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28
– 9화에 계속 –
2부 9화 대(大)아시아주의
1903년 6월. 러시아의 만주 철수가 지연되고, 이른바 ‘극동 신항로’ 정책이 선포되자,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을 자극하였다.
“도대체 저 우랄산맥 너머에 있던 러시아와 만주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청나라면 모를까, 왜 러시아가 만주 지배권을 주장하는가!”
“한민족의 고토, 만주에서 러시아는 손을 떼라!”
러시아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황성과 평양에서는 민족주의 성향의 연사들이 공공연히 러시아의 만주 점령을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만주는 한민족의 고토요, 현재는 청나라의 영토이며, 미래에는 다시 대한의 품으로 와야 할 곳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만주와 어떤 역사적 연원이 있기에 점령을 강행하려고 하는가? 요동도와 연길도, 남만주 자치령은 대한이 만청을 무찌르고 얻은 영토이거늘, 왜 러시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러시아는 만주에서 물러나라!”
“조종(祖宗)이 압록-두만 선을 국경으로 삼았듯, 대한의 새로운 국경은 요하-송화 선이어야 한다!”
“동지들! 우리가 몸소 만주로 가서, 만주인들과 함께 러시아의 만주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합시다!”
강경 민족주의자들의 시위는, 출동한 순검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들은 경찰서로 끌려가면서도 여론을 선동했다.
“왜 순검들은 애국자들을 잡아들이는 거냐!”
“정부의 대 러시아 굴욕외교 반대한다!”
“이는 성총을 어지럽힌 총리대신 박정양의 책임이다! 박정양 내각은 물러나라!”
제국익문사로부터 여론에 대한 정기 보고를 받던 이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 넘네…….”
러시아를 몰아내고 요하-송화 국경선을 주장하는 강경 민족주의자들의 팽창 요구는, 지켜야할 선을 넘어도 한참 넘고 있었다.
“대한이 개화를 한 지 얼마나 됐는지, 군비를 정비하고 군사력을 키우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됐는지,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낼 수 있는 게 얼마나 됐다고 생각하나?”
이선은 보고 중인 김옥균에게 물었으나,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개화 이래 20년도 되지 않았네! 국가 흉내만 내던 유사국가 벗어나서 정상국가 된 지도 얼마 안 됐다고. 열강은커녕 이제 지역에서 발언권을 좀 내는 수준이야. 그것도 채 3년이 되지 않아! 근데 조금 힘이 세졌다고, 만주 전역을 요구해? 당장 러시아를 몰아내자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일본 비웃을 노릇이 아니군.”
“그러하옵니다. 현실정치란 게 무엇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의 책동일 뿐입니다.”
김옥균은 이선의 말에 공감을 보냈으나,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하오나, 만주 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갈리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됩니다.”
“10년, 10년일세. 앞으로 10년 정도만 기다리면, 우리에게 기회가 올 거야. 그동안 대한은 차분히 힘을 키우고 있으면 되네.”
만주를 차지하자는 여론의 확대는 예상한 바였으나, 10년은 이른 일이었다. 이런 팽창 욕구는 1910년대에 등장해야 했다.
역사가 뒤틀려졌기에 정확한 연도가 맞아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선은 1910년대에 청조를 향한 혁명과 세계대전을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열강의 동아시아 영향력은 떨어진다. 우리가 주도하는 신질서를 만들 수도 있어.’
그때까지 전쟁 없이 국력을 착실히 축적한 후, 정세의 변화에 따른 결정적인 순간에 나서야 했다.
“폐하의 심모원려를 어찌 받들지 않겠습니까? 당장 만주 정벌을 부르짖는 자들은 재야의 소수에 불과하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물론, 저들이 하는 소리야 찻잔 속의 태풍도 안 되지. 크게 개의치 않네.”
이선은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짐은 저들의 배후에 도쿄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거지.”
“신은 저들이 어리석기는 해도 일본의 조종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마는…….”
“일본이 조종할 필요까지야 있나? 적당히 자극만 해 줘도 되지. 근래 아시아주의가 대한에서 급속도로 퍼지는 이유가 있다고 보네. 뭐, 물론 직접적인 계기는 연합군의 북경 점령이겠지만.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 표어는 그럴싸하니까.”
김옥균의 조심스러운 반박에도, 이선은 차갑게 웃었다.
“아무튼 여론을 면밀히 주시해 보도록.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파악이 필요할 것이오.”
“삼가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김옥균은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났으나,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폐하께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총명함을 갖고 계시지만, 왜 유독 일본을 상대로만 이토록 경계하신단 말인가.’
이선은 극히 냉소적으로 말했지만, 당장 김옥균만 해도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표어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철저한 친서양주의자였던 김옥균도, 의화단 전쟁 이후 점차 아시아주의에 기울어지고 있었다.
서양 열강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각료들과 달리, 민간 여론에서는 아시아주의에 공명하는 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명을 받든 이상 조사는 할 필요가 있다. 정녕 배후에 일본이 있단 말인가? 그럴 수도 있지. 아시아주의의 본산은 일본이니까.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서양 열강이 동양에 굴욕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발생적인 요인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터.’
* * *
대저, 아시아주의란 무엇인가.
바로 이 해인 1903년, 서양에서 주목받는 일본의 사상가이자 미술사학자 오가쿠라 덴신(岡倉 天心)은 영국에서 한 권의 책을 출판한다.
「아시아는 하나다. …… 이 눈의 장벽으로도 저 ‘궁극’과 ‘보편’에 대한 드넓은 사랑의 확산을 단 한순간도 차단할 수 없다. 이 사랑이야말로 전 아시아 민족 공통의 상속재산이라고 할 사상인 것이다.」
– 오가쿠라 덴신, ≪동양의 이상(The Ideals of the East)≫
오가쿠라가 외친 ‘아시아는 하나’는 곧 대(大)아시아주의의 이상이었다.
예술가 오가쿠라의 아시아주의는 무력을 배경으로 진출한 서양 문명의 위협에 대응하여, 아시아의 문화적인 통일성을 강조한 성격이 강하다.
평화적, 이상주의적 아시아주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전개되는 아시아주의는 그렇게 고귀하지 않았다.
「아무르 강의 유혈(流血), 얼어붙고 한 맺혔네.
20세기의 동양에는 괴운(怪雲)이 하늘에 창궐하네.
카자크의 검과 창, 노여움으로 빛을 흩트렸네.
20세기의 동양에는 황파(荒波)가 바다에 떠들썩하네. ……」
1901년 이후 일본에서 유행하게 된 노래, ‘아무르 강의 유혈’이었다.
의화단 전쟁 당시 러시아군의 학살 사건을 다룬 이 노래는, 러시아로 대표되는 서양 열강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학살당한 만주인의 원한을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양 세력이 연대하여 갚아 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우리 흑룡회는, 흑룡강(아무르)에서 살해당한 동양 동포의 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명명했소이다. 일본, 한국, 만주, 몽골, 중국, 베트남, 시암, 필리핀, 모든 동양은 한 형제이니 단결하여 서양에 맞서 싸워야 하오!”
“우리의 당면한 목표는 동양에서 군림하려는 침략자, 러시아를 구축(驅逐)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하외다!”
일본의 새로운 우익단체, 대륙낭인 흑룡회(黑龍會)가 출범했다. 도야마 미쓰루(頭山 満),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 등 거물급 대륙낭인이 참여했다.
이들은 일본의 팽창을 열렬히 지지하는 일본 제국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아시아 해방을 부르짖는 아시아주의자였다.
만주와 시베리아 일대에서 폭력적인 반러시아 공작을 벌이면서도, 쑨원과 중국 혁명가들을 후원하고, 아기날도와 필리핀 독립전쟁을 지원하는 모순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이들이 꿈꾸는 아시아주의란, 일본을 맹주로 하여 아시아 연합이 서양 열강에 맞서는 구도였다.
흑룡회는 일본 정계의 배후에서 암약하며, 대 러시아 전쟁을 외치며 일본의 ‘각성’을 촉구했다.
정작 일본 정계의 반응은 어떤가 하면-.
“흑룡회가 대륙 공작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흥! 그래 봤자. 유신 이래 35년, 입만 열면 서양과 싸우자고 떠들어 대는 자들이 어디 한둘인 줄 아나? 서양이 얼마나 압도적으로 강한지, 저 어리석은 놈들은 알지도 못하고 정부만 욕하지.”
메이지 정부를 주도하는 원로, 이토 히로부미는 흑룡회를 비롯한 팽창론자에 대해 극히 냉소적이었다. 팽창론자들은 이토를 ‘서양 열강의 앞잡이’, ‘새가슴 늙은이’로 조롱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 정권을 탈취하려는 민당(民黨) 놈들의 헛짓거리에 지나지 않아. 저런 모험주의자들에게 황국의 미래를 맡길 순 없지. 뭐, 내각을 이끌고 있는 사이온지도 내 생각과 일치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의 아시아주의는 삿초 번벌에 반대하는 존왕양이-자유민권론자들로부터 출발했다.
메이지 정부를 주도하는 삿초 번벌, 특히 오쿠보-이토-사이온지로 이어지는 문민관료들은 철저한 친서양주의자였고, 아시아주의에 냉소했다.
권력투쟁에서 좌절한 자유민권론자들은 대개 변절하여 메이지 정부에 빌붙어 한자리를 얻거나, 좌경화되어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거나, 우경화되어 우익단체를 조직했다.
1891년 오쓰 사건의 여파로 현양사(玄洋社)를 비롯한 기존 우익단체들은 된서리를 맞고 해산되었으나, 1900년 의화단 전쟁 이후 부활했다. 1901년에 조직된 흑룡회는 가장 강경한 팽창론자들이었다.
흑룡회는 일본 군부 일각과 연계하고 있었고, 대륙 문제에 개입을 꺼리는 정부와 원로에 맞서 독자적인 공작을 획책했다.
이들은 아시아 곳곳에 협조자를 얻고자 했으니, 중요한 대상으로 여기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 * *
“동양에서 문명화된 국가는 오직 한국과 일본뿐이니, 두 나라가 힘을 합쳐 동양의 평화를 위해 노력함은 마땅한 의무요!”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 황인종을 위한 아시아! 온 세상을 지배하려는 백인종, 서양 제국주의를 몰아내자!”
근래 아시아주의가 한국 지식사회에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흑룡회를 비롯한 일본 대륙낭인들의 공작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화단 전쟁 이후, 아시아주의에 공감하는 여론이 부쩍 성장한 것이다.
“만청은 쇠락을 거듭하여, 어리석게도 의화단과 같은 폭도를 끌어들여 스스로 몰락을 자초했소. 그 결과 서양의 동양 분할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으니, 참으로 앞날이 걱정스럽소.”
“중국이 비록 지금은 몰락했다고는 하나, 한때 문명의 요람이었던 곳이오. 서양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고 저지른 만행은 동양에 대한 모욕이오.”
“그렇다고는 하나, 그 덕분에 대한이 북벌을 성공했던 거 아니오?”
“우리도 의화단에게 홍영식 공을 잃은 피해자임을 잊지 마시오. 대한도 연합군의 일원이었는데…….”
“서양의 우세는 시대적 대세요. 서양을 본받아 개화를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오늘날 대한의 국력이 신장할 수 있었겠소이까?”
물론, 지식인이라고 다 아시아주의에 공감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친서양주의가 압도했다.
20세기 초, 서양 문명은 너무 우월해 보여서 다른 대안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옳은 말이오. 허나, 서세동점을 더 이상 용인할 수는 없는 일이외다!”
“백인종은 황인종을 멸시하고 있소! 서양은 결코 동양을 동등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단 말이오!”
아시아주의자라고 해서, 무조건 아시아를 찬미하고 서양에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이들이 서양에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양가적이었다. 근대 문명의 우월함과 힘에 경도되면서도, 동양을 멸시하는 서양의 시선에 모욕감을 느꼈다.
1900년 북경 함락을 직접 눈으로 지켜본 이들은, 더욱 그러한 양가적 감정을 느꼈다.
“청국의 몰락은 자업자득이었습니다. 청국과 달리, 우리 대한은 문명개화의 시대적 흐름을 따랐으니, 참으로 황제 폐하의 성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해군육전대 부위, 안중근은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리다, 말을 멈추고 술잔을 들이켰다.
“그래,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아네. 하지만 군인 된 몸으로,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서도 안 되네. 우리는 대원수이신 황제 폐하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게 의무일세.”
북경 공사관 방위전의 전우로, 소속은 달라도 친우가 된 육군 참령 이동휘가 안중근을 달랬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북경의 만행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물론 의화단은 더 무지막지한 패거리였지요. 우리 공사를 살해하고, 서양인과 기독교도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했으니까.”
안중근 본인도 군인이자 가톨릭 신자로서, 의화단의 만행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식 군인도 아니고, 어리석은 폭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서양 열강은 정규군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저들이 황인종을 멸시해서, 동양을 업신여겨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의화단은 죽음으로 죗값을 치렀습니다. 열강의 죄는 누가 물어야 합니까?”
“음, 귀관은 서양에 체류해 본 적이 없지?”
이동휘의 물음에 안중근이 고개를 저었다.
“프랑스 신부님을 통해 재한 서양인 사회와 접촉한 적은 있어도, 가 본 적은 없지요. 가 보고 싶기는 합니다, 하하하.”
“알다시피 난 독일 사관학교에서 유학했네. 황제 폐하의 대사절단 일행으로 말이야.”
“아, 참으로 부럽습니다.”
“세계 제일가는 정예군을 보유하고, 학문이 발달한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건 실로 황은이자, 영광스러운 일이었네. 과연 서양은 우리보다 한 세기는 앞서 있어. 우리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하네.”
이동휘가 담배를 입에 물자, 안중근이 재빨리 불을 붙여 주었다.
“고맙네. 나는 군사 유학생이니까, 늘 제복을 입고 다녔으니 대놓고 인종차별은 당한 적은 별로 없지. 하지만 멸시하는 눈빛은 숱하게 받아 봤네. 우리 모두 알 거야.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더 크다는 걸 말이야.”
안중근은 공감했다. 그는 개화사상을 받아들인 군인 집안에서 자랐기에, 일찌감치 서양 합리주의를 받아들였다. 프랑스 신부를 통해 기독교도 받아들였다.
서양의 기독교적 인본주의와 근대적 합리주의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전쟁으로 산산조각처럼 깨지고야 말았다.
“우리는 군인으로서, 조국의 간성(干城)이 되어야 하네. 지금은 참고 힘을 기를 때야. 언젠가 저들의 오만한 큰 코를 꺾고, 세계 인류의 평등을 이룰 날이 오겠지.”
이동휘의 다짐에, 안중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