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44
– 244화에 계속 –
244화 탄생
시간을 잠시 앞으로 돌려, 1896년 12월.
완화군 이선의 가례(嘉禮)가 거행되었다. 왕실은 이선이 서른이 되기 전에 혼례를 올려야 한다는 대원군의 강력한 주장을 따르기로 했다.
왕실에서 세자가 아닌 왕자가 혼례를 올리는 건 매우 오랜만의 일이었다. 숙종의 왕자인 연령군(延齡君)의 가례를 따라 절차가 진행되었는데, 혼례 당사자인 이선이 주목받지 않고 검소하게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 시점에도 실질적인 차기 군주인 이선인지라, 대원군과 왕실은 성대한 혼례로 권위를 떨치고 싶어 했으나, 이선은 단호했다.
“곧 있을 황제 즉위식에 들어갈 비용이 많은데, 혼례에까지 돈을 낭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재정을 염려하는 이선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가례 절차는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완화군의 검소함을 칭송했지만, 이선 개인의 솔직한 심정은 결혼식에 너무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무리 군주가 자유가 없다지만, 최소한의 사생활은 보장해 줘야지.’
삼간택을 통해 완화군부인으로 간택된 건, 광산 김문 참봉 김재정(金在鼎)의 딸 아영(娥英)이었다. 대원군의 뜻대로였다.
절차에 따라 사주단자를 주고받고, 납폐를 하고, 길일을 택해 완화궁에서 가례가 열렸다. 대원군은 왕실 어른의 자격으로 직접 혼례를 주관했다.
전통 혼례에 맞춰 이선은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쓰고 단령을 입었다.
“역시 완화군 대감은 헌헌장부이시네.”
“신부가 이 나라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이지.”
“광산 김문은 이대에 걸쳐 중궁전을 배출하겠군.”
대부분 왕족인 하객들은 신랑에게 찬사를 보내고, 신부에게 부러움을 표했다. 지금이야 군부인이지만, 곧 국모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곧이어 곱게 단장한 신부가 들어섰다. 열아홉 살의 신부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연지를 찍은 얼굴에는 홍조가 띄었다.
하객들은 신부에게도 찬탄을 보냈다.
“국태공께서 신부 선발에 공을 들이셨다더니, 과연.”
“완화군께서 지금껏 결혼을 안 한걸 후회할 일은 없겠구만, 하하.”
대원군의 주관 하에, 가례가 진행되었다. 이선은 복잡한 왕실 예법에 따라 혼례를 올리느라 정신없이 식을 치렀다.
현구례(見舅禮), 즉 폐백은 완화군의 모친인 숙원 이씨가 받았으나, 부친인 대군주는 불참하였으므로 백부인 이재면이 대신 받았다.
대원군을 시작으로 왕가의 어른들에게 일일이 절을 올리고 나니 이미 늦은 밤이었다.
‘결혼식이 이렇게 힘든 거였단 말인가? 내가 왕실 수장이 되면 혼례 절차도 간소화해야지.’
허례허식을 끔찍이 싫어하는 이선에게, 유교 예법을 따른 왕실 가례는 너무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첫날밤이 되어 신방(新房)에 들어서자, 비로소 평안이 주어졌다. 신부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신랑에게 인사를 올렸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인도 힘들었겠군요.”
“아니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늘 매끄럽게 굴던 혀가 이런 때에는 제대로 돌지 않았다. 이선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서른을 앞두고, 결혼이라. 다른 이들보다 10년은 늦었지. 내가 그토록 혼인 압박을 받으면서도, 왜 여태 결혼을 안 한 지 아십니까?”
“깊은 뜻을 어찌 알겠나이까? 알려 주시옵소서.”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남편은 되지 못할 것 같아서.”
이선은 씁쓸하게 웃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난 왕족이자 정치인입니다. 늘 국가의 이익, 정치적 이익을 먼저 고려하지. 그러니 내 혼인을 두고도 이래저래 계산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 가지 방안을 두고 고려하다가, 국태공의 뜻을 따르기로 했지요. 현시점에서는 국가와 왕실, 국민을 위해서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아영은 이선의 말을 이해했다. 그녀 자신이 사절단에 동참했기에, 이선이 러시아 공주와 혼담이 오고 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국혼은 끝내 무산되었지만, 이선이 자신을 좋아서 선택한 게 아니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선이 직접 조선까지 데려온 여인도 있지 않은가.
“소녀, 아니 소첩(小妾)이 대감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대감의 반려로서 자격이 부족하오나…….”
“아니,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지켜본바, 부인은 훌륭한 성품과 자질을 갖고 있어요. 장차 나라의 국모로서 충분히 잘 이끌어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과, 과분하신 말씀이십니다. 오직 나라의 지도자이신 대감을 잘 내조하는 걸 소첩의 목표로 생각하겠습니다.”
“고맙소. 내가 앞으로 좋은 군주는 몰라도 좋은 남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리다.”
큰 애정 없이 한 결혼이었지만, 이선은 부인에 대한 사랑을 약속했다. 아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소첩이 전례를 살펴보니, 태종 대왕께서 정한 바에 따르면…….”
“음?”
“제후는 아홉 후궁을 둘 수 있고, 대부(大夫)는 일처이첩을 둘 수 있으며, 선비는 일처일첩을 둘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하물며, 지존인 황제의 자리에 오른 분은 어찌 감히 논할 수 있겠습니까? 즉위하시면 후궁을 간택하시옵소서. 소첩이…….”
“하하, 하하하!”
이선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영은 무안해져 얼굴이 붉어졌다.
“말하는 중에 웃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정부가 나서서 축첩(蓄妾)을 반대하고 일부일처제를 주장하는데, 정부를 이끌 내가 그걸 어기면 되겠습니까? 서양 민법을 참고해서 우리나라도 민법을 새로 제정할 건데, 축첩을 법적으로 금지할 예정입니다.”
“그, 그래도 군주의 지위는 신성한데…….”
“군주도 법의 제약을 받아야 제대로 된 국가라고 할 수 있지요.”
아영은 새삼 자신의 남편이 될 사람이 얼마나 시대에 앞선 사람인지 느꼈다. 왕이나 왕족은 말할 것도 없고, 관료와 일개 양반들까지 얼마나 많이 축첩하던가. 그런데 군주가 될 사람이 직접 축첩을 폐지하겠다니.
“물론 천년 넘게 내려온 후궁 제도를 한순간에 폐지할 수야 없는 노릇이니, 왕실 전범을 새로 제정하면서 천천히 해결책을 생각해 봐야겠지요.”
만약 후계자를 얻지 못할 경우, 후궁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쏟아질 건 뻔했다. 군주제 국가에서 후계자는 곧 국가의 안위와 관련된 문제였다. 왕실에서도 일부일처제를 고수했다가는 오히려 정치적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이선도 당분간 공식적으로는 후궁 제도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소첩은 그저 대감의 뜻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부인의 깊은 생각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과연, 부인은 어질고 착한 사람이군요.”
“황공하옵니다. 소첩은 예기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따라 부군을 내조하고자 합니다.”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삼종지도는 낡은 시대의 윤리라고. 애초에 우리에게 어울리지도 않아요. 나는 부인이 새로운 여인상을 보여 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새로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모범적인 부부가 될 수 있도록 합시다.”
“아아, 그리하겠사옵니다.”
아영은 감격하여 고개를 숙였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는 않아도, 깊이 존중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가 다른 여인을 마음에 두거나 사랑하게 되어도, 자신은 개의치 않을 생각이었다. 그저 아내로만 있을 수 있다면 좋았다.
광무 원년. 이선의 황제 즉위 후, 사람들은 황후 책봉이 따를 줄 알았으나 후속 조치는 없었다.
“국모의 자리를 하루라도 비울 수 있겠습니까? 황후를 책봉하소서.”
“굳이 서두를 이유가 있겠소? 국모라고 한다면, 황태후께서 계시니 너무 염려치 마시오.”
황태후 김씨는 황제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서른한 살이었다. 뒷방에 물러앉아 있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이선은 내명부 수장의 역할을 계속 황태후에게 맡겼다.
완화군부인 김아영은 공식적으로는 황후가 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황후나 다름없는 위치였다. 황실 내의 직함이 필요했으므로 일단 종일품 귀인(貴人)으로 책봉하였다.
이선이 아영을 황후에 책봉하지 않은 건, 결코 아내를 낮게 보아서가 아니었다.
이제 나이 스물,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인에게 황후이자 내명부의 수장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맡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황제 못지않게 황후 역시 온갖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아영은 남편의 뜻을 이해하고, 그의 배려에 감사했다.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는 이선의 권유대로 황성에서 여성 전문의가 되었다. 선교사이자 교육자인 언더우드의 부인 릴리어스 호튼은, 당시 황성에서 가장 유명한 여의사였다. 그녀는 여의사의 증원에 크게 기뻐했다.
“이렇게 젊고 유능한 여성 의사가 조선에 오다니, 주님이 인도하셨군요.”
“이렇게 환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조선에는 남녀유별이 엄격한데, 여성 의사는 크게 부족하지요. 동료가 늘어났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호튼은 여성 전문의로 민간 여성들을 치료함과 동시에, 왕실 어의로 임명되어 왕실 여인들의 주치의 역할도 도맡아 했다.
이선이 직접 마르가리타를 데리고 온 걸 알게 된 호튼은, 새 황제가 즉위하자 관행에 따라 어의에서 사임할 뜻을 밝혔다. 자신은 남편과 함께 민간 치료와 여성 교육, 기독교 선교에 중점을 두고 마르가리타를 후임으로 추천하여 물러났다.
마르가리타는 생각지도 못하게 대한제국 황실의 어의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는 황실 여성들의 주치의를 맡고, 언더우드와 호튼이 설립한 여성 간호 학교의 강사 역할도 하며 바쁜 삶을 살았다.
귀인으로 책봉된 아영과 마르가리타는 진료 명목으로 자주 만났고, 황실 여인과 어의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두 여인은 벗으로서 친밀하게 대했다.
처음에는 영어로 대화했지만, 마르가리타의 한국어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 갔다. 어려운 궁중 용어도 아영의 도움으로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어느 여름날, 심신의 불편함을 호소하던 아영을 찾아 진료하던 마르가리타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축하드려요, 마마.”
“예? 축하라니요?”
“아직 모르셨나요? 임신하셨어요.”
“네에?”
아영은 깜짝 놀랐다. 그럼, 그동안 어지럽고 헛구역질이 나온 게 더위를 먹은 게 아니라 입덧이었다니.
“그, 그랬군요. 고마워요!”
“후후, 왜 제게 고마워하세요? 황제 폐하께 고마워하셔야죠.”
아영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다가, 궁인을 불러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전했다.
“폐하, 귀인 마마께옵서…….”
궁내부 시종이 다가와 한창 각의를 주재하던 이선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알겠다. 각의가 끝나는 대로 교태전으로 가겠다고 전하라.”
황제가 된 이선의 국무는 더욱 바빠졌다. 새 제국의 기틀을 잡는 시기라, 중요한 국정을 도맡아 쉴 틈 없이 일했다. 부인을 못 본 지도 며칠이나 지난 터였다.
이선이 교태전으로 들어온 건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그때까지 마르가리타는 퇴궐하지 않고 아영의 곁에 함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귀인 마마께서 회임(懷妊)하셨습니다.”
“하하, 이렇게 고마울 데가. 정말 고맙소, 귀인.”
“황공하옵니다.”
이선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얼떨떨했다. 어느덧 나이 서른. 아버지가 되기에 적절한 나이였지만, 아직까지 아버지가 된다는 실감은 없었다.
“닥터 얀코프스카, 앞으로도 귀인을 잘 부탁합니다. 회임하였으니 각별히 신경 써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폐하. 귀인 마마는 고귀한 분이자 제게도 소중한 벗입니다. 제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
“고맙소. 그리 말해 주니 든든하군요.”
이선은 순간적으로 마르가리타의 손을 잡았다가, 급히 뺐다. 두 사람은 지근거리에 지내게 되어 종종 보게 되었고, 이선은 황제가 되어도 여전히 마르가리타를 절친한 친구처럼 대했다. 마르가리타도 황제와 귀인의 친구로 처신을 조심했다. 쓸데없는 소문이 나는 걸 원치 않았다.
귀인이 회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황실이 모두 기뻐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뻐하는 건 역시 대원군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천자를 보고, 제국의 후계자까지 보게 되었구나! 오래 산 보람이 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대원군은 회임 소식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후계자가 무사히 태어나도록 종파를 가리지 않고 빌었다. 자신이 후원하는 원찰(願刹) 화계사를 찾아 법회에 참석하고, 부대부인이 다니는 성당을 함께 방문해 미사에도 참석했다. 한때 천주교를 극렬히 박해했던 노인의 극적인 변화였다.
1897년, 광무 원년 11월 20일. 이날은 공사를 마친 독립문과 독립관이 정식으로 개장하는 날이었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옛 영은문과 모화관을 부수고, 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관을 세웠다.
독립문은 러시아인 건축가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Afanasy Seredin-Sabatin)이 설계하고, 건축가 심의석(沈宜錫)이 완공했다.
파리 개선문을 모델로 웅장하게 세워진 독립문의 현판은 명필로 유명한 내부협판 김가진이 썼고, 현판에 태극기가 새겨졌다. 현판 바로 아래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이 장식되었다.
독립문 옆의 옛 모화관 자리에는 북벌 전쟁의 승리를 전시하는 독립관이 건설되었다. 이는 파리 앵발리드(Invalides)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독립관 내부에는 조선군의 승리를 묘사하는 그림과 사진, 기록, 청군으로부터 노획한 무기와 깃발 등이 전시되었다. 독립관은 향후 군사 박물관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독립문과 독립관 주위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백성이 자유롭게 찾게 하였다.
독립문과 독립관이 개장하는 날, 황제 이선과 문무백관, 많은 국민이 참석했다.
독립문 현판을 쓴 내부협판 김가진이 관료를 대표해 연설을 했다.
“……이로써 삼전도의 굴욕, 병자년의 치욕은 완전히 깨끗하게 씻어내고 깨트렸습니다. 우리 대한은 세계만방에 자랑스러운 자주독립국이자 제국입니다. 국민 된 이로서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는 실로 우리 대황제 폐하께옵서 독립과 승리로 이끄신 바이니, 우리 모두 만세를 외칩시다!”
“와아아아!”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원수(元帥) 군복 차림의 이선은 단상에서 거수경례하며 백관과 국민의 환호에 답했다.
짧게 답례 연설을 하려던 차에, 시종무관이 급히 이선의 곁으로 왔다.
“궁에 급한 일이라도 있나?”
“황공하옵니다. 귀인 마마께옵서 아무래도 오늘…….”
“오, 그래. 독립문 행사를 마치는 대로 가도록 하겠네.”
출산 예정일이 다가왔으니, 이선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마침 독립문과 독립관이 개장하여, 대한제국의 탄생과 자주독립을 대내외적으로 기리는 날에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다니 더욱 특별한 기분이었다.
이선은 표정을 가다듬으려 했으나 즐거운 표정을 감추진 못한 채, 미리 준비한 연설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