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58
– 258화에 계속 –
258화 태평양의 지배자
일본의 선전 포고와 필리핀 파병 소식을 들은 이선은, 말 없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선은 일본의 필리핀 진격이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오랫동안 공들여 왔던, 일본의 팽창을 남쪽에 돌리기 위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본 것이었다.
‘잘했다, 일본! 북쪽의 일은 신경 끄고 남쪽으로 가라. 동남아시아의 진흙탕에 계속 빠져 주길 바란다. 열강, 특히 영미와 대립하면 더 좋은 일이고.’
일본이 남방과 대양으로 진출하려 할수록, 해양 패권을 유지하고 장악하려는 영국이나 미국과 대립할 가능성이 컸다.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하기 전, 이토는 하라를 통해서 넌지시 연락을 전해 왔다.
“이토 총리께서는 황제 폐하의 우의에 감사의 뜻을 보이고, 문의를 드렸습니다. 한국이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를 중재할 수 있겠습니까?”
“아, 바라던 바요. 최선을 다해 보지요.”
만약 미국과 대립할 경우를 대비해, 이토는 일본에 삼국 간섭의 굴욕을 안겨 주었던 러시아와도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북수남진으로 나가기로 했다면, 일본이 러시아와 대립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미국과 영국이 더 문제였다.
이선은 러시아와 일본의 우호적 관계를 중재해 줄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
일본의 대 스페인 선전 포고와 필리핀 파병 소식을 받은 이선은, 하라를 경운궁으로 초청했다.
하라와의 단독 회견에서, 육군 원수 제복을 입은 이선은 정중하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일본이 스페인에 선전 포고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필리핀 독립을 위한 결단이라지요. 귀국 정부는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짐은 아시아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결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오늘날 동양의 힘이 약해 서양에게 굴복하여 그들의 장점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우리가 서양을 뛰어넘는 날이 온다면, 언제까지 굴복만 하고 있겠습니까?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 스페인 제국주의에 맞선 필리핀인의 봉기, 이를 돕기 위해 나선 일본은 아시아 역사의 자랑스러운 선례로 남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외신(外臣)도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선의 격려에 하라는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이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대한은 자주독립을 쟁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타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는 못 됩니다. 하지만 동양 최초로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지요. 일본이 아시아 제민족의 희망이 되어 준다면, 장차 대한도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저 역시 일본과 한국이 동양의 개명된 국가로서, 아시아 여러 민족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폐하의 성심을 본국 정부에 전해 드리겠습니다.”
“음. 귀국의 무운을 빕니다. 반드시 스페인을 무찌르고, 필리핀의 독립을 도와주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폐하!”
하라가 나간 후, 이선은 피식 웃었다.
이선은 서양인들 앞에서 철저한 친서구주의자를 자처한 것처럼, 동양인들 앞에선 이상적인 아시아주의자를 연기할 수 있었다. 이선은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할 줄 알았고,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재주가 있었다.
이선의 은밀한 지시 속에서, 한국 언론은 열광적으로 일본의 선전 포고를 환영했다.
“일본, 스페인에 선전 포고! 필리핀 독립을 지원!”
“일본,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 해방의 첫발을 떼다!”
“일본은 자랑스러운 아시아의 벗!”
“일본이여, 아시아를 대표하여 서양 침략자를 무찔러라!”
동양인, 특히 빠르게 근대화에 나선 일본과 한국의 서양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었다.
서양의 발전된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서양처럼 번영하고 싶다는 욕망과 압도적인 힘으로 동양을 짓밟고 있는 서양을 몰아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개화된 동양인은 전자의 방법론을 택했지만, 후자에 관한 욕망이 내심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일본이 아시아에서 서양 제국주의를 몰아낸다고 하니, 친서양주의자들조차도 내심 환호성을 내질렀다.
당연하게도, 이는 서양인의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많이 컸네? 아시아를 대표해 서양을 몰아내겠다고?”
“지금은 스페인 같은 2류 국가를 상대하지만, 다음엔 동양 국가들을 선동해서 서양 세력을 아시아에서 모두 몰아내겠다고 할지도 모르겠군.”
“독일 카이저의 황화론이 맞을지도 몰라. 일본을 계속 내버려 뒀다간, 동양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서양을 침범할지도 모른다고.”
서양인의 이와 같은 반응은 이토 내각이 가장 피하려고 했던 상황이었다. 이토는 서양 외교관들, 특히 미국과 영국 공사를 불러 해명했다.
“우리는 결코 아시아를 대표해서 서양에 맞서 싸우려는 게 아닙니다. 스페인이라는 일국과 싸우는 것뿐입니다. 미국이 일본을 개항시킨 이래, 일본은 서양 문명을 뒤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서양 문명의 본류, 앵글로색슨의 미국을 도와 낙후한 전제 국가 스페인을 몰아내려는 겁니다.”
“흠. 우리야 이토 총리의 본의를 압니다만, 아시아주의자들의 주장은 그렇지가 않던데요.”
“그자들은 어차피 무책임한 야당의 위치에 있습니다. 예전에도 존황양이론자들은 있었지만, 언제 서양과 싸운 적이 있던가요? 메이지 정부는 늘, 언제나, 철저한 친서양입니다.”
“그럼 필리핀 문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리는 미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겁니다.”
이토는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일본의 참전이 미국을 도우려는 것이지, 결코 미국과 맞서 싸울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일단 일본과 연합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이 상위, 일본이 하위 파트너라는 조건에서였다. 이제 스페인령 동인도를 어떻게 분할할지를 놓고 양국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7월 1일, 이선이 각국 주재 공사를 교체한 것은 이런 대외적 환경과도 관계가 있었다. 갑자기 외교관으로 떠나게 된 독립협회와 황국협회 지도부는 실망했지만, 이선은 그들을 경운궁으로 불러들여 다독였다.
“송재(松齋, 서재필), 짐이 경을 미국으로 보내는 이유를 잘 알리라 생각하네. 보다시피 미국이 태평양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했네. 미국의 힘은 태평양을 넘어 동아시아에까지 미칠 거야.”
“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미국을 잘 알고, 미국인 부인을 두고, 미국 엘리트들과 교류가 있는 경을 이 중요한 시기에 공사로 보내기로 했네. 경만한 적임자가 없어. 특히 해군 차관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향후 미국 정계에서 중요한 인물이 될 것이네. 그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게.”
“맞습니다. 미국의 팽창 여론을 대표하고 있지요. 좀 정신 나간 사람 같기도 합니다. 차관도 그만두고 쿠바에 자원 기병대를 이끌고 갔다고 합니다.”
“미국 대중은 그런 인물에 열광하지. 아마 차기 대통령이 돼서 팽창 정책을 계속 유지할 거야. 미국의 고립주의 시대는 끝났어. 단언컨대, 다가오는 20세기는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네. 앞으로 우리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해.”
“알겠사옵니다, 폐하!”
서재필은 이선의 격려에 기뻐했다. 친미파였던 서재필은 진작부터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했고, 친러로 보였던 황제가 마침내 자기 뜻을 알아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미국 부임 전에, 필리핀을 경유하도록 하게. 경은 필리핀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메릿 장군과 친분이 있으니 환영해 주겠지. 가서 미국의 힘이 태평양 너머에 미치는 걸 살피고, 미국과 일본의 역학 관계를 분석해 보게. 현지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을 거야.”
“예, 그리하겠습니다.”
서재필을 필리핀을 경유해 미국으로 보낸 이선은, 반대쪽 대척자였던 영선군 이준용에게도 지침을 내렸다.
“일본이 스페인에 선전 포고하고 남양으로 나아가려는 지금은 참으로 일본 공사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일세. 그래서 짐이 경을 파견하려는 거야. 경은 일본 유학을 하면서 일본 정·재계의 인사들과 두루 좋은 관계를 맺지 않았나.”
“황공하옵니다, 폐하.”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그들의 끊임없는 팽창 욕구를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돌리느냐에, 대한의 미래가 달려있네. 앞으로 경에게 자주 지침을 내릴 것이네. 경이 짐을 대신해서 일본에서 대한의 이익을 관철해 주길 바라네. 영선군, 경은 대원왕의 손자이자 짐의 사촌 아우일세. 짐의 근친인 경에 대한 신뢰는 타인과 비교할 수 없네. 경이 국가를 위해 큰 공을 세운다면, 왕작(王爵)이라고 못 주겠나?”
이선의 격려에 이준용도 감격했다. 이준용은 자신의 주일 공사 임명이 정치적 숙청이 아닌가 싶은 의심이 있었지만, 황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명을 받들어, 견마지로를 다 바치겠습니다.”
이선은 외국 공사로 파견될 사람들을 한 사람씩 만나 구체적인 지침 사항과 격려를 전달했다.
그들 모두 황제의 혜안에 감탄하고, 파견될 국가에서 외교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1898년 현재, 이선은 국내 정치와 대외 정치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분주했다.
7월, 전세는 급격히 미국-일본-필리핀 연합군에게 기울어졌다.
카리브 전선에서 미군은 스페인군을 일방적으로 격파했다. 미군은 쿠바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스페인을 몰아냈다.
6월 28일, 일본군 해군 육전대와 1개 혼성사단 2만여 명이 루손섬 북부에 상륙했다.
30일, 괌을 점령한 미군 해병대 1만여 명이 루손 동부에 상륙했다.
루손섬 대부분이 필리핀 독립군에 의해 통제된 상황에서, 미군, 일본군, 필리핀군은 마닐라를 먼저 점령하기 위한 진격에 돌입했다.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외교적 협의는 지속되었다.
“필리핀의 독립을 인정하고, 미국이 필리핀의 보호국이 됩니다. 일본은 필리핀의 독립과 미국의 보호를 보증하는 것으로 하지요.”
미국의 매킨리 대통령은 애초에 필리핀 독립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2만이나 파병한 일본의 요구를 무작정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좋소. 필리핀의 독립과 주권은 인정하지만, 미국의 확고한 군사적·외교적 보호를 받아야 하오.”
“미국이 필리핀을 차지하는 대신, 스페인령 동인도에 속하는 군도들은 일본이 차지하는 건 어떻습니까?
스페인령 동인도에 속하는 군도는 미크로네시아의 북마리아나 제도, 팔라우 제도, 캐롤라인 제도 등이었다. 영토는 작고 인구는 희박했지만, 해양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었다.
“괌은 이미 우리 해병대가 점령했으니 용인할 수 없소. 단, 나머지 군도는 원한다면 일본이 점령해도 좋소.”
팽창주의자 매킨리가 태평양에서 확보하려고 한 영토는 필리핀과 괌이었다. 필리핀과 괌은 확실하게 통제할 계획이었지만, 나머지 군도는 스페인에 남겨둘 생각이었다. 그걸 일본이 차지하겠다는 건 굳이 말릴 생각도 없었다.
미국의 허가를 받은 일본은, 함대와 해군 육전대를 파견해 사이판과 팔라우를 점령했다. 스페인 아시아 함대가 궤멸하여,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진격이었다. 미군이 괌에 무혈 입성한 것처럼, 일본도 희생 없이 사이판과 팔라우를 점령했다.
일본이 미국에 달라붙어 스페인령 동인도를 분할하자, 카이저 빌헬름 2세는 강한 불쾌감을 표명했다.
필리핀을 확보 못 한다면, 최소한 미크로네시아의 군도들만큼은 독일령 뉴기니로 편입시킬 계획이 있었는데, 일본이 선점해 버린 것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일본이 짐의 영역을, 아니 서양의 영역을 침해하리라는 예상이 틀리지 않았어. 건방진 섬나라 원숭이 놈들! 내 이놈들을 당장…….”
카이저는 아시아 함대에 일본을 공격하라고 명하고 싶었지만, 외무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독일이 아무리 유럽에서 막강하더라도, 아시아에서는 신참입니다. 계속 미국과 일본을 적대했다가는 그 둘을 결합시킬 것입니다. 무리해서 필리핀을 얻으려다가 기껏 확보한 교주만과 칭다오도 잃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한발 물러설 때입니다.”
카이저는 결국 반대에 물러서고 말았지만, 일본이 황화론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갖게 되었다. 일본은 언젠가 물리쳐야 할 독일의 적이었다. 당장은 무리더라도, 삼국 간섭 때처럼 러시아를 이용해 일본에 타격을 입힐 기회를 기다렸다.
쿠바와 필리핀이 넘어가고, 스페인의 아시아 함대와 대서양 함대가 모두 궤멸하였다. 이제 스페인이 저항할 방법은 없었다.
1898년 8월 12일. 미국과 스페인이 휴전 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미서일 삼국 전쟁은 종결되었다.
약 4개월간 진행된 전쟁에서 미군의 희생자는 약 4백여 명,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2천여 명이었다.
스페인은 800여 명 전사, 1만 5천여 명 질병사, 포로가 4만이었다.
뒤늦게 뛰어든 일본의 전사자는 거의 없었고, 일본군의 낙후한 의료로 인해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만 2천여 명이 발생했다.
일방적인 미국의 승리였다. 미국에서는 ‘한여름 소풍과도 같은 전쟁’이라 불렀다.
10월부터 12월 사이, 파리에서 미국, 스페인, 일본 대표가 협상을 논의했다. 쿠바와 필리핀 독립운동 세력은 대표에서 배제됐다. 일본은 협상의 일방으로 인정받았지만, 미국과 스페인은 비서양 국가인 일본을 따돌렸다.
“스페인은 쿠바와 필리핀의 독립을 인정하고, 푸에르토리코와 괌을 미국에 할양한다. 양도의 대가로 미국은 스페인에 2천만 달러를 지불한다.”
스페인은 루손섬만 넘기고 민다나오와 술루 제도는 유지하려고 했으나, 미국은 필리핀 전역을 요구하여 인정받았다.
“스페인은 일본에 북마리아나 제도와 팔라우 제도를 할양한다.”
일본은 스페인령 동인도 중 일본령 오가사와라 제도와 멀지 않은 북마리아나 제도와 팔라우 제도만 인수했다. 모두 차지하기에는 행정력도 미치기 힘들 고, 이 지역을 바라보는 독일의 눈길이 따가웠다.
“필리핀 독립 만세!”
변화한 역사의 최대 수혜자라면, 필리핀 임시정부였다.
미국의 짧은 군정을 거친 후, 쿠바와 필리핀은 독립할 예정이었다.
역사대로라면 미국은 필리핀 독립을 부정하고, 필리핀인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필리핀을 지배하기 위해 3년간의 가혹한 전쟁이 뒤따랐고, 20만이 넘는 필리핀인이 살해당했다. 그 후 36년간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로 남아야 했다.
변화한 역사로 필리핀 공화국은 보호국의 형태로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록 미국의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지배를 받는 보호국이었지만, 아시아 최초의 민주 공화국을 선언할 수 있었다.
전쟁의 결과로, 미국이 태평양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다. 하와이 왕국을 병탄하고, 괌과 필리핀을 세력권에 넣은 미국은 태평양의 지배자였다.
이제 미국은 아시아 문제의 방관자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일원이었다.
일본도 해양 국가로서 본격적인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 마침내 일본이 열망하던 ‘남양 진출’의 꿈을 이룬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여러 의혹을 쌓고 적을 만들어 냈다. 앞으로도 충돌할 여지는 충분했다.
이 모두, 이선과 대한제국에는 바람직한 결과였다. 한국의 독립이, 점차 동양을 넘어 세계사까지 바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