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49
– 30화에 계속 –
2부 30화 창공의 꿈
인간은 오래전부터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더없이 맑고 푸른 하늘, 창공(蒼空)을 높이 날아오르는 새를 보며 인간은 비행을 열망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이카로스가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태양 가까이 날았다가 끝내 추락하고 만 것처럼,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실패를 거듭해 왔다.
바람을 이용해 하늘을 날려는 시도는 고대 이래 계속되었으나,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비행체’는 무모하게 도전하는 인간의 목숨을 빼앗고 말았다.
근래에도, 30여 년을 날기 위해 노력했던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이 글라이더 비행 실험 중 추락하여 중상을 입고 사망하고야 말았다.
릴리엔탈은 근대 항공의 선구자라고 할 열정을 보여 줬으나, 그의 추락과 사망은 하늘을 나는 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몸소 보여 준 셈이었다.
비록 목숨은 잃었으나, 릴리엔탈이 남긴 말은 하늘을 나는 꿈을 가진 이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비행에 대한 완벽한 과학적 개념을 얻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의무이다.”
바로 그렇다. 과학의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려는 열망이 폭발했던 근대가 아니었던가?
근대에 이르러, 기계 동력을 활용하여 인간이 조종할 수 있는 ‘비행기’에 대한 열망이 싹텄다.
19세기 말 저명한 과학자와 공학자, 발명가들은 비행 조종에 도전했다.
미국의 과학자 새뮤얼 랭글리(Samuel Langley), 프랑스 태생의 미국 토목공학자 옥타브 샤누트(Octave Chanute), 프랑스의 발명가 클레망 아데르(Clément Ader), 영국의 조지 캐일레이 경(Sir George Cayley), 기관총의 발명자 하이럼 맥심 경, 전화기의 발명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발명왕’ 에디슨에 이르기까지 도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였다.
특히 맥심은 기관총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을 항공기 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했으나, 10만 달러를 투입해 만든 비행 기계는 이륙 과정에서 추락하여 박살 났다. 기관총의 발명으로 전쟁의 역사를 바꾼 맥심도, 끝내 하늘을 날 순 없었다.
1903년의 미국은 진보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경제는 호경기였고, 거의 모든 곳에서 고용이 이뤄졌다.
기차에 이어 자동차가 지상을 누비기 시작했다. 바다에는 거대한 기선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인류는 마침내 대지와 대양을 지배하게 됐는데, 왜 창공만은 미답의 영역이란 말인가?
해답이 필요했다.
12월 8일, 워싱턴.
하늘을 날고자 하는 또 다른 시도가 있었다.
저명한 과학자 새뮤얼 랭글리 교수가 주도한 이 실험에는 10년에 걸친 노력,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지원, 국방부의 투자가 이어졌다.
랭글리는 최초의 무인 동력 항공기를 개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자금은 바닥나고 있었고, 랭글리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날의 시도도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강둑을 따라 수많은 기자와 구경꾼들이 늘어섰지만, 투석기로 날린 비행선이 포토맥 강에 빠져 참담하게 추락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파일럿은 차가운 강물에 빠져 저체온증으로 거의 죽기 직전에 구조됐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사람들은 ‘하늘의 광인들’을 괴짜나 정신병자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유력 언론 는 단언했다.
“10년의 세월과 7만 달러가 넘는 공적 자금이 투입됐는데도, 명백히 실패한 실험이다. 정부는 이 가망 없는 사업에서 손을 떼라. 인간이 날아다닐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꿈에서 깨라!”
언론의 단언처럼, 하늘을 날고자 하는 실험은 명백히 실패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역사를 바꾸게 되었다.
1903년 12월 중순,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
랭글리의 시도가 참담하게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은 이 작은 마을에도 전해졌다.
지난 몇 년간 하늘을 날기 위해 노력했던 두 형제는 무거운 마음으로 신문을 확인했다.
거듭된 실패에도, 이 낙관적인 형제는 자신들의 성공을 확신했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해.”
형제는 오하이오 출신의 자전거 판매상,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였다.
라이트 형제는 새의 비행을 보며 하늘을 날고자 하는 열망을 키웠고, 릴리엔탈의 시도에서 자극을 받았다. 1900년부터 이 한적한 마을을 찾아 항공 실험을 거듭해 왔다.
1902년까지의 실험은 성공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니, 실패는 소중한 경험을 축적시켰다. 형제는 수백 번의 비행 실험 끝에 항공기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했다.
이제 동력 기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1903년, 라이트 형제는 플라이어 1호(Flyer 1)를 만들었다.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가볍고 성능 좋은 엔진, 두 개의 프로펠러가 장착되었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 기체의 성능 확인과 수리는 거듭되었다.
라이트 형제의 계획은 착착 진행 중이었지만, 고등교육도 받지 않은 자전거 판매상을 주목하는 전문가나 언론은 전혀 없었다.
예외적으로 형제를 지지하고 후원한 전문가는 옥타브 샤누트가 유일했고, 초기 자금도 자전거 판매의 수익으로 충당했다.
만성적인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형제에게, 1902년 초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당신들의 프로젝트에 후원하고 싶습니다. 매년 1만 달러씩 지원하고, 자금이 추가로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요청하십시오.”
후원자의 대리인을 자처하고 나선 이는 아무런 조건 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자금난에 시달린다곤 하지만, 라이트 형제로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대체 자금 출처가 어딥니까?”
“누구보다도 항공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어떤 익명의 부호라고 하지요. 그분은 당신 형제들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받아들이게. 내가 이미 확인해 봤는데, 믿을 수 있는 분일세.”
라이트 형제의 지지자인 샤누트가 후원을 받으라고 거듭 권했다. 형제는 고심 끝에 받아들였지만, 조건을 걸었다.
“개발과 실험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입니다. 성과를 독촉하지도 말고, 실험에 간섭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뜻대로 하시지요.”
형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받아들였다.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는 이 정체불명의 후원자는 기이하기 짝이 없었지만, 약속을 지켰다.
덕분에 형제는 당분간 생업 전선으로 돌아가지 않고, 비행 실험에 몰두할 수 있었다.
1903년 하반기에 이르러서야, 후원자의 정체가 밝혀졌다. 대리인이 한 동양인을 데리고 와서 소개시킨 것이다.
“미국 주재 대한제국 무관 노백린 소령입니다. 앞으로 이분이 여러분의 실험을 참관하고자 합니다.”
“군인이라니, 그럼 지금까지 후원을 해 준 주체가 한국 군부였단 말입니까? 설마 군사용으로 쓸 목적입니까?”
라이트 형제는 순수한 비행 애호가였고, 독립적인 아마추어리즘에 충실했다. 이들은 비행기가 전쟁의 도구가 되리란 미래를 상상하고 있지 않았다.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황제 폐하시지요.”
“대체 한국 황제가 왜요?”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누구보다도 항공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분이라고. 그분은 당신 형제들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저는 군인이기 이전에, 창공의 꿈을 함께 꾸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성공을 기원할 뿐입니다.”
형제는 외국, 그것도 잘 알지 못하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자신들의 실험을 후원해 왔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지원을 받아 왔으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목표한 비행을 앞두고 찜찜함을 느끼고 형제에게, 의심이 풀리는 유쾌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황제의 동생, 프린스 리가 오하이오 선교사의 딸 에밀리 브라운과 사랑을 약속하다.”
“우리 고향 사람이로군. 더욱이 선교사의 딸이라.”
라이트 형제는 뜻밖의 소식에 호감을 느꼈다. 오하이오 데이튼(Dayton) 출신, 개신교 목회자의 자식으로 거의 흡사한 출신 성분을 갖고 있었다.
형제의 든든한 지원자인 여동생 캐서린과 화제의 주인공 에밀리 브라운은 비슷한 측면이 많았다.
“황제도 20년 전에 미국에 와서 유명인사가 됐던데. 이 형제는 어지간히 미국을 좋아하나 봐.”
“사람의 선의를 지나치게 의심하는 것도, 기독교인에게 걸맞는 자세는 아니지. 우리는 우리 할 일이나 하자고.”
최종 비행이 예정된 12월 중순에 노백린이 합류했을 때, 형제는 전보다 훨씬 호의적인 태도로 그를 맞이했다.
12월 14일 월요일.
1인용 비행기에 누가 먼저 탑승할지는 동전 던지기로 결정했다. 형 윌버가 이겼다. 실패 시에는 동생 오빌이 탈 예정이었다.
14일의 비행은 완벽한 준비에도 실패로 끝났다. 기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윌버가 조종 방향타를 너무 세게 당기는 바람에 갑자기 솟구쳐 버렸고, 이를 바로 잡으려다 30미터 지점 모래밭에서 충돌하고야 말았다.
“괜찮아! 기체는 멀쩡해! 이건 인간의 실수일 뿐이야! 엔진과 이륙 장치에는 전혀 문제없어!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으니 괜찮아!”
비행 실패에도 형제는 긍정적이었다. 단지 경험 부족으로 실패했을 뿐이었다.
기체 수리를 마치는 데에는 이틀이 걸렸다. 16일 밤, 모든 준비가 마쳤다.
12월 17일 목요일.
이날 키티호크는 얼어붙을 듯이 춥고 대서양의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평안도 출신으로 어지간히 추위에 익숙한 노백린조차도 추위에 몸을 두텁게 감싸야 했다.
엄청나게 추운 날이었지만, 하늘은 청명했다.
준비는 완벽했다. 무게 275kg의 플라이어호는 길이 18미터의 이륙용 선로에 대기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라이트 형제는 비행을 준비했다.
오빌이 두 개의 프로펠러 사이, 엔진 옆 조종석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머리 위에는 조종 방향타가 있었다. 윌버는 오른쪽 날개에 서서 이륙을 도울 준비를 했다.
10시 35분. 플라이어호를 붙잡아 두었던 밧줄이 풀렸다.
플라이어는, 강한 맞바람을 뚫고 그 이름처럼 하늘을 활짝 날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공중으로 떠오르던 플라이어는 모래밭에 무사히 착륙했다.
비행거리는 36미터, 시간은 12초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명백히 인간의 첫 비행 순간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비행이 잇달아 이뤄졌다.
정오에 있었던 윌버의 네 번째 비행이 가장 성공적이었다.
강풍을 뚫고 59초, 260미터를 날아 착륙에 성공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 관찰자는 겨우 여섯 명 뿐이었다.
세 명의 해안구조대원, 인근에 거주하던 낙농업자, 우연히 주변을 지나가다 신기한 광경에 접근한 소년, 그리고 멀리 동양에서 온 한 사내.
비록 증인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해안구조대원이 사진으로 재빠르게 그 장면을 영원히 역사의 한 장면으로 포착했다.
“와우! 기분 최고야!”
“마침내 하늘을 나는 데 성공했어!”
윌버와 오빌 형제는 서로를 껴안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정말로 인간이 하늘을 날다니…….’
노백린은 저도 모르게 감격에 겨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들었던 황제의 훈시대로, 정말로 인류의 미래는 하늘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태극기를 단 비행기가 대한의 창공을 날게 될 날이 머지않았구나!’
노백린은 벌써부터 그날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날이 온다면, 자신도 하늘을 날고 싶었다.
* * *
라이트 형제의 비행 소식은, 즉시 타진한 전보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반응이 잠잠했다. 겨우 59초를 비행했고, 그조차도 다시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다. 미국도 이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더 알지 못했다.
한편, 태평양 건너 대한제국.
“유레카!”
긴급 전보를 받아 들은 이선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가 알던 대로, 인류는 하늘을 나는 데 성공했다.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불굴의 도전 정신을 가졌던 라이트 형제에 의해서.
차이가 있다면, 라이트 형제의 비행 성공에 상당한 지분을 가진 후원자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근대화 시기가 늦었기 때문에 다른 기술은 서양을 앞설 수 없었지만, 항공만큼은 선점할 수 있다. 땅과 바다에는 후발주자지만, 하늘만큼은 선두주자로!’
현시점에서는, 항공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믿는 그 어떤 나라도 없었다.
하지만 이선이 이끄는 대한제국은 달랐다.
이선은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하늘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믿었다.
대한제국은 열강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진 근대화의 후발주자였지만, 때로는 후발주자의 이점이 있었다. 어떠한 편견 없이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다.
20세기의 새로운 발명인 비행은, 가장 극적으로 인류의 인생을 바꾸는 기술이 될 것이다.
이선은 석조전 밖으로 나와, 시리도록 높고 푸른 겨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높고, 맑고, 푸른 하늘. 창공.
‘창공에 대한의 비행기가 뒤덮일 날이 오리라.’
그때까지, 이선은 대한제국의 공업력을 최대한 키울 계획을 세웠다.
이선은 새로운 꿈을 꾸었다.
막연히 허황된 꿈이 아니라, 언젠가 다가올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