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75
– 275화에 계속 –
275화 의화단(義和團)
중국은 거대하다.
그 땅은 광활하여 없는 것이 없었고, 그 사람은 많아 제대로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역사는 어떠한가? 4천 년간 유구하게 흘러온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영웅과 현자들을 배출해 왔는가.
가히 세계의 중심이라 자처할 만했고, 중화란 곧 문명의 동의어였다.
……라고 믿어 오던 중국인들에게, 지난 60년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의 역사였다.
어느 날, 지구 반대편에서 배를 타고 온 하얀 얼굴의 인간들이, 마약인 아편을 팔아넘긴 것도 모자라, 전쟁을 걸어 청조를 굴복시켰다. 온갖 트집을 잡아 또 전쟁을 시작했다. 백인들은 명분 없는 전쟁을 해 놓고선, 대청의 수도 북경을 약탈하고 방화했다.
청조는 서양 침략자에게 굴복하고 또 굴종했다. 서양에게 이권을 내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내주고, 심지어 영토까지 빼앗겼다.
서양인들은 하나같이 무례했다.
제복을 입은 외교관, 총을 든 군인, 돈을 긁어가는 상인, 십자가를 든 선교사.
하나같이 중국의 전통을 무시하고, 중국인을 야만인이라고 업신여겼다.
중국인의 가슴 속에 서양에 대한 증오가 싹 텄다.
지난 60년간 계속된 중국의 재앙은 모두 서양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양이를 죽이고, 양이에 빌붙은 놈들을 죽이고, 서양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라!”
의화단(義和團) 운동, 혹은 권비(拳匪)의 난이 폭발할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때는 1840년 아편전쟁으로부터 꼭 한 갑자가 지난, 1900년 경자년이었다.
소년은 중국의 옛 이야기에 열광했다.
소년은 빈농의 아들이었다. 이름도 장씨네 셋째 아들이라고 해서 그저 장삼(張三)이라고 불리었다.
장삼은 시장에 나가서 경극을 보고, 인형극을 보고,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유비 삼형제가 도원결의를 맺고 천하를 누비는 삼국지연의,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함께 서역으로 떠나는 서유기, 양산박의 108 도적이 부패한 송 조정에 맞서는 수호지, 신선들이 천지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봉신연의, 그리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영웅의 이야기.
장삼은 이야기에 열광했고, 언젠가 자신도 이야기 속의 영웅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난 언젠가 유현덕처럼 되고 말 거야! 관우와 장비같이 믿음직한 형제들과 함께 천하 백성들을 구제하겠어.”
“아서라 아서. 시골 촌놈이 무슨 유비 타령이냐.”
“왜 안 돼? 유비도 시골 짚신 장수에서 시작해서 황제까지 됐는데!”
“이놈이 큰일 날 소리 하네. 그래도 유비는 황손이었지만, 장삼이 너는 가난뱅이 농민의 후손일 뿐이야.”
그 말처럼, 장삼은 산동 빈농의 후손이었다.
내세울 것 없는 혈통이었지만, 장삼은 부모님이 자랑스러웠다. 부모님은 늘 열심히 일하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다. 부모님은 지주에게 땅을 빌려 부쳐서 자식들을 겨우 먹이고, 자잘한 수공예품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았다.
힘겹게 살아갔지만, 그래도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양귀(洋鬼)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마을 근처에 처음 보는 야소교(耶蘇敎)라는 게 들어왔다. 피부는 허여멀건 하고, 덩치는 큰 털북숭이 서양인이 통역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자기들의 신을 믿으라고 떠들어 댔다.
산동 사람들은 공자님의 고향이 가깝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예수인지 야소(耶蘇)인지는 알 바 아니었다.
그래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생겼고, 이들은 점차 중국인이 아닌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갖고 살았다.
장씨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루 일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그들로서는, 누가 뭘 믿든 알 바 아니었다.
그런데 성실히 살아가는 장씨네에 환란이 닥쳤다.
“갑자기 나가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요?”
“이 땅의 주인이 바뀌었단 말이오.”
“아니, 그래도 소작은 계속 부치게 해 주셔야죠. 저희는 대대로 쭉 이 땅을 경작해 왔습니다. 주인 나리께서 그리 말씀 안 하시던가요?”
“아, 글쎄, 이 땅은 양인이 샀소. 교회 부지로 쓸 예정이니, 당신네 농사는 필요 없소. 말미를 줄 터이니, 열흘 내로 나가시오.”
아버지는 억울했다. 지주는 그저 땅의 소유자였을 뿐, 개척하고 경작해서 대대로 땅을 관리한 건 장 씨였다. 그런데 주인이 바뀌었다고 나가라니.
아버지는 교회에 가서 호소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개종하고 하느님 말씀을 들으면, 다른 곳에 당신이 경작할 땅을 알아봐 줄 수도 있소.”
“젠장, 그게 무슨 개소리야? 조상 대대로 경작한 땅을 뺏더니, 이제는 조상님을 부정하라고?”
아버지는 분김을 못 참고 양인을 들이받고, 교회에서 난동을 부렸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현청에서는 일방적으로 양인의 말만 들어줬다.
“조정의 보호를 받는 교회에서 난동을 부리고, 선교사를 때린 죄가 매우 무겁다.”
“아니, 왜 나리는 백성의 말은 듣지 않고, 양놈 말만 듣는 겁니까!”
“저런 건방진 놈을 봤나? 저놈이 반성할 때까지 매우 쳐라!”
아버지는 장형 수십 대를 맞고 반송장이 돼서 돌아왔다.
육체의 고통도 컸지만, 더 큰 상처는 마음의 병이었다.
땅을 빼앗긴 것도 억울했지만, 더 억울한 건 백성을 보호해야 할 조정이 양인들 편만 들어준다는 것이었다.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는 결국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잊지 말거라. 너희 아버지를 해친 원수는 양귀와 양귀에 빌붙은 놈들이다.”
장삼과 형들은 복수를 다짐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맹세했다.
무술년(1898), 광서 24년은 참혹했다.
황하의 범람은 늘 있는 일이었지만, 그해의 수해는 수많은 마을을 덮쳤다. 산동의 이재민이 수백 만에 달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분노의 대상을 찾았다.
“양귀들이 우리 땅을 더럽히는 바람에, 하늘과 땅이 노했다.”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가 서양을 신봉하니, 어찌 하늘이 노엽지 않겠는가!”
“양귀들은 철도라는 걸 놓으려고 땅을 파헤치고, 금은을 빼앗아 가려고 산을 파헤친다. 그러니 어찌 지신이 노하지 않겠는가!”
“양귀는 중국을 분할해서 모든 걸 빼앗아 가고, 중국인을 노예로 부려 먹으려 한다.”
“양귀를 몰아내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닥쳐오고 말 것이다!”
사람들 사이로 강렬한 배외의식이 밀려왔다.
큰 칼을 차고, 의화권이라는 무적의 권법을 쓴다는 청년들이 돌아다녔다.
“백 일 동안 권법을 익히고 주문을 외우면, 물과 불에도 다치지 않고 창과 총도 피할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이 생긴다.”
“사백 일 동안 연마하면 하늘도 날 수 있다.”
“우리는 의화권으로 양총을 제압할 수 있다.”
“저놈들이 야소를 내세운다면, 우리에게는 중국의 신령과 영웅이 있다. 옥황상제, 태상노군, 관운장, 손오공, 온갖 신령들이 우리의 몸에 빙의할 것이다.”
의화단은 그 수를 불려 나갔다. 서양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친 의화단은, 교회를 보이는 족족 습격했다.
“저 더러운 양귀의 본거지를 파괴하고, 모조리 죽여라!”
“죽여라!”
장삼 형제도 의화단에 가담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원수인 교회를 습격하는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양귀 놈, 때려죽여!”
“양귀 놈에게 빌붙어 중국의 혼을 팔아먹은 야소쟁이 놈들도 모조리 죽여라!”
의화단에게 자비란 없었다.
의화단은 미국인 목사를 때려죽이고, 교회에 있는 중국인 신자들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했다.
이들은 의화단의 눈에 모두 죽여야 할 적이었다.
잔혹한 비극이었다.
장삼은 부친의 원수를 갚은 게 통쾌했지만,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죽인 건 꺼림칙했다.
“양귀는 죽어 마땅하지만, 야소쟁이도 우리 동포가 아닌가? 중국을 배신했다지만, 그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갱생할 기회를 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셋째, 이 어리석은 녀석! 이미 양놈에게 혼을 팔아먹은 건 중국인이 아니야. 악의 무리는 단 한 놈도 살려 둬선 안 돼!”
장삼은 찜찜했지만, 잠자코 큰 형의 말을 들었다. 큰 형의 말은 늘 옳았다.
산동 각지에서 벌어지는 교회 습격 사건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청 조정은 이번에도 서양인의 편을 들어, 의화단을 진압할 군대를 파병했다.
무적의 의화권을 자랑하던 의화단이지만, 서양 무기로 무장한 청군을 당해 낼 순 없었다.
의화단은 뿔뿔이 흩어져 훗날을 기약했다.
장삼은 이때 큰 형을 잃고 말았다.
“청 조정은 서양의 앞잡이다!”
“서양도 모자라 왜국과 조선에까지 패한 청군이다. 외국군을 만나면 도망치기 바쁘지만, 백성들에게만 가혹하다!”
“황제는 서양 흉내를 내기 바쁘다. 백성들보다 양귀들을 더 아낀다.”
“간신 이홍장과 강유위가 황제의 눈을 가리고 있다.”
“우리는 북경으로 나아가 한 마리 용, 두 마리 호랑이, 삼백 마리 양을 모두 죽일 것이다!”
의화단은 변법을 추진하며 서구화 정책을 실현하는 광서제와 변법파를 증오했다. 서양의 기술을 들여온 양무파 관료들도 마찬가지로 증오했다.
황제와 조정은 서양의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 모자라, 서양 성직자들에게 관함의 지위까지 주었다.
조정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선교사 살해를 명분 삼아 열강이 조차지를 할양한 게 수차례니, 교회는 조심스럽게 대해야 했다. 하지만 의화단에 그런 사정은 알 바 아니었다.
의화단은 황제와 변법파가 서양의 앞잡이라고 확신했다.
‘반청멸양(反淸滅洋)’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산동과 하북 일대에서 산발적인 습격을 계속 벌였다.
기해년(1899), 광서 25년 가을에 변화가 왔다.
“황제가 감금되고, 서양 앞잡이들이 모두 죽거나 쫓겨났다!”
“태후와 황족들은 서양을 증오한다. 이들은 의화단의 대의를 존중한다!”
의화단이 그렇게 부르짖던 중국의 신령들이 가호를 내린 게 틀림없었다.
서태후는 취임 일성으로, 모든 변법을 폐기하고, 서양에게 더 이상 이권을 내주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이탈리아는 변법파가 차관의 대가로 동의한 조차지 할양을 요구하며 함대를 동원했지만, 서태후의 강경한 태도에 결국 꼬리를 내리고야 말았다.
“역시 조정이 단호하게 대처하니까, 양귀들도 꼼짝 못 하지 않는가!”
“조정이 바뀌었으니, 맞서 싸울 생각만 해선 안 된다. 양귀를 중국에서 몰아내는 게 급선무다.”
“청조를 도와 서양을 멸하자!”
의화단은 구호를 ‘반청멸양’에서 ‘부청멸양(扶淸滅洋)’으로 바꾸었다.
의화단을 서양의 침략에 맞서 중국의 전통을 지키려는 충신이라고 옹호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권력을 잡은 황족 중에도 있었다. 단군왕 재의는 노골적인 배외주의자, 의화단 옹호자였다.
조정 일각에서는 의화단을 동원해 서양을 몰아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경자년(1900), 광서 26년 1월.
“자신을 보호하고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군사를 훈련시키는 백성들은 토적이 아니다. 촌민이 단련을 조직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전통적인 수망상조(守望相助)의 뜻에 부답하니, 이런 활동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
조정은 사실상 의화단을 묵인했다. 열강의 항의에도 의화단 토벌은 중지되었다.
조정의 묵인을 받은 의화단은 더욱 대담해지고, 광기가 고조되었다.
의화단의 세력은 산동과 하북을 넘어, 북경의 지척인 직례에까지 확산됐다. 의화단의 수가 수십 만을 넘는다는 전망도 나왔다.
서태후가 새로 임명한 직례총독 겸 북양대신 영록은 의화단의 확산을 눈감아 주었다.
직례로 들어온 의화단은 ‘부청멸양’과 ‘살양멸교(殺洋滅敎)’의 구호를 내걸었다.
의화단은 철도와 전선이 서양이 중국을 물리적으로 노예화시키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와 서양 사상은 중국을 정신적으로 노예화시키려는 수작이라 생각했다.
“殺! 殺! 殺!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모조리 불태우고 박살 내라!”
의화단은 ‘죽여라(殺)’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말뿐만 아니라, 이들은 실천으로 옮겼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불태우며, 선교사와 교인을 살해했다. 철도와 전선 등 서양과 관련된 것이라면 보이는 대로 파괴하였다.
통제되지 않는 광신적인 집단은, 점차 잔혹함의 극을 향해 달려갔다.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등 모든 종파를 막론하고, 기독교라면 습격과 학살을 면치 못했다.
교회 백여 곳, 서양인 선교사 수백 명, 중국인 신자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단칼로 베어 죽이면 관대한 죽음이었다. 창칼로 베고 찔러 죽이다가, 나중에는 이조차도 힘들어지자 신자들을 교회에 몰아넣고 문을 닫아걸었다.
“양귀는 모조리 죽여라. 계집이라고, 아이라고 해서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
“야소를 믿는 자들은, 중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라도 양귀와 다를 바가 없다. 그 씨를 말려라!”
“어차피 모두 죽여야 하고, 모두 불태워야 한다면 한 번에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나?”
“불을 질러라! 불로 저 귀신들을 정화시켜라!”
의화단을 교회에 불을 질렀다. 교회에 감금된 신자들은 집단 화형에 처해졌다.
“오, 주여!”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나이다!”
“주님, 주님! 저희를 구원하소서!”
신자들은 순교를 각오하며 최후의 순간까지 신을 향해 기도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곳곳에서, 끔찍한 학살이 반복되었다.
“형제들, 북경으로 간다! 태후께서 의화단의 북경 진입을 승인하셨다!”
“와아아!”
“북경에는 양귀들의 본거지가 있다! 양귀들의 본거지를 파괴하면, 놈들은 간담이 서늘해져 다시는 중국을 넘보지 못할 것이다!”
“가자, 북경으로!”
“부청멸양!”
“살양멸교!”
의화단원들은 마지막 목표를 향해, 힘차게 북경을 향해 나아갔다.
중국의 옛이야기를 좋아하며, 유비처럼 백성을 구제하겠다고 꿈꾸었던 소년 장삼도 이제는 한낱 학살자에 지나지 않았다.
장삼도 의화단을 따라 서양인과 기독교도를 죽였다. 그들은 부친의 원수였고, 형의 원수였으며, 중국의 원수였다.
장삼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다. 멸망해 가는 중국을 되살리는 길은 의화단밖에 없었다.
청군은 믿을 수가 없었다.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만주에서 청군은 의화단과 비슷한 조선의 민병대에게 패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화단도 못 할 게 뭔가? 의화단이 청군을 대신해 서양을 무찌를 것이다.
북경으로 진격하던 중, 장삼은 깨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굴과 손은 피로 가득했다.
관운장의 영혼이 자신에게 빙의했다고 믿고 싶었지만, 거울 속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추한 살인자의 모습이었다.
장삼은 문득 두려워졌지만, 두려운 마음을 떨쳐 냈다.
손에 피를 묻히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중국을 구원할 것이다. 서양을 완전히 몰아낸다면, 중국을 구원할 수 있다!
장삼은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