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37
– 18화에 계속 –
2부 18화 만주 분할 계획
1903년 6월 14일(율리우스력 6월 1일).
동청철도(東淸鐵道, CER) 전 노선이 영업을 개시했다.
만주리에서 하르빈을 지나 블라디보스토크로 연결되는 동서 횡단 노선, 하르빈에서 분기해 장춘과 봉천을 지나 대련까지 이어지는 남북 종단 노선으로 구성되었다.
동청철도 본선은 러시아령으로 치타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직선 코스였고, 남만주 지선은 러시아령 관동주를 연결했다.
만주를 동서남북으로 잇는 동청철도는, 의화단 전쟁의 파괴로 인해 예정보다 늦게 개통하게 되었지만, 러시아의 만주 지배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모스크바에서 포트 아르투르(여순)까지 일반 열차는 16일 14시간! 특급 열차로는 단 13일 4시간!”
“특급 열차 1등석 272루블에서 일반 열차 3등석 64루블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철도 개통!”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여름 여행은 동양에서!”
러시아 재무대신 비테는 자신의 역작인 동청철도 개통에 만족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바이칼호 구간의 난공사로 인해 개통이 지연되고 있지만, 대략 1904년 여름이면 개통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의 철도 연결을 통해, 평화적이고 항구적인 지배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오.”
“축하드립니다, 각하. 이로써 러시아와 대한도 더욱 가깝게 되었습니다.”
주 러시아 대한제국 공사 이범진도 축하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이 부설하는 안봉선(압록강-봉천) 철도가 완성된다면, 동청철도로의 접속이 가능했다.
“하하, 페테르부르크에서 귀국의 서울까지 철도로 여행하는 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평화적 침투’를 통한 경제적 지배를 선호하는 비테는, 철도 개통으로 자신의 꿈에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1901년 10월에 체결된 만주 협약은, 3차에 걸쳐 러시아군의 만주 철군에 합의했다. 1902년 10월에 첫 철수가 이루어졌고, 9개월마다 철군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1903년 7월에는 2차 철군, 봉천성 남부와 길림성 일대의 러시아군이 철군할 예정이었다.
“정세가 바뀌고 있는데 이대로 아무 대가 없이 철군할 수는 없다. 철군의 대가로 청국에 몇 가지 조건을 요구한다.”
7월 8일, 러시아는 청나라에 만주 철군에 관한 7가지 조항을 전달했다.
1. 러시아가 청국 정부에 반환하는 영토의 어느 부분이라도, 여타 열강에게 매매 또는 대여해서는 안 된다.
2. 러시아의 동의 없이 만주에 새로운 개항장을 설치하거나, 열강의 영사관이 주재해선 안 된다.
3. 몽골 전 지역에서 현재의 정치 체제를 변경해선 안 된다. ……
…… 이상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러시아는 즉시 봉천과 길림에서 철수할 것이며, 영구(잉커우)의 민정권을 청국에 다시 돌려주겠음.
요컨대 만주와 몽골은 러시아의 세력권이라는 걸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열강들에 영토를 넘겨줘서는 당연히 안 되고, 새로운 개항장이나 열강의 외교관이 들어오는 것도 안 된다.
북경 조정의 신정책으로 변강에 대한 중앙집권화를 강요하고 있으니, 몽골의 불만도 크다. 러시아는 몽골 왕공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청국에 몽골의 체제 변경을 강요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요구가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자신들이 만주에 쓴 막대한 비용에 대한 보상을 원했다.
“더도 말고, 영국이 티베트와 장강 이남을 대하듯이 러시아도 만주와 몽골을 대하겠다.”
청나라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강경했다.
“만주 철군을 완료하기 전까지, 어떠한 추가 협상도 없다. 협약에 따른 철군을 이행하길 요구한다.”
만주 협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북양대신 이홍장이 죽은 후, 외교를 전담하게 된 경친왕 혁광은 전임자와 다른 태도를 보였다.
한족 이홍장이 러시아를 이용해 ‘변강’의 희생을 통한 ‘중국’을 지키고자 했다면, 황실의 뿌리가 만주에 있음을 자각하는 만주족 경친왕은 만주 점령을 용인할 수 없었다.
“만주는 대청 열성조의 성지입니다. 아라사의 만주 점령은 결단코 용인할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 대청의 힘이 저들보다 약하다고는 하나, 열강의 지지를 받는다면 만주를 수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왕의 의견이 옳소. 짐은 저들의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겠소.”
북경 중심의 중앙집권을 통해 전근대국가인 청나라의 근대국민국가화를 추진 중인 광서제의 방향성은 경친왕을 비롯한 만주 황족들과 명백히 달랐지만, 황제는 ‘굴욕’을 감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 3일 만에, 페테르부르크는 북경의 단호한 거절 의사를 전달받았다.
대륙 반대편에 전보가 가는데 반나절이 소요되고, 암호문을 해독해서 공식 외교를 통해 전달하는 시간, 시차(時差)까지 감안하면 접수한 당일에 거절했다는 의미였다.
“청국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온다고? 대체 뭘 믿고 이러는 건가?”
“주청 영국 공사가 황제를 빈번히 만나고 있지 않은가? 배후에서 영국이 조종한 게 틀림없다.”
러시아는 청나라의 배후에 영국이 있다고 의심했다. 이는 러시아의 2차 철군 중지, 남만주 재점령을 정당화했다.
“러시아의 핵심 이익인 동청 철도의 보호를 위해, 철군을 중지한다. 극동군에 새로운 명령을 하달한다!”
7월 15일, 비테와 온건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차르는 철군 중단을 강행했다.
동청철도를 이용해, 러시아군은 봉천과 길림 일대에 진군하여 북경을 향한 무력시위를 벌였다.
* * *
“러시아, 협약 위반! 만주 철군을 거부!”
“대영제국은 러시아의 만주 점령을 단호히 규탄해야 한다!”
영국 언론, 특히 제국주의 성향의 ≪타임스≫가 강경하게 러시아를 비난하는 논조로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도 강경한 러시아 비난 기사를 잇달아 쏟아 냈다. 일본 정부, 아니 심지어 군부보다도 언론이 훨씬 호전적이고 강경했다.
일본에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대러(對露) 동지회’가 구성되었다. 이들은 러시아에 대한 단호한 외교, 단교와 개전까지 요구했다.
만주와 국경을 접한 국가, 동시에 러시아와는 우방인 국가, 즉 대한제국의 반응은 어떤가 하면-.
여론은 비판 일색이었다.
“전국의 동포들에게 알린다! 러시아는 만주를 주머니 속의 물건처럼 생각하고 제멋대로 분할하려 한다. 작금의 동양 정세는 순망치한(脣亡齒寒)에 가깝다. 러시아가 청국을 장악하면, 그 다음은 대한과 일본이 될 것이다. 어찌 저들을 막아야겠는가?”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고구려와 고려시대 이래 우리나라의 우환은 항상 만주와 서북쪽에서 일기 시작하여 마침내 전국을 위협했다. 러시아는 옛 수·당과 같고, 옛 몽골과 같다. 대한은 고구려와 고려의 후계자이니, 어찌 저들의 만주 점령을 묵과하겠는가?”
“러시아가 대한의 우방이라고는 하나, 시대착오적인 전제정이다. 만주 점령은 차르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는 차리즘의 오류를 보여 준다. 천만다행히도 대한에는 대황제 폐하의 성명(聖明)으로 헌법과 의회가 있으니, 어찌 차리즘과 운명을 같이 하겠는가?”
여론이 정부나 군부보다 강경한 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하, 두 번 전쟁에서 쉽게 이기고 나니까 세상이 정말 만만하게 보이나. 황성신문, 제국신문, 독립신문 논조가 다 비슷한 날이 오는군.”
고토 수복을 부르짖는 대외강경파건, 서양에 맞서 동양 연대론을 주장하는 아시아주의자건, 러시아 전제정을 경멸하고 영미식 대의제를 선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이건, 만주에 대한 입장은 비슷했다.
이선과 정부를 주도하는 이들은 정세를 현실적으로 접근했지만, 정보가 제한적인 여론은 달랐다.
“내무부가 사전검열을 미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신문을 일시적으로 정간(停刊)시킬까요?”
“됐네, 그럼 외세 눈치 보느라 언론 탄압한다고 말만 더 나오지. 마음껏 떠들라고 해. 애초에 이게 다 러시아가 쓸데없이 강경하게 나와서 이리된 게 아닌가!”
이선은 국내여론은 어차피 잠재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러시아의 행보, 이에 맞선 영국의 행보였다.
‘실제 역사에서 러시아의 만주 진출을 일본이 집요하게 방해했는데, 일본의 방해 요인이 사라지니까 러시아가 대놓고 만주를 차지하려고 하는군. 하지만 그러면 적을 너무 많이 만들지 않나! 비테의 방식대로 평화적인 침투를 해야 하건만…….’
한국은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점이 많았고, 적대하기에는 아직 국력이 너무 미약했다.
‘오쓰 사건부터 10년 넘게 많은 걸 얻어내긴 했지. 계속 니콜라이를 살살 꼬드겨 앞으로 10년은 더 대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는데, 이제 한계인가보다.’
그동안은 차르 니콜라이 2세와의 친서 외교로 많은 걸 얻어 냈지만, 1903년을 기점으로 차르의 태도가 바뀌고 있었다.
이선은 주 러시아 공사관, 제국익문사 유럽 첩보원을 통해 러시아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의 만주 철군 거부에 대한 적대적인 국제여론은, 재무부와 외무부는 물론이요 군부도 우려를 표하게 했다.
“이대로 영국과 청국, 일본을 결탁시키면 곤란한데…….”
“이게 다, 황제 폐하의 눈과 귀를 가리는 베조브라조프 일당 때문이오.”
“그자가 대체 외교와 전쟁에 대해 뭘 안단 말이오? 빨리 경질해서 추방시켜야 하오!”
정부와 군부는 베조브라조프 일파를 비판했다. 전제군주정에서 황제를 차마 비난할 수 없는 정치구조의 문제 탓에, ‘황제 측근의 간신’에게 비난이 집중된 것이다.
베조브라조프 일파는 억울했다. 분명 결정을 내린 건 차르였는데, 비난은 그들이 받고 있었다.
“우리는 오로지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일했을 뿐이오. 애초에 의화단 전쟁 때 만주 점령은 모든 이들이 동의했고, 러시아의 호의적인 제안을 거부한 건 청국이 아니오!”
“어쨌건 대내외적으로 비난을 받게 된 건 사실이니까, 대책을 마련해 봐야지요.”
“청국이 러시아를 거부하고, 일본이 적대한다고 하지만, 동양에는 러시아의 우방이 있지 않소?”
“한국 말입니까? 그들 역시 딱히 우호적인 반응은 아닌 듯한데.”
“하지만 그동안 러시아가 한국을 위해 베푼 게 얼마요? 또 우리 황제 폐하와 한국 황제는 절친한 사이기도 하잖소. 그들만은 우리 편을 들어줘야지.”
“여러분, 그래서 말인데, 제안하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베조브라조프 일파 중에 전 주한공사 마튜닌이 있었다. 그는 베베르와 더불어 러시아의 대표적인 ‘친한파’ 인사였다. 마튜닌 본인도 이선이 러시아에 망명해 연해주 전권위원이 되었을 때, 우수리 국경위원으로 보좌한 바 있었다.
“한국 황제는 여러모로 러시아에 신세진 게 많은 사람입니다. 물론, 그가 선제 알렉산드르 2세와 니콜라이 2세 폐하를 암살자로부터 구한 공로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만.”
“그러니 러시아 편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오?”
“20세기의 현실 정치에서 군주 간의 친분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으니까요. 예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적절한 걸 제공해 주면 됩니다. 애초에 그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기반도 러시아에서 비롯되었지요. 외세에 맞설 힘도 제공했고. 이번에도 서로 주고받는 게 있다면…….”
마튜닌이 동아시아 지도를 가리켰다.
“여기, 압록강과 두만강 북방은 한국의 신영토입니다. 그리고 그 북쪽은 실질적으로 한국의 통제를 받는 자치령이고. 신영토와 자치령, 우리의 동청철도 사이에는 러시아군은 존재해도, 러시아인은 거의 없지요. 중국인들은 많습니다만.”
“그렇지요. 러시아인들은 굳이 거기까지 안 가려고 하니까.”
“연해주와 한국에서 살아 보니, 한민족은 매우 성실한 민족입니다. 연해주의 우리 고려인 신민들은 중국인 몇 사람 몫의 일을 하지요. 본토의 한국인들은 이보다는 못했지만, 효율성을 지닌 정부가 들어서니 굉장한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극동의 독일인이라고 할 만합니다.”
“나 역시 극동 현지 시찰을 해 보니, 그들이 유용한 민족이란 보고가 체감이 되더군요. 근데 뭘 어찌하면 좋겠소?”
대개 동아시아 체류 경험을 갖고 있는 베조브라조프 일파는 한국인의 성실함에 동의했다.
“우리가 이번에 철수해야 할 지역들, 요양에서 관동주에 이르는 봉천성 남부, 길림성에서 철군을 계획대로 단행하고, 북만주는 우리가 확고히 통제하도록 합시다. 대신 남만주 자치령을 확대해서 한국인 50만 정도를 이 지역에 추가로 이주시키는 겁니다. 그럼 자연히 한국인에 의한 발전이 이뤄지겠지요.”
“잠깐, 그건 한국만 좋은 일 시켜 주는 거 아니오? 그렇게 해서 러시아가 얻는 게 뭐요?”
남만주 자치령을 확대해 한국인의 이주를 늘린다. 마튜닌의 복안에, 좌중이 의문을 제기했다.
“만주 진출을 원하는 한국에 은혜를 베풂으로써, 확고한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둘 수 있지요. 그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청국과 일본에 맞서게 될 겁니다. 어차피 극동에서 러시아가 중국과 인구 경쟁으로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한국인이 우리를 대신해 남만주에 추가로 이주해서 만주 영토를 잠식해 나가면, 중국인들이 증오하는 건 러시아가 아니라 한국이 될 겁니다. 그럴수록 한국은 더욱 러시아에 의존하지 않겠습니까?”
차르의 매제이자 해군 제독,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이 탁자를 탁 쳤다.
“그거 묘안이오! 실질적으로 만주와 한국이 러시아의 영향권 하에 들어갈 수 있겠군. 우리 해군이 원하는 진해만 기지도 거절할 수 없을 거고. 황제 폐하께 내가 건의해 보겠소. 다들 동의합니까?”
“음, 좋습니다.”
“그럼 저는 한국 공사를 만나 계획을 타진해 보겠습니다.”
마튜닌은 한국 공사 이범진을 만나 자신의 계획안을 전달했다. 이범진은 놀랐지만 일단 외교적으로 응답했다.
“귀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인지요?”
“아직 아닙니다만, 우리 황제 폐하의 재가를 받을 예정입니다. 귀국 황제 폐하께서 확인하시고, 친서를 작성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본국에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요.”
이범진은 마튜닌을 돌려보낸 후, 즉시 황성을 향해 비밀 전문을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