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296
– 296화에 계속 –
296화 만주 분할 논의
“대한국 외무대신 겸 특명전권대사 김옥균은 대청국 북양대신 겸 직례총독 이중당께 인사드립니다.”
“반갑소. 5년 전 시모노세키가 떠오르는군. 그때는 귀공이 부사였지.”
5년 전에도 패전을 정산하기 위해 시모노세키에 가야 했지만, 북경에서 점령군과 협상하는 지금은 비할 바 없는 굴욕적 상황이었다.
11월에 이르러서야 이홍장은 비로소 연합국 모두에게 전권대표로 인정받아 협상에 나서게 되었다. 그에겐 ‘최대한 덜 내주고’ 조약을 마무리하는 게 사명이었다.
“그랬지요. 전권은 우리 황제 폐하셨지요. 우리 황제께서 중당께 안부를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데 늙은이의 안부가 뭐가 중요하겠소? 뭐, 아무튼 감사드린다고 전해 주시오.”
김옥균과 이홍장은 의례적인 말도 넘기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귀국은 만주에서 언제 철수할 거요?”
“동맹 조약 6조에 의거해서 출병했으니, 만주의 치안과 평화가 완전히 회복되면 철수하겠지요.”
“철수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다만 북경에서 연합국과의 협상이 완전히 종결된 후에 결정되겠지요. 즉, 중당께 달려 있습니다.”
“솔직히 물어봅시다. 귀국은 러시아의 하수인이요, 아니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거요? 그에 따라 내 의견도 달라지겠지.”
이홍장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김옥균이 웃음을 흘렸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중당도 러시아의 하수인이란 소문이 자자합니다. 밀약과 철도 협정을 맺는 조건으로 재무대신 비테에게 300만 루블을 뇌물로 받았다는 설이 있고, 이번에도 알렉세예프에게…….”
“말 같잖은 소리! 나는 오로지 국익을 위해 일할 뿐이오. 나를 매국노라고 음해하는 자들이 무슨 소문을 못 내겠소? 그자들이 아니면 영국이겠지.”
이홍장은 딱 잡아서 부정했다. 김옥균도 굳이 더 이상 지적하진 않았다.
소문의 진위만 놓고 보면, 이홍장은 유능하지만. 청렴함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 뇌물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에 국권을 팔진 않았다. 만약 그가 소문대로 러시아에 종속되었다면, 러시아가 강요한 밀약을 바로 승인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한국이 러시아의 하수인이라는 건 헛소문에 불과합니다. 단지 우리 황제 폐하와 러시아 황제 폐하가 특별한 친분을 갖고 있고, 국가 간에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마 그런 소문은 영국이나 일본이 낸 게 아니겠습니까?”
“뭐, 좋소. 귀국이 객관적으로 9국 중 가장 국력이 약하나, 황상을 역적들로부터 구출한 이상, 그 발언권이 작지 않겠지. 특히 귀국 황제께선 러시아 황제와도 잘 통하니 말이야. 그럼 귀국이 대청을 위해 무엇을 제공할 수 있겠소?”
“그야 귀국이 대한을 위해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습니다만, 우리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김옥균과 이홍장은 밀담을 한참 나누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김옥균과 이홍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귀국의 계획은 잘 알겠소. 고민해 보도록 하리다. 귀국 황제께 내 뜻을 전해 주시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살펴주십시오.”
물러나는 김옥균을 보면서 이홍장은 씁쓸한 기분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조선 따위는 대청의 속국에 불과했다. 황제라고 자처하는 완화군도 내 식객에 불과했지. 그런데 이제는 저들의 호의까지 부탁해야 하는 판이 됐으니, 어쩌다 나라 꼴이 이리되었는가?’
이홍장은 한숨을 푹푹 쉬다가, 현실로 되돌아왔다.
중화사상에 찌들어 있는 수구파들은 이홍장을 유약하다는 둥, 매국노라는 둥 비난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자였다.
추억 속에 사는 수구파들은 인정하길 거부하지만, 청은 결코 예전의 대청제국이 아니었다. 중국이 ‘천자의 덕과 위엄’으로 군림하던 중화질서도 해체됐다.
1870년대 새방·해방 논쟁에서 서역을 과감히 포기하자고 한 것도, 광대한 제국을 유지하는 비용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핵심지역을 지켜야 한다는 게 이홍장의 구상이었다.
중화질서의 마지막 일부분이었던 조선의 독립은 막아 보려고 했으나, 어차피 떨어져 나간 이상 인정해야 했다.
1900년 현재의 현실은 더욱 가혹했다. 이홍장은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택해야 했다.
‘변방’은 내주더라도 본토는 지켜야 했다. 열강이 섬과 바다를 원한다면 내주더라도, 본토는 지켜야 했다. 청조가 그동안 중요시했던 만주, 몽골, 티베트, 신강의 이권을 내주더라도 본토 18성이 분할되는 건 막아야 했다.
‘강역이 명나라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종묘사직을 이어 나가고, 중국을 지켜 내야 해.’
78세의 노인은 그게 자신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 미국, 일본, 한국과 군대는 파병하지 않았으나 공사관 구역에서 포위를 함께 겪은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12개국이 한자리에 모였다.
관례에 따라 북경에서 가장 오래 재임한 스페인 공사가 대표가 되어, 스페인 공사관이 회담 장소였다.
연합국 간의 이해관계로 인한 끊임없는 논쟁으로 지체되기는 하였으나, 1900년 12월 24일, 마침내 12개 조항으로 구성된 공동각서를 합의했다.
주요한 내용은 외교관 살해에 대한 청나라의 사죄 사절 파견, 공사관 보호를 위한 북경 주둔 허용, 배상금 지불, 전쟁 범죄자 처벌이었다.
협상 담당자인 이홍장과 경친왕은 조항 대부분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조건을 완화시켜 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가장 먼저 이뤄진 건 전범 처벌이었다. 전쟁을 도발한 수구파들을 제거해야겠다는 건, 광서제, 이홍장, 양무파 모두 의견이 일치했다.
“12개국 연합국은 핵심 전범 13명의 왕공대신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오. 장친왕 재훈, 단군왕 재의, 보국공 재란, 북양대신 겸 직례총독 영록, 군기대신 겸 호부상서 강의, 산서순무 육현, 산동순무 이병형, 감숙제독 동복상, 형부상서 조서교, 예부상서 계수, 도찰원어사 영년, 대학사 서동, 형부좌시랑 서승욱.”
전쟁을 선동한 만주 황족, 만주족과 한족 수구파 대신들이 처벌 대상이 되었다.
“장친왕 재훈은 사약을 내린다. 보국공 재란은 죽어 마땅하나, 특별히 인정을 베풀어 신강에 종신 유배형에 처한다. 영년, 조서교는 자결을 명한다. 육현, 계수, 서승욱은 참수한다. 이미 죽은 강의, 이병형, 서동은 관작을 추탈한다. 영록은 파면하여 다시 등용하지 않는다.”
가장 강경하게 서양인 공격을 주도했던 이들은 처형되었다. 특히 산서성의 기독교 학살자로 악명을 떨친 육현은 공개적으로 참수되어 효수되었다.
연합국에 맞서 군대를 지휘한 직례총독 영록은 비교적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
“영록은 공사관 구역 공격 과정에서 외국인의 전멸을 막기 위해 일부러 태업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소.”
사실 군권을 지닌 영록이 작정하고 공격했더라면 공사관 구역은 전멸을 면치 못하였을 터였다. 하지만 배외주의자인 영록조차도 대국을 고려해 공사관 구역의 전멸을 막았다.
영록은 서태후의 최측근으로 기해정변의 주범이니 광서제가 숙청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연합국이 살려 주게 하였다. 황제 위에 연합국이 있음을 분명히 한 셈이었다.
“단군왕 재의와 동복상은 체포하는 대로 처벌한다.”
연합군에 맞서 가장 용맹하게 싸웠던 감숙제독 동복상은, 감군이 케텔러 공사와 스기야마 서기관을 살해한 책임을 물려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동복상은 휘하 감군을 이끌고 탈출, 도주한 서태후와 단군왕을 서안까지 인도해 그곳에서 ‘망명 조정’을 형성했다.
서태후는 단군왕의 아들이자 광서제의 후계자로 지명했던 부준을 내세워 망명 조정을 구성했다.
“북경 조정은 양이의 괴뢰에 불과하다. 태후 폐하를 모신 우리가 정통 조정이다.”
“서안에서 조정을 참칭한 무리는 역적에 불과하다. 반드시 토벌할 것이다!”
북경 조정은 서안 망명 조정을 반역자로 규정하여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여전히 섬서와 감숙 등 내륙 일대에는 서태후와 배외주의자들의 인기가 높았다. 심지어 동복상은 서양에 맞선 전쟁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서안 조정은 섬서와 감숙을 장악하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전범 처벌을 요구했던 연합국도 서안 토벌은 ‘청국이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고 있었다. 연합국은 북경을 압박해 협상을 마칠 생각이었지, 서태후를 잡으러 내륙 깊숙이 진입하는 건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각 성의 총독과 순무들 대부분이 북경 조정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겨우 섬서와 감숙만으로 서안 조정이 버티는 건 한계가 있었다.
서태후와 단군왕은 생명 보호를 조건으로 협상에 나섰고, 북경 조정을 이끄는 경친왕과 이홍장은 광서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안 망명자들과 협상했다.
“지금 내전을 벌일 때가 아닙니다. 일단 저들이 스스로 굴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때 자신이 다스리던 양광 분리를 고려했던 이홍장은, 이제는 태도를 바꿔 중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그 대신 변방에 대해서는 양보의 의사가 있었다. 이홍장은 중국과 만주의 운명을 놓고 담판을 시작했다.
연합국과 청의 협상은 해를 넘겨 1901년까지 지속되었다.
청이 협상을 거부해서가 아니라, 각국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하나라도 더 얻어 내기 위해 갈등을 벌이는 게 문제였다.
20세기가 새로 시작되었지만, 청나라에는 암울한 전망만 지속됐다.
러시아와 한국은 별도로 페테르부르크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만주 문제를 논의했다.
러시아 외무대신 람스도르프, 한국 특명전권대신 민영환, 주 러시아 청국 공사 양유가 대표로 협상에 참석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표는 훈령을 내리는 니콜라이 2세, 이선, 이홍장이었다.
러시아와 한국은 니콜라이 2세와 이선의 합의로 공동으로 청국에 제의할 조항을 협의했다.
러시아가 초기에 내민 안은 좀 더 강경했으나, 이선의 조언으로 요구를 낮추었다. 청 대표 양유도 조건의 완화를 위해 노력했다.
1901년 3월 14일, 12개 조항이 청국에 전달되었다.
1. 만주에 대한 청국의 주권을 인정하며, 향후 청국의 행정이 회복될 것이다.
2. 철도경비대로는 동청철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에, 러시아 정부는 일정 기간 군대를 만주에 주둔할 수 있다. 그 기한은 5년을 넘기지 않는다.
3. 러시아와 한국은 필요하다면 청 당국에게 질서유지의 원조를 제공할 수 있다.
4. 동청철도의 건설이 끝나고 완전히 운행이 실현될 때까지 청국은 만주에 군대를 주둔하지 않는다.
5. 청국 정부는 러시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만주 지역의 인사를 결정한다.
6. 러시아와 한국은 만주 지역에서 자원을 조사하고 개발할 권리를 가지며, 구체적인 협의는 별도의 계약을 맺는다.
7. 봉천성 동남부에 자치령을 설치하고, 한국이 이를 보호한다.
8. 청국 정부는 만주, 몽골, 신강 지방에서 러시아 정부의 동의 없이 외국인에게 이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9. 청국은 전쟁에 대해 배상금을 지불한다.
10. 동청철도가 입은 손해에 대한 보상금을 지불한다. 그 보상은 회사에 새로운 이권을 부여함으로써 처리해도 좋다.
11. 봉천에서 산해관으로 이어지는 철도 부설권을 러시아에 양여한다.
12. 압록강에서 봉천으로 이어지는 철도 부설권을 한국에 양여한다.
한국이 요구한 건 6조, 7조, 12조였다.
이선은 지나친 팽창으로 열강, 특히 영국과 미국이 일본과 결합하여 조약을 방해하는 일을 막으려고 노력했다.
‘기껏 영미일의 단결이 무너졌는데, 과도한 요구로 합치게 만들면 안 된다.’
이선이 요구하는 건 첫째, 이른바 ‘서간도’를 확보해 요동과 북간도의 신영토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미 이 지역은 상당수가 만인대에 의해 ‘해방’되었고, 이후에도 대한제국이 은근슬쩍 점유하고 있었다.
둘째, 이선이 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봉천 인근의 영토였다. 즉 봉천 동쪽의 무순(撫順, 푸순)과 본계(本溪, 번시)였다.
“무순과 본계를 얻기 위해서라면, 다른 건 포기해도 상관없다. 반드시 이 지역을 확보해야 한다.”
무순의 질 좋은 석탄 탄광은 장차 한국의 산업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한반도에는 무연탄이 많지만 산업용 유연탄이 부족했다. 함경도와 북간도 일대에 유연탄광이 있기는 했지만, 향후 산업화에 필요한 수요를 생각하면 부족했다. 무순은 중국 동북 지역의 최대 탄광이었다.
본계는 안산과 무순의 뒤를 잇는 철과 석탄 생산지였다. 이 역시 한국의 산업화를 위해 필요했다.
시모노세키 조약 당시에는 무순과 본계가 안산과 달리 봉천에서 너무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할양을 논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봉천을 점령한 지금이야말로 요구할 수 있었다.
연합국이 협상 조항에서 ‘청국의 주권과 영토의 보전’을 합의했기 때문에, 한국은 할양이나 조차지가 아닌 ‘자치령’을 내세웠다.
“이 지역은 고구려의 고토이며, 한인이 다수 거주합니다. 할양이나 조차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청국 주권하의 자치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대한제국이 ‘보호’, 실질적으로 지배할 ‘자치령’의 영토는 서로는 무순에서 동으로는 북간도에 인접한, 약 7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이였다.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조선이 확보한 영토보다 넓었다.
청국은 역시나 ‘청조의 성지’ 봉천에 밀접한 무순과 본계를 내주길 꺼려했다. 러시아는 동청철도와 남만주철도가 지나가는 지역은 한국에 양보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무순과 본계, 서간도는 철도 지역을 비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수락했다.
“이 정도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다. 다만 철군 기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협상안을 받은 양유는 반대했으나, 보고를 받은 이홍장은 수락 의사를 보였다. 이홍장은 경친왕의 지지도 받아냈다.
다만 구체적인 철군 기간을 논의하기 위해 북경에서 추가 협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1895년에 이은 2차 북진, 이선이 구상하는 만주 분할이 구체화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