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76
– 276화에 계속 –
276화 광기(狂氣)의 전염
의화단이 북중국을 참화로 몰아넣는 동안, 북경의 조정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하면-.
권력 투쟁에 의화단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서태후와 수구파가 변법파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후, 저항은 거의 없었으나 일각에서 보황운동(保皇運動)이 전개되었다.
애초에 서태후가 세운 광서제라지만, 황제가 된 이상 정통성과 명분은 광서제에게 있었다. 광서제와 돌이킬 수 없는 적대 관계가 된 서태후로서는 황제의 존재가 거슬렸다. 그녀는 황제를 교체할 생각을 했다.
서태후는 광서제의 6촌이자 수구파 단군왕(端郡王) 재의(載漪)와 자신의 조카딸 사이에서 태어난 보국공(輔國公) 부준(溥儁)을, 아직 후사가 없는 광서제의 양자로 삼아 보위에 올릴 계획을 세웠다.
1900년 초, 서태후는 광서제의 병세가 심각한데 후계가 없으니 염려가 된다며, 부준을 대아가(大阿哥, 황제의 장자로 황태자를 의미)로 삼는다는 조서를 발표했다.
“중병을 앓고 있는 황상이 곧 퇴위하고, 보국공 부준이 황제가 될 거라는군.”
“황상께서는 중병을 앓고 계신다는데, 본 사람이 있나?”
“없지. 애초에 중병이라는 것도 태후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게 아닌가. 실상은 유폐된 게야.”
“황상이 중병을 핑계로 시해당할지도 모르겠군.”
“아무리 황상이 부덕하다 한들,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건저(建儲, 태자 책봉) 파동은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서태후가 광서제를 폐위하는 것도 모자라, 곧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다.
서태후의 서슬 퍼런 위압에 억눌려 있던 개혁 성향 관료와 명사들도 반발했다.
지방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건 서태후도 마찬가지이므로, 태후는 각 성의 총독과 순무들에게 황제 폐위의 타당성을 은밀히 전달했다.
이에 양무파의 거두이자 양강총독 유곤일이 앞장서서 반대했다.
“군주와 신하의 구분은 이미 정해져 있고, 세인의 입은 막기 어렵습니다. 신하된 자로서 군주를 어찌 폐위하겠으며, 국내외의 반발은 어찌 막겠습니까? 황상의 보령(寶齡)이 서른밖에 안되셨는데, 건저도 가당치 않습니다. 건저의 저의를 열강은 필히 의심할 것입니다. 이들이 개입할 여지를 막아야 합니다.”
유곤일이 총대를 메자, 양광총독 이홍장, 호광총독으로 복귀한 장지동 모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변법에 우호적이었던 강남과 상해의 명사 수천 명도 연명으로 황제의 보호를 요구했다.
유곤일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황제의 중병, 황태자 책봉, 폐위와 시해설은 각국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열강이 근대화 개혁을 추구했던 광서제에게 우호적이고 동정적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북경에 재임 중인 12개국 공사는 연명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황제와 관련되어, 비밀리에 발생한 어떤 종류의 불행한 사건도 모두 간섭을 야기할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건강하신지, 알현을 허락해 주십시오. 외교관은 주재국 군주를 알현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소문대로 중병을 앓고 계신다면, 저희가 추천하는 의사가 진찰을 하도록 해 주십시오.”
열강의 압박에, 조정은 프랑스 의사가 황제의 병을 진찰하도록 허가했다.
이 의사의 입증으로, 외국에서는 비로소 광서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알려진 것처럼 중병을 앓고 있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태후가 황태자 책봉을 선포하자, 열강은 그 저의를 의심했다.
서태후는 건저를 기념하는 연회에 각국 공사를 초대했으나,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건저가 황제의 자의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각국의 입장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서태후를 몹시 노엽게 했다.
“저 양이들은 어찌 저리도 무례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양이들과 대화를 하려고 하였으나, 저들이 대청의 제위까지 간섭하려고 하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반드시 양이를 멸하고 말 것이다!”
1900년 5월.
의화단 운동이 직례까지 전개되는 상황에서, 만주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서태후와 만주 황족들을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
“길림군이 조선 민병대에게 패했다고? 이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조선의 군대도 아니고, 농민군 따위에게 패해서 조상의 땅을 빼앗기다니, 이렇게 수치스러운 일이!”
“조선은 수백 년간 대청의 번국이었습니다. 어찌 저들이 저토록 무례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당장 조선 공사의 목을 베시고, 북양군과 봉천군에 명해 만주를 수호하고 조선을 정벌하소서!”
당장이라도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쏟아졌지만, 서태후는 그 정도로 현실 감각이 없지 않았다.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에서 그나마 정예인 북양군을 빼내 만주로 보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서태후는 삼국 조약 당사자인 러시아를 통해 항의하여, 한국 황제가 만인대를 철수시키겠다는 확약을 받아 냈다.
머지않아 만인대는 복종 의사를 드러냈고, 주청 한국 공사 홍영식은 7월까지 청국령 만주에서 모두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대청이 위엄과 관용으로 오랑캐를 대하니, 오랑캐들이 스스로 복종하였도다.”
서태후는 이탈리아의 조차지 할양 거부에 이어 또 다시 외교적 승리를 거뒀다고 자화자찬했다.
만주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의화단 옹호자 단군왕의 눈길을 끌었고, 이를 중국에서 활용할 생각을 했다.
“태후 폐하, 보십시오. 저 소위 만인대란 놈들이 조선 조정과 무관하다고는 하나, 실상은 배후에서 조종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조선 왕이 한마디 하니까 바로 복종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괘씸하지 않소. 저 건방진 조선이 군을 동원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 같으니, 농민군을 내세워 대청의 변방을 위협해 보려 한 게 아닌가? 만주의 향용군이 이토록 허약하니, 참으로 열성조께 얼굴을 들을 수가 없소.”
겉으로는 외교적 승리를 자평했지만, 속으로는 분노와 수치심으로 이를 갈고 있는 서태후였다.
“그렇습니다만, 달리 볼 필요도 있습니다. 조선이 민병대를 내세워 만주를 침범했는데도, 조선의 동맹, 아니 상국인 아라사도 사실상 묵인했습니다. 겉으로는 조선 조정과 무관하다 이거지요.”
“그러니 더 괘씸하다는 거지.”
“대청도 이를 참고해, 민병대를 내세워 외국군과 일전을 벌여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믿을 수 없는 군대보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의화단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의화단을 이용해서 양이와 일전을 벌인다면, 일석이조가 될 겁니다. 피는 의화단과 양이들이 흘릴 테니까요.”
“그거참 절묘하구려!”
서태후는 단군왕의 건의를 받아들여 의화단을 청군의 민병대로 활용할 생각을 했다.
그나마 현실 감각 있는 대신들은 반대했지만, 권력을 쥔 수구파들은 계속 밀어붙였다.
의화단을 이용할 생각을 갖고 있든, 아니면 진심으로 의화단이 중국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든, 의화단을 활용해 서양과 일전을 벌이겠다는 망상을 품었다.
만주족 군기대신 강의(剛毅)는 서태후에게 의화단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이 권민들은 하늘의 보우가 있을 뿐 아니라, 칼과 총을 맞아도 다치지 않습니다. 대청이 저 양이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의지해야 할 이들은 바로 권민입니다.”
“칼과 총을 맞아도 다치지 않는다고? 그게 가능한가? 정말 그렇다면 어찌 양이가 두렵겠는가?”
“북경으로 초청해 저들을 시험해 보시지요.”
단군왕과 강의는 의화단의 수령들을 비밀리에 자금성으로 불러들여, 무예 시범을 보이게 했다.
의화단 수령 이내중(李來中)과 조복전(曺福田)은 마치 전설적인 무림 고수처럼 온갖 무예를 선보였다.
가장 절정은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몰라도, 정말로 ‘칼과 총을 막는’ 묘기였다.
그 현란한 묘기에, 서태후는 감탄하여 외쳤다.
“실로 저들은 하늘이 대청을 구원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다! 모두 저 권법을 익히도록 하라!”
서태후는 의화단 수령들을 치하하고, 상금을 후하게 내주었다. 동시에 자금성 내의 시종들이 의화권을 연마하도록 명령했다.
최고 권력자인 서태후의 공인이 떨어지자, 집단 인지 부조화가 시작되었다.
“대장! 부디 우리 집에도 와 주시어 권법을 전수해 주시오!”
“대체 어찌해야 중국의 신이 우리 몸에 강림하는 것이오?”
“신들에게 공양을 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주술을 외워 의화권을 익히십시오.”
왕공대신들은 앞다투어 의화단 수령을 초빙하여 호위를 부탁하고, 귀빈으로 대했다.
왕공대신에서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의화단이 강림한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공양을 했다.
광기가 전염되듯이 퍼져 나갔다.
정규군 병사들조차 총칼을 내버리고, 의화단에 가입해 권법을 익혔다. 북경에 주둔하는 정규군의 절반이 의화단에 가입하여 양자 간의 구분이 사라질 정도였다.
“권법과 주술로 양총을 제압할 수 있다.”
“백일 동안 권법을 익히고 주문을 외우면, 물과 불에도 다치지 않고 창과 총도 피할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이 생긴다.”
“사백 일 동안 연마하면 하늘도 날 수 있다.”
조정의 공인을 받은 의화단이 속속 북경으로 입성하고, 사람들은 미친 듯이 무예를 연마했다.
마치 북경이, 중국 천지가 무림 세계가 된 것 같았다.
“완전히 단체로 미쳤구만.”
“무림 고수라는 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 아니었나?”
“공자께서 괴력난신은 믿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나? 어쩌다가 중국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권비(拳匪)가 결국 이 나라를 말아먹고 말겠군.”
현실 감각이 있는 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작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의화단이 중국을 파멸로 몰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저 복서(Boxer) 무리가 북경에까지 들어왔소. 자기들끼리 그 웃기는 권법을 익히든 말든 우리가 알 바 아니지만, 직접적인 위해가 되고 있으니 문제요!”
“이미 복서들은 북중국 각지에서 만행을 벌이고 있소. 이를 진압해야 할 청 조정과 군대가 한패가 되었으니, 우리가 나서서 진압해야 하오!”
서양인들은 의화단을 권투 선수에 빗대 복서(Boxer)라고 부르며 그들의 비이성적인 행태를 비웃었지만, 이제 의화단이 실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일본, 한국 등 북경에 주재하는 12개국 공사는 공동으로 의화단 진압을 요청하고, 경고를 첨부했다.
“청 조정이 1개월 내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의화단 진압에 나서지 않는다면, 열국이 공동으로 군대를 파견해 진압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강경론이 지배하고 있는 청 조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현실론자들이 남아 있는 총리아문이 중재를 해 보려고 했지만, 열강과 청 조정의 인식 차이가 너무 컸다.
의화단이 북경까지 진입해, 이제는 외교관들의 안위까지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서양인과 각국 외교관들은 성벽이 있는 공사관 구역 안에서 자국 호위병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상황이 이래서야 안심할 수 없었다.
각국 외교관은 공동으로 공사관 구역을 방비하기 위해, 천진항에 있는 군함에서 호위병들을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총리아문은 마지못해 호위병 증원에 동의하고 각국 공사관에 30명, 총원 360명으로 제한했다.
“북경의 공사관에서 호위 명령이 들어왔다! 제군들, 즉시 하선하라!”
“각국 부대는 연합하여 편성하라!”
천진항에 있는 군함들에서 해병대와 수병이 차출되었다.
마침 천진에 정박하고 있는 군함은 7개국 소속으로, 이들은 공동으로 부대를 편성했다.
공동 호위 부대는 러시아 75명, 영국 75명, 프랑스 75명, 미국 50명, 이탈리아 40명, 일본 25명, 한국 20명 등 총 360명으로 구성되었다.
6월 3일, 공동 호위 부대는 북경과 천진을 잇는 경진(京津)철도를 이용해, 신속히 7개국의 깃발을 들고 북경 공사관 구역으로 입성했다.
공사관 구역의 외교관과 거주민은 보무당당한 호위병의 행진에 안도의 한숨을 흘렸지만, 이들이 북경에 합법적으로 진입한 마지막 부대였다.
바로 그날, 새로운 위협이 시작되었다.
조정의 승인을 받은 의화단의 광기를 더욱 촉발시켰다.
“양이가 북경에 못 들어오게 하려면, 이 철도를 절단해야 한다!”
“모두 박살 내고, 불태워라!”
권민들이 경진선 철도를 파괴함으로써, 이제 상황은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북경과 천진을 신속히 잇는 길이 사라졌다. 북경의 공사관 구역은 사실상 고립 상태에 빠졌다.
청 조정은 이제 완전히 수구 반동파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나마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던 경친왕 혁광을 대신해 강경파 단군왕 재의가 총리아문의 수장이 되었다. 외교를 해야 할 총리아문이 강경파 배외주의자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제 외교 사절들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단군왕은 의화단을 선동해 서양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고 있소. 이런 자가 총리대신이라니?”
“틀림없소. 저들은 북경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을 살해할 목적이오.”
“선전 포고만 안 했다 뿐이지, 사실상 전시 상태나 다름없소.”
“즉각 천진에 전보를 쳐서, 제한 없이 모든 병력을 북경으로 투입시켜야 합니다.”
6월 10일, 12개국 공사는 천진에 있는 군함에서 전 병력을 동원하기로 합의했다.
선전 포고는 없었지만, 무력 충돌이 예고되는 사실상의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