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
– 3화에 계속 –
3화 생존(生存)
그래도 이선의 삶을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을 더 필요로 했다.
이선은 멍하니 앉아, 왕자로서의 지난 12년의 기억과 현대인의 지식들을 조합해 가며 자신의 운명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실제 역사에서 완화군이 언제 죽었더라?’
아무리 자신이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지만, 이 존재감 없는 왕자의 몰년까지 기억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소년기에 요절한 건 분명해.’
자세한 사인(死因)과 시기는 모르겠지만, 이후 역사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고려하면, 임오군란 이전에 죽은 건 분명하다고 판단되었다.
‘아, 묘비를 봤었지! 그 묘비에…….’
이선은 서삼릉 완화군 묘의 묘비를 본 기억을 떠올렸다. 현대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선은 묘비 뒷면에 적힌 내용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다. 꼼꼼히 읽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정보는 있었다.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오(五) 경진(庚辰)……. 젠장, 뭔 숭정 기원이야.”
이선은 묘비에 적힌 연도를 따져보았다.
병자호란 이후 사용이 강제된 청나라의 연호를 극심히 거부해 왔던 조선은 암암리에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 기원을 써왔는데, 이미 망한 명나라가 부활하지 않는 이상 그 연도가 무한정 늘어났다. 결국, 그 후에는 갑자를 따져가며 연호를 붙였다. 조선 유학자들의 기묘한 고집이었다.
“숭정 원년(1627)에서 오갑자, 240년이 지난 후의 경진년이면…….”
이선은 연도를 따지다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올해가 무슨 해였더라? 내가 무진년생이고, 지금 열두 살이니까 기묘년이 맞나?”
이선은 탕약을 들고 온 몸종에게 연도를 물었다.
“기묘년이 맞사옵니다.”
몸종은 이상하다 싶었지만,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기묘, 경진, 신사, 임오…….”
이선은 갑자를 외다가 절망감이 들었다.
“당장 내년이잖아!”
갑자기 외치는 소리에 몸종은 깜짝 놀랐다.
“지금이 몇 월이지?”
“서, 섣달이옵니다.”
“12월……. 그럼 당장 다음 달이 경진년이잖아!”
이선은 더욱 절망에 빠져 외쳤다.
이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팔팔한데 갑자기 왜 죽는다는 거야? 어딜 봐도 죽을 팔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이선은 거울 속에 비친 완화군의, 아니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어리지만 준수한 얼굴. 과연 왕족으로서의 품격이 있었다.
10대 소년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던 영보당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완화군도 어머니의 빼어난 용모를 물려받게 되었다.
‘생각보다 잘생겼네. 완화군은 사진은 물론이고, 초상화도 남지 않아서 외모는 알 수 없었는데…….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닮았군. 의친왕처럼 외탁했구만.’
거울을 들여다보는 이선은 깨어난 이래 처음으로 만족스러웠다.
날짜를 묻다가 갑자기 절망에 빠지더니, 거울을 보며 만족해하는 완화군을 몸종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왕자의 상태가 이상해 보인다 싶어, 그녀는 즉시 영보당을 향해 달려갔다.
완화군의 어머니, 영보당 이씨와 완화궁의 가신들은 열병을 앓다가 깨어난 이선에 대해 걱정이 태산이었다.
“완화군이 어찌 저런다지요? 왜 지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군단 말이오?”
“열병을 앓다가 깨면, 때때로 기억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곧 회복될 터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의원은 호언장담을 했지만, 내심 대체 왜 왕자가 저러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만…….”
의원의 장담대로 완화군이 깨어났으니, 영보당은 의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앓다가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마음이 편치 못하실 것입니다. 군 대감께 휴식을 주시지요.”
청지기의 말에 영보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이 옳소. 완화군이 평안히 쉬게 둡시다.”
한때 임금의 총애를 받아 1남 1녀를 두었으나, 지금은 버림받은 신세였다.
그나마 옹주는 돌도 안 되어 조졸(早卒)했고, 유일한 희망이라면 오직 아들 완화군뿐이었다.
오직 완화군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영보당에게, 아들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완화군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영보당은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자신도 없었다.
‘우리 귀한 아드님, 절대 아프지 말아야 할 터인데. 어서 심신의 평안을 되찾아 이 어미를 기쁘게 해 주시오.’
영보당은 기도하듯 속으로 간절히 읊조렸다.
영보당의 기도가 닿았는지, 이선은 심신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다.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이다.
‘지금은 기묘년 12월. 양력으로 하면 1880년 1월이려나. 곧 열세 살이 되겠군. 역사대로라면 곧 죽을 운명이지만, 내가 이 몸에 들어온 이상…….’
이선은 다짐하듯이 외쳤다.
“절대 죽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남는다.”
이선은 예상되는 사인을 추정해 봤다. 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사인에 대한 기록이 없는 걸로 보아, 특별히 이상한 병증은 아니었단 뜻이다.
‘역시 이 시대에 위험한 병이라면, 천연두인가……. 종두법은 아직 들어오기 전이지?’
천연두, 즉 ‘마마’는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다. 걸렸다 하면 무서운 치사율을 자랑하는 병이었다. 마마에 걸리면 백성들은 체념한 채, 운명을 하늘에 맡길 뿐이었다.
가장 지엄한 왕실도 예외가 없었고, 왕족이 마마에 걸렸다가 회복되는 건 국가적인 경사였다.
‘수두 자국이 없는 걸 보니 천연두에 걸렸던 적은 없군. 역시 이걸 제일 주의해야겠다.’
역사대로라면 몇 년 이내로 종두법이 실시된다.
종두법뿐만이 아니다. 곧 서양 각국과 수교하고, 개화의 기운이 조선에 밀려온다.
‘어쩌면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었으나, 조선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최악의 결말로 이어지고 말았지.’
서삼릉 완화군 묘에서 들려왔던 목소리.
– 나도 내 나라를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나 대신 네가 내 꿈을 이뤄 줄 수 있겠어?
완화군의 영혼이 존재했던 것일까?
왕의 장자로 태어나 강한 의무감을 지녔으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죽었다. 죽은 후에도 영혼이 남아 있다면, 나라가 참담하게 망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아비와 동생은 망국의 군주가 되었고, 2천만 동포는 식민지의 노예가 되어야 했다.
완화군은, 그 한을 풀고 싶었던 것일까.
‘왜 하필 나냐고 묻는 건, 어리석은 질문이겠지?’
자신은 한국 근대 외교사, 그것도 딱 이 시대를 전공했던 학자 지망생이었다.
열강들의 내밀한 속내가 담겨 있는 수많은 외교 문서들을 보았고, 각국의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어쩌면 각국 수뇌부만이 알고 있는 내밀한 정보까지 알고 있지.’
외국 사정에 지극히 어두운 조선 지배층에게, 세계 각국의 정보를 꿰고 있는 왕자의 존재는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누가 내 말을 믿어 주냐는 것인데……. 아니, 그보다 내가 나설 수 있는 영역이 한계가 있군.’
조선 왕조 시기, 종친의 신분은 애매하다.
성종 이래, 종친은 존엄한 대상이나 정치에는 일절 불개입 대상이었다. 세조의 계유정난을 통해 집권할 수 있던 훈구파는 제2의 정변이 일어나는 걸 막고 싶어 했고, 종친의 정치 개입을 철저히 막았다.
성종의 친형인 월산 대군은 살얼음판을 걷듯 평생 조심히 살아야 했고,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선조 이래 사림이 집권하면서 종친의 정치 개입은 더더욱 금기시되었고, 왕족의 처지는 더욱 난망해졌다.
임해군처럼 왕의 친형이면서도 처신을 잘못하고 날뛰는 인간은 제일 먼저 숙청 대상이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정치 변동이 심해짐에 따라, 역모의 수도 빈번히 늘어났다.
수많은 왕족들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역모의 수괴로 추대되었고, 단지 차기 왕으로 지목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어야 했다.
안동 김씨가 지배하던 세도 정치기에는 왕족들은 더욱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
이러한 경향은 흥선 대원군이 집정을 하며 크게 바뀌었다.
세도 정치를 끝내고 개혁 정책을 추진하던 대원군은 전주 이씨를 친위 세력으로 삼길 원했고, 왕족의 벼슬길을 열어 놓아 대거 등용되었다.
혈연적으로 가까운 왕족들이 고위직을 역임했고, 단적으로 현재 조정을 대표하는 영의정만 해도, 흥선군의 형인 흥인군 이최응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왕의 장자이자 세자의 형인 완화군도 관직에 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어린 완화군도 10살이 되기 전에 직함을 받았는데, 종친부의 명예직이긴 해도 정1품을 초월하는 무계(無階)인 영종정경(領宗正卿)이었다.
‘근데 딱 거기까지지.’
완화군은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이해했다.
운현궁이 자신을 총애하고, 중궁전이 자신을 경계한다는 것을.
대원군과 중전 민씨의 정치 싸움에서, 자신이 장기말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럴 수야 있나? 대원군에게 끌려다니면 안 된다. 반대로 중궁전의 눈치만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고. 상황은 반드시 내가 주도해야만 한다. 자, 그럼 어찌해야 할까…….’
이선은 머릿속으로, 자신이 향후 어떻게 처신하고 움직여야 할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왕의 장자이자, 대원군의 맏손자. 백성들의 지지와 열망이 따르는 전 집정자 대원군의 총애를 받는다는 건 훌륭한 정치적 자산이다. 반대로 중궁전과 여흥 민씨의 미움을 받지만, 현재 집정자인 그들에 대한 여론이 썩 좋지 못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임금의 친정 이래 조정의 실책이 늘어나면서, 대원군을 그리워하는 여론은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완화군은 어릴 때부터 건강한 체질에 빼어난 용모로 왕족으로서의 품격이 있어, 세자가 태어나기 전까진 임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흥선 대원군은 완화군을 더욱 각별히 아끼고 총애하여, 두세 살 무렵부터 운현궁에 자주 데려와 직접 양육을 맡을 정도였다.
대원군이 궁궐을 들 때나 가마 행차 시에 늘 완화군을 데리고 다녔다.
수십 명의 종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사인교 가마를 타고 종로통을 지나갈 때면, 육전 거리의 백성들이 왕자가 탄 가마 주위에 몰려들어 외쳤다.
“왕자님! 우리 왕자님! 이러한 왕자가 계시는데, 나라가 어찌 망하리오!”
심지어 어떤 노인은 왕자의 기품 있는 모습을 보고는 길가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거리의 백성들이 모두 “이런 왕자가 계시니 어찌 나라가 흥하지 않으리오!” 해야 할 터인데, “어찌 나라가 망하리오!” 하는 것은 이 왕자가 아니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했다.
– 윤효정(尹孝定), ≪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祕史)≫
이처럼 대원군이 완화군을 아낀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고, 대원군을 지지하는 이들은 완화군도 아끼고 사랑했다.
“이런 왕자가 계시는데, 나라가 어찌 망하리오!”
이선은 어릴 적의 기억을 더듬어, 자신을 향해 외치던 백성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백성의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이선은, 왜 그토록 완화군의 영혼이 의무감에 충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백성들이 있고, 그들은 자신이 있다면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왕의 장자이자, 왕족으로서 의무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이 나라는 망하지 않으리라.”
이선은 다짐하듯이 말했다.
“절대 죽지 않는다. 반드시 살아남는다. 나 이선도, 이 나라 조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