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34
– 234화에 계속 –
234화 이성과 감성
대관식 행사가 끝나고 비밀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이선과 조선 사절단은 한동안 러시아 체류를 이어 나갔다.
사절단의 또 다른 목적인 탐방을 위해서였다.
마침 6월 9일부터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서 ‘전(全) 러시아 박람회’가 개최하였으므로, 재무대신 비테는 조선 사절단에게 방문을 권유했다.
“후발 산업 국가인 러시아의 경험은 막 산업화에 들어간 귀국에도 큰 영감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초청을 감사히 받아들이지요.”
1896년 박람회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큰 박람회였다.
서유럽에 비하면 아직 농업 국가의 이미지가 강한 러시아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 급속도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오랜 농업 국가에서 막 산업화로 접어든 조선 입장에서는 참고할 여지가 충분했다.
니즈니 노브고로드에선 러시아 산업 기술의 혁신을 상징하는 여러 구조물과 발명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는 조선 사절단의 감탄을 자아냈다.
“러시아는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에 비하면 뒤떨어진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박람회를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아직 서유럽 선진국을 보기 전에 감탄하기엔 이르지. 물론 러시아야 20세기에 세계 제2의 공업국으로 올라갈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나라긴 하지. 제정 치하에서는 아니고, 1930년대 소비에트 시대의 이야기지만…….’
이선은 한쪽에서는 근대화의 눈부신 발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전근대나 다름없는 정치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제정 러시아의 미래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러시아는 전형적인 ‘정치가 사회의 발목을 잡는’ 국가였다.
“분명 조선도 서양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지긴 했으나, 후발 주자의 이점도 충분히 있지요.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 없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으로 산업화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선과 개화당 정부는, 아직 농업 국가로 머물러 있는 조선의 산업화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할 예정이었다.
갑신경장 이후 지난 10년간 산업화를 위한 재정확보와 1차 산업 정비가 이루어졌다.
승전으로 청나라로부터 받을 막대한 배상금이 산업화의 기초가 되어 주었고, 역시 승전으로 할양된 영토에는 유연탄을 보유한 탄광과 고품질의 강철을 보유한 철광이 산재해 있었다.
정부의 의지, 국민의 동원, 자본과 원자재의 확보.
이를 토대로 조선은 신흥 공업 국가로 발돋움하고자 했다.
‘실제 역사에서 20세기 중반에서야 시작될 한반도의 산업화는, 역사보다 수십 년 빠르게 초석을 닦을 수 있으리라.’
이선은 러시아에서 가장 유능한 관료인 비테와 의기투합하여, 자주 회동하며 미래에 대해 논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유럽과 아시아가 연결된다면, 대륙과 연결된 조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선 역시 경의선과 경부선 외에도, 함경선 부설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시베리아 철도와의 연결이 기대되는군요.”
비테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조선 사절단의 비상한 관심을 이끌었다.
일본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군사적인 요인으로만 여겨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조선은 대륙과의 연결과 물류의 혁신이란 측면에서 바라보았다.
‘분명 조선의 미래는 북방에 있다. 향후 일본을 북수남진의 해양 국가로 이끌고, 조선은 반대로 남수북진의 대륙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을까…….’
이선이 러시아와의 관계 못지않게 중시하는 것이, 향후 일본 및 영국과의 관계였다.
특히 조선의 친러시아적 행보가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는 영국의 불신을 사지 않도록, 고심을 거듭했다.
정치적으로 러시아와 지나치게 밀착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선은 경제적으로는 영국 및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세계와 동아시아 무역을 지배하는 영국 상인들은 조선 무역 시장의 주요한 축이었고, 이선이 보빙사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유치한 미국 자본가들은 조선 투자의 큰손이었다.
그에 비하면 러시아 자본은 조선에서 미미한 존재였다.
이선은 열강 간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이선은 한동안 문화생활을 즐겼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황립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와 오페라, 클래식 연주 등을 관람하며 ‘인생의 마지막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보통 이선의 곁에는 아우 이강, 차르의 여동생인 크세니야 공주와 알렉산드르 대공 부부, 예카테리나 유리예프스카야 공주가 동반했다.
황실 가족과의 동반은 러시아 내에서 이선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왕자님, 이번 공연은 어떠셨어요?”
“아주 좋았습니다. 나는 차이콥스키를 좋아하는데, 그의 생전에 공연을 더 볼 수 있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에 아쉽습니다. 현존하는 음악가 중에는 림스키코르사코프도 높이 평가합니다. 앞으로는 라흐마니노프를 주목하면 좋겠지요.”
“맞아요. 차이콥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러시아의 자랑이죠.”
“음악 못지않게 문학도 좋아합니다. 러시아 문학은 이미 일본에서는 인기인데, 조선도 그렇습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를 조선에 소개하기 위해 번역 작업도 한창입니다.”
“어쩜! 왕자님은 정말로 러시아 문화 애호가로군요.”
예카테리나는 이선에 대한 호감을 종종 드러냈다.
이선은 그녀의 호감에 감사를 표했지만, 내심 어찌 해결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이선은 물론이고 이강에 대해서도 왕족의 국제 혼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도 이선을 호의적으로 여기는 차르 개인의 제안이었다.
조선 왕실 못지않게 보수적인 러시아 황실의 원로들은 정교회 개종이 선행되어야만 국혼이 용인될 수 있지, ‘개종하지 않는 이교도’에게 로마노프 황가의 혈통을 결혼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전제 군주인 차르도 황실 원로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 무리무리. 이건 왕권으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순이 아닌데. 조선 왕족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가는 정말로 전국적인 반발에 부딪힌다.’
결국 이선이 이강에게 국혼이 어렵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이강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니,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하, 착각하지 말라고. 왕실과 조정의 우려를 보았지? 러시아 황족조차 그러할 진데, 미국 평민과 혼인하겠다고 나서는 날에는 나라 뒤집어진다. 네가 정 원한다면 연애는 좋다마는, 결혼은 안 된다.”
이선의 우려에 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칭제건원을 하면 새로운 전범(典範)이 필요하겠지. 왕실 전범을 새로이 제정하려고 하니까, 앞으로는 달라질 거다.”
이선은 당장은 무리여도, 즉위 이후 왕실 전범을 대폭 뜯어고칠 생각이었다. 그 첫 수혜자가 될 수도 있는 이강은 즉각 반가운 반응을 보였다.
“오, 그때가 언제가 되겠습니까?”
“글쎄, 당장은 무리고 적어도 5년에서 10년은 필요하지 않겠나?”
이선이 진지하게 변화를 준비하는 걸 보고, 이강은 머릿속으로 행복 회로를 굴리기 시작했다. 10년 뒤라고 해 봐야 아직 서른이었다. 히죽 웃는 이강을 보면서 이선이 말했다.
“너 한 사람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조선 왕실의 보수성에 내가 답답해서 못 견디겠으니까. 앞으로 내가 왕실의 수장이 되면,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낡은 인습은 다 폐기할 거다.”
이선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후속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낡은 조선에 대한 이선의 이해와 존중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역시 형님은 조선에서 가장 자유롭고 진보적인 분입니다! 형님이 이끌게 될 조선의 변화가 기대됩니다.”
이강의 찬사에 이선은 실소를 흘렸다. 지금의 이강은 그저 왕족의 자유연애와 국제 혼이 허용될 수 있다면, 부왕을 폐위하든 칭제건원을 하든 헌법과 왕실전범을 제정하든 이선이 뭘 해도 지지하겠다는 태도였다.
페테르부르크에 머물던 이선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일전에 문의하셨던,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 어찌 되었소?”
“저……. 그게…….”
놀랍게도 마르가리타는 내무부 공안 질서 수호국, 즉 ‘오흐라나(Okhrana)’에 의해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악명 높은 차르의 비밀경찰, 오흐라나에 체포되었다는 건 혁명가이자 정치범을 의미했다.
이선은 한숨을 쉬면서 고민에 빠졌다. 이제 마르가리타는 확실한 차르 체제의 적이었다. 차르의 벗이자 제정 러시아의 우방인 조선에도 가까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침착하라고, 이선. 대체 몇 번이나 봤다고 그래? 이 세상에 친구가 그녀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네가 세상 사람 모두의 비극을 구할 수도 없는 거고, 눈 감고 있으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갈 텐데.’
이선의 이성은 감성에게 설득을 했다. 이성은 모른 척하고 지나가라 했다. 분명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감성이 쉽게 용인할 수가 없었다.
마르가리타는 12년 전에 처음 보았을 때부터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그 감정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나며 그녀가 성장할수록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는 동지 의식이었다. 비록 조선 왕족 이선과 폴란드 귀족 마르가리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성보다 이상을 높이 여기는 자세, 이웃의 강국에 짓밟힌 약소국인 조국의 자주독립을 향한 열망, 몸을 아끼지 않고 이상을 위해 투쟁하는 헌신.
‘나는 분명히 이 시대의 승리자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 될까? 비밀경찰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잔인한 고문을 받고 머나먼 시베리아로 유배되겠지. 도대체 무슨 죄로? 자기의 조국과 동포를 사랑한 죄로?’
그렇게 생각하니, 이선은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선은 이제 이성적으로는 국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제국주의자였지만, 감성적으로는 여전히 21세기의 기억이 남아 있는 반(反)제국주의자였다.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슬퍼하고, 이런 비극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선에게 있어, 마르가리타는 조국과 인종은 달라도 제국주의에 박해받고 저항하는 사람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내가 강에게 그 난리를 쳐 놓고선, 감정에 못 이겨 그녀를 구하려 든다면 위선이고 모순 아닌가? 젠장, 도대체 뭐하자는 거야.’
이선은 늘 이성이 감성을 압도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은 국가 지도자의 위치에 올랐기에,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결혼이라는 인생사의 가장 중요한 요소에서조차, 감정보다 정치적 이익을 먼저 고려했다.
하지만 이성의 완전한 정복은 불가능했다. 이선은 도저히 자신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여인이 고통받는데도 외면하고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이선은 한층 친분이 두터워진 알렉산드르 대공에게 오흐라나에 체포된 혐의자의 면회를 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대공은 의아해했으나, 이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흠, 대체 무슨 사이인가?”
“개인적으로 오랜 친구이자, 조선의 공로자인 얀코프스키의 사촌 누이일세. 내게 면회할 기회를 준다면, 그녀의 사촌오빠처럼 체제에 순응하고 새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설득해 보겠네.”
“그렇군. 오흐라나는 내가 관여할 수 없지만, 자네는 로마노프 황실의 벗이니 이 정도 부탁쯤이야. 내무대신에게 직접 부탁하도록 하지.”
과연 황실 인맥은 유용했다. 오흐라나에 체포된 정치범은 쉽게 면회할 수 없었지만, 이선은 특별히 면회를 허용받을 수 있었다.
이선은 내무대신의 허가를 받아 내무부의 안가를 찾았다.
벽에 걸려있는 차르의 초상화를 제외하면 어떠한 장식도 없는, 살풍경하고 어두침침한 실내였다.
잠시 후, 포승줄에 묶인 젊은 여인이 오흐라나 요원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보다 나이는 좀 들어 보이지만, 틀림없는 마르가리타였다.
순간 마르가리타의 파란 눈이 더욱 커졌다. 갑작스러운 이선의 등장에 놀란 듯했다.
“포승줄을 풀어주고, 잠시 단둘이 대화할 수 있겠소?
“원칙적으로는 안 됩니다만, 대공 전하의 요청과 내무대신 각하의 허가가 있으셨으니 특별히 허용하겠습니다. 단, 시간은 30분 이내로 끝내 주십시오.”
오흐라나 요원은 차갑고 메마른 목소리로 면회를 허락한 후, 방을 나갔다.
마르가리타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초라한 옷차림에 창백하고 초췌해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이선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그러네요. 이렇게 재회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이선과 마르가리타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차르의 개들이 나에 관해 적어 둔 게 있지 않나요?”
마르가리타의 말처럼, 그녀는 내무부에 의해 신상이 파악되어 있었다.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 1868년 11월 29일 폴란드 바르샤바 태생.
1863년 1월 봉기에 가담하였다가 작위가 박탈당한 가문 출신으로, 반역죄로 시베리아에 유배된 미하우 얀코프스키의 사촌 동생.
1887년 스몰니 여학원 졸업. 1892년 페테르부르크 대학 의학과 졸업, 바르사뱌에서 의사로 개업. 주로 빈민 여성들을 진료함.
1894년 폴란드 사회당에 입당. 1895년 사회당 기관지의 필진으로 활동. 1896년 페테르부르크에 잠입하여 폴란드 출신 노동자들을 선동하다 체포. 폴란드 독립, 사회주의 선동 혐의.
“읽어 봤어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러면 이제 확실히 알겠군요. 왕자님은 차르의 벗이고, 나는 차르의 적이에요. 결국,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죠.”
그녀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축하해요. 마침내 왕자님은 조국의 자주독립을 이뤄냈죠. 국내외의 적들을 무찌르고 말이에요. 작은 조선이 거대한 중국을 무찌르라고 누가 예상했겠어요? 하지만 왕자님은 해냈죠. 그래요, 왕자님의 삶과 조선의 진로는 내게도 영감을 줬어요.”
“고맙군요. 하지만 당신은…….”
마르가리타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나는 폴란드가 러시아를 무찌르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차르와 귀족들을 분쇄하는, 독립과 혁명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어요. 그 결과 이렇게 됐으니, 후회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