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07
– 307화에 계속 –
307화 군사, 혁명의 시대
근대 국민국가는 학교와 병영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처럼, 국민교육과 국민개병은 개개인을 국가에 동화시키고 균질한 국민을 창출해 낸다.
근대 국민국가 소년기의 통과의례가 학교라면, 청년기의 통과의례는 군대였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 이래 꽤 오래된 의례였으나, 아시아에서는 근래에 이뤄진 의례였다.
조선에서는 1890년에 국민개병이 시작되어, 1870년대 생이 첫 징병대상자가 되었다. 이들은 난생처음 국민군을, ‘근대적 삶’을 강제로 체험해야 했다.
이들의 인생은 송두리째 변화하는 경험을 겪기도 하였으니, 근대 국민국가를 체험하며 변화하게 된 농민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빰빠라라라밤-!
오늘도 변함없이 울리는 기상 나팔소리에 군영이 분주해진다.
입대하여 배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병들은 화들짝 놀라지만, 경진년(1880)생 박대붕 상등졸(上等卒)은 여유롭다. 저 나팔소리를 듣는 것도 어느새 세는 해로 3년 차였다. 입대 당시만 해도 어리버리한 촌놈의 극치였던 박대붕도, 이제는 병영 생활이라면 도가 턴 말년 병사였다.
“니미럴, 다른 건 다 적응되어도 이 빌어먹을 추위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네.”
박대붕은 두툼한 군복을 껴입으면서 투덜거렸다. 한반도의 남쪽 끝,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인 그에게 압록강 너머 요동의 겨울 추위란 참으로 지랄 맞은 것이었다.
태어나서 18세가 될 때까지, 고향을 벗어나지 못했던 박대붕에게 요동은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진 땅이었다. 독립전쟁 승전 이후 새로 확장된 영토라는데, 까막눈이었던 그에게 그건 별나라 이야기였다.
“축하하오. 갑종 합격이오. 그대는 자랑스러운 국민군의 일원이 될 것이오.”
까막눈이긴 해도, 어릴 적부터 농사일로 단련된 튼튼한 신체의 박대붕은 현역 대상자인 ‘갑종(甲種)’을 받았다. 그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듬해 입대 영장이 날라 오기 전까지는.
갑작스럽게 3년이나 군대 생활을 한다는 건 재앙 같은 일이었지만, 돈도 학력도 없는 그에게 군대를 빠질 길은 없었다.
가방끈 긴 청년들은 병역을 대체할 방법이 있었다. 중등교육 이수자는 1년 단기장교로 병역을 대체할 수 있었고, 교사와 관료 양성이 시급한 상황이라 사범학교 졸업자와 관직 임용자는 면제였다. 심지어 징병 초기의 규정에는, 부자들은 거액의 방위세를 내고 면제 받을 권리를 획득했다.
물론 빈자에게도 면제받을 기회는 있었다. 외아들, 3형제 이상 병역의무를 수행한 가정의 아우, 본인이 징집되면 생계에 문제가 되는 가정은 심사를 받아 면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교육 시행 전이라 소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외아들도 아니고, 군대 다녀온 형을 둔 차남, 가난해도 굶어죽을 정도는 아닌 자작농 집안의 박대붕에겐 면제의 기회가 없었다.
“야, 걱정하덜 말어. 군대에서 밥 얼마나 잘 주는지 아냐. 군대에선 적어도 굶지는 않는다 안 하냐.”
이미 병역을 수행한 형의 호언장담을 듣고, 박대붕은 광주로 갔다. 그도 형처럼 광주 진위대에서 복무하거나, 멀리 가 봐야 전주 진위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박대붕은 개정된 병역제도의 대상자가 되었다. 예전에는 출신 지역 진위대를 벗어나지 않게 배치받았고, 진위대는 그 지역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제도 개정 이후에는 출신과 관계없이 배치를 받았다.
박대붕은 그중에서도 하필이면 최전방, 요동의 4여단 6연대에 배치되었다.
‘시벌, 대체 요동이 어디여.’
요동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목포에서 난생 처음 큰 기선을 타고 남포로 가서,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다시 기차를 타고 의주까지 갔다가, 압록강을 건너 4여단 6연대가 있는 봉황성까지 마차를 타고 갔다. 문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박대붕은 변화하는 환경에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었다.
“박대붕 이등졸, 6연대에 온 걸 환영한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이라고? 멀리서도 왔군. 이름은 한자로 어떻게 쓰나?”
“모른당께요.”
또래로 보이는 참위의 물음에 박대붕은 당황했다. 그는 한자는커녕 한글도 깨치지 못했다.
“설마 국문도 읽고 쓸 줄 모르나?”
“자, 잘 모른당께요…….”
참위는 한숨을 쉬었다. 박대붕은 주눅이 들었지만, 그 다음에 나온 참위의 말은 뜻밖이었다.
“부대에서는 문맹자를 위한 학습이 준비되어 있다. 박 이등졸은 당분간 특별교육을 받는다.”
박대붕이 입대한 1898년만 해도, 국민교육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문맹자가 허다했다. 그들을 위해 군대가 학교 역할도 수행했다.
박대붕 말고도 신병 중에 소학교도 못 나온 이들이 절반이나 되었다. 이들은 특별교육을 받았다. 오후에 훈련이 끝나면, 저녁 시간대에 교육을 받았다.
중등교육 수료자인 김 참위는 교사 역할을 했다. 신병들은 읽고 쓰는 법뿐만 아니라, 서울말을 쓰도록 말투를 교정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신병들에게 ‘표준어’가 강제되는 곳이 군대였다.
국어교육에 이어 간단한 산수, 대한제국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서도 배웠다.
“이 요동은 춥기만 한 땅이 아니다. 대한국의 최전방인 국방의 요지요, 각종 자원이 풍부한 보고다. 우리의 위대한 선조, 고구려와 발해의 혼이 숨 쉬는 고토이자, 독립전쟁에서 전우들이 피를 흘려 쟁취한 성지다! 여러분은 대한의 국민이자 대황제 폐하의 신자(臣子)로서, 자신의 의무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 민족이요, 전우들은 모두 한 형제이다.”
김 참위는 신병들에게 애국심을 불어넣었다. 대부분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박대붕은 생전 처음 받는 교육에 흥미를 느꼈다.
김 참위도 열심히 수업을 듣는 박대붕을 격려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김 참위는 그와 또래였지만, 양반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계급은 달라도 형제나 다름없는 ‘전우’로 대우하니 내심 감격할 따름이었다.
마침내 교육 이수가 끝났다. 김 참위는 박대붕을 우수 수료자로 추천했고, 덕분에 그는 중대장의 치하도 받을 수 있었다.
박대붕의 교육이 끝날 무렵, 김 참위의 1년 의무기간도 끝이 났다. 박대붕이 감사 인사를 하러 찾아가자, 김 참위는 반갑게 맞이했다.
“참위님 덕분에 까막눈 신세도 벗어나고, 대한의 국민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뭘, 나야 할 일을 했을 뿐일세. 마지막으로 숙제 검사 한번 해 볼까. 자네 이름 한자로 써 보게.”
박대붕은 한글은 완전히 깨치게 되었고, 한자로 이름 석 자는 쓸 줄은 알게 되었다. 애초에 한자 이름도 몰랐지만, 참위가 한자로 이름을 지어 줬다.
“朴大鵬. 이 이름의 의미를 알겠나?”
“클 대라는 건 알겠는데…….”
“대붕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일세. 하루에 구만 리를 날아간다는, 거대한 새지. 자네는 이 봉황성에서, 대붕으로 다시 태어난 거야.”
“오오…….”
“선조 대왕 시기에, 백대붕(白大鵬)이란 시인이 있었네. 당대에 알아주는 뛰어난 시인이었지만, 관노 출신이라 큰 빛은 보지 못했지. 결국 임진년에 상주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네. 시대의 희생자였지.”
김 참위는 쓴웃음을 짓다가, 박대붕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네. 백대붕도 우리 시대에 태어났으면 뛰어난 문인으로 추앙받았을 거야. 이제 더 이상 귀천이란 없네. 유식자와 무식자가 있을 뿐이지. 본인이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어. 박대붕 이등졸, 자네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복무 중에도, 전역한 후에도 공부에 힘쓴다면 기쁘게 생각하겠네.”
박대붕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김 참위의 말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참위님! 전역한 후에 바뀐 모습으로 참위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어디로 찾아뵈면 될까요?”
“하하, 고마운 말이군. 황성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데…….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가친의 허락을 받아야지. 내 고향은 경상북도 성주일세. 의성 김문, 김창숙(金昌淑)을 찾으면 사람들이 알 걸세. 혹시 기회가 되면 찾아오게나.”
“꼭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박대붕이 거수경례를 하자, 김창숙도 거수경례로 화답했다.
박대붕은 의외로 군대 생활에 잘 적응했다. 프로이센식 군제를 받아들인 대한제국군의 군사 훈련은 엄격했고, 정예부대로 꼽히는 6연대는 더욱 엄격했다. 박대붕은 엄격한 군사훈련도 곧잘 수행했다.
박대붕이 의외로 생각했던 건, 엄격한 조직인 군대가 의외로 사회보다 평등하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함께 고생했고, 한솥밥을 먹었다. 프로이센식의 엄격한 위계질서에서도, 장병들 간에는 상호존중이 이뤄졌다.
예전에는 양반들만이 지휘관을 독점했지만, 군제개혁 후에는 평민 출신으로 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지휘관이 된 장교가 많았다.
아직 전근대적 의식이 남아 있는 병사들은, 처음 만나면 묻는 게 있었다.
“고향이 어디야? 본관은 어디야?”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분고하가 밝혀졌지만, 박대붕이 속한 소대의 지휘관은 이런 관행을 매우 싫어했다.
“고향과 본관을 물으며 위화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우리 부대에서는 용납하지 않겠다. 이는 연대장님의 뜻이기도 하다.”
족보 있는 집안의 병사들은 투덜거렸지만, 대부분 병사들은 환영했다. 병사들은 족보가 있는 집안보다 없는 집안이 더 많았다.
소대장 채응언(蔡應彦) 참위만 해도 평안남도 성천의 빈농 출신이고, 연대장 역시 평안도 출신 빈농으로 고급 장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우리 연대장님이야말로 진짜 대단한 분이시지.”
“독립전쟁 평양 전투의 영웅 아니신가.”
“황제 폐하께서 친히 훈장을 하사하셨다지.”
6연대장은 바로 홍범도 부령이었다. 홍범도는 육군무관학교 1기로 근대식 군사교육을 받고, 평양 전투에서 공을 세워 전쟁영웅이 되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군제개혁이 계속되면서, 구식 군인들이 전역 조치되고 무관학교 출신들이 빠르게 승진했다. 홍범도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박 일등졸! 신병 받아라.”
“옙!”
1899년 헌법 반포 이후 병역법이 새로 개정되면서, 면제 조항이 대폭 줄어들었다. 방위세 명목의 면제 조항이 폐지되면서, 이제는 양반 출신들도 사병으로 오는 경우가 발생했다.
군대는 무조건 계급이 우선이니, 양반이 상놈 타령했다가는 하극상이었다. 군대는 강제로 평등을 체험하는 장이 되고, 군율은 평등 주입기가 되었다.
광무 4년, 1900년. 의화단의 광풍이 만주에까지 밀려오면서, 4여단 6연대에도 비상이 걸렸다.
“의화단인가 뭔가 하는 놈들 지랄이 만주에까지 계속된 모양인데.”
“동학교도들 만인대가 출동해서 싹 쓸어 버렸다더라.”
“아, 녹두장군 말이지? 대단한 양반이야.”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해 준 셈이지. 고맙지 뭐냐.”
얼마 후, 6연대에 출동 명령이 내려졌다. 6연대장 홍범도 부령은 북진을 선언했다.
“장병 여러분! 만청 오랑캐가 대한국을 포함한 9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만청과 대한은 전쟁 상태에 돌입한다. 우리는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북진을 개시한다! 동포를 돕고 고토를 수복하자!”
북진이 시작되면서, 박대붕은 생각지도 못하게 전쟁 체험을 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건 싱겁기 짝이 없었다. 6연대는 만인대에 교대하여 ‘해방구’를 관리했고, 교전도 발생하지 않았다.
8월 중순, 북경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후에야, 4여단은 황제의 친정으로 진격을 재개했다.
6연대는 봉천 방향으로 진격했다. 사소한 교전은 있었지만, 큰 저항은 받지 않고 봉천에 도달했다.
봉천 진격 과정에서 박대붕은 소소한 전공을 세웠다. 그가 이끄는 분대가 적 초소를 점령하고,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않은 적 소대를 통째로 포로로 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축하하네, 박 상등졸. 귀관의 활약은 우리 연대의 모범일세.”
“아닙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정말로 운이 좋았지만, 더 큰 행운이 박대붕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천 점령은 모든 군인에게 특별한 체험이었다.
고구려의 고토를 수복하고 청의 항복을 받아 내는 역사적 현장에 있다는 자체가 영광인데, 더욱이 황제의 친정이었던 것이다.
황제는 북진 과정에서 공훈을 세운 이들에게 친히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하였다. 박대붕은 자신도 그 목록에 포함되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내, 내가 황제 폐하를 뵙는다고!’
실로 가문의 영광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대붕과 훈장 수여 예정자들은 근위대에게 철저히 교육을 받았다. 황제를 알현할 때의 예법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박대붕은 김창숙 참위에게 배웠던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을 써먹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대망의 훈장수여식 당일.
훈장 수여 예정자들은 단상에 도열했다. 장교부터 계급 순으로 배정되어, 사병인 박대붕은 맨 끝이었다.
예복 차림인 장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근엄하고 멋있어 보였다. 박대붕은 새삼 장교가 부러웠다.
“황제 폐하 납시오!”
시종무관의 외침과 함께, 황제가 장성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사령부에 걸려있는 어진영(御眞影)으로 보았던 황제이지만, 황제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황제는 더욱 위대해보였다. 원수 예복 차림의 황제는 너무나 큰 인물 같았다.
“부령! 홍! 범! 도!”
“축하하네, 홍 부령. 이번에도 공을 세웠군. 귀관에게 태극삼등장을 수여하는 바일세.”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는 훈장 수여자들의 가슴에 직접 훈장을 달아 주었다. 차례대로 진행되면서, 어느새 마지막으로 박대붕의 차례가 왔다.
지엄한 황제가 직접 눈앞에 서니, 박대붕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는 정신줄을 꽉 붙잡고 황제에게 거수경례했다.
“상등졸! 박! 대! 붕!”
“축하하네, 박 상등졸. 귀관에게 팔괘팔등장을 수여하는 바일세.”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는 박대붕의 가슴에 팔괘팔등장을 달아 주었다. 훈장 중 가장 낮은 등급이었지만, 박대붕은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귀관은 고향이 어딘가?”
사전교육에서 없었던 질문이라, 박대붕은 당황했다. 모두의 시선이 박대붕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전라남도 해남입니다!”
“반도의 남쪽 끝에서 여기까지 왔군. 고생이 많았네.”
“며, 멸사봉공하여 부, 분골쇄신하겠습니다!”
박대붕은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용기가 나왔나 싶었지만, 큰 소리로 외쳤다. 황제는 놀란 듯하다가, 씩 웃었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나?”
“제게 글을 가르쳐주신 참위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훌륭한 장교에 훌륭한 병사로군. 좋아, 대붕이란 이름처럼 앞으로도 훨훨 날기를 바라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에게 친히 격려를 듣다니, 박대붕은 감격하다 못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짐은 그대들의 대원수(大元帥)요, 그대들은 짐의 적자(赤子)이다. 대한국은 일시동인(一視同仁)이니, 그대들은 모두 한 형제와 같다. 장병 여러분, 짐은 그대들이 자랑스럽다!”
황제의 연설에 개중에는 정말로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황제는 그들을 한 형제라고 불렀다.
전국에서 온 청년들이, 전우라는 이름으로 동고동락하고 함께 싸웠다.
이제 전역을 앞둔 박대붕이지만, 입대 전의 촌놈 박대붕은 더 이상 없었다.
박대붕은 자신이 자랑스러운 대한제국의 병사이자, 국민의 일원이라고 여겼다. 그는 전역 후에도, 나라를 위해 무언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