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26
– 7화에 계속 –
2부 7화 역사의 복원력
하지만 그런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들로서는, 황제가 일본의 위협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해 불신하고 적대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서세동점의 시대라지만, 서양이 동양을 업신여김이 너무 심합니다. 의화단 전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서양은 동양을 절대로 동등한 상대로 여기지 않습니다.”
의화단 전쟁과 북경 약탈은 문명개화파 지식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청나라의 몰락은 근대화를 거부하고 퇴보를 거듭해 화를 자초한 자업자득이었지만, 한때 동양 문명의 중심이었던 북경을 난도질하는 서양 열강을 보며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그들을 본받아 서구화를 추진하더라도, 그들의 눈에는 흉내 내기에 성공한 야만인일 뿐입니다!”
서양 체류의 경험이 있는 지식인일수록 더욱 양가적(兩價的)인 감정을 가졌다. 발전된 서양 문명에 찬탄과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서양의 인종차별과 멸시에 상처를 받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윤치호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급진적인 문명개화론자이자 친미파였지만, 하필 미국 남부 테네시와 조지아에서 유학을 한 탓에, 숱한 인종차별을 받으며 정신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서양에 대한 그의 감정은 지극히 양가적이었다.
한국인은 지난 20년간의 성취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만큼, 거침없이 서세동점을 밀어붙이는 서양에 반감을 가졌다.
이는 일본과 매우 유사했고, 아시아주의가 득세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점차 한국 민족주의를 넘어 아시아주의가 확산되고 있었다.
“허어, 이 나라에서 가장 급진적인 문명개화론자였던 경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이제 흥아론에 마음이 가는가?”
“서양에 맞설 필요는 없지만, 당면한 위기에 맞서, 한국, 일본, 청국 동양 삼국이 대등하게 연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깁니다.”
김옥균이 주장한 동양 삼국 연대론은, 곧 실제 역사의 개화파 지식인들이 외쳤던 바와 같았다. 김옥균의 삼화주의부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이르기까지, ‘대등한 동양 삼국의 연대’는 이 시대 지식인들에게 굉장한 마력이 있었다.
“같은 인종과 문화 간에 대등한 연대라. 그건 허상이야. 같은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에서조차 화합은 이뤄지지 않았네. 아니, 오히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이웃나라끼리는 결코 화합이 이뤄지지 않네. 경이 이념을 앞세워 현실 정치를 도외시하다니 의외로군.”
이선은 아시아주의에 대한 어떤 환상도 없었다.
확실히 그는 이 시대의 그 어떤 한국인보다 친서양주의자였고, 서양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풍부했다.
이선은 인종차별을 당하고 상처를 받은 경험이 없었다. 그건 그가 동양인이라고 해도 고귀한 왕족인 점도 있지만, 이 시대 서양인의 평등 의식에 대한 환상이 없는 만큼, 상처받을 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그래, 서양은 우리를 대등한 상대로 여기지 않지. 그럼 일본은 우리를 동등한 상대로 여기나?”
“물론 완전히 동등한 상대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본은 그들이 먼저 서구화에 들어섰다고,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하듯 주변국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요 근래에 들어서야 일각에서 높이 평가할 따름이지요. 가소로울 따름입니다.”
주일 공사를 지낸 김옥균은 일본에 대해 호의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연히 그들에게 신뢰를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체급 차이입니다. 분명 러시아는 대한의 우방입니다. 실로 대한의 독립과 개화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북벌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대한과 비교할 수 없는 강국이라, 손을 잡아봐야 대한은 영영 그 영향권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과는 보다 대등한 동맹이 가능합니다.”
“그게 환상이라니까. 대한의 무역과 경제에 있어 대일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잖나? 짐이 지난 10년간 다변화를 위해 노력했는데도, 여전히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네. 가뜩이나 경제적 의존도도 높은데, 안보까지 의존하자고?”
현실적으로, 한국 자본주의는 일본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국보다 30년 먼저 근대화에 나선 일본 자본주의는, 한국이 아무리 빠르게 그 격차를 줄이더라도 당장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1900년대 한국이 농업 일변도 경제에서 탈피해 경공업 육성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인접국인 일본이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일본 자본주의는 한국 자본주의를 경쟁자로 여기고 죽자 살자 덤벼들었을 터였다.
국제 자본주의 구조하에서 일본 자본주의가 영국 자본주의 하위 파트너인 것처럼, 한국 자본주의도 일본 자본주의 하위 파트너였다. 이선은 장기적으로 구조 개선을 하고자 했다.
‘앞으로 대한의 경제 자립화를 위해선 만주 시장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발전이 취약한 러시아가 파트너가 되는 게 마땅해. 그래서 비테와 논의하여 함께 만주 시장 공략에 나서자고 한 것이거늘.’
이선은 1914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사가 바뀌었으니 반드시 그해에 세계대전이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제국주의 열강 간의 충격은 필연적이고, 세계대전도 피할 수 없을 터.’
그때를 위해서, 대한제국은 차분히 국력을 축적시켜야 했다. 공업을 육성하고, 군비를 강화해야 했다.
‘그때까지 10년간의 평화가 필요해. 평화는 외교뿐만 아니라, 전쟁 억지력에도 달려 있다.’
이선은 외교와 국력 신장에 최선을 다해, 1900년대를 평화의 시대로 만들고 싶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러시아는 만주 관리가 한계에 부딪힐 터였다. 러시아의 빈자리를, 국력이 신장한 한국이 자연스럽게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때까지는 러시아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감수할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이선의 예상을 깨는 일이 발생했다.
“폐하, 다음으로 주 러시아 공사관으로부터의 보고를 아룁니다.”
김옥균은 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낸 보고문을 전달했다. 바로 극동 ‘신항로’ 정책에 대한 보고였다.
“뭐야, 이건!”
러시아의 신노선에 대해 통보를 받은 이선은 저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 역사를 바꿔 일본의 팽창을 저지하니, 이제는 러시아가 물러설 곳을 모르는구나.’
분명히 지금까지 러시아는 한국 최고의 우방이었다. 니콜라이 2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한국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대한제국군의 발전과 팽창은 러시아의 지원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답례로 이선이 니콜라이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선은 차르의 요청으로 정기적으로 서한을 보내 극동 정책을 조언하고 있었다.
비테와의 회담 이후, 이선은 차르에게 서한을 보냈다.
「…… 비테와 같은 현명한 신하가 있음은, 러시아 제국과 황제 폐하의 복입니다. 비테의 현명한 조언을 들으시면, 러시아 제국에 영광이 가득할 것입니다.」
니콜라이는 친우 이선조차, 자신보다 비테의 판단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아 내심 불편했다.
‘내 결정으로 한국에 그렇게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나보다 비테를 더 높이 평가한단 말이지.’
이선이 비테를 칭송한 건, 당연히 친우 니콜라이를 위해서였다.
‘니콜라이가 러시아 최고의 재정 전문가, 비테의 말을 따르면 최소한 멸망의 길을 걷지 않겠지. 비테 다음에는 스톨리핀이 농업 개혁을 완수하면, 어쩌면 러시아는 혁명을 피할 수도 있을 터.’
「…… 근간에 베조브라조프란 자가 극동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황제 폐하의 총신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속은 없고 말만 번드르르한 자입니다. 그와 같은 자를 중용하시면, 러시아에 해가 될 것입니다. 부디 그와 같은 모험주의자는 배제하십시오.」
이 역시, 역사를 아는 이선으로선 베조브라조프와 같은 간신을 멀리하라는 건 당연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니콜라이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 비테의 방문은 칭송하고, 베조브라조프는 비난한다? 비테와 이선이 말이라도 맞췄나? 아니, 비테와 이선이 이면합의를 했을지도 모르겠군.’
딱딱한 어조로 퉁명스럽게 말하는 비테와 달리, 베조브라조프는 입속의 혀처럼 살갑게 굴었다.
황제이자 주군을 대하는 태도로 누가 더 충성스러운지,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선은 분명히 내 생명의 은인이지. 하지만 나는 러시아의 군주고, 그는 한국의 군주다. 결국 국익이 충돌한다면, 서로의 입장은 갈라질 수밖에 없다.’
니콜라이는 자신의 판단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결과적으로, 이선의 조언은 역효과를 낳았다. 아무리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도, 결국 그는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지근거리에 있는 측근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니콜라이는 역사대로 베조브라조프를 중용하고 강경책을 실시하니, 참으로 기묘한 역사의 복원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러시아가 강경책을 밀어붙이고, 비테가 이대로 실각하면 곤란한데. 제길, 직접 만나서 설득하면 말이 통할지도 모르지만, 서한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이선은 니콜라이와 직접 만나서 대화하면, 그를 설득시킬 자신이 있었다. 두 사람의 우정도 우정이지만, 니콜라이는 귀가 얇고 우유부단해서, 늘 이선의 논리적인 화술에 넘어갔다.
실제 역사에서도, 1905년 카이저 빌헬름 2세와의 단독 회담에서 감언이설에 넘어가 즉석에서 독일과 군사동맹을 체결했다가, 그렇게 되면 프랑스와의 동맹이 무효화된다는 외무부의 격렬한 반대가 있은 후에야 겨우 취소할 정도였다.
하지만 러시아 지척에 있는 카이저와 달리, 이선은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있었다. 황제가 외교를 할 목적으로 오래 나라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선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앞의 김옥균은 아무 말 없이 시립해 있었다. 이선은 순간 괘씸함을 느꼈다.
“외무대신! 일본 공사관 보고를 마치면, 당연히 러시아 공사관 보고를 먼저 바쳤어야지! 어째서 사이온지의 사신을 먼저 바쳤나? 경은 공사(公私)의 구분도 모르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사신이라고는 하나 동맹을 논의하는 만큼 긴급을 요한다고 판단됐습니다. 일본에서 온 보고를 모두 마친 후에 러시아에 대해…….”
“뻔한 소리 하지 말라! 일본과의 동맹 필요성을 제기해서 짐의 반응을 떠보고, 그다음에 러시아의 강경책에 대해 보고한 거겠지!”
이선은 김옥균의 속내가 뻔히 보였다. 김옥균은 개화당의 이데올로그였지, 김홍집처럼 실무에 능한 관료나 대원군처럼 술수에 능한 책략가는 아니었다.
“감히 성심(聖心)을 엿보려 한 죄, 죽어 마땅하옵니다. 죽여 주소서!”
김옥균은 이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하오나 폐하, 정녕 러시아가 강경책을 고수하고, 만약 영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게 된다면, 대한의 길도 달라져야 하옵니다! 대한이 반석에 오를 수만 있다면, 신은 만 번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김옥균의 간청에도, 이선은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김옥균은 황제의 침묵에 긴장했다.
이선이 마침내 침묵을 깼다.
“짐이 진짜로 동맹을 맺고 싶은 나라가 어딘지 아나?”
“성심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사옵니다.”
“미합중국, 미국이야. 20세기는 미국의 세기가 되겠지. 미국에 의한 평화가 실현될 거라고.”
“그래서 근래 미국과의 관계를…….”
이선은 미국을 향해 열심히 구애했다. 이선의 대리인들은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치가들, 거대 자본, 상공업계의 거물 및 혁신적 기술가들과 접촉했다. 미국 자본의 한국 투자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고립주의 국가이지만, 정치에 대한 경제의 입김이 강한 만큼, 미국 자본가들이 한국과 손을 잡으면 발은 빼지 못하리란 계산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이선이 새롭게 고려하는 건, 만주에 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미 국무장관 헤이의 문호개방선언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중국에는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국 자본주의의 경쟁자 영국이 아직 발을 닿지 못한 만주는 흥미로운 시장이었다.
철저한 친일파란 이미지와 달리,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제국주의에 충실한 정치가였다. 일본은 그에게 있어 미국의 이익을 실현할 수단일 뿐이었다. 만주 시장은 미국에도 구미가 당길 만한 요소였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터였다. 만주에 대한 배타적 독점을 선포한 신노선 정책 발표 이후에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영국과 달리 미국은 이익만 얻으면 러시아와 대립할 이유가 없으니까. 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미국. 이렇게 가고 싶었는데, 결국 불가능한 줄타기였구나. 후, 결국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가…….’
이선은 점차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역사를 바꿈으로써 발생한 역사의 역설은, 역사의 복원력도 만들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영일동맹과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는 길이 정해진 건 아니다. 역사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외무대신.”
“예, 폐하.”
“정세 변화가 심상치 않으니, 일단 정보 수집이 중요하네. 각국 공사관과 통신원에게 내릴 명령을 준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