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67
– 267화에 계속 –
267화 위태로운 천하
광서제와 변법파는 각지의 총독을 교체해 지방 장악력을 높이려고 시도했다.
이홍장을 대신해 북양대신 겸 직례총독으로 임명된 건 호광총독 장지동이었다.
“호광총독 장지동은 강학회의 회장을 맡았고, 호광의 변법을 이끌어 왔습니다. 변법의 대의를 잘 아는 인물이니 황상을 충실히 보위할 것입니다.”
장지동도 이홍장과 같은 양무파였지만, 변법에 관해 보다 우호적인 입장이었다.
이어서 지방관 중 가장 충실한 변법 지지파인 호남 순무 진보잠이 호광총독으로 승진했다.
양무파이자 이홍장의 오랜 숙적인 장지동은 전통적인 중국을 지키면서도 서양을 배우자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을 내세웠다.
1898년, 변법이 시행되자 장지동은 ≪권학편(勸學編)≫이라는 책을 발표하여 백성들에게 ‘다섯 가지 앎’을 강조했다.
“첫째, 수치를 알아야 한다. 중국이 일본, 터키, 태국, 조선보다 더 낙후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중국이 월남, 버마, 이집트, 폴란드의 끔찍한 운명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변화를 알아야 한다. 습속을 고치지 않으면 변법을 할 수 없다. 넷째, 요지를 알아야 한다. 즉, 중학과 서학의 핵심을 알아야 한다. 서양의 기술뿐만 정치 체제도 알아야 한다. 다섯째, 근본을 알아야 한다. 서양에 유학을 가고, 그 사상을 배우더라도 중국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수적이면서도 변혁을 지지한 장지동은 제당과 후당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장 완고한 보수파라 할지라도 장지동이 유가 전통의 배신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장지동은 진나라의 상앙(商鞅)과 송나라의 왕안석(王安石)의 변법 사례를 들어 역사적으로도 필요한 일임을 주장했다.
이런 사상과 호북과 호남에 있는 강력한 기반을 바탕으로, 장지동은 이홍장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변법파는 장지동이 광서제를 충실히 보좌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변법파 애송이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말로만 듣다가 북경에 와서 보니 정말 심각하구나. 이대로 가다간 변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북양대신 직위를 수락하긴 했지만, 1898년의 장지동과 1899년의 장지동은 달랐다.
지난 1년간의 난국을 보며, 그는 변법파의 통치 능력에 회의감을 가졌다. 변법파의 이상은 훌륭했지만 현실 감각이 부족했고, 사상적 깊이에 비해 정치력이 따라 주지 못했다.
“하하! 이 얼마만의 직례 복귀란 말인가. 수도의 공기는 역시 다르단 말이지.”
신임 북양대신 장지동을 따라온 원세개는 만족감을 표했다.
조선에서 무리하게 강경책을 쓰다가 이선의 책략에 걸려들어 실각한 원세개는, 이홍장의 신뢰를 잃고 징계를 받아 백의종군해야 했다.
젊은 원세개는 경거망동의 대가에 관해 크나큰 교훈을 얻고, 밑에서 다시 시작했다.
남부에서 군 경력을 다시 쌓아, 삼국 전쟁 때에는 흑기군 총수 유영복과 함께 대만 전선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끝내 패배하기는 했지만, 원세개는 대만의 결사 방어를 주장하던 호광총독 장지동의 눈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원세개는 장지동이 창설한 자강군의 일원이 되었고, 강학회에 가입해 변법파와도 연줄을 닿았다.
호남 출신으로 강유위와 더불어 변법파의 핵심인 담사동이 원세개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중앙으로 발탁되었다. 북양삼군의 지휘자가 된 장지동을 보좌하는 지위를 받게 된 것이다.
“신 원세개, 충심으로 황상을 받들겠습니다.”
이제 나이 40이 된 원세개는 인생의 쓴맛을 보며 예전과 같이 방약무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야심을 감추고 겸손함으로 위장할 수 있었다.
원세개는 조선 근무 시절 친분이 있었던 홍영식이 주청 한국 공사로 와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한국 공사관을 찾아가 안부를 묻는 대담함을 보였다.
“원 공, 간만입니다. 한 13년 만인가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군요.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직례로 복귀하게 되었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제가 드려야지요. 완화군, 아니지. 한국 황제 폐하께서 이렇게 훌륭한 군주가 되실 줄이야. 참으로 귀국의 홍복입니다.”
“허허, 원 공은 대한국에 관한 기억이 별로 안 좋으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아니, 천만에요. 그때 내가 실수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이 원세개는 없었을 겁니다. 정말 인생을 제대로 배웠지요. 황제 폐하께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해 주십시오.”
원세개는 이선과 대한제국의 변화에 관해 찬사를 보냈다. 진심인지 위선인지, 홍영식은 냉철히 관찰했다.
원세개의 복귀 소식에, 이선은 홍영식에게 그 행보를 면밀히 살피라고 명했다.
실제 역사와 행보가 많이 틀어지긴 했지만, 음험한 기회주의자인 원세개의 본성이 과연 얼마나 변했을지 의문이었다.
1899년 여름, 광서제가 변법을 선포한 지 1년이 흘렀다. 그동안 숱한 포고령을 내려 근본적인 혁신을 꾀했지만, 통치는 난국을 거듭했다.
중앙 권력의 형해, 지방의 독립성, 민심의 이반, 경제의 붕괴, 거듭되는 자연재해, 반란의 조짐은 점차 통치 불능의 상태로 이어졌다.
광서제와 변법파는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실시하여 왕조의 수명을 연장하고, 국가를 튼튼히 하며,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겠다는 그들의 선의는 아래에게 닿지 못했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로 해 보였다.
“표트르 대제가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페테르부르크로 옮기고, 메이지 일본이 수도를 교토에서 도쿄로 옮겼듯이, 국가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기득권의 저항을 뿌리치려면 천도가 불가피합니다. 북경은 이미 천명과 지세가 크게 쇠했습니다. 작금 중국 경제의 중심지는 남방에 있으며, 상해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가장 번영하는 도시입니다. 천도를 고려하소서.”
“러시아, 일본, 한국 모두 대개혁을 시작하며 턱수염과 머리를 깎았습니다. 변발은 낙후한 과거의 상징입니다. 변발을 자르고 양복을 입어야 합니다.”
“일본과 한국의 사례를 참고하시어, 헌법을 반포하고 의회를 개설하소서.”
“작금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중화의 민심이 대청을 이민족 만주족의 왕조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황상께서는 만주족의 칸이 아니라, 4억 중국인의 상징이자 구심점이 되셔야 합니다. 대청 황제가 아니라 진정한 중화의 황제가 되소서.”
강유위와 변법파는 광서제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했다.
상해 천도, 변발 단발, 양복 착용, 국호 변경.
남방 출신인 변법파에게 북경은 반동의 온상이고, 장강 이남과 상해는 혁신과 번영의 상징이었다.
변발은 시대에 뒤떨어진 만주족의 전통이었으며, 청의 중국 정복 당시 한족에게 강요했던 악습으로 생각했다.
광서제에게는 충성할지언정, 청조에는 충성심이 없는 변법파였다. ‘중국’과 ‘대청’ 중에 선택하라면, 단연 중국이었다.
중국을 근대 국민 국가로 전환하려는 이들에게 만주족의 청나라는 짐 덩어리에 불과했다. 광서제를 정점으로 체제의 근본적인 재편성이 필요로 했다.
이는 상해를 새로운 수도로 한 입헌 군주제 국가 ‘중화제국’을 선포하자는 제안이었다.
이를 받아들이면, 청나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바뀌는 것이었다. 아니, ‘만주족의 청나라’라는 정체성은 사라져 버리는 셈이었다.
강유위와 변법파를 신뢰하며 그들의 말을 다 들어주었던 광서제도,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라를 걱정하는 경들의 충심은 이해하나, 이는 너무 급진적인 조치요.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소.”
“신등도 지나치게 급진적인 조치라는 것은 알고 있사오나, 정세가 그만큼 심각합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성단을 내려 주소서!”
“그래도 이는 짐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이 주청이 알려지면 비판이 거셀 것이오. 짐과 경들의 비밀로 알고 있읍시다.”
광서제는 변법파의 주청을 거절하고, 비밀에 부쳤다.
그런데, 이는 곧 서태후의 귀에 들어가고야 말았다. 여전히 자금성 안에는 서태후의 눈과 귀가 곳곳에 있었으며, 완전한 비밀이란 없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역적놈들의 간악한 흉계가 드러나는구나. 저놈들은 변법을 명분으로 삼아, 대청 왕조의 종묘사직을 무너트리려고 하는 것이다. 천도, 변발 단발, 국호 변경, 이 모두 만주의 정체성을 빼앗고 대청을 무너트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서태후는 격분하여 외쳤다. 서태후에게 ‘대청’과 ‘만주’는 있을지언정, ‘중국’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서태후는 광서제와 변법파를 징벌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세운 황상이라 그동안 참고 있었으나, 저런 역적놈들을 끼고도는 황상도 더 이상 용인할 수가 없다. 내 반드시 무력으로 징벌하리라.”
“하오나 신건육군과 북양삼군이 모두 황상의 통제하에 있는데,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팔기군만으로는 저들을 대적할 수 없사옵니다.”
서태후의 최측근, 전 군기대신 영록이 우려를 표했다. 팔기군은 태후에게 충성하나, 허울뿐인 팔기군은 신건육군과 북양삼군을 대적할 수 없었다.
“곧 때가 올 것이네. 나는 황실의 친왕들을 결집하겠으니, 경은 이리 해 주도록…….”
태후는 측근들에게 계획을 명하면서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1899년 가을, 산동과 하북 일대에서 의화단의 폭동은 더욱 거세졌다.
“양귀 놈들, 그리고 양귀에 빌붙은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라!”
“교회란 교회는 모두 박살 내라!”
의화단에 의한 서양인 공격, 교회 습격, 철도 파괴, 약탈과 방화가 빈번히 일어났다.
“도대체 저 폭도들이 언제까지 날뛰게 내버려 둔단 말인가!”
“무능한 청 조정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특히 평원현(平原縣)에서 개신교회를 파괴하고 미국인 선교사와 교도들이 살해당하는 ‘평원교안(平原敎案)’이 발생하자, 미국공사 콩거(Edwin H. Conger)는 청국 조정에 항의했다.
“미친 듯이 날뛰는 저 폭도 무리를 즉시 진압하지 않으면, 열강의 간섭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미합중국은 그렇게 되길 원치 않습니다. 청나라가 스스로의 힘으로 저 폭도들을 진압해 주십시오.”
미국에 이어 각국의 요청이 이어졌다. 의화단을 청조가 진압하지 못한다면, 열강이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겠다는 요구는 청 조정에 굉장한 압박감을 주었다.
“금위군 통령 장훈을 산동 안찰사에 임명하니, 신건육군을 이끌고 의화단을 자처하는 폭도들을 모조리 진압하라. 직례총독 장지동은 북양삼군을 동원하여 진압을 지원하도록 하라.”
“삼가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광서제는 가장 믿을만한 병력인 신건육군 1만을 의화단 진압에 동원했다. 열강에 반란 진압 의지를 확실히 보여 주고, 그동안 양성한 신건육군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되면 북경이 위험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변법파에게도 계산은 있었다.
“의화단의 배후에 태후가 있는 게 아닌가? 신군을 북경 밖으로 내보낸 후에 정변을 도모하려고?”
“걱정 말게. 만약 태후와 수구파가 변란을 계획하더라도,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기껏해야 팔기군이네. 오합지졸 팔기군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래도 불만의 싹은 잘라야 한다. 이화원(서태후)은 근본적인 문제다. 군대를 동원해 제압해야 한다.”
“신군을 이끄는 장훈은 지나치게 충성스럽고 우직한 인물이라, 우리가 먼저 태후를 끌어내리라고 하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네. 하지만 태후가 정변을 일으킨다면, 그도 황상을 보위하기 위해 태후를 잡아들이겠지.”
변법파는 서태후와 수구파가 신건육군이 부재한 틈을 타 반란을 모의한다면, 이를 명분으로 삼아 제압하고 영원히 정치 무대에서 끝장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태후가 생일인 10월 10일을 기해 대대적인 축연을 연다고 하더군. 만약 반역을 꾀한다면 이때가 되지 않겠나?”
“좋아. 그때를 맞춰 신건육군을 다시 북경으로 불러들여, 이화원을 제압한다. 북양삼군의 지지도 얻어내도록 하게.”
“북양삼군을 이끄는 장지동의 측근 원세개는 강학회 회원이고, 변법을 지지하지. 내가 그를 우리 동지로 끌어들이겠다.”
음력 10월 10일은 서태후의 생일이었다. 매년 서태후의 생일은 성대하게 기념되었고, 이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변법파는 서태후가 정변을 일으킨다면 이날이 되리라 예상하고, 그때 맞춰 신건육군의 회군을 계획했다.
하지만 서태후의 행동이 더 빨랐다. 40년 가까이 청조의 배후에서 군림한 서태후는 여전히 쇠하지 않은 정치 책략을 갖고 있었다.
서태후는 만주 황실과 귀족들을 확고하게 자기편으로 끌어들였고, 군권을 지닌 양무파에게도 최소한 중립을 요구했다.
– 역적 강유위 등이 대청의 종묘사직을 무너트리고, 중국의 전통과 강상을 파괴하려 하오. 이들이 모의하는 상해 천도, 단발 양복, 헌법과 의회, 국호 변경, 이 모두 대청을 멸망시키고 중국이 서양의 개가 되게 하려는 악랄한 음모요. 나는 대청과 황상을 지키기 위해 이 역적들을 타도할까 하오. 장 공은 대청의 충신이니, 어찌 이 간악한 역적들을 지켜만 보겠소?
서태후의 밀서를 받은 북양대신 장지동은 고민에 빠졌다. 태후는 변법파, 결국 황제를 징벌하겠다는 의사를 암암리에 표시했다. 황제에 대한 충심은 저버릴 수 없으나, 태후의 말이 사실이라면 강유위와 변법파는 청조를 부정하는 역적, 중국의 전통을 파괴하려는 위험인물들이었다.
고심하던 장지동에게, 측근 원세개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