 힘을 실어준 상황이었다.
“일본의 메이지 14년 정변이 생각납니다. 그때 제가 조사시찰단으로 일본에 있어서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쿠마 시게노부가 조속한 헌정 실시를 주장하다가 실각하지 않았습니까.”
메이지 14년(1881), 의회 개설을 놓고 일본 정부 내의 권력 투쟁이 있었다.
메이지유신 초기부터 재야세력은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을 주장했고, 이른바 ‘자유 민권운동’이 격화되었다. 참의 오쿠마 시게노부는 재야의 의견을 수렴하여 1882년 헌법 제정, 1883년 총선거와 의회 개설, 영국식 정당제라는 진보적인 주장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이토 히로부미와 번벌 정권 실세들이 반발했다. 이토와 번벌 세력은 역공을 가했고, 오쿠마 계열이 실각하면서 일본 정부는 삿쵸 번벌의 과두적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럼 내가 조선에서 오쿠마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건가? 그럼 이토 역할은 누구요?”
“물론 없지요. 오히려 조선에서는 군 대감께서 이토 총리 이상의 명망과 권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시모노세키에 모인 삼국 대표, 즉 이홍장, 이토 히로부미, 이선은 각국의 대표자로 공인받은 셈이었다.
“일본도 유신에서 헌법 반포까지 20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본의 선례를 따르는 게 어떨지요?”
정치 투쟁에서 삿쵸 번벌이 승리하면서, 헌법 제정은 이토의 뜻대로 돌아갔다.
1882년 헌법 조사차 독일 유학을 다녀온 이토는 프로이센식을 차용하여 헌법을 기초했다. 1889년 2월에 흠정헌법의 형식으로 헌법을 반포하고, 1890년에 선거를 실시하고 의회를 개설해 입헌 체제를 완성했다.
“그럼 그동안 정치 체제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계속하는 거지요. 대군주의 실수로 인해 더 수월해졌습니다. 일본처럼 군주를 받들면서, 내각과 원로가 지배하는 체제로 과도기를 관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일본과 달리 조선은 번벌도 없으니 권력 투쟁의 가능성도 적지요.”
“고균은 정말 일본식을 좋아하는군. 일전에 일본이 아시아의 영국을 원하니 조선은 아시아의 프랑스가 되기를 꿈꾼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랬지요. 하지만 좋든 싫든,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뤄냈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확실히 입증되었지요. 선례를 참조하는 건 필요한 일입니다.”
“고균이 계속 일본의 사례를 들고 있으니 나도 예를 들어 보지. 고균도 이토 이전에 메이지 정부의 핵심이었던 오쿠보 도시미치를 알겠지?”
“유신삼걸이라 불렸지요. 현재 일본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오쿠보가 메이지 11년(1878)에 유신 30년의 구상을 밝혔다지. 유신 이후 10년은 창업의 시기였다. 향후 10년은 발전의 시기로, 내치 정리와 식산흥업으로 국가 발전을 다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다음 10년은 수성의 시기로, 의회를 개설하고 현명한 후진을 양성해 국가의 미래를 맡긴다.”
“예, 들어본 것 같습니다. 비록 그해에 암살당했지만 결국 그의 구상대로 되었군요.”
“나는 그 이상의 국가 구상을 하고 있소.”
이선은 다시 궐련을 입에 물었다.
“올해가 갑신경장 이후 만으로 10년되는 해요. 지난 10년은 혁명의 시대였소. 낡은 조선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시기였지. 이런저런 문제점도 있었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지. 그 결과, 청국과의 전쟁도 승리로 이끌고 자주독립과 개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잡아냈소. 운도 겹치기는 했지만, 지난 10년은 아주 성공적인 시대였지.”
“과연 10년 전과 비교하면,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군 대감께서 이 나라를 이끄신 덕이지요.”
“내 칭찬받자고 한 이야기 아니오. 일단 내 말에 집중해주시오. 앞으로의 구상에 대해 말할 터이니.”
이선은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2기 10년은 제국의 시대가 될 것이오. 전쟁의 결과로 기존 중화 질서는 완전히 무너졌소. 청조는 뒤늦은 개혁에 나서겠지만, 몰락하는 국가를 되살리기엔 너무 늦었소. 이제 청조의 주검 위에서 열강이 세력경쟁에 들어가겠지. 이제 영국과 러시아가 동양에서 주요한 세력으로 대립하게 될 거요. 조선은 이 틈바구니에서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오. 장담은 못 하겠지만, 향후 5년 내로 동양을 뒤흔드는 일이 있을 거요. 러시아는 남하할 것이고, 우리도 선택에 나서야겠지. 그러니 승전의 내실을 다지는 한편으로, 외교에 만반을 기해 진정한 제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야 하오. 이 2기 10년이 조선, 아니 동양의 분수령이 될 것이오.”
이선의 구상은 실제 역사적 전개와 바뀐 역사의 변화를 감안하여 짜였다.
‘앞으로 정말 그렇게 될까? 아니, 지난 10년간도 완화군의 구상에서 거의 틀린 적이 없었지. 조선에 저렇게까지 국제정세에 능통한 분이 있다니, 참으로 국가의 복이다.’
김옥균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그런데 국제정치는 저토록 탁월한 분이, 왜 국내정치는 결단을 회피하려고 드는지 모르겠군.’
“3기 10년은 수성의 시대. 1기와 2기에서 획득한 걸 지켜내며, 국력을 진흥시키고 전 사회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이선은 세계대전이 필연적이리라 생각했다. 그와 같은 전쟁에 대비해 총력전을 치를 수 있는 국력을 키운다.
“그리고 4기 10년에 이르러 진정한 국민의 시대가 꽃을 피울 것이오. 그때쯤 되면, 보통선거권과 의회제를 통한 민주정치를 실현할 수가 있겠지. 근데 그게 단기간에 될 일이 아니오. 서양 사례를 보면 적어도 20년 정도는 헌정과 선거의 학습 과정이 필요하지. 그러니 1900년부터 헌정을 실시하고 의회 개설을 하자는 거요.”
국민개병과 국민교육을 받은 1세대인 1870년대생이 사회에 진출할 시기에 제한적인 헌정을 실시하고, 이들이 사회적 주류로 떠오르는 시기, 대략 1910년대 후반에 보통선거권을 부여하고 1920년대에는 진정한 국민국가를 완성한다는 구상이었다.
“뭐, 세상일이라는 게 계획대로 돌아간다는 법은 없지만. 원래 계획이라는 건 세워지는 순간부터 흔들리는 법이거든. 당장 지금도 그렇잖소.”
“정말 장대한 구상입니다. 이렇게만 될 수 있다면…….”
김옥균을 감탄을 거듭 표했다.
“내게 시간이 허용된다면, 3기에서 4기에 이르는 시기까지는 국가의 중대사를 맡고 싶소. 그동안 현명한 후속세대를 양성해 이후는 이들에게 맡겨야지.”
“충분합니다. 저야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의문이지만, 대감께서는 그래도 50대이십니다.”
21세기에야 50대는 한창나이지만, 이 시대만 해도 50대는 슬슬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나이였다.
“모를 일이지. 오는 데는 순서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도 못 들어봤소?”
이선이 씁쓸하게 웃으니, 김옥균이 손사래를 쳤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감은 저보다 한창 젊으시면서.”
이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으로 갔다. 그리고 포도주 병과 술잔을 꺼냈다.
“아무래도 오늘 입궐은 틀린 것 같군. 한잔하겠소?”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 감사히 받지요.”
본래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김옥균은 술을 사양하지 않았다.
이선은 술병을 열어 잔에 따랐다. 붉은색 와인이 마치 핏빛처럼 보였다.
“이야, 이거 좋군요. 달달하니 술맛이 좋은데요.”
김옥균은 당대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와인을 즐겼다.
“저도 프랑스 공사로 재임하던 시절부터 와인을 마셨는데 이건 처음 마셔보는 것 같은데요. 어디서 온 겁니까?”
“포르투갈. 포도아라고도 하는.”
“포도아(葡萄牙), 포도의 나라. 이름값 하는 군요, 하하.”
“포트와인이라는 거요. 장거리 항해에 대비해 주정 강화를 한 거지. 영국 귀족들이 포트와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
“과연, 그럴 만합니다.”
“포르투갈령인 마카오를 통해 수입한 거요. 좀 비싸긴 하지만, 뭐, 외무대신도 이 정도 사치는 눈감아주겠지?
“사치라니요, 별말씀을. 군 대감께서 검소한 삶을 사신다는 건 세상이 다 압니다.”
이선은 청렴을 덕목으로 여기는 조선에서도 특이한 인물이었다. 국가에 횡행하던 부패와 뇌물을 모두 근절시키고, 이선은 정해진 급료 외에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물론 러시아 은행 계좌에 있는 재산은 넉넉했지만, 오히려 부족한 공금을 개인재산으로 채울지언정 조선에서 부를 과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왕족이자 대신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지 꽤 됐소. 오늘도 거의 뜬 눈으로 보냈고. 술을 마셔야 겨우 잠이 드는 정도지.”
“저도 걱정이 됩니다. 건강을 유의하셔야…….”
이선은 그동안 감추었던 속내를 솔직히 털어놨다.
“솔직히 말해서, 지난 10년간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소. 권력을 잡고 나니까 그 막중한 책임감이 이루 말로 다 표현 못 하겠더군. 하루하루가 얼음장 위를 걷는 기분이었지. 2천만 명의 운명이, 아니 앞으로 그 이상의 운명이 내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 실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소. 내가 단 하나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면, 국가가 위기에 처할 수 있으니까.”
지난 10년간, 이선이 얼마나 격무에 시달렸는지 김옥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선의 근대화는 늦었고 국가는 가난하오. 그러니 개혁은 신속하고 정확해야 했고, 단 한 번이라도 궤도를 벗어나면 안 됐지. 나는 끊임없이 노심초사하며 경계하고 고민하고 결단하고 시행했소.”
이선의 직함은 외무대신이나 군무대신이었지만, 그가 맡은 일의 범위는 광대했다. 국가의 중대사에는 모두 관여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업무의 연속이었다. 아니, 밤도 따로 없었다. 커피를 달고 살다시피 하며 잠을 줄여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지난 1년은 진짜 죽을 맛이었소. 전쟁은 정말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걸린 일이니까.”
이선은 군무대신으로서 전쟁 지도를 총괄했다. 이선의 행보는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았다. 대전략에 관여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직접 최전방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원활한 전쟁 수행을 위해 생산력 증대와 군수물자 확보, 운송과 보급에 만전을 기했다.
한편으로는 정보를 입수하여 분석하고, 동맹국 일본과 전략을 조율하고, 외국과 물밑접촉과 외교를 이어나갔다.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총칼이 부딪히는 전쟁이 끝나자, 말과 펜으로 싸우는 시모노세키의 외교전이 시작되었다. 이선은 마침내 외교전도 승리를 이끌고, 조선의 국익을 최대한 쟁취해낼 수 있었다.
이로써 마침내 이선이 구상했던 1기, ‘혁명의 시대’는 성공리에 마쳤다고 자평할 수 있었다.
“지난 10년의 결과에 대만족하오. 하지만 세종 대왕과 정종(正宗, 정조) 대왕께서 왜 과로로 쓰러지셨는지 비로소 알 것 같더군. 새삼 선대왕이 존경스러울 따름이야.”
종전조약이 체결되자, 이선은 이제 한계를 느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탈진상태였다.
전시체제 아래에서 왕족이자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이선은 군인들과 똑같은 식사를 유지했다. 그나마도 부족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대충 넘기기 일쑤였다.
예외가 있다면 술과 담배, 커피 같은 기호품이었다.
수면은 부족하고 과로는 끊이지 않으며, 술과 담배, 커피는 달고 사니 건강에 좋을 리가 만무했다.
이선은 피로를 못 견디고 잠시 기절한 적도 있었다. 깨어난 후에야, 슬슬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다 진짜 과로사하는 거 아니냐? 지금까지야 20대 청년의 몸이라 버텼지만, 30만 넘어가도…….’
“정말 걱정이 됩니다. 이제라도 쉬셔야…….”
“어떻게 쉴 수가 있소? 전쟁이 끝나니까 또 새로운 일이 터지는데!”
이선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이제 승전으로 한숨 돌렸다고 생각하고, 진짜 쉬고 싶었소. 그런데 이따위 밀서라니! 누군 죽어라 일하는데, 누군 불평 불만하며 밀서나 보내? 나도 성질만 같아선 당장 다 때려 엎고 싶은 기분이야!”
김옥균은 내심 놀랐다. 이선이 이렇게 거칠게 감정을 드러내는 건 처음이었다.
한번 터진 이선의 감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선은 독한 포트와인을 병째로 들이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