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35
– 16화에 계속 –
2부 16화 대한국군
광무 6년, 대한제국 육군대학(陸軍大學)이 창설되었다. 명백히 프로이센 전쟁대학(Preußische Kriegsakademie)을 모범으로 삼은 육군대학은, 30세 미만의 젊고 우수한 장교를 선발하여 고급 참모를 양성하는 과정이었다.
육군대학이 프로이센 전쟁대학을 모범으로 하는 만큼, 프로이센의 엘리트 장교가 군사고문관 겸 교관으로 초빙되었다. 그가 바로 팔켄하인이었다.
“장교 여러분, 나는 독일제국군의 에리히 폰 팔켄하인 소령이다. 앞으로 귀관들의 교육과 지도를 맡게 될 것이다.”
팔켄하인은 독일 군부 내에서 동아시아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1896년 청나라 호북성 자강군 무창(武昌) 강무학교의 교관으로 초빙되었다가, 급료 문제로 인해 사임했다. 이후 독일령 키아우초우(칭다오)에 주둔하던 중, 의화단 전쟁 발발로 원정군 사령부 참모로 임명되었다.
“오! 팔켄하인 중위님이 아니십니까? 이게 얼마만입니까? 10년 만인가요?”
“오, 박 중위! 아니, 10년 사이에 벌써 장군이 되었구려. 조선에서 가장 촉망받는 장교라더니 진급이 정말 빠르군. 축하하오.”
대한제국 주청군 사령관 박유굉과 독일 원정군 참모 팔켄하인은 청나라에서 재회했다.
팔켄하인은 박유굉의 전쟁대학 유학 시절 선배였다. 장교가 극도로 모자란 건군기의 조선에서 당대 최고 엘리트 교육을 받은 박유굉이 승진을 거듭해 30대의 나이로 장군이 되었지만, 팔켄하인은 진급이 늦은 게 아님에도 아직 소령이었다.
“선배님, 젊은 장교들을 프로이센식으로 양성할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독일로 유학 보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 귀국하게 되면 황제 폐하께 전쟁대학 창설을 건의할 생각입니다. 프로이센 전쟁대학의 수재이셨던 선배님을 교관으로 초빙할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음, 좋은 생각입니다. 나야 초빙해 준다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1880년대 말 힌덴부르크 군사고문단 이래, 조선이 독일인 군사고문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분명했다. 프로이센을 선호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일본 육군 못지않았다.
“에리히 폰 팔켄하인? 이 장교가 지금 청국에 있었나?”
“폐하, 팔켄하인 소령을 알고 계십니까?”
계획서를 상주한 박유굉은 황제의 반응에 놀랐다.
“아, 어디선가 보고서에서 읽은 것 같군. 우수한 장교라고. 아무튼, 경이 상주한 전쟁대학 창설에는 동의하오. 경에게 일임하도록 하지. 팔켄하인 소령을 군사고문관 겸 교관으로 초빙하도록.”
“황공하옵니다, 대원수 폐하!”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참모총장 팔켄하인. 베르됭 전투의 실패와 힌덴부르크와의 알력다툼에서 패배해 사임하긴 했지만,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평가받던 장군 아닌가. 힌덴부르크가 군사고문관으로 왔던 나라에 팔켄하인이라. 역사의 변화가 재미있군.’
힌덴부르크 고문단은 분명 건군기의 조선군 근대화에 기여하긴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독일 군사고문단의 시초로 의의가 있었지, 그 자신은 그다지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았었다.
프로이센 참모들은 일반적으로 군사고문관 파견을 유배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만, 야심만만한 팔켄하인은 오히려 자신의 견해를 신흥국에서 마음껏 뽐낼 기회라고 생각했다.
패전 직후의 청나라에 갈 정도로 모험심이 있는 팔켄하인이었다. 더욱이 프로이센을 모범으로 하는 나라의 군사고문관은 환영하는 바였다.
광무 6년 1월, 병과별로 선발한 5명의 장교들을 이끌고 팔켄하인 고문단이 한국에 입국했다.
2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한국군이지만, 당대 최강 프로이센 장교의 입장에선 부족한 점이 허다했다. 팔켄하인은 열의를 갖고 광무 군제개혁과 군사교육에 임했다.
광무 7년 여름.
“장교 여러분, 귀관들은 한국의 가장 촉망받는 장교로서, 검증된 육군 교리와 새로운 전쟁의 개념에 대해 숙지할 필요가 있다. 귀관은 지난 학기에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조미니의 전쟁술을 숙지하고, 구체적인 실례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동아시아 삼국전쟁에 대해 연구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쟁은 어찌 되겠는가?”
육군대학 1기로 선발된 30명의 위관급 장교들은 2년 과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대개 지방의 중하층 집안 출신인 이들은 새로운 시대에 열광했고, 애국심과 상무 정신이 강했다.
독일 유학파인 이동휘 참령이 직접 통역을 맡으며 수업을 청강했다. 박유굉도 종종 육군대학 강당에 들려 청강했다. 참모국 총장의 등장에 젊은 장교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날은 심지어 황제조차 친견하고 있었다. 장교들은 아연실색했지만, 황제는 개의치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뒷자리에 앉았다.
“지난 10년 사이에 동아시아에서 발발한 전쟁, 삼국전쟁과 의화단 전쟁은 모두 단기간에 종결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청군은 도저히 근대국가의 군대라고 할 수 없었다. 무기만 좋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군의 인적 자원이 형편없었고, 최고 지휘부는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한국과 일본이 잘 싸운 게 아니라, 청국이 자멸한 것이다.”
팔켄하인의 냉정한 분석에 젊은 장교들은 불끈했지만, 말없이 경청하는 뒷자리의 황제가 신경 쓰여 감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전쟁이 정치의 연장선이란 클라우제비츠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매우 훌륭하다. 한국 최고 지휘부는 전략적 목표와 정치적 목표를 명확히 인식하고, 전쟁을 통해 이를 달성했다.”
팔켄하인은 최고 지휘부, 즉 황제에게 찬사를 보냈다. 황제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한 젊은 장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래의 전쟁은 결코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장기전, 극단적인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 번의 전투로 결과를 뒤집을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기관총의 발달과 보급, 기술의 발달은 전쟁 양상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제력, 동원력으로 승부가 갈릴 것이다. 내각전쟁의 시대는 끝났다. 모든 국민의 전쟁, 인민전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최상위 지휘부에서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단기간의 전쟁, 내각전쟁(Kabinettskrieg)에서 국가의 총력을 동원한 인민전쟁(Volkskrieg)으로.
아직 ‘총력전’이란 단어는 탄생하지 않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섬뜩한 말이었다. 당대 프로이센 군사 사상에서도 주류가 아닌 의견이었지만, 팔켄하인은 냉정한 전망을 갖고 있었다.
“교관님,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기전을 치르기에는 주변국에 비하여 한국의 국력이 취약합니다. 군사력, 경제력, 인구에서 모두 비교가 안 됩니다. 소모전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근위보병 1연대 정위 이갑(李甲)이 용기를 내서 질문했다. 27세의 이갑은 동기 중에서 가장 유능한 장교로 평가받고 있었다.
“좋은 지적이다. 한국에 가장 좋은 건, 전쟁 그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한국에 비하면 훨씬 강하다. 약체인 청국조차도 인구가 압도적이다. 장기전은 필패다.”
“아니, 그러니 오히려 단기전의 승리를 노려야 하지 않습니까?”
이갑이 논쟁적으로 외치니, 장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하고 무표정하던 팔켄하인이 처음으로 씩 웃었다.
“단기전은 완벽한 계획의 실행을 전제로 하는데, 전쟁은 시작하는 순간부터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비책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은 적극적 공세가 아니라 방어다. 마침 한국에는 천연 요새라 할 만한 지형적 요인이 많다. 기관총과 대포, 참호와 방어선으로 적의 출혈을 극단적으로 늘려 적국의 전쟁 의지를 꺾어야 한다.”
“으음…….”
“하지만 적이 바보도 아니고, 요새화된 방어선을 향해 돌격만 반복하겠습니까?”
‘일본군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데……. 당장 여순 203고지만 해도……. 아니, 역사가 바뀌었으니 안 그러려나?’
실제 역사의 일본을 아는 이선으로선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물론 적은 전선의 고착화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해진 전선이 없이 국토 전체가 전선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니, 300년 전 일본의 침략을 물리친 좋은 선례가 있다. 해군력의 우위를 통한 제해권 확보, 이건 현시점에서 불가능하니 논외로 치자. 외교력을 발휘해 이웃 대국의 지원을 이끄는 데 성공했으니, 이는 중요한 정치적 요인이다. 보다 중요한 건, 각지의 인민이 봉기하여 적의 후방을 교란했으니, 전근대국가로선 예외적으로 인민전쟁의 초기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임진왜란과 의병 전쟁?”
팔켄하인은 한국의 전쟁사를 새로운 이론에 맞춰 분석했다.
“한반도의 지형적 요인은 이베리아 반도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나폴레옹에 대항한 이베리아 반도전쟁의 게릴라전과 유사하다. 지속되는 출혈에 천하의 나폴레옹도 스페인이 악성종양이 되어, 몰락에 기여하고 말았다. 한국과 같이 주변국에 비해 체급이 작은 나라는, 소수 정예의 군대가 아니라 인민전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적이 침략해 오면, 최후의 1인까지 싸운다는 각오로 적에게 출혈을 강요해 전쟁 의지를 꺾어야 한다.”
“그, 그렇다면 민간의 피해가 엄청날 터인데…….”
팔켄하인의 묵시록적 전망에 장교들은 경악의 감정을 느꼈지만, 프로이센인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각오도 없이 전쟁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때, 이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황제가 일어나 박수를 치니, 장교들은 일제히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
짝짝짝.
“헤어 마요르(Herr major), 좋은 강의였소. 강의가 끝날 시간이 됐는데, 끝났다면 짐이 한마디 거들어도 되겠소?”
“예, 폐하.”
이선은 장교들 앞에서 섰다. 장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부동자세를 했다.
“짐은 군사전문가도 아니고, 중요한 이야기는 교관이 다 했으니 간단히 말하겠네. 우리 군대의 정식 명칭이 뭐지?”
“대, 대한제국 육군입니다.”
“그래. 대한제국군이지. 하지만 방점은 ‘제(帝)’가 아니라 ‘국(國)’에 찍도록. 제군은 황제의 군인이지만, 보다 중요한 건 국가의 군인이다. 국가의 군대, 국군이다. 국가의 방위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순간이 온다면, 짐은 국민과 함께 할 것이다. 결코 황제 일신만의 안위를 도모하지 않으리라. 그게 바로 인민전쟁의 첫걸음이 되리라 생각하는 바이다.”
“대원수 폐하, 신등은 죽음으로 폐하를 보위할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곧 대한이십니다! 신등은 국가와 함께 하겠습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장교들이 황제의 연설에 열렬히 감격하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황제 말고 국가의 군대로 하라니까, 결론이 황제가 곧 국가라는 거냐.’
이선은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인민전쟁, 의병이란 말을 들으니 자연히 실제 역사의 고종과 군대해산, 시위대의 투쟁과 의병전쟁이 떠올랐던 것이다.
‘시위대(侍衛隊)’는 해산의 순간에야 비로소 황제의 군대가 아닌 국민의 군대가 되었다. 해산된 대한제국군과 의병들은 공식 교전상대가 아니라 ‘비적(匪賊)’으로 규정되어 일본과 악전고투해야 했고, 장렬하지만 고립된 최후를 맞이해야 했다.
이선의 대한제국군은 고종의 대한제국군처럼 황제만의 군대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군대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이미 1880년대 군제개혁부터 군대와 함께하고, 독립전쟁의 선봉에 선 이선은 젊은 장교들에게 그 자체로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강한 애국심을 가졌지만, 황제도 곧 국가였다.
“흠흠, 팔켄하인 소령, 석조전에서 더 이야기 나누고 싶소. 같이 식사 하십시다.”
“영광입니다, 폐하.”
장교들의 열렬한 반응을 뒤로 하고, 이선은 팔켄하임과 함께 석조전으로 향했다.
오찬을 마친 후, 이선은 팔켄하인과 박유굉만 대동하고 함께 커피를 마셨다. 강의에서 열변을 떨친 것과 달리, 팔켄하인은 과묵했다. 이선이 먼저 화제를 전환했다.
“소령, 짐은 소령의 전망에 깊은 감명을 받았소.”
“황공하옵니다, 폐하.”
“20년의 노력에도, 대한이 열강의 기준에서 볼 때 한참 약체라는 건 인정하오. 대한은 지난 두 차례의 전쟁에서 신속히 승리하는 덕에 전쟁을 너무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소. 소령의 말대로 대한이 강해서가 아니라 청군이 약해서 이긴 거지. 군사적 승리라기보다는 정치적 승리였고.”
이선의 솔직한 말에 팔켄하인이 답했다.
“클라우제비츠의 관점에서 보면, 훌륭한 승리입니다. 비스마르크 재상도 한국의 승리에 찬탄을 표하신 바 있습니다.”
“전쟁과 정치의 목적을 가장 정확히 아는 비스마르크 재상이 그리 말씀하셨다니 기쁘군. 아무튼, 나는 참호전과 인민전쟁의 가능성에 대해 대비하고 싶소. 앞으로 소령에게 군사고문관으로서 보다 많은 일에 조언을 부탁하고 싶군요.”
실제 러일전쟁과 1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아는 이선으로선, 팔켄하인의 예측이 정확하다고 공감했다.
‘문제는 예측이 꼭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으니, 팔켄하인 자신도 세계대전에서 실패한 운명이지만. 뭐, 역사가 바뀌었으니 성공할 수도 있지.’
“맡겨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문제는 대한이 장기전을 추구할 국력이 못 된다는 거지만, 최소 10년 동안 착실히 국력을 키워 대비할 겁니다. 만약 그 전에 불가피하게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면…….”
이선은 전에 없이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의 국력이 적보다 약할 지라도, 적이 침략해 온다면 동반자살은 각오해야 할 거요. 우리 국민 한명이 죽을 때마다 적은 열 명씩 죽게 만들어야지. 우리가 죽더라도, 적도 과다출혈로 쓰러지게 만들겠소. 짐은 그게 가능한 국군을 원하고, 필요하다면 인민전쟁을 실현으로 옮길 거요.”
이선의 냉정한 단언에, 박유굉은 진심으로 놀랐다.
팔켄하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는 통수권자를 만났다고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