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14
315화 외전. 황제 폐하의 사생활 (1)
조선왕조의 27대 군주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이선은, 국가원수이자 ‘대한국민의 어버이’로서 늘 공사다망했다.
광무 5년(1901) 민의원 개원과 입헌정치 실시로 외형적 입헌군주제의 틀은 갖춰졌으나, 황제는 헌법이 규정한 국가원수로 통치자이자 통수권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선의 통치방식은 만기친람(萬機親覽)이라 할 만큼 다양한 사안에 관여했다. 내정과 외교, 재정과 군사와 같은 중대한 국무에서 문화와 예술에 이르는 소소한 사안까지 모두 보고받고 지시를 내렸다.
“오늘 국무회의는 이만 마치겠소. 각부 대신은 회의에서 논의된 바를 서류로 작성해 강녕전으로 보내시오.”
“예, 폐하!”
국무회의가 마쳤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황제의 집무실은 물론이요, 침전에도 각종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조선에서 제일 먼저 전기가 들어온 궁궐에는 밤에도 쉽게 불이 꺼지지 못했다.
“폐하, 축시, 아니 오전 1시가 지났사옵니다. 침수에 드실 시간이옵니다.”
“음,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짐은 더 봐야 할 문건이 있어서. 알아서 잘 터이니 궁내부와 시종원은 먼저 퇴청해도 좋네.”
“하오나 그럴 수는…….”
“알겠네, 그럼 경들을 위해 오늘은 이만 하도록 하지.”
“화, 황공하옵니다.”
이선은 쓴웃음을 지었다. 만기친람과 성실함은 군주의 훌륭한 덕목이지만, 지도자가 너무 부지런해도 아랫사람들은 피곤한 법이다.
황제가 잠들지 않고 일하는데, 아랫사람들이 감히 먼저 퇴청하여 잠들 수는 없었다.
‘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군. 나도 좀 쉬엄쉬엄하고 싶지만…….’
‘영리하고 근면한’ 상사가 부하들에게 얼마나 부담감을 주는지 알면서도, 이선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청나라를 무찔러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부왕을 몰아내고 권좌에 오르고, 제국을 선포해 황제가 되고, 북벌에 성공하면서 황제 이선의 권위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2천만 국민이 자의든, 타의든 황제에게 충성과 경의를 바쳤다.
이쯤 되면 권력 그 자체에 도취될 법한데, 이선은 그럴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타고난 성실함이라기보다는, 권좌에 오른 10대 때부터 늘 멸망의 위기의식을 갖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시작이 늦었기에, 20년간 그토록 노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열강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 한참 뒤떨어져 있다. 하루빨리 최대한 그 격차를 줄이려면 쉴 틈이 없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국권이 위태롭다. 내가 통치를 맡고 있는 이상 절대 이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이선이 갖고 있는 위기의식은, 그를 마음 편히 쉴 수 없게 만들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선의 일반적인 일상은 다음과 같았다.
새벽 늦게까지 업무를 보고, 오전 8시경에 일어난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서 최소 6시간은 자려고 노력했지만, 고질화된 불면증으로 인해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오늘도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군.”
일어나자마자 서양식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며 피로를 풀면서, 국무회의에 필요한 자료를 검토했다.
수염이 잘 나는 체질은 아니지만, 주 2회 전담 이발사를 불러 면도를 하고 머리를 다듬었다.
‘그나마 이때가 생각 없이 눈을 감고 있을 시간이지. 목덜미가 좀 서늘하긴 하지만.’
21세기와는 다른 외날 면도칼을 보면 서늘한 기분이 들지만, 충실하고 숙련된 이발사는 만족스럽게 면도를 했다. 조선의 선대 군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권위를 위해 수염을 기르는 동시대 다른 군주들과 달리 깔끔하게 면도를 하는 이선이었다.
동양인 자체가 비교적 체모의 양이 적은데, 이선은 태생적으로 수염이 잘 나는 체질이 아니었다. 길렀다간 오히려 염소수염이 될까 봐 면도를 해 왔는데, 나이가 들어 콧수염은 길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도하는 것도 슬슬 귀찮군. 30대 중반이니 수염을 길러 볼 나이인가. 콧수염은 길러 볼 만하겠군.’
반신욕과 면도가 끝나면 간단한 아침식사에 진한 커피를 마셨다. 식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10분 내외.
“황제 폐하 납시오!”
아침을 먹고 나면 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과거의 조회(朝會), 칙임관급(옛 정1품~종2품) 대신 및 협판들과 함께 오전 국무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나면 그때서야 점심을 먹었지만, 회의가 길어지면 간식과 커피로 해결하기 일쑤였다.
국무회의가 종료되면, 오후에는 집무실에 앉아 각종 보고문과 상소를 살피고 결제와 비답(批答)을 내렸다.
조선 군주의 의무인 전통적인 유학 경연(經筵)은 사라졌지만, 이선이 학문을 멀리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근대국가 건설에 필요한 정치학, 경제학, 법학 서적을 심도 있게 공부했다.
주임관급(옛 정3품~종6품) 신진 관료들과 함께 국내외 정세를 논의하고, 토론하는 시간도 정기적으로 있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러시아가 만주에서 지나치게 팽창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영국이 남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을 끝내면 필히 아시아로 개입하려 들 것입니다. 일본은 이에 부화뇌동하려 하겠지요.”
“그래서 영국과 일본의 눈치를 보려 우방인 러시아를 멀리하잔 말입니까? 러시아가 있었기에 북벌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전(御前)에서 토론을 한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느끼는 관료들도 있었지만, 황제의 눈에 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임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 갔다.
간혹 날카로운 정세 판단력과 지성을 보여 주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선의 관심을 끌었고, 발탁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이선이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건 저녁 시간이었다.
저녁식사는 가급적 황후와 자녀들과 함께했다. 만찬에는 궁중정찬이 성대하게 준비되었다.
오전에 짧은 문안인사를 제외하면, 황자에게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이때였다.
“황제 폐하, 성수무강하시옵소서!”
“하하, 고맙다. 우리 진이 어려운 말을 벌써 배웠구나.”
“대신들이 하는 말을 외웠사옵니다.”
“허허, 벌써 국정에 관심이 있단 말이더냐.”
어린 자신을 빼닮은 것 같은 황자 이진의 말에, 이선은 웃음을 터뜨렸다. 황후 아영이 미소를 지었다.
“황자가 총명하여 배우는 걸 좋아하옵니다.”
“황후가 잘 가르친 덕이겠지요. 황녀도 잘 자라고 있으니, 황실의 일은 황후를 믿고 있소.”
“황공하옵니다. 폐하께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계시온데, 신첩이 작은 일이나마 도와드릴 수 있다면…….”
“이해해 주니 고맙소. 하지만 국정으로 인해 지아비이자 아비로서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오.”
이선의 솔직한 소회에 아영이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 그런 황망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성상께서는 2천만 신민의 어버이시니, 사가(私家)의 필부와는 다르십니다. 신첩은 늘 지극한 황은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영의 말대로, 그녀의 남편은 ‘2천만 신민의 어버이’였다. 남편이 국가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결코 황제는 자신만의 지아비일 수가 없었다.
구중궁궐에 있는 전대의 왕비들과 달리, 근대적 부부상(像)을 지향하는 이선의 바람으로, 아영은 황후로서 대외적인 업무도 수행했다.
‘착한 사람이야.’
이선은 자신의 뜻을 이해해 주고 따라주는 아영이 고마웠다. 그녀는 전통적인 왕후이자 근대적인 황후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할아버지인 대원군이 결정한 혼사로 사랑해서 한 결혼은 아니었지만, 상호 존중과 존경 위에서 부부로서의 사랑도 싹텄다. 1남 1녀를 둔 화목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이선은 늘 아쉬운 점이 있었다.
‘너무 착해서 탈이지. 좀 더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말해 주면 좋을 터인데.’
아영은 근대적 교육을 받은 신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내훈(內訓)을 따르는 유교적 여성상에 충실했다.
아영의 가문인 광산 김문이 유학 명문가이기도 하거니와, 국구(國舅)인 그녀의 부친, 같은 가문의 친척이자 황실의 어른인 황태후 김씨 모두 그녀에게 강조했던 것이다.
“폐비 민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제국의 황후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결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되고, 성상께 순종해야 합니다. 내명부의 수장으로서 내조에 충실하시고, 결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잊지 마십시오.”
대원군이 외척의 발흥을 얼마나 혐오했는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폐비 민씨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비로 간택된 김씨는 늘 마음가짐을 조심했다.
그 처신에 만족한 대원군이 광산 김문에서 황후를 잇달아 간택하니, 광산 김문에서는 이를 경사로 받아들이면서도 더욱더 처신에 조심했던 것이다.
얼마 뒤 대원군이 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구와 황태후는 늘 그녀의 역할을 주지시켰다.
그 결과, 근대적 교육을 받은 신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아영은 남편이자 군주를 대함에 있어 전통적 관계를 벗어나려 들지 않았다. 이선의 뜻대로 황후의 대외활동이 늘어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영은 반드시 자신을 ‘신첩(臣妾)’이라 지칭함에서 할 수 있듯이, 스스로 군주의 아내이자 신하임을 분명히 했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황실에 들어와 황후 역할을 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겠지. 쳐다보는 시선도 많고. 충분히 이해가 된다마는…….’
이선은 아쉬우면서도,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다. 두 사람은 분명히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황제와 황후라는 역할에 묶여 있었다.
아영은 훌륭한 황후이자 좋은 아내였지만, 이선이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벗이 될 수는 없었다.
일중독이라 할 만큼 열심인 이선이지만, 가능한 주말은 휴식을 가졌다.
공적 생활과 사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군주의 일상이지만, 이선은 근대의 군주답게 취미생활도 즐기는 편이었다.
독서, 특히 서양의 신소설들을 읽고, 그림을 수집하고, 축음기로 서양 고전음악을 즐겨 청취했다.
침전의 편안한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과 함께 즐기는 독서는 삶의 기쁨을 주었다.
‘하,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예술가들이 살아 예술혼을 펼치는 시대에 살아서 다행이다. 마음만 같아선 직접 유럽으로 가서 이 시대를 만끽하고 싶지만, 이렇게 간접적이라도 체험하니.’
러시아는 ‘백은시대’라고 불리는 예술의 전성기를 맞이한 시대였고, 유럽도 ‘벨 에포크’의 예술이 꽃피고 있는 시대였다. 이선은 자신의 예술적 취향이 20세기 초와 잘 맞는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이선은 개인적이고 정적인 취미만 즐기는 건 아니었다. 특히 주말 저녁에는 손님들을 황궁으로 초청해 사교의 시간을 가졌다.
그 손님들이란 대개 재한 서양인이었다. 외교관, 고문관, 학자, 의사, 상인 등 대개 전문직에 속하는 서양인들이 사교의 대상이었다.
“황제 폐하, 마카오에 들리는 길에 최고급 포트와인을 사뒀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온 겁니다.”
“저는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온 스카치위스키를 준비했습니다.”
“미국에서 새 축음기가 나와서 황제 폐하께 바칩니다. 이번에 녹음된 음반은…….”
“폐하, 프랑스에서 개발된 영화에 대해 아시지요? 영사기와 함께 한국에 입국할 예정인데, 서울의 풍경을 찍길 원합니다.”
“좋소. 언제든 대환영이지요.”
이선은 재한 서양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그들은 외부에서 ‘신문물’을 들여오는 존재였다. 미래 역사를 아는 이선에게는 골동품과 같은 것들이었지만, 당대 최신 문물이었다.
공적인 목적도 있었다. 다른 동양의 군주들과 달리 스스럼없이 서양인들과 어울리고, 서양 문물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두루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것에 호의적인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황제 폐하, 배운지 얼마 안 되셨는데도 당구 실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아, 내가 배우는 게 좀 빠르거든.”
“크, 과연 동양의 표트르 대제!”
“하하, 벌써 취하셨나? 아부해도 안 봐줍니다.”
서양인들에게 이선은 당구를 처음 배운 거로 되어 있지만, 학창 시절 기억을 살리니 곧잘 치게 되었다. 이선이 큐대를 휘두를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자, 다음은 외무대신 차례.”
“하하, 감히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중에 가장 사교생활을 즐기고 온갖 잡기에 능한 김옥균을 필두로, 서양 경험이 많은 관료들도 함께 어울렸다.
연미복을 입고, 한 손에는 위스키 잔을 한 손에는 시가를 들고, 당구를 관람하는 이선은 영락없는 서양 부르주아 클럽의 신사처럼 보였다.
이선은 스스럼없이 서양인들과 잔을 부딪치고, 함께 담배를 피웠다.
“좋은 승부였소. 다들 한잔합시다. 건배!”
“하하,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가 외국인들과 사사로이 교류하는 걸 즐긴다’는 비판의 시각도 없잖아 있었지만, 이선 입장에선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조선은 전제군주국이었고, 군주는 존엄한 존재였다. 권력을 나눠 입헌정치를 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군주를 하늘처럼 여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면서도, 이선은 자신을 지나치게 우러러보는 국민의 시선이 못내 불편했다.
황제와 함께 어울리며 당구를 친다든가, 감히 맞담배를 피운다든가는 19세기에 태어난 조선인의 감성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선과 사적으로는 가장 친밀한 대신인 김옥균조차도, 황제에게 깍듯한 신하의 자세였다.
외국인이라고 황제를 상대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나마 친근하게 대할 수 있었다.
‘이것도 모두 한순간의 즐거움일 뿐, 용상 위의 군주란 참 고독하군.’
사람들에게서 환호와 숭배를 받으면서도, 이선은 문득 역설적인 공허함을 느꼈다. 사교행위도 시시하게 느껴졌다. 최고 권력자에게도 피할 수 없는 정신적 공허였다.
‘…… 무슨 쓸데없는 상념인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한데.’
물론 이선에게는 정신적 공허함이나 권태감을 느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제국이라는 나라와 2천만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20년을 쉴 새 없이 달려 왔지만, 여전히 마음을 풀고 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 외전 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