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72
– 272화에 계속 –
272화 경자 농민전쟁
전봉준의 만인대 출진 명령은 즉각 이뤄지지 못했다. 요동 군정 당국에서 제약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마적이 먼저 국경을 넘어 습격한 경우에만, 반격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 선제공격 목적의 월경은 엄격히 금지한다.”
결국, 만인대는 국경지대인 관전(宽甸) 일대에 주둔하며 마적의 공격을 기다려야 했다.
마적들도 만인대 결성에 관한 소문을 들었는지, 겨울이 끝나고 봄철만 되면 활발하던 마적의 습격이 이 해에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안 보인다더니, 그 흔한 마적 놈들이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가!”
“대장, 공격합시다! 저놈들이 지금까지 늘 습격해 오지 않았소! 우리도 먼저 공격할 수 있지!”
부하들의 출병 요구에도 전봉준과 지도부는 단호히 거절하고 부대를 단속했다.
“우리는 도적이 아니라 창의(倡義)를 부르짖는 의군이다. 의군에게 중요한 건 오직 명분, 명분이야!”
4월이 되자, 마침내 전봉준이 기다리던 명분이 찾아왔다.
만인대에 관한 소문을 헛소문으로 치부한 일부 마적들이, 연례행사처럼 국경을 넘어 습격해 온 것이다.
“조선 농민 놈들이 무장했다는 소문이 있다지만, 그건 헛소문에 불과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어차피 놈들에겐 기병이 없어. 진위대만 상대 안 하면 된다. 최대한 빨리 치고 빠지자!”
“끼얏호!”
마적이 국경 마을을 습격해 오자, 전봉준은 즉각 만인대에 반격 명령을 내렸다.
“선봉대, 공격!”
“훈련받은 대로만 해! 방포!”
선봉대는 마적들을 국경에서 요격했다.
“조선 놈들이 무장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뭐, 상관없다. 길림 촌놈들 털면 되니까. 얘들아, 내빼자!”
“와우!”
마적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기동력을 활용해 재빨리 한만 국경을 넘어 되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만인대, 진격하라! 마적들을 토벌한다! 더 나아가 백성의 안위를 돌보지 못하고, 고혈을 쥐어짜는 만주 권귀들을 무찌른다!”
“와아아아!”
만인대는 보무당당하게 국경을 넘어, 회인현(懷仁縣)과 통화현(通化縣) 방향으로 진격했다.
이 소식은 즉각 대한제국을 향해 전해졌다.
“만인대를 이용해 유사시 우리 군의 주적인 만주 군의 실력을 확인해 본다. 만약 저들이 만인대를 격파하고 국경으로 추격해 들어오면, 이를 명분 삼아 반격한다.”
의화단 사태의 확산으로 올해 만주 출병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받은 군부는, 만인대를 통해 주적인 만주 정변군(靖邊軍, 변방 방위 부대)의 전력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봉천장군과 길림장군이 병력을 동원해 만인대를 격파하고 한만 국경까지 추격해 온다면, 이를 명분 삼아 반격한다는 계획까지 세워 두었다.
“동학농민군과 청군이 싸워서 공멸한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죽은 자는 위험하지 않은 법, 정부는 이들의 희생을 기리고 만주 파병의 명분으로 삼는다.”
개화당 정부는 동학과 농민운동 모두를 잠재적 위험 세력으로 여겼다. 만인대의 주축인 동학과 농민협회가 군사적 모험으로 청군에게 타격을 입는다면, 정부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라 생각했다. 만주 파병의 명분을 만들어 주는 건 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황제, 이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올해는 예정대로 의화단 전쟁이 일어나 줘야 해. 역사대로라면 6월에 발생하겠지만, 무술변법이 1년 더 진행되어 역사가 틀어졌으니, 정확히 어찌 될지는 장담 못 하겠군.’
1900년 1월, 서태후의 수구파 정권은 칙령을 내려 의화단 탄압을 중지했다. 그리고 서양에 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의화단 전쟁의 가능성이 싹텄지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민병대인 만인대가 청군을 상대로 한두 번 정도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이 들어가면, 의화단을 청군에 끌어들여서 서양에 맞서야 한다는 수구파들의 주장이 더 강하게 먹히겠지?’
이선에게 만인대의 활동은 부차적인 것이었고, 보다 중요한 건 의화단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었다.
만인대는 이를 위해 필요한 장기 말이었다.
‘각국에는 통제받지 않는 민병대의 변란이라고 해명하면 되고. 한두 달 정도 만주 변방을 흔들었다가 피해가 커지면 철수 명령을 내린다. 전봉준은 내 뜻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의화단 전쟁이 정식으로 발발하면, 열강과 협의해 정규군을 만주로 파병한다.’
이선은 전봉준이 자신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바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가 통제를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유사시를 대비, 육군 정보부 요원들과 제국익문사 요원들이 만인대로 위장해 활동 중이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그런데 군부, 정부, 이선 모두 한 가지 전제 조건을 깔고 있었다.
만인대는 장기판의 장기 말에 불과하고, 청군에게 한두 번 정도 이기더라도 결국에는 패배하리라는 예상이었다.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면 그 예측은 합리적이었다.
말이 좋아 만인대지, 소수의 참전 용사와 예비군들을 제외하면 오합지졸인 민병대였다.
아무리 만주의 청군이, 청군 중에서도 질이 떨어지는 변방군이라 해도 민병대에 패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 청국령에 진입한 만인대는, 청나라 지방관의 항의를 받았으나 무시하고 계속 진격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을 외치는 경자(庚子)년의 농민전쟁, 이른바 ‘경자 농민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
“이 이상 아국 영토로 진입한다면, 즉각 공격하겠다!”
“우리는 바로 너희 무능하고 부패한 청군을 징벌하러 왔다! 자국의 치안을 관리하기는커녕, 마적과 한패가 되어 백성들을 괴롭히는 놈들!”
“이,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전군, 전투태세!”
만인대는 러시아제 베르단 1870, 미제 레밍턴 롤링블럭 M1867, 독일제 게베어(Gewehr) 1871 등, 당대에는 제식소총으로 애용되었으나 1900년 시점에는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 소총으로 무장했다.
대한제국군에서조차 후방의 2선급 부대에서 사용되는 소총들이었다.
만인대에 소총을 제공한 군부는 기관총이나 야포는 절대 내주지 않았고, 탄환의 비축량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조차도 농민들에게는 굉장한 무장이었고, 이들은 총을 얻었다는 자체에 기쁨을 느꼈다.
“아따, 겁나게 좋은 총이구마잉.”
“잉, 만주 아그덜 오줌 지려불겄소.”
“오랑캐 넘덜, 느자구읎이 굴면 확 대구빡에다가 총알 맛을 그냥!”
1만에 달한다는 만인대 중, 실제 전쟁에 참전해 전투 경험이 있는 사람은 200명 남짓이고, 징집되어 군대 생활을 해 본 예비병들은 1천 명 정도였다.
만인대는 참전 경험이 있는 이들을 지휘관으로, 예비병들을 주축으로 삼아 부대를 편성했다.
만인대 지휘부는 빈약한 무장과 부족한 훈련을 생각하면, 청군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 승리의 요건이라고 보았다.
“국경 수비대를 신속히 격퇴하여, 적의 주력을 끌어들인다.”
만인대는 3천 규모의 길림 정변군과 첫 교전을 벌였다. 수적으로 우월한 만인대는 정면 공격을 준비했다.
정변군은 전면에 야포 4문을 배치하고 있었다. 수적으로 불리한 걸 알고 있는 이들로선 만인대가 먼저 공격하길 기다렸다.
“자, 훈련받은 대로 움직인다. 명령 신호가 떨어지면 공격…….”
“선봉장, 이미 공격 같은디요?”
“머여? 어떤 느자구읎는 새끼들이여! 나가 아직 명령을 안 했는디!”
“저짝 좀 보소.”
선봉장 최경선은 격분하여 욕설을 내뱉으며 망원경을 들어올렸다. 이미 전투는 시작되었다. 우측에서 산을 넘어 멋대로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니, 니미……! 전열에 균열이 일어나불게 생겼네! 김기범이, 이 창아리빠진 놈! 나가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디! 에라 모르겠다, 선봉대 공격!”
“와아아아!”
“확 마 다 쓸어부러라!”
“다 조사부러!”
그야말로 제멋대로 이뤄진 공격이었다. 지휘부는 각 영을 통제하지 못했고, 각 영은 소부대를 통제하지 못했다.
1만에 달하는 만인대는 그냥 무작정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패주를 면치 못할 촌극이었다.
그런데 전황은 예상 밖으로 돌아갔다.
“뭐야, 조선 놈들. 왜 무조건 돌격이야? 아군 대포가 안 보이나? 뭘 믿고 저러는 거지?”
“저놈들, 실제보다 숫자가 훨씬 많은 거 아닙니까?”
“척후에 의하면 1만 정도라며?”
“그게 선봉일지도 모르죠. 더 많은 후위 부대가 있으면 어떡합니까?”
“1만이 선봉? 젠장, 그러면 아군만으로 어떻게 막아! 길림에 지원군 요청하고 퇴각한다!”
“옛!”
“휴, 살았다…….”
촌극에 촌극이 더해졌다.
길림 정변군은 만인대의 무질서한 돌격이 거대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착각했고, 전의를 상실해 총 몇 방을 쏘고 퇴각했다.
애초에 길림군은 약체화된 청군에서도 3류 군대였다.
삼국전쟁의 패전 이후 청나라도 현실을 깨닫고, 군제개혁을 실시했다.
독일 교관을 불러들여 프로이센식으로 훈련한 신건육군은 정예로 높이 평가받았고, 전쟁에서 패전을 면치 못했던 북양 삼군도 정예로 거듭났다.
그런데 청조의 군비 투자가 중앙군에게 집중되면서, 지방군은 더욱 약화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양무파 관료 유곤일이 육성한 남양군, 장지동이 육성한 자강군 등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 외에는 질적 저하가 심화되었다.
특히 삼국전쟁 당시 주전장이 된 만주의 만주군은 연전연패로 인해 해산 위기까지 몰렸고, 종전 이후 청조의 성지인 심양이 있는 봉천군의 경우에는 그럭저럭 전력을 회복해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길림은 만주의 공업화를 상징하던 길림기기창도 삼국전쟁 이후 예산 부족으로 중단되어 군수품 생산 대신 은화를 찍어 냈고, 무기와 탄환조차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길림군의 약체화는 갈수록 심해졌다.
그 결과가 이런 졸전이었다.
“이겼다! 만세!”
“이겼다고 좋아할 일이 아냐! 앞으로는 명령대로 움직여!”
“군에 영이 서지 않으면 군대가 아니라, 도적 떼에 불과하다!”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는 처벌한다!”
기묘한 승리 직후, 전봉준은 휘하 지휘관들을 크게 질책했다.
지휘관들도 이겼다지만 행운에 근거한 일임을 인정했다. 독자적으로 공격하여 승리에 크게 기여한 우영장 김기범도, 자신의 불복종을 반성하고 전봉준의 명을 따를 것을 맹세했다.
“나가 잘못혔소.”
“이번만은 죄를 공으로 갚았다고 생각하지. 같은 실수는 반복하면 아니 되네.”
전봉준은 지휘권을 확실히 통제하기 시작했고, 다음 전투에 대비했다.
만인대가 회인현과 통화현에 입성하자, 현 관리들은 현청을 내버리고 도주했다. 현청을 접수한 만인대는 포고령을 내렸다.
“우리는 무능하고 부패한 만주 권귀로부터 백성을 돕고, 제세안민을 이루기 위해 온 해방군이다! 청국 백성들이여, 그대들도 우리의 형제다! 걱정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
“전쟁이 끝나면,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토지를 분배할 예정이다!”
“부재지주의 땅은 몰수해 실제 경작하는 농민들에게 나눠 준다!”
“가난하고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해 식량을 지급할 터이니, 현청으로 오라!”
만인대는 민심을 얻기 위한 선무 공작에 들어갔다. 긴가민가하던 청국 농민들은 현청에 왔다가, 정말로 쌀과 밀을 받았다. 춘궁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이는 굉장한 선물이었다.
“이야, 살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오네!”
“조선 사람들 인심이 좋다더니 정말이구만.”
“이 바보들아, 좋아할 일이 아냐! 저거 다 조선 놈들이 현청과 지주의 창고를 털어서 나눠 주는 거라고! 관리와 지주들이 돌아오면 어쩌려고 이래?”
“쳇, 누구든 쌀 나눠 주는 게 우리 편이고, 뜯어 가는 게 적이지!”
“그럼 만인대인가 하는 저 치들이 계속 이기면 될 거 아냐?”
대부분 산동과 하북의 빈농 출신으로 먹고살기 위해 이 머나먼 변방까지 흘러들어 온 농민들은, 청조에 대한 충성심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들은 만인대의 행보를 열렬히 환영했다.
패배와 퇴각, 회인과 통화 함락의 보고를 받은 길림장군 장순(長順)은 격분했다.
“야 이 머저리 같은 놈들아! 이제는 하다 하다 못해 조선 민병대 따위에게 겁을 먹고 도주해? 네놈들이 그러고도 대청의 장수냐? 어쩌다가 대청이 이 꼴이 됐단 말인가! 대체 이 치욕을 어떻게 할 것이며, 조정에는 뭐라고 보고해야 한단 말이냐!”
장순은 분노로 길길이 날뛰었다.
한국 정부에 즉각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이런 것뿐이었다.
– 만인대를 자처하는 자들은 대한국을 부정하는 난병(亂兵)으로, 본국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다. 마치 귀국의 마적과 같은 자들이다. 귀국 영토로 이미 진입한 이상 우리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귀국의 힘으로 진압하길 바란다.
마적들이 날뛰어 한국이 길림 당국에 항의했을 때 장순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고 있었다.
만인대의 무장 상태로 볼 때 배후에 한국이 있을 가능성은 농후했지만, 만인대가 청국 영토를 점령하고 있는데 외교전으로 입씨름을 벌일 때가 아니었다.
결국, 당장 스스로의 힘으로 진압하는 수밖에 없었다.
“길림군 1만 5천을 동원해, 저 폭도들을 제압한다! 폭도의 수괴 전봉준이란 자의 목을 가져오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마라!”
“옛!”
1만 5천의 길림군이 통화를 향해 진격했다. 이번에는 결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각오를 하고 달려왔다.
그러자 만인대는 정규군의 출동에 겁을 먹었다는 듯이, 통화를 버리고 회인으로 도주했다.
통화를 손쉽게 수복한 길림군은, 만인대의 쌀을 받은 농민들을 잡아들여 다시 빼앗았다.
“적군에 빌붙어 약탈에 동참한 폭도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젠장, 어쩐지 이상하게 운수가 좋다더니…….”
“역시 청병이 더 나쁜 놈들이야.”
퇴각하는 만인대와 추격하는 길림군은 두 번 소규모 교전을 벌였고, 길림군은 번번이 승리했다. 만인대는 감당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퇴각했다.
“저 만인대란 놈들, 결국 형편없는 오합지졸이 아니었는가! 저런 놈들이 무서워서 현을 내주다니!”
“전군은 적을 추격해 진격한다! 이 기회에 아예 적을 전멸시키자!
통화에서 회인, 한만 국경으로 이어지는 길은 구릉지와 그사이에 난 소로(小路)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소로를 따라 만인대의 퇴각과 길림군의 추격이 이어졌다.
“적이 전방의 고개에 진을 쳤다고 합니다.”
“드디어 적을 궤멸시킬 기회군. 전군, 공격한다!”
길림군은 기세당당하게 공격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