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53
– 253화에 계속 –
253화 황성의 봄
5월 31일은 황제 이선의 탄신을 기념하는 건원절(乾元節)이었다.
건원절,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즉위를 기념하는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 조선왕조 건국과 태조 고황제의 즉위를 기념하는 개국기원절(開國紀元節), 태상황의 탄신을 기념하는 만수성절(萬壽聖節)은 대한제국의 4대 국경일이었다.
올해로 꼭 만 30, 서른한 살 생일을 맞이한 이선의 기분은 미묘했다. 이립(而立)을 넘기고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평균 수명이 급증한 21세기야 30대면 한창 젊음을 과시하는 청년기이지만, 19세기만 해도 원숙한 장년에 접어드는 나이였다.
‘나이야 숫자에 불과하지. 나이보다는, 황제이자 아비로서의 책임이 무겁구나.’
이선은 이제 국가의 황제였고, 지아비이자 아버지인 가장이었다. 그 막중한 책무에 부담감을 느낄 때가 적지 않았지만,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폐하, 건원절은 나라의 큰 경사이니만큼, 특별히 행사를 성대하게 준비할까 하옵니다.”
내각의 건의에 이선이 화답했다.
“황실과 관민이 하나로 화합하는 장이 되면 충분하오. 정부가 비용을 크게 부담할 것 없고, 황실 경비에서 제하여 검소하게 치릅시다.”
“황공하옵니다.”
광무 2년(1898) 5월 31일 오전, 경운궁에서 폐현례(陛見禮)가 있었다.
대한제국의 공식 법궁(法宮)은 경복궁이지만, 각국 공관이 몰려있는 정동에서 가까운 경운궁은 동서양의 양식이 조화된 궁전으로 탈바꿈 중이었다.
장차 황제의 집무실 겸 거주지가 될 석조전(石造殿)이 웅장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공사가 한창이었고, 각국 외교관을 맞이하여 다과를 함께 하는 정관헌(靜觀軒)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화려한 발코니를 자랑했다.
경운궁 정전인 중화전 앞에 문무백관과 각국 외교관들이 모여들어 폐현례가 거행되었다.
“대황제 폐하, 국가의 경축일인 건원절을 맞이하여 관민은 감개무량을 감출 수가 없나이다. 폐하, 성수무강하시옵소서!”
“대황제 폐하 만세!”
“대한국 만세!”
폐현례를 마친 후, 이선은 태상황이 머무르는 창덕궁으로 가서 문안을 드렸다.
황제가 근위 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정문인 대안문(大安門)을 나서자, 수많은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모여들어 있었다.
건원절은 국경일이니만큼 휴무일이었고, 학무부에서는 각급 학교의 휴일로 정해 학생들이 기념행사에 참여하도록 권장했다.
“황제 폐하시다!”
“황제 폐하 만세!”
“대한국 만세!”
“폐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황성 시민들은 태극기 든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만세를 외쳤다. 무개차(無蓋車) 형태의 마차에 앉은 이선은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이선은 지엄한 군주로서 궁궐 안에만 앉아있는 게 아니라, 자주 궁궐 밖에 나타나며 친근한 모습을 연출했다.
경복궁과 경운궁을 오고 갈 때, 육조거리의 정부 청사나 중추원에 방문할 때도 황실 전차를 타거나 말을 타고 움직였다.
보통 군주가 행차하면 어마어마한 행렬이 뒤따르고 통제가 있었지만, 구례에 얽매이지 않는 이선은 소수의 근위 기병만 거느리고 행차했다.
황제가 말을 타고 대로를 지나가는 이색적인 모습에 백성들은 크게 기뻐했다.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이선은 경례로 화답했고, 종종 즉석에서 그들과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근래 생활은 어떤가? 장사는 잘되는가?”
“화, 황제 폐하의 성은으로 잘 되고 있습니다.”
“좋군. 앞으로도 호황이길 바라네. 짐과 내각은 민생의 안정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네.”
“화, 황공하옵니다!”
형식적인 말 몇 마디일지라도, 백성들은 황제의 헤아림에 감격했다.
“폐하께서 친히 나 같은 놈에게 말을 거시다니, 가문의 영광일세.”
“이렇게 백성을 아끼는 임금이 또 있으시겠는가?”
“진정 충성하지 않을 수가 없네.”
오후에는 경운궁 돈덕전(惇德殿)에서 건원절 기념 연회가 열렸다. 서양식 건물인 돈덕전은 외국 외교관을 맞이하고 연회장으로 쓰였다.
주임관 이상의 관료들, 외국 외교관들이 초대 받았다. 돈덕전 연회에서 문관들은 연미복(燕尾服)을, 무관들은 소례복(小禮服)을 착용하여 서양식 복식을 갖추었다.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탄신일을 경하하며, 이런 성대한 국가적 행사에 초대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각국 공사 중 가장 재임 기간이 오래 된 프랑스 공사 플랑시가 재한 외교관을 대표해 감사의 말을 올렸다.
이선은 화답의 뜻으로 자리를 돌아다니며 각국 외교관들과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
“경은 고향이 어딥니까?”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프랑스 남서부의 보르도라고…….”
“왜 모르겠소? 아키텐 지방이 아니오? 짐이 와인을 좋아하는데, 보르도가 최고라지요.”
“맞습니다, 폐하! 알아주시니 기쁠 따름입니다.”
“하하, 마침 프랑스에서 좋은 와인을 들여왔다던데, 같이 한잔 합시다.”
“그리 하겠습니다! 다시없을 영광입니다, 폐하.”
각국 외교관들은 황제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 세련된 매너, 방대한 지식에 매력을 느꼈다.
인간적인 측면으로 봐도 일국의 황제랑 같이 술 마시면서 환담하고, 당구도 치고, 사교를 즐기니 영광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국 황제는 감히 만날 수도 없고, 일본 천황은 공식 석상이 아니면 만나기도 꺼려하지. 그에 비하면 한국 황제는 얼마나 개방적이신가.”
“중국 황실은 물론이고, 일본 황실도 배외적인 성향이 있지. 한국 황실은 같은 동양이면서도 달라.”
“그야 황제 덕분이지. 선황도 서양에 우호적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네. 지금 황제께서 즉위하면서 바뀐 거야.”
“역시 일찌감치 개명된 분이라 다르군.”
“예전에 나폴레옹 3세가 인간적 매력이 엄청나서 ‘인간 아편’이라 불렸다던데, 한국 황제도 그 못지않게 매력이 대단해.”
“일단 인물이 좋고, 화술도 뛰어나고, 누구와 말을 해도 막히지 않을 정도로 지식이 엄청나지.”
“동양에서 이런 군주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나.”
황제의 행보는 대내외를 막론하고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선의 정치적 행보는 지극히 세련됐고, 기존과 다른 방식이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이선의 방식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이는 이선의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정파와 국가를 막론하고 이선은 대다수의 호감을 샀고, 이선에게 호감을 느낀 이들은 그를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다.
건원절은 국경일이자, 전국민적 행사였다. 황실과 정부뿐만 아니라 각 협회에서도 황제의 탄신을 경하했다.
삼가 아룁니다. 5월 31일은 황제 폐하의 건원절입니다. 본회에서 경축 예식을 행하오니, 이날 오전 11시까지 독립관으로 왕림해 주시기 바랍니다.
독립관 앞에서는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건원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독립협회는 독립신문과 각 신문에 광고를 올려 사람들을 모았다.
독립관 앞뜰에는 천막을 설치했는데, 그 아래 몇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대청 앞문에는 대형 태극기를 내걸었다. 푸른 소나무 문 위에는 ‘건원절(乾元節)’이라는 커다란 금빛 세 글자 현판이 있었다.
관민과 협회원 수천 명, 학생 700여 명이 독립관 앞으로 모여들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늘 이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하여, 왕림해 주신 외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건원절은 황제 폐하의 탄신일이자, 만백성이 기뻐하는 축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관민이 하나 되어 충군애국하는 정성을 드러낸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독립협회 회장 서재필과 부회장 윤치호가 오늘 연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축하의 말을 했다. 참석자들은 크게 기뻐하며 만세를 외쳤다.
“그럼 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일동 기립!”
악사들이 관현악기로 음악을 연주하자, 학생들이 단상에 올라 애국가를 불렀다. 회원들도 일제히 기립하여 애국가를 제창했다.
노래가 끝나자 다과와 술이 나왔다. 사람들은 술잔을 높이 들어 황제의 만무수강을 축원하며 축일을 기뻐했다.
독립협회뿐만이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황제의 충신을 자처하는 황국협회는 육조거리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고, 황제에 대한 영원한 충성을 다짐했다.
지방에서도 각 관아를 중심으로 건원절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가 열리니, 전국적으로 기쁨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그날 저녁, 각급 학교 학생과 직원이 주축이 되어 황성의 동서남북 각지에서 제등행렬(提燈行列)을 벌였다.
제등행렬에는 만 개의 등을 준비하여 만 명이 참여하도록 하였다. 호위대 기수와 근위대 군악대의 행렬을 시작으로, 일반 백성은 물론이요 무희와 기생도 참여해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황제 폐하 납시오!”
“와아아아!”
황제도 친히 왕림하여 제등행사를 관람했다. 민간과 황제가 함께하는 행사가 되니, 그야말로 국가가 일체 되는 것 같았다.
“황제 폐하 만세!”
“대한국 만세!”
제등행렬에 참여한 학생들은 함께 만세 삼창을 하고 태극기와 축수등(祝壽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애국가를 불렀다.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성수무강하사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소서.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
오! 천만세에 무궁케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대한제국 선포 이후 새로 확정된 애국가는, 독일인 음악가로 황실 군악대장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가 가사에 곡을 붙여 완성되었다. 동양의 선율과 서양의 곡조가 조화를 이룬 국가였다.
광무 2년 계천기원절에 처음 연주된 애국가는, 가장 빠르게 익히게 된 각급 학교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절찬리에 불리게 되었다.
5월의 마지막 날, 황성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민중의 정치적 의식이 성숙되고, 민의가 솟구쳤다.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일체감, 황제에 대한 충성심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봄 하늘의 청명함과 같이, 대한제국의 앞날은 더 없이 밝아 보였다.
대한국 헌법 제정을 주도하고 있는 건 정부 산하 헌법조사위원회였다.
헌법조사위원회에는 박정양, 김옥균, 유길준 등 만국 공법을 익히거나 외국 공사 경험이 있는 고위 관료를 주축으로, 이준, 이상설, 이시영 등 법학을 익힌 신진 관료들이 보좌하여 대한제국의 국체를 결정할 헌법을 논의했다.
이들 대부분이 1896년 구미 사절단에 참여한 목적 중 하나가 각국 헌법을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위원회는 크게 두 가지 안으로 압축했다.
영국식 입헌군주제와 정당 우위 내각제, 프로이센식 입헌군주제와 왕권 우위 내각제였다.
전자는 유길준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력이 주장했고, 후자는 박정양을 비롯한 동도서기파 세력이 주장했다.
“영국식 헌정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민의를 반영하는 방안입니다.”
“이는 대한의 정서에 맞지 않소. 대한은 오백년 전제 군주의 나라였소. 헌법을 제정하고 헌정을 실시하는 것만으로도 지극한 황은인데, 어찌 지엄한 군상대권을 제약하잔 말이오?”
“왕권의 제약이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제국은 만대에 이어질 것입니다. 성상께서도 영국식 헌정에 대한 호의를 잠저 시절부터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유길준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었다. 이선의 완화군 시절 구상이 어땠든 간에, 현 시점에서의 황제는 이선이었다.
황제가 헌법 제정의 방향을 놓고 특별히 지침을 주진 않았으나, 김옥균은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한이 오늘날 자주독립을 이룩하여 당당한 제국의 반열에 설 수 있었던 건, 성상의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상께서 통치의 전권을 맡으시되, 의회가 민의를 대표해 법안을 심의하고 정부를 보완하는 형태를 취해야 합니다.”
김옥균의 말은 프로이센식 입헌 군주제에, 프랑스식 제정의 성격을 더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명백히 영국식 헌정보다는 프로이센식 헌정에 가까웠다.
“내무대신의 말씀은 깊이 참고할만 하오. 그럼 이제 헌법 초안을 잡아서 폐하께 고하도록 합시다.”
“그러시지요. 참정대신께서 초안의 서문을 맡아 주십시오.”
헌법조사위원회의 다수가 유길준의 초안을 거부하고, 박정양의 초안을 받아들였다.
이는 곧 개화당 주류가 독립협회 소장파와 결별하고 동도서기파와 손을 잡는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고균이 결국 이렇게 나올 줄이야!”
“이제 개화당은 더 이상 하나의 정파라고 할 수 없소. 독립협회와 개화당은 이제 서로 다른 정파요.”
개화당의 분열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개화당 우파는 김옥균과 박영효의 주도 하에 기존 개화당 조직을 기반으로 정당 건설을 추진했고, 개화당 좌파는 독립협회를 기반으로 별도의 정당 조직을 계획했다.
“그것 보시오. 내 말이 맞지 않소? 성상께서는 현재의 내각을 신임하시오. 고균이나 금릉위는 민당과는 생각이 다르지. 우리 두 정파가 연합하여 정부를 주도해야 합니다.”
김홍집과 동도서기파는 개화당의 분열, 개화당 우파와 동도서기파의 연합을 환영했다. 두 정파의 연합이 유지되면 황제의 신임 하에 안정적인 정국 운용이 가능했다.
“헌법 제정에서 우리는 완전히 소외되고 있소. 다만 좋은 소식이 있다면, 개화당이 결국 두 파벌로 갈라졌다는 것이지.”
“황국 협회 조직을 전국 정당으로 전환합시다. 우리가 황제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민당 급진파에 대한 적대를 공언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지방의 지지를 얻어 최대 정당이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오.”
황국협회는 정치적 재기의 가능성을 탐지했다. 운현궁 계파와 지방 사대부를 중심으로, 보수 세력의 결집을 기도했다.
6월, 대한국의 날씨는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지표면을 달구는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제국의 정치적 방향을 놓고 경쟁하는 정파 간의 갈등도 뜨거워졌다.
헌법 제정 논의는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헌법 초안을 받아든 이선에게도 결단의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