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89
– 289화에 계속 –
289화 만주 정벌
1900년 여름, 만주에서는 북경 전투의 결과와 무관하게 별도의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러시아에서는 ‘만주 작전’, 대한제국에서는 ‘북방 작전’으로 명명한 전쟁이었다.
러시아군은 육군대신 쿠로파트킨의 명령으로, 15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여섯 방향으로 진격했다.
‘아무르강의 유혈’ 사태로 청나라의 최전방 기지인 강동 64둔을 완전히 제압한 러시아군은, 8월 초부터 만주를 향해 본격적인 공세를 개시했다.
만주리에서 들어온 자바이칼 군대는 8월 3일 하이라얼(海拉尔)을 점령하고, 치치하얼(齊齊哈爾) 방향으로 진격했다. 북만주를 지키는 흑룡강군은 러시아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보다 중요한 공세는 남만주에서 이뤄졌다.
만주 최초의 개항장인 영구(營口, 잉커우)는 외국인 조계가 존재했다. 러시아는 의화단의 침입에 대비해 미셴코(Pavel Mishchenko) 장군이 지휘하는 카자크 부대를 주둔시켰다.
7월 말, 의화단 세력과 여순의 러시아 함대가 영구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양귀들을 모조리 죽여라!”
“전함, 포격 개시!”
서양인이 조계지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넘어 의화단이 공격을 개시하자, 러시아 함대는 의화단을 향해 맹렬한 포격을 개시했다.
“каза́ки, атака(카자크, 공격)!”
“Ура(만세)!”
해군의 포격에 이어 카자크 기병대가 돌격을 감행해 의화단을 쓸어 버렸다.
육해군의 합동 공격 앞에, 의화단은 손쉽게 격퇴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8월 5일, 러시아는 열강의 공동 조계지가 있는 개항장 영구를 점령하고, 러시아 국기를 게양했다.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관 겸 관동주 총독 알렉세예프(Yevgeni Alekseyev) 제독은 영구에 러시아 군정을 실시했고, 이는 다른 열강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러시아의 군정은 군사상 필요에 따른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 영구는 연합국의 민정관이 관리하는 도시이자 조약항이 되어야 한다.”
영·미·일 삼국의 영사는 공동으로 러시아의 군정 실시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이들은 러시아가 영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만주 점령을 시작하려는지 의심했다.
대한제국은 러시아와 별개로 독자적인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8월 1일, 이미 국경을 넘은 4여단과 5여단에 이어, 6여단과 7여단도 만주로 진격을 개시했다.
“1사단, 즉 4여단과 6여단은 안산에서 요양을 지나 봉천 방향으로, 2사단, 즉 5여단과 7여단은 서간도와 북간도에서 길림 방향으로 공세를 개시한다.”
이 4개 여단, 2개 사단 3만의 병력이 북방 작전을 위한 부대였다.
이른바 ‘북방군’으로 명명된 부대는 대한제국군 내에서 근위사단 다음 가는 부대로, 천진으로 파병된 근위여단에 이어 정예병을 동원한 것이었다.
“이 작전에는 짐이 직접 친정(親征)할 것이다. 북방군은 짐의 훈령을 받으라.”
육해군 원수(元帥)로서 군 통수권자인 이선은 직접 북방 작전에 참여했다.
가급적 군사 전략은 군부에 맡긴 이선이었지만, 이번 작전은 정치적·외교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직접 군을 지휘했다.
평양 행궁에 머무르던 이선은 근위사단 친위여단을 이끌고 경의선을 통해 의주에 당도했다.
새로 건설하고 있는 압록강 철교는 아직 완성이 되지 못한 상황이라, 이선은 배로 압록강을 건넜다.
의주의 맞은편, 안동(安東)은 대한제국 기준으로 명칭을 바꾸어 안서(安西)로 변경했다.
대한제국은 안서-봉천 철도를 부설해 러시아의 남만주 철도와 연결하려는 계획이 진행되었지만, 미완성 상태였다. 안서부터는 육로로 행군해야 했다.
이선과 친위여단은 봉황성을 경유해 연산관과 마천령을 넘어 대한제국의 최전방인 안산에 당도했다.
“폐하께서 이 머나먼 외지까지 직접 친정하시오니 신등은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한여름에 모두 고생이 많소. 요양에 대한 공세는 어찌 되고 있소?”
“적은 요양에 요새를 구축하고, 적극적인 교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공격했다가는 피해가 크겠군.”
“하오나 폐하께서 명하시면 1사단 장병들은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니오, 일단 때를 기다려 봅시다.”
청나라 입장에서 삼국 전쟁 이후 요양은 최전방이자 봉천으로 향하는 주요 도시였으므로, 요양 외곽에 요새를 구축하여 한국군의 공세에 대비했다.
한국군 1사단은 공격을 즉각 개시하는 대신, 요양을 포위하고 포병대를 배치했다.
그동안 한국군은 이선의 명령대로 요양을 우회해, 남만주 철도와 서양인 및 기독교도 보호에 힘썼다.
봉천에서 도피한 프랑스인 신부, 남만주 일대에서 선교를 하던 영국과 미국의 목사들이 도피해 한국군의 보호를 받았다.
특히 요양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교세가 강했는데, 요양에서 빠져나온 장로교 목사 웨스터워터(Westwater) 박사가 이선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황제 폐하, 한국군이 우리 교회와 교인을 보호해 주신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은혜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우리 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지요.”
한국군의 선무공작은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남만주의 기독교인 입장에서 이선과 한국군은 기독교 신앙의 보호자나 다름없었다.
“저는 일개 선교사에 지나지 않으나, 만주의 질서 회복에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사께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저는 요양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관료나 상인 등 유지들과 각별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들은 의화단의 미친 짓거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잘 설득하면 항복에 동의할 것입니다.”
“박사께서 무혈입성을 성사시켜 준다면, 아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예,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요양이 함락되면 어떠한 약탈이나 살인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명예로운 대한제국군에게는 약탈이나 살인과 같은 불명예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선은 웨스터워터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웨스터워터는 무기도 지니지 않은 채, 단기로 백기를 들고 성안으로 들어섰다. 웨스터워터와 친분이 있는 관리가 문을 열어 줬고, 관료와 상인들이 대책을 의논하고 있는 회의장으로 안내했다. 요양에서 오랫동안 의료 선교를 해 온 ‘닥터 웨스트워터’는 지역 유지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과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던 사람입니다. 내 출신은 스코틀랜드이지만, 절반은 만주 사람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연합군이 천진을 점령하고 북경을 향해 진격하고 있으며, 북경이 머지않아 함락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항은 무의미합니다. 만주에서는 러시아군이 남북으로 공세를 개시하고 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지요? 러시아군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회의장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러시아군이 흑룡강에서 벌였다는 학살의 소문은 요양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에 비해 도시 밖에 있는 한국군은 여러분과 같은 동양인이며, 만주인을 형제처럼 존중합니다. 황제가 친정하고 있는 한국군의 군기는 엄정하고, 어떤 종류의 범죄 행위도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인은 서양 연합군에 부역하여 중국을 침략하고 있지 않소! 조선은 대청의 적이오. 5년 전 전쟁에도 그들은 요양을 공격한 바 있소. 어찌 그들을 믿는단 말이오?”
“여러분의 벗인 나를 믿고, 한국 황제를 믿어 주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도시를 넘겨준다면, 모든 생명과 재산이 모두 무사하리라는 데 내 모든 명예를 걸겠습니다. 어떠한 약탈이나 살인도 없을 것입니다.”
갑론을박 끝에, 요양은 항복을 결정했다. 눈앞에 있는 한국군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러시아군에 대한 공포가 훨씬 컸다. 한국에 항복하는 것이 도시의 피해를 최소화하리라 생각했고, 그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박사, 참으로 고맙습니다. 짐은 요양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바입니다. 모든 이는 한국군에 의해 생명과 자산을 보호받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주님께서 이 땅에 평화를 되찾기 위해 폐하를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과찬입니다만, 기쁘게 받아들이지요.”
이선은 웨스터워터의 중재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는 절묘한 합의였다. 영국인 입장에서는 러시아군에게 요양을 넘겨주는 것보다, 한국군에게 넘겨주는 게 훨씬 나았다. 청국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8월 9일, 대한제국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요양을 점령했다.
5년 전, 요양 점령을 위해 격렬한 전투를 벌였던 것과 달리 무혈입성이었다.
이선이 내린 포고령대로 한국군은 엄정한 군기로 요양에 진주했고, 어떠한 범죄 행위도 없었다.
8월 15일에 북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만주에도 전해졌다.
하지만 북경 정복으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만주에서는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동안 러시아군은 흥안령(興安嶺)을 돌파하고 청군을 대파했다.
북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흑룡강장군 수산은 러시아군에게 휴전을 요청했지만, 러시아군 사령관 오를로프 소장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8월 28일, 러시아군은 흑룡강의 성도 치치하얼을 점령하고, 흑룡강성 전체가 러시아군의 손에 떨어졌다. 수산은 조정에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이로써 북만주 전역이 러시아군에 의해 정복되었다.
중국인을 상대로 잔혹성을 보이던 카자크는 의화단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살상하고, 무자비한 태도로 일관했다. 중국인은 러시아군의 진격 소식을 들으면 공포에 떨었다.
한편, 남만주에서는 러시아와 한국의 경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러시아는 한국에 길림과 봉천을 먼저 점령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선은 러시아의 말을 듣는 시늉을 하며 진격을 늦췄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를 배려해서가 아니었다.
“길림장군, 렌넨캄프 소장이 이끄는 러시아군이 머지않아 길림에 도달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교전은 피할 길이 없소. 카자크에게 자비란 없소. 유혈은 피해야 하지 않겠소? 귀국 황제 폐하께서도 우리 군의 보호를 받고 있소. 명예로운 항복을 약속하겠소.”
“으음…….”
길림장군 장순은 성도인 길림을 점령하지 말라고 교섭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러시아는 무조건 항복만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군은 광서제의 명의를 걸고 명예로운 항복을 제안했다.
8월 23일, 장순은 한국군 2사단에 길림의 문을 열어 주었다. 2사단을 이끄는 이범윤은 길림에 입성하였고, 성도 길림은 한국군에 의해 통제되었다.
만주의 모든 간선 도로와 동청철도에서 청군과 의화단이 일소되었다.
유일하게 남은 건 봉천뿐이었다. 성경장군 증기는 휘하 봉천군을 집결시키고, 청조의 성지인 봉천만은 내주지 않으려고 했다.
한국군이 길림에 먼저 입성한 것에 러시아군은 분개했다. 알렉세예프는 이선에게 거듭 만주의 제1 도시인 봉천만은 러시아군이 점령하겠다고 나섰다.
요동반도에서 북상한 수보치치 장군의 부대가 봉천을 향해 육박했다.
하지만 한국군은 러시아군을 기다리지 않고, 독자적인 공세를 개시했다.
봉천은 청조의 성지인 동시에, 한국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곳이었다. 러시아에게 무조건 양보할 이유가 없었다.
“공격! 돌파하라!”
“물러서지 마라! 계속 공격해!”
8월 25일, 1사단과 친위여단은 봉천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만주군 중에서는 가장 정예라 할 수 있는 봉천군의 저항도 격렬했다.
며칠 후, 봉천에 치치하얼 함락과 흑룡강군의 전멸 소식이 들어왔다. 북경에 이어 길림과 치치하얼까지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성경장군 증기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이 되었다.
얼마 뒤 한국군의 공세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사절이 봉천을 찾아왔다.
“북경에 계신 대청 황제 폐하께서 명하신바, 성경장군 증기가 보인 그간의 분투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 이상 저항하는 건 무의미하니, 증기는 한국군에게 항복하라. 명예로운 항복을 약속한다.”
“으음……. 당장 결정할 수는 없고, 며칠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좋소. 통첩 만료는 8월 31일로 하겠소. 아, 러시아군의 진격이 머지않았다는 걸 알아 두시오. 치치하얼의 함락과 수산 장군의 자결 소식을 들었지요? 러시아는 오직 무조건 항복만을 강요하고 있소. 한국군은 대청 황제 폐하의 보증을 받아 봉천을 평화롭게 인수하고, 조약이 체결되면 철수할 것이오.”
증기는 고민에 빠졌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청조의 성지인 봉천을 내준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북경이 함락되었고, 황제도 한국군에 의해 보호받는 상황이라면, 증기가 항복해도 수치스러울 일이 아니었다.
결국 광서제가 한국군에 의해 구출된 것이 결정된 요인이었다.
사실 광서제와 협상 책임자로 임명된 이홍장은 러시아와 한국에게 요청했다.
“부디 청조의 성지인 봉천만은 점령을 면하게 해주시오.”
하지만 러시아는 간단히 묵살했다. 한국은 고려해 보겠다고는 했으나, 한국에 항복하지 않으면 러시아군에 의해 더 큰 유혈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은근히 암시했다.
러시아군에 대한 공포는 봉천 주민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한국군에게 항복하는 게 낫다는 건, 이미 요양을 통해서 증명된 바 있었다.
“봉천은 귀국에 항복하겠소. 단,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소. 성경장군의 행정권을 인정하고, 청조의 권위를 훼손하는 어떤 일도 피해 주길 바라오. 관리와 군사, 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국군에 의한 어떠한 범죄 행위도 없어야 하오.”
“좋소. 모두 동의하오. 귀군이 아군에게 저항하지 않는다면, 모든 조건은 지켜질 것이오.”
8월 31일, 이선과 증기는 봉천 항복의 조건에 합의했다.
증기는 안정을 위해 며칠만 입성을 미뤄 달라고 부탁했고, 이선은 대한제국군을 이끌고 9월 2일에 입성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