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5
– 25화에 계속 –
25화 문명(文明)
1880년 9월, 이선은 청나라를 떠나 러시아로 향했다.
조선에 여권이 없으니 이선도 있을 리가 만무했다. 청나라도 여권 발급이 까다로운 나라지만, 이홍장은 북양 대신 명의로 청나라 유학생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이선은 여권상으로는 청국 유학생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홍장이 호의적이라 다행이군.’
이홍장 본인이 자국 청년들의 서양 유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인물이니만큼, 이선의 러시아행도 허락해 준 것이었다. 다른 보수적인 권력자라면 어림도 없었다.
‘물론 이홍장이 내게 원하는 건, 서양 문물에 밝은 친청파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겠지.’
이선은 표면적으로 그렇게 행세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홍삼 무역으로 얻는 이익을 ‘관세’라는 명목으로 이홍장에게 상납하고 있었다. 그건 이선이 떠난다고 해도 달라지는 사안이 아니었다.
이선은 장무영만 대동하고 떠나고, 안영흠에게 청국의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안영흠은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아라사가 얼마나 먼 나라인데, 거길 어떻게 가신다는 겁니까?”
“이미 이중당과 이야기가 끝난 바요. 나는 아라사 영사와 같이 떠나기로 했으니, 청국에서의 일은 안 공에게 맡기겠소.”
“대감의 뜻이 그러시다면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설마 혼자 가신다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무영과 같이 갈 생각이오.”
“무영과 단둘이서 가신다는 겁니까? 말도 안 됩니다. 제가 대감을 보좌하겠습니다.”
“안 공까지 떠나면, 조선과 청국을 잇는 연락책이나 홍삼 무역은 누가 총괄한단 말이오?”
“송 객주가 있지 않습니까.”
“송 객주라. 엄밀히 말하면 우리 사람이 아니지 않소? 그는 상인인데, 이문을 더 남기기 위해 신의를 저버릴 수도 있지 않겠소?”
“송 객주는 운현궁의 은혜를 깊이 입은 사람이고, 또 군 대감에게 깊이 감복한 상황입니다. 그에게 청국의 일을 맡겨도 배신할 사람이 아닙니다.”
“음, 안 공의 추천을 따르겠소. 송 객주에게 맡깁시다.”
이선은 송금덕을 불러들였다. 이선과 이홍장의 비호를 받아 개성과 천진, 천진과 내륙을 오가며 무역으로 상당한 이문을 남긴 터였다.
이미 안영흠에게 이선이 러시아로 향한다는 귀띔을 받은 송금덕은, 이선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청국에서의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무역이 되었건, 이중당을 모시는 일이건, 조선과의 연락이든 도맡아 하겠습니다.”
“고맙소. 그대를 믿고 떠나리다.”
“아라사로 가려면 노자가 넉넉히 필요할 터인데, 제가 준비해 왔습니다.”
송금덕은 이선에게 큰 상자를 전달했다. 열쇠를 열어 상자를 여니, 은화가 가득했다.
“천은 1만 냥입니다.”
“고맙소. 상당히 큰 액수인데…….”
송금덕은 그동안 얻은 이문을 모두 이선에게 넘겨준 셈이었다.
“대감 덕에 큰 이문의 기회를 얻은 것인데, 어찌 노자를 아끼겠습니까? 앞으로 발생하는 이문이 더 클 터인데요. 이 또한 투자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하하, 좋소. 서양에서는 더 큰 이문을 얻은 기회가 있을 것이오. 잘 활용하리다.”
이선은 송금덕에게 받은 은화를 천진의 영국계 이화양행(怡和洋行)에서 환전해서 일부는 파운드화로 바꾸고, 계좌를 신설해 자금을 예치하려 했다.
“계좌를 신설하러 왔습니다.”
“어허, 여긴 어린아이들이 오는 곳이 아니에요.”
동양 아이가 나타나서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하자 비웃던 직원은, 이선이 내민 북양 대신의 특허장과 은화가 가득한 상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귀빈께서는 부디 저희 직원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북양 대신과 관계가 있는 청국의 귀족 소년이라 생각한 지점장이 직접 나와 굽신거리며 이선을 VIP 손님으로 대우했다.
“대감, 저 양놈들을 어찌 믿고 큰돈을 주고 이런 종이 쪼가리만 받는단 말입니까?”
이선이 거액의 은화를 맡기고 지폐와 예치증을 들고 오자 안영흠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모르는 소리. 작금 동양의 무역, 해운, 금융을 쥐고 있는 자들이 바로 이화양행이오. 여기에 자금을 예치해 두면 전 세계 어디서든 활용할 수 있소. 서양에서도 이화양행과 연계된 은행이 있으니, 우리가 일부러 운송할 필요 없이 찾을 수 있는 거요.”
안영흠은 이선의 말이 도통 이해가 안 되었지만, 송금덕은 이해했다. 조선에서도 각 지역의 객주가 중심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양에서 대금을 맡기고, 개성의 객주에서 찾을 수 있는 것과 같군요.”
“바로 그거요. 그게 바로 은행이라는 거지. 앞으로 조선에도 은행이 생길 것이오. 보다시피 세계는 상업과 금융의 시대요. 조선에서는 송상이 그 역할을 주도하게 될 것이오.”
실제 최초의 근대적 은행인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을 창설할 때, 개성상인은 자금을 대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대감의 귀환을 학수고대하겠습니다.”
“음, 꼭 다시 만납시다.”
이선이 송상의 지원을 받아 이화양행에 맡긴 돈은, 조선 근대화에 필요한 최초의 자금이 될 터였다.
천진을 떠나기 전, 이선은 개항장에 가 이발소와 양복점에 갔다.
“상투를 깎고 양복을 입는다니요? 서양 오랑캐의 풍습을 따르겠다는 말씀입니까?”
단발을 한다는 말에 안영흠이 대경실색을 했다.
“우린 이제 서양으로 가는데, 상투를 틀고 한복이나 호복을 입으면 너무 눈에 띌 것이 아니오?”
‘동물원 원숭이 되기 딱 좋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상투를…….”
“장여원은 청국에서 무역이 금지된 조선인인데, 성공적으로 무역을 하는 비결이 뭐라 생각하시오?”
“중국어가 유창하고, 변발호복을 하니 청국인으로 아는 것이지요.”
“맞소! 현지에 가면 현지 방식을 따라야지. 그게 바로 성공의 비결이오. 서양 격언 중엔 이런 말이 있소.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
“그래도 조상 대대로 한 상투를…….”
조선인들이 단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걸 이선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싫으면 나와 무영만 하도록 하지. 무영, 나를 따라 단발하고 양복을 입을 것이냐?”
“대감께서 명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장무영이 흔쾌히 수락하자, 결국 안영흠도 두 손을 들었다.
“저도 하겠습니다.”
잠시 후, 이선 일행은 모두 깔끔하게 단발을 했다. 그리고 양복점에 들려 각자 체격에 맞게 양복 정장과 프록코트를 맞춰 입었다.
“이거 영 어색해서…….”
“왜, 잘 어울리는데.”
체격이 큰 장무영은 양복이 잘 어울렸다.
“이렇게 입는 게 맞는 겁니까? 양놈들은 왜 이렇게 품이 좁은 옷을 입는 거지?”
안영흠은 어색한 자세로 엉거주춤 걸어 들어왔다. 품이 넓은 한복만 입다가 갑자기 양복을 입으려니 몸이 조이는 기분이었다. 어색하게 걷는 안영흠을 보면서 이선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익숙해질 거요.”
“대감께선 벌써 익숙해진 모양입니다.”
이선은 아직 어려서 빅토리안 풍인 소년용 정장을 했다.
‘사실 난 이게 더 편해……. 한복이든 호복이든 옷이 치렁치렁해서 불편해 죽는 줄 알았다.’
“활동적으로 움직이려면 의복부터 개혁해야 하는 법. 일본인이 단발하고 양복을 입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외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해주로 이주하여 러시아 풍습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선은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단발하고 양장을 한 것이었다.
이선은 베베르와 함께 러시아에 갈 예정이었다. 러시아와 청국이 영토분쟁을 극적으로 협상으로 타결하기로 합의했으나, 협상 장소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러시아는 북경을 요구했으나 청국이 단호하게 페테르부르크를 고집해서, 결국 페테르부르크가 협상장으로 정해졌다.
청국에서는 런던 주재 공사인 증기택을 페테르부르크로 보냈고, 러시아는 북경 주재 공사 뷰초프와 영사 베베르가 협상의 실무를 맡기 위해 페테르부르크로 소환되었다.
이선은 공식적으로 청국 유학생 신분으로 떠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러시아 외무부의 초청을 받아 가는 것이니만큼 베베르가 직접 데려가는 것이었다.
이선 일행이 단발과 양복을 입은 채로 항구에 나타나자, 러시아로의 여정을 함께 할 베베르도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유럽에서 활동하려면 단발과 양복 차림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동양의 전통을 생각하면, 참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베베르는, 동양인이 단발과 양복에 상당한 저항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귀국의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를 개혁할 때, 제일 먼저 한 조치가 수염을 깎고 서유럽식 의복을 착용한 것이라 배웠습니다. 그리고 러시아를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발전시켰지요.”
러시아 제국의 창설자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립자인 표트르 대제의 이야기를 꺼내자 베베르는 단연 기뻐했다.
“표트르 대제의 대개혁을 알고 계시군요.”
“제가 가는 곳이 ‘표트르의 도시’인데, 그 정도는 미리 공부해 둬야지요. 제가 유럽으로 가려는 것은, 표트르 대제가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일개 평민의 신분으로 위장해서 서유럽으로 떠났던 일화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서입니다.”
“귀공의 식견과 높은 뜻에 거듭 감탄합니다.”
이선의 말은 절반은 러시아인 듣기 좋으라고 하는 공치사였지만, 절반은 진심이었다. 표트르 대제는 이선에게 중요한 역사적 롤모델 중 하나였다.
이선은 유럽으로 가는 기선에 올라탔다. 조선을 떠나 중국에 온 지 꼭 6개월 만에, 다시 더 머나먼 세계로 떠나게 된 것이었다.
천진항을 떠난 기선은 상해, 홍콩, 시암(타이), 싱가포르, 인도,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진입하는 여정이었다.
1900년대에 완성될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가면 2주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닿을 수 있었지만, 이때는 가장 빠른 길이 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소요 시간은 대략 6주 정도였다.
‘멀다, 멀어……. 비행기 타면 반나절 이내로 갈 터인데…….’
이선은 새삼 20세기에 얼마나 큰 교통의 혁신이 있었는지 깨달았다. 증기선에서 철도로, 철도에서 비행기로 교통수단이 바뀌면서 세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19세기 말 역시 교통의 혁신이 이뤄진 시대였다. 1873년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책을 집필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배경은, 이 무렵에 있었던 변화 덕이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증기선의 발달, 대양 항해의 안전성 확보는 ‘세계 일주’와 같은 장거리 여행 개념을 등장시키고 발전시켰던 것이다.
6주간의 장기 항해에 접어든 이선은 그 시간을 착실히 쓸 생각이었다. 안영흠과 장무영은 난생처음 타보는 대형 기선과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기후와 풍물을 보면서 정신이 팔릴 지경이었다. 이선도 정박하는 기항지마다 내리며 각지의 풍물을 살펴보았지만, 대부분의 일정을 차지하는 배 안에서 그냥 놀고만 있을 순 없었다.
“제게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선은 베베르에게 언어 교습을 부탁했다. 러시아에서 적응하려면 러시아어가 필요하고, 프랑스어 구사 능력을 교양의 척도로 여기는 러시아 상류층과 교류하려면 프랑스어도 잘해야 했다.
“공께서는 영어 실력이 뛰어나니, 다른 유럽 언어도 금방 배울 겁니다.”
독일계인 베베르는 모어가 독일어와 러시아어였고, 국제어인 프랑스어와 영어는 기본이요, 대학에서 배운 중국어와 한문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런 베베르가 외국어 교사를 자처했다.
기선은, 인도양의 파도를 헤치고 유럽을 향해 나아갔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 지중해에 진입하면서, 이선은 이 시대 서양 문명의 힘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남의 나라 영토를 차지해 운하를 파는 국력. 대륙을 관통하는 운하를 팔 수 있는 기술력과 자본력. 전 세계를 누비는 서양 기선들의 위용. 분명 여기는 이집트이건만, 운하의 혜택을 누리는 건 유럽인뿐이다.’
이집트뿐만이 아니었다. 지나오면서 본 중국, 시암,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서도 유럽인은 ‘문명인’이고 현지인은 ‘야만인’이었다. 오직 ‘문명화’된 현지인들만이 ‘문명인’의 대우를 받았다.
이선처럼 양복을 입고, 서양에 대해 잘 알고, 그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은 ‘문명’의 대열에 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서양 문명만이 문명이고, 그 외에는 모두 야만이라고 규정하는 저 오만함.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몸소 피부로 느끼니 더 역겹군.’
서양 문명에 대한 찬탄과 혐오.
이선은 제국주의 시대 비(非)서양 엘리트가 공유했던 고뇌와 양가감정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로 국력이 신장 되었던 21세기 한국인으로선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저들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니, 그걸 부정할수록 더욱 고립될 뿐이다.’
서아시아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나 동아시아의 골수 성리학자처럼, 이 시대를 지배하는 ‘문명의 논리’를 거부하고 전통에 집착하는 건 결국 패망으로의 지름길이었다.
‘열악한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저들의 방식대로 힘을 키워야 한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이 시대의 논리라면, 나는 그걸 거부하지 않고 따르겠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걸 증명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