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42
– 23화에 계속 –
2부 23화 이제 짐이 통치한다
“그거, 참 반가운 소식이군요. 어딥니까?”
“압록강 하류의 안서와, 동북방 목단강 유역입니다.”
대한제국은 한반도 북단 함경북도 부령군 청진항과 경흥군 나남항까지는 개항했지만, 1895년 이후 점유한 남만주 영토는 개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신영토의 지배권을 확실히 구축하려는 한국 내부의 의도와, 만주에 열강의 진출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압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노불선언 직후, 러시아는 청나라에 보냈던 7개조 요구를 5개조로 수정해서 다시 보냈다.
특히 열강이 불쾌하게 여겼던 2조, ‘러시아의 동의 없이 만주에 새로운 개항장을 설치하거나, 열강의 영사관이 주재해선 안 된다.’를 삭제했다.
“하하, 미합중국이 개방을 원하던 지역이군요.”
루스벨트는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미국은 열강이 선점한 영구(잉커우)를 대신할 만주의 새로운 개항장을 원했는데, 때마침 한국이 적절한 장소를 제공했다.
압록강 하류의 안서(安西), 즉 옛 안동은 압록강을 따라 의주와 접해 있었고, 한국은 안서와 의주 용암포를 묶어 개항할 의사를 밝혔다.
목단강은 북간도와 길림성의 국경 지대로, 내륙무역에 용이한 지역이었다.
모두 미국이 관심을 가졌던 지역이었다.
“한국은 언제나 미국의 발전에 큰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자본은 한국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신영토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합니다.”
1883년 보빙사절단 파견 이래, 이선은 미국 자본의 유치를 위해 노력했다. 미국 자본은 한국의 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특히 1898년 미서전쟁 이후 한-미 교류는 급증했다.
그 결과 1903년경이 되면, 미국은 영국을 제치고 일본에 이어 한국의 제2 교역국이 될 정도였다.
“우리 기업가들이 기뻐할 소식이군요.”
루스벨트는 미국이 아닌 ‘기업가들’이라 지칭했다.
미국의 독점 자본들을 상대로 반독점법(Antitrust Laws)을 밀어붙이고 있는 루스벨트는,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대외 문제에 있어 경제적 이익보다 전략적 이익을 중시했다.
이선이 J.P 모건에게 투자를 받은 건 유명한 일화고, 근래 미국 자본 시장에도 차명(借名)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건 백악관에도 보고가 되어 있었다.
‘한국 황제, 여러모로 재미있는 인물이야. 주시할 가치가 있어.’
“세간에는 한국이 러시아에 경도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러시아가 한국의 우방인 건 틀림없으나, 러시아에 종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한제국은 자주국이며,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합니다. 신영토 개방이 그 증거입니다.”
“귀국의 문호개방과 세력균형을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합니다.”
서재필의 말에 루스벨트가 동의를 표했다.
보다 그를 만족시키는 건, 미국 대외정책에 발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한국의 태도였다.
“각하, 결코 한국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겉으로는 중립인 척 굴고 있지만, 실상은 러시아와 어떤 밀약을 맺었는지 모릅니다. 일본은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국의 고집이 너무 셉니다.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지지하여, 우월한 힘으로 한국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일본 공사, 가네코 겐타로는 루스벨트에게 한국을 압박하는 데 동참해 달라 요청했다.
가네코는 루스벨트의 하버드 동문이고, 루스벨트 개인도 일본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게 미국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건 아니었다.
루스벨트는 일본과 한국 중에 양자택일을 한다면 결국 일본이었지만, 미국에 우호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한국을 버려 가면서까지 굳이 일본에 선물을 안겨 줄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귀국이 러시아에 경도되었다는 세간의 소문을 잠재우려면, 확실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려 주십시오.”
“러시아의 만주 철군이 말이 아니라 실현될 수 있도록, 러시아가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깨트리지 않도록, 한국도 동참하길 바랍니다. 영일동맹과 함께, 미국과 한국이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면, 4개국의 연대를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세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각하의 고견에 대해, 황제 폐하께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뜻밖의 요구에, 서재필이 완곡하게 답했다.
“귀국 황제 폐하께서는 총명하신 분이니까,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문호개방에 감사드린다고, 꼭 전해 주십시오. 미합중국은 대한제국의 호의를 기쁘게 생각합니다.”
주미 공사관의 전문을 받은 이선은 생각에 잠겼다.
‘아, 이거는 안 되지. 압록강과 목단강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도 겨우 러양해를 얻었는데, 대놓고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동참하라고? 그럼 최전방에 서는 건 우린데?’
러시아는 만주의 독점적 지배를 원했으나, 이선은 차르를 설득해 ‘열강 중에 가장 러시아에 무해한’ 미국 자본의 진출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과연 미국 자본가들은 환영할 일이었지만, 루스벨트는 그보다 더 강한 요구를 해 온 것이다.
‘장차 아시아-태평양의 세력 균형을 깨게 될 건 러시아가 아니라 일본인데. 러시아는 만주가 한계고, 대륙국가라 태평양까지 나갈 능력은 안 되지. 육군이든 해군이든, 일본이 더 호전적이라고.’
이선은 영국에 이어 미국도 러일전쟁을 원하는 게 아닐지 의심했다.
‘일본의 관심을 러시아에 돌리고, 태평양에는 신경 못 쓰게 하려고? 역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절대 쉽게 안 넘어오는군. 뭐, 좋다. 러시아와 달리 미국은 여론이 중요한 나라니까, 대통령이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없지. 임기도 제한적이고. 일단 1908년까지만 버티면 되겠지.’
이선은 주미 공사관을 향해, 정치 문제는 완곡히 거부 의사를 보내고, 일단 경제 협력에 중점을 두라고 훈령했다.
광무 7년 10월 1일, 안서·용암포와 목단강 개항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열강, 특히 미국은 문호개방에 만족감을 표했다.
“미합중국 정부는 대한제국의 문호개방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1주일 후, 대한제국은 미국으로부터 1천만 달러(2천만 원)의 차관 협약을 성사시켰다.
한국은 담보로 미국에 한국령 남만주의 시장을 개방하고, 한미 합작 회사를 통해 광산 개발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부여했다.
차관은 안서-봉천 철도와 길림-회령 철도의 부설, 신영토의 개발에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아니어도, 경제적으로는 분명히 한국과 미국의 관계 진전이 세계에 공표되었다.
“흠,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나 봅니다.”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붙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군요.”
영국과 일본은 한국의 대미 접근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적어도 러시아 일변도의 정책은 쓰지 않고, 세력 균형을 추구한다.
압록강과 목단강의 개방은, 앞으로 일본과 영국 자본의 침투도 가능하게 할 터였다.
문제는 러시아의 반응이었다.
* *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뭐라고, 청국이 우리의 완화된 5개조 조건도 거부했다고!”
노불선언 직후, 러시아는 청나라에 만주 철병의 재협상을 제안하고, 7개조에서 완화된 5개조를 요구했다.
열강이 가장 크게 반발하던 2조는 삭제됐다.
‘러시아가 청국 정부에 반환하는 영토의 어느 부분이라도, 여타 열강에 매매 또는 대여 금지’, ‘몽골에서의 정치 체제 변경 중지’가 요구의 핵심이 되었다.
이 정도면 청나라의 주권 침해는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외교를 담당하던 경친왕도 협상안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지난번과 달리 매우 온당해 대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철군 협정은 곧 체결될 것처럼 보였다.
광서제는 영국과 일본 공사관에도 내용을 통보해 양해를 구했는데, 바로 반발이 튀어나왔다.
“이 요구는 청국의 주권을 확실히 침해하고, 열강의 조약상 권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공동으로 청국 정부에 협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권유하며, 이 항의를 무시하면 청국에 중대한 결과가 미치게 될 것입니다.”
협박이나 다름없는 경고를 받은 청나라는 움찔했다.
러시아도 이번 제안도 거부하면 만주 점령이 지속되리라는 위협을 가했지만, 청나라는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한 달 가까이 회담을 질질 끌다가, 청나라는 최종적으로 거부 회답을 통보했다.
“러시아군의 철군 이전까지 어떠한 협상도 있을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다. 러시아군의 철군 이후에 새로운 협상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청나라의 거부에 영일동맹의 훼방이 있음을 직감했다.
“청국 정부는 러시아의 모든 요구를 거절했다. 영국과 일본의 지원을 받아 우리로 하여금 일체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만주에서 철수하게 할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 준 것이다.”
“의화단의 동청철도의 파괴로부터 시작된 전쟁, 3년 동안 점령한 만주를 아무런 대가 없이 포기한다는 것은, 러시아의 위신을 떨어트리는 행위다.”
“더 이상 청나라와 어떤 교섭도 없다. 먼저 영국과 일본의 영향력부터 제거하고 온 다음에 협상을 논하라!”
10월 8일, 러시아는 협상 중단을 결정했다.
같은 시기, 한국령 남만주의 문호개방과 미국 차관이 통보되었다.
사전에 한국으로부터 양해를 받은 사안이었지만, 러시아로서는 참으로 시기가 공교롭기 짝이 없었다.
“청국의 양보를 전제로 열강의 한국령 남만주 진출을 용인한 건데, 러시아만 따돌린 셈이 아닌가!”
러시아는 청나라가 당연히 5개조 협상안을 받아들이라 생각하고, 그 연장선으로 한국령 만주의 개방을 동의한 건데, 영일동맹의 훼방으로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
“재무대신! 경이 그토록 부르짖던 만주의 평화적 진출은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러시아가 유화책을 제공하고, 호의를 베푼 결과가 이건가!”
강경파의 비난은 협상을 주도하던 재무대신 비테에게 집중되었고, 니콜라이 2세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당분간 만주 점령은 이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오나 그렇다고 하여 평화 정책의 이점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러시아의 극동 세력은 아직 취약합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동청철도가 연결되고, 앞으로 약 10년간 꾸준히 투자를 이어 나가면…….”
비테는 베조브라조프 일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극동 진출 정책을 꿋꿋이 밀어붙였다.
“청국 따위에게 망신당한 러시아 제국의 위신은 생각 안 하는 거요?”
“한국에 은혜를 베풀었듯이, 청국에 대범하게 은혜를 베푸는 것도…….”
“그만, 됐소! 더 이상 청국과 협상은 없소!”
차르의 단언에 비테는 고개를 숙였다. 비테의 정치적 패배였다.
청나라의 협상 거부는 강경파에게 좋은 명분이 되었다. 비테를 경질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강경파는 협상 중단은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비테에 대한 불만을 보인 차르를 움직였다.
10월 14일(러시아력 10월 1일).
내각 개편이 발표되었다.
“세르게이 율리예비치(비테), 그간 경의 노력으로 제국의 재정은 풍부해졌소. 경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는 의미에서, 국무회의 의장으로 삼겠소. 축하하오.”
“…… 감사합니다, 폐하.”
차르는 비테에게 훈장을 달아 주고, 국무회의 의장으로 임명했다.
국무회의 의장은 형식적으로 대신 중 가장 높은 위치로 국무회의를 주관한다. 다른 나라의 총리에 해당되는 자리였지만, 전제군주국인 러시아에서는 그저 이름뿐인 직위였다.
제국의 재정을 책임진 재무대신이야말로 요직 중의 요직이었고, 비테는 권력을 상실한 것이었다.
알렉산드르 3세 이래 러시아의 경제를 책임져 오던 비테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마침내 비테를 경질시켰다!”
“이제 우리가 전면으로 나설 때가 왔소!”
“외교적 참패를 불러일으킨 외무대신 람스도르프, 소극적인 육군대신 쿠로파트킨을 모두 경질시켜야 합니다.”
베조브라조프 일파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정적 비테의 패배는 곧 그들의 승리라 생각했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외무대신과 육군대신도 교체할 야망을 품었다.
그런데…….
“폐하, 감히 직언드립니다. 베조브라조프는 외교와 군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결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신다면, 저를 해임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경질을 노린다는 소문을 듣고, 육군대신 쿠로파트킨이 먼저 나섰다. 사임을 각오한 직언에, 차르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짐에게는 그대를 대신할 인물이 없소. 그동안 베조브라조프가 너무 설치긴 했지?”
“황공하옵니다.”
“어차피 짐도 그자를 그렇게 신뢰하는 건 아니오. 이제 그만 쉬게 해 줘야겠군.”
“현명하시옵니다, 폐하!”
비테를 국무회의 의장으로 임명한 며칠 후, 베조브라조프도 국무상서 직위에서 해제되었다.
베조브라조프는 더 이상 국무회의에 참여할 수 없었고, 야인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이다.
“저는 폐하를 위해 열성을 바쳤는데, 어째서…….”
“고맙게 생각하네만, 경의 적이 너무 많아. 당분간 쉬고 있게. 흑해에서 요양하는 게 어떤가? 정세가 바뀌면 짐이 다시 불러들이지.”
“폐, 폐하!”
차르는 언제 베조브라조프를 총애했냐는 듯, 가차 없이 궁정에서 몰아냈다.
‘비테의 반대파를 모아 경질 여론을 조성한 것만으로 충분히 역할은 다 했어. 하하, 어떠냐? 이래도 짐이 정치를 못 한단 말이냐?’
니콜라이는 굉장한 만족감을 느꼈다.
자신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던 오만한 비테도, 자신에게 아부하여 권력을 얻으려던 간교한 베조브라조프도 모두 몰아냈다.
‘누구도 감히 짐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신성한 러시아의 통치자는 오직 짐뿐이다.’
왕권신수설의 신봉자인 차르는, 재위 10년 차에 마침내 대신들에게 ‘잠시 위임했던’ 절대권력을 되찾아 왔다고 생각했다.
이날 니콜라이는 자신의 일기에, 세계에 선언하듯이 적었다.
‘이제 짐이 통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