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53
– 34화에 계속 –
2부 34화 중립과 동맹
“폐하, 청국이 만주 점령에 분개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여기에 일본이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대한이 만주 문제에 무관한 나라가 아닌 이상, 조속히 입장을 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영효가 동양에서 한국이 고립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만약 청국과 일본이 구원(舊怨)을 씻고 손을 잡으면, 한국은 더욱 러시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러시아의 입장 변화는 없었지요?”
“당분간 만주 점령을 유지하겠다는 각오가 분명합니다.”
“영국에서는 뭐라고 합디까?”
“러시아의 만주 점령에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며, 중국의 분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습니다.”
서광범의 보고에 이선이 냉소를 흘렸다.
“자기들은 티베트를 침공해 놓고선, 중국의 분할에 반대한다니.”
영국군의 티베트 진입은 국제 문제로 확산되었다. 청국 조정의 항의에도 영국군은 무시로 일관하며 티베트 영내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러시아가 대신 나서서 영국군의 티베트 침공을 규탄했다. 영국은 러시아와 달리 영구 점령의 의사가 없다고 맞받아쳤다.
영국의 티베트 침공은, 러시아의 만주 점령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명분이 되었다.
“영국이 가장 최근에 벌인 전쟁이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이오. 그 전쟁으로 인해 영국의 위신이 많이 깎였지. 나는 영국이 만주를 러시아의 보어로 만들려고 하는지 의심하고 있소. 마적들의 준동은 시작에 불과하겠지.”
보어전쟁으로 영국의 국력이 소모되었으니, 극동에서 러시아의 국력을 소모시키는 것도 런던의 입장에선 충분히 고려해 볼 일이었다.
영국이 고용한 ‘극동의 헌병’ 일본이, 영국을 대리해 전쟁을 획책한다면, 영국이 흘릴 피는 없었다.
“폐하, 금년 들어 일본에서 대한에 방위 조약 체결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구상은 한청일 동양 삼국 연대에 영국이 배후에서 후원하는 형태로 여겨집니다.”
러시아의 만주 재점령 이후, 일본의 사이온지 내각은 청국과 한국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정략을 택했다.
1904년 1월, 주한 공사 하라는 대한제국 정부 인사들을 찾아 일본과의 동맹을 비공식적으로 타진했다.
개화당 내각은 일본과의 동맹을 호의적으로 검토했고, 황제에게 건의했다.
“러시아에 맞서는 동양 삼국 연대라. 영국이 정녕 이를 후원한다면 솔깃한 제안임에는 틀림없소.”
“그렇습니다, 폐하. 삼국 연대는 서양 열강으로부터 동양을 방위할 최상의 방략으로 여겨집니다.”
김옥균은 아시아주의의 영향을 받아 한국, 청국, 일본이 서양 열강에 맞서 손을 잡아야 한다는 삼화주의(三和主義)를 주창한 바 있었다. 정부의 중책을 맡게 된 이후로는 더 이상 삼화주의를 내세우지 않았지만, 가슴 속에는 청년기의 이상이 남아 있었다.
“동양 침략을 앞장서서 획책하는 영국이 배후에 있다면, 서양으로부터 동양을 방위할 정략이란 무슨 궤변이오? 애초에 그런 명분은 아무래도 좋소.”
이선에게 아시아주의나 삼화주의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어떻게 대립 속에서 실리를 얻느냐는 것이었다.
“영국과 러시아 중에 택하라면 물론 영국이 낫겠지. 하지만 영국을, 일본을 어떻게 신뢰하나? 일본이 주도하는 삼국 연대에 끼어들면, 저들은 우리에게 총알받이 역할을 맡길 텐데.”
이 구도에서 러시아에 맞서는 동맹이 체결된다면, 청군이 만주에서 힘을 못 쓰는 상황이니 최전방에 서야 할 나라는 대한제국이었다.
“외교적 신뢰 문제는 어쩌겠소? 우리는 노불동맹에게 독립을 보장받았소. 여기에 영일동맹과 손을 잡는다면 완전히 모순이지. 우리는 군사적으로 러시아에, 차관과 투자에 있어 프랑스에 많은 신세를 지고 있소. 영국과 일본이 이를 대체할 수 있을까?”
“일본과 영국이 군사와 상공업의 지원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무역에 있어 대일의존도가 높은데, 안보까지 의존하자고?”
대한제국에 있어 노불동맹과 영일동맹 중에 어느 쪽이 더 호의적이냐 하면, 당연히 전자였다.
일본의 제안이 솔깃하다고 해서 단숨에 외교 방침을 바꿀 순 없는 상황이었다.
“짐의 생각에,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영원히 이어질 수 없소. 일본의 팽창 욕구만 잘 단속한다면 말이지.”
결국 점증하는 독일의 위협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결코 러시아가 극동의 전쟁에 휘말리길 원치 않았다.
영불이 타협한다면, 그들의 동맹인 러시아와 일본도 무작정 대립할 수 없었다.
“영국 보수당은 전통적인 관점에서 독일보다 러시아를 더 위협적으로 생각하지만, 자유당은 입장이 다릅니다. 프랑스 또한 독일의 위협에 맞서 영국과 타협할 의사가 분명히 있습니다.”
주영공사, 주불공사를 지낸 서광범은 영국과 프랑스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장차 영국 정부가 자유당으로 교체된다면, 실제 역사처럼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영러 간의 타협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동맹 당사자들은 제외하고,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마 독일은 러시아의 편에, 미국은 일본의 편에 서겠지만, 꼭 전쟁을 원하는 건 아니오.”
러-프-독 대륙 세력과 영-미-일 해양 세력으로 편이 갈라질 수는 있지만, 전쟁이 필연은 아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최선의 방책은, 노불동맹과 영일동맹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거라 생각하오.”
“그렇습니다. 스위스와 벨기에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외무대신 서광범과 법무대신 유길준은 한국의 대표적인 중립론자였다. 이들의 모델은 스위스와 벨기에였다.
“그대로 3년에서 5년 정도만 버텨 준다면 전쟁의 불씨는 사그라질 것이라 여겨지오.”
이선도 가능하다면 대한제국의 무장 중립을 선언하고 싶었다.
역사에서는 바로 비슷한 시기, 1904년 1월에 고종의 대한제국은 중립을 선언한 바 있었다.
하지만 힘없는 자의 외침이었던 고종의 중립 선언은 일본에 의해 허무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그에 비해 이선의 대한제국은 무장중립을 선언할 토대는 갖추어져 있었다.
상비군 10만, 예비군 20만이라는 근대적 군대 30만을 보유한 국가이고, 대외 전쟁은 못 해도 국내는 확실히 방어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침략자에게 맞서 동귀어진을 각오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중립보다는 확실한 동맹이 낫지.’
그래도 중립이란 불확실한 선택이었다. 벨기에의 중립이 열강에 인정받았음에도 결국 독일에 짓밟히듯이, 열강은 마음만 먹는다면 중립을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어느 한 동맹에 합류하게 되면 최전선에 서게 된다. 국운을 걸고 총알받이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동맹을 맺는다면, 결국 한국이 최전선에 서야 한다는 지정학적 문제가 있었다.
러시아의 독립 보장을 동맹으로 격상시킬 순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본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이었고, 지정학적 최전선이 한반도가 되게 된다.
일본의 삼국 연대 제안도 동맹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게 되고, 지정학적 최전선은 남만주가 된다.
한반도와 만주가 양극의 전선에 서는 상황에 섣불리 동맹을 맺을 수가 없었다.
“폐하, 러시아와 프랑스는 어찌 동의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본과 영국은 결코 중립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중립을 선포한다고 해서 저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소.”
이선은 만주 위기가 격화됨에 따라, 비밀리에 각국과 중립에 관한 논의를 타진했다.
근래 한국이 군함을 구매한 이탈리아는 특히 우호적으로, 중립을 직접 중재해 주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문제는 이탈리아의 호의와 달리, 그들의 외교력은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당장 독-오-이 삼국동맹의 일원인 독일조차 설득하지 못했다. 독일은 은근히 극동의 분쟁을 원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프랑스는 러시아가 전쟁에 휘말리지 않길 원했으므로 한국이 우호적 중립국이면 충분했다.
“한국의 독립 보장과 중립이 상충되지 않소? 러시아의 호의를 저버리겠다는 것 아니오?”
“한국은 우호적인 완충국가로 충분합니다. 만주 문제로 가뜩이나 적을 많이 만들었는데, 한국의 중립을 승인하면 열강도 러시아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러시아는 군부의 반발이 있었지만, 전쟁을 원치 않는 외무부와 재무부 입장에서는 한국의 중립 카드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차르도 한국이 중립을 지켜도 이선이 친러적 관점을 폐기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문제는 역시 일본이었다.
“한국의 중립은 러시아의 뜻에 놀아나는 것이나 다름없소. 만주를 러시아의 영향력에 두고, 한반도가 친러적 중립으로 남는다면, 제국의 안보는 여전히 위태롭소.”
“북수남진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중립은 나쁜 일이 아니오만.”
“그런 소극적인 정략으로 만한을 방기한 결과가 작금의 수세 아니오! 대체 그 막대한 군비를 쏟아부은 군함은 뒀다가 어디다 쓸 거요? 충원된 러시아 함대가 쓰시마 해협에 진입해야 정신을 차릴 거요?”
“국방 본연의 임무는 전수방위지, 공격이 아니란 말이오! 적 함대는 제국 해군이 개전과 동시에 격멸할 수 있소! 육군은 그럴 능력이 되오? 애초에 해군 없이 대외 작전 능력도 없지 않소!”
“뭐요? 지금 제국 육군을 모욕하는 건가!”
“자자, 진정들 하시고. 최소한 한국이 일본의 적국이 되면 안 된다는 건 확실하지 않습니까.”
일본 육군과 해군은 입장이 달랐지만, 최소한 한국이 적국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일치했다.
사이온지 내각도 한국이 러시아와 동맹을 맺는다는 건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진작 하라를 보내 한국과의 동맹을 획책하고 있었고, 가능하면 청국까지 동맹을 끌어들여, 반(反)러시아 동양 삼국 연대를 완성하고자 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중립도 애매모호하긴 마찬가지였다. 확실한 동맹이 분명히 나았다.
일본의 뜻을 전해 들은 영국은 한국의 중립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미국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일본은 계속 한국의 조야(朝野)와 접촉하며 여론을 격동시키고자 했다.
「분명 러시아와 일본은 모두 우리의 우방이다. 두 나라가 대치하는 것은 두 나라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대한의 불행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동포여. 러시아의 만주 강점에 분개해야 할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바로 대한이다. 만주 점령을 획책한 건 러시아이니, 만주에 역사적 연원을 두고 북방에 웅비하고 있는 우리 대한에게 모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에는 일본의 위협을 운운하며 러시아에 의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니, 이는 모기가 귀찮다고 범의 아가리 속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뭐가 다른가?
더 이상 머뭇거리면서 관망하고, 눈치만 봐선 안 된다. 동양 삼국이 손을 잡고, 단호히 러시아에 맞서 싸워야 한다.
아! 일청 양국과 연합 동맹하고, 힘을 모아 어깨를 나란히 하여 용기를 북돋아 전진하여, 시베리아 철도를 부수고 러시아를 우랄 너머까지 쫓아내야만, 대한이 동양의 대국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이다.」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작성한 논설은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반 러시아적 언사를 쏟아 내고 있었다.
친개화당, 중도적 민족주의 성향의 황성신문은 그간 딱히 일본에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주 위기가 재점화되자, 대놓고 일본과의 동맹과 러시아와의 항전을 외치고 나섰다.
결국 만주 문제가 곧 대한 민족주의의 핵심이고, 이를 건드린 러시아는 적대해야 할 나라였다.
“황인의 아시아! 서양 열강을 동양에서 몰아내자!”
여기에 당대를 풍미하고 있던 아시아주의가 결합되니, 동양 삼국 연대를 부르짖는 소리가 더욱 커지게 된 것이다.
“이건 대한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해당 신문은 당분간 정간시키고, 기자에게는 따끔한 주의를 주겠습니다.”
주한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의 항의에 내무대신 박영효는 황성신문을 정간시키고, 장지연은 약식 재판에 기소했다. 서양 열강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개화당 정부 입장에서도 아시아주의는 대놓고 내세울 수 없는 이념이었다.
지식인 사회의 여론은 장지연에게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라! 정부의 언론 개입 반대한다!”
“황성신문 정간에 반대한다!”
“장지연 주필을 석방하라!”
결국 정간은 1주일에 그쳤고, 장지연도 언론의 자유를 인정받아 불기소 처분으로 황성신문에 복귀했다.
사실상 보여 주기에 끝났으니, 개화당 정부의 속내를 은연중에 드러낸 셈이었다.
“성상께옵서 일본에 대해서 좀 더 유화적으로 나오시면 좋을 터인데…….”
“러시아보단 일본이 더 믿을 만하지 않소? 왜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이토록 강경하신지…….”
중립론자인 서광범과 유길준을 제외하고, 개화당 내각은 점점 더 일본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정파 간의 차이도 크게 나지 않았다. 독립당 지도부였던 서광범과 유길준이 내각에 입각하고, 서재필이 주미 공사로 파견되면서, 개화당과 독립당의 대외 정책관은 거의 일치했다.
제국당은 근황파를 자부했지만 가장 강경한 민족주의 정파니, 만주 점령에 분개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신하된 도리로 성지(聖旨)를 받들어야 하오. 일단 성심을 헤아려 봅시다.”
김옥균은 중도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그 역시 러시아보다는 일본에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선도, 내각과 군부, 여론의 동태를 읽고 있었다.
‘현 정세에서는 실제와 달리 경복궁 쿠데타, 동학농민전쟁 진압, 을미사변,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일본에 대한 관점이 다른 건 이해한다. 하지만…….’
역사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선은 실제 역사의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 정부와 군부의 실력자들은, 대부분 실제역사에서 조선의 독립을 짓밟고 숱한 조선인을 학살한 자들이었다.
‘원로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더 설명할 것도 없지. 총리대신 사이온지 긴모치, 좀 낫지만 정미 7조약을 추진한 당사자. 내무대신 가쓰라 다로,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를 실행으로 옮긴 자. 육군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 초대 조선총독으로 무자비하게 조선을 탄압한 자. 이자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가 있나?’
물론 역사가 바뀜으로써 그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런 자들과 손을 잡으려니 강렬한 심리적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대한에 필요한 건 전쟁보다 평화다. 중립, 가능한 중립을 지키고 싶다. 하지만 과연 달리는 철마 위에 중립은 가능한가?’
중립과 동맹의 간극 사이에서, 이선은 고민했다.
대한제국이 중립 카드를 고려하는 사이, 1904년의 정세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륙에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