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55
– 36화에 계속 –
2부 36화 불온한 공기
도쿄 히비야(日比谷) 공원.
히비야 공원은 메이지 36년(1903)에 개장한 일본 최초의 도시 계획에 의한 서양식 공원으로, 도쿄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각종 집회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곳이었다.
3월 5일 토요일은 러시아 규탄 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집회를 허가한 경찰의 예상을 깨고, 참가자는 수만 명에 이르렀다.
아직 추운 날씨, 참가자들이 내뿜는 불온한 공기가 도쿄의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러시아는 일본의 적, 아시아의 적이다! 언제까지 러시아의 위협을 감내하고 살 것인가!”
“러시아는 일본에 삼국간섭을 강요했던 나라다. 그 원한도 채 씻기지 않았는데, 이제는 노골적으로 모욕을 주고 있다!”
“군함에 의한 상선 격침은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굴욕적인 태도로 러시아에 배상이나 구걸하겠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시위대는 분노했다.
1차적인 원인은 전쟁을 부르짖는 호전적인 언론이 선동을 부추긴 것도 있었다. 이들은 일본의 공격적 정책이나 주변국에서 저지른 공작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도 하지 않고, 그저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의 사회 불안이었다.
그동안 무거운 세금으로 짓눌려 온 일본인들은, 부국강병에 필요한 군비라는 이유로 거듭된 증세(增稅)를 참고 있었다.
황민화 교육을 받은 일본 국민은 제국의 운명이 곧 자신들의 운명이라 믿고 인내해 왔다. 군함이 새로 진수될 때마다, 새로운 사단이 편성될 때마다, 일장기가 머나먼 섬들에 휘날릴 때마다 열광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삶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메이지 일본의 화려한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의 그늘에는 평범한 국민들의 세금과 노동력 부담이 있었다.
“대체 그동안 막대한 세금을 들여 군대를 양성한 이유가 뭐란 말인가? 저 막강한 함대는 어디에 쓸 것인가? 바로 이런 상황에 쓰라고 있는 게 아닌가!”
“대체 국민의 대표라는 정부와 의회는 뭘 하고 있는 거냐!”
“굴욕외교 촉발시킨 내각은 사퇴하라!”
마침내 그동안 억눌려졌던 정치적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 국민의 막대한 의무에도 불구하고, 투표권은 전 국민의 2% 정도만 행사할 수 있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그나마 오늘 같은 가두집회였다.
당장 국민의 분노는 정부가 아니라 러시아를 향하고 있었지만, 언제든지 분노의 방향이 바뀔 수 있었다.
“가자! 러시아 공사관으로!”
“침략자 러시아를 타도하자!”
분노한 군중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몰려들었다. 험악한 상황을 파악한 공사관 직원들은 관저 문을 굳게 잠그고, 방어 태세에 들어섰다. 그리고 일본 정부에 신속히 경찰 파견을 요청했다.
“죽여라!”
“로스케 놈들을 끌어내라!”
격렬한 투석전이 벌어졌다. 시위대는 공사관을 향해 돌을 던졌고, 공사관 직원들은 기와를 깨서 맞섰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삐익! 삐익!
“폭도들은 즉각 해산하라!”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출동한 경찰들은 시위대를 곤봉으로 진압했다.
“야, 이 러시아 앞잡이들아!”
“왜 정부가 적들을 보호하고 자국민을 탄압하는 거냐!”
일본인들은 아직까지 ‘관(官)’의 권위에 맞서 싸울 정도는 아니었다. 경찰의 진압에 시위대는 대부분 해산되었다.
산발적으로 공격은 계속되었다. 일부 시위대는 러시아 정교회 소속 성 니콜라이 성당을 방화하려고 시도했다. 방화 직전에 출동한 근위사단 병사들에 의해 간신히 화재는 막을 수 있었다.
“정부는 서양의 앞잡이다! 국민의 의기를 이렇게 진압하는 정부는 반드시 심판을 받으리라!”
“전쟁! 우리는 전쟁을 원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파가 없기 때문이다!”
“증세 반대! 번벌 정권 타도하자!”
형식적으로는 대의제 입헌 국가라 해도 실제로는 번벌 과두 정권인 일본에서 좌우익은 정치적으로 희미한 존재였지만, 대중의 분노를 재빨리 파악했다.
우익은 전쟁과 팽창주의를 부르짖기 위해, 좌익은 복지와 투표권 확대를 위해 대중을 선동했다.
러시아에 비해 지극히 고요했던 일본의 정치 상황은, 급격히 혼돈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게 대체 무정부 상태가 아니면 뭐요! 황거(皇居)의 지척에 있는 히비야에서 폭동이라니! 만약 공사관이 정말로 습격당했으면 즉각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아닌가! 대체 경찰은 왜 이런 상황을 방기한 거요?”
총리 사이온지는 분개했다. 메이지 유신 이래 집회는 자주 있었다지만, 이렇게 격화된 적이 없었다. 만약 러시아 공사관이 습격당해 외교관들이 피해라도 입었다면, 북경 공사관 구역을 습격해 전쟁을 촉발한 의화단 전쟁이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각하, 경찰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단지 폭도들의 격화를 예측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계엄령을 선포하면 집회를 금지시키고,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히 진압할 수 있습니다.”
“허! 계엄이란 게 그리 쉽게 선포할 수 있는 거요? 폐하께옵서 재가하시겠소?”
사이온지는 계엄령을 외치는 내무대신 가쓰라를 의심했다.
집회 허가, 격화되는 시위, 정부의 요구에도 지체된 경찰의 출동, 뒤늦은 강경한 진압. 내무부의 행보에는 수상한 점이 많았다.
가쓰라는 사건 당일부터 계엄령을 주장했는데, 그렇게 되면 도쿄가 육군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었다.
육군이 내각을 무너트리려고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닌지, 사이온지는 의심했다.
“계엄령은 없소. 목소리만 큰 극히 일부의 난동에 불과하고, 국민의 대다수는 정부를 지지하오. 근본적인 문제는 증세와 투표권 문제요. 상황이 진정되면 정부가 앞장서서 개혁을 해야 하오.”
자유주의적 개혁을 지지하는 사이온지는 투표권 확대와 군비 절감에 공감하고 있었고, 더 늦기 전에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 양보하는 자세를 보였다간 정말로 내각이 끝장이다. 어떻게든 사죄와 배상을 받아 내야 해.’
사이온지 내각은 계엄령은 내리지 않았지만, 도쿄 일대에 위수령을 내려 근위사단이 황거와 정부를 방어하게 했다.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러시아의 양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순순히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주일 러시아 공사관 습격! 일본 폭도들, 복서(의화단)의 폭동을 재현하려고 하다!」
「문명국의 흉내를 내려고 하지만 일본인은 여전히 야만인일 뿐이다. 따끔한 징벌을 내려야 한다!」
러시아 언론도 극동에서의 상황 전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외교 공관이 공격당했다는 건 굉장한 모욕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러시아인에게 극동의 충돌과 폭동 따위는 너무나 머나먼 일이었다.
러시아 정부 역시 극동의 상황 전개를 재빨리 활용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목전에서 혁명적 위기가 닥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1890년대의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과 달리, 1901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불경기는 1903년에 절정에 달했다. 자본가들은 이익의 감소를 노동자들의 해고와 임금 삭감으로 대처했고, 정부 당국은 노동자 파업과 시위를 가혹하게 탄압했다.
농산물 가격도 떨어지면서 인구 대다수가 농민인 러시아 농촌도 타격을 입고, 사회적 위기가 싹 트고 있었다.
러시아 본토에서는 위기가 덜했지만, 러시아의 통치에 강한 반감을 품고 있는 폴란드, 핀란드, 캅카스 일대에는 혁명적 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내무대신 플레베는 소수민족들에게 전례 없는 ‘러시아화’ 정책을 강요하고 있었고, 이는 피지배민족의 강한 반감과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며, 제국 내에서 선진적인 공업지대를 보유한 폴란드 노동자들의 저항이 가장 강했다.
3월 8일, 러시아 제국령 폴란드 바르샤바.
“부당해고 철회하라!”
“임금삭감 철회하라!”
“노동조합 파괴 공작 중단하라!”
“일 8시간 노동을 위하여!”
“노동자 동지들! 우리는 총파업을 결의한다!”
바르샤바와 우치 공업지대에서 잇달아 파업이 발생하고, 폴란드 전역으로 총파업이 확산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총파업이 폴란드를 넘어 러시아로 전이되는 걸 차단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였다. 러시아 노동자들의 동태도 점점 심상치 않았다.
신성한 전제군주라 확신하는 차르 니콜라이 2세에게 ‘신민에게 양보한다’라는 선택지는 없었고, 강경진압을 하거나 관심을 딴 데로 돌려야 했다.
“극동에서의 빠르고 신속한 승리야말로, 제국을 단결시키는 길입니다.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 따위는 신속하게 격멸시킬 수 있습니다.”
“짐은 결코 전쟁을 원치 않소. 하지만 일본의 무례함을 계속 지켜만 볼 생각도 없소.”
차르는 전쟁을 원치 않았지만, 일본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13년 전, 짐을 암살하려 했던 일본에도 배상 없이 흔쾌히 관용을 베풀었거늘, 상선 한 척 침몰한 일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 애초에 첩자를 보낸 건 일본군이 아닌가. 무례한 놈들!’
니콜라이는 1891년 오쓰 사건 당시에 관대하게 넘어가려고 했다. 그나마 야마가타 등 일본 강경파들의 정계 은퇴를 요구했던 것도 이선의 조언을 들어서였다.
‘만약 일본과의 분쟁이 발발한다면, 한국을 최소한 우호적 중립으로 묶어 놔야 한다. 이선이 황제로 있는 이상 괜찮겠지.’
니콜라이는 한국인이나 대한제국 정부는 몰라도, 최소한 이선은 확실히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다.
전제군주인 차르에게 있어 군주란 곧 그 나라였으므로, 한국은 곧 러시아의 편이었다.
* * *
한국이 혼란에 빠진 일본의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으로 쳐다보기에는, 국제정세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한국은 사태 초기부터 정보력을 최대한 가동해서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본의 소요사태가 전이될 수 있으니, 당국은 치안 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히 재한 일본인들의 동태를 각별히 살피도록.”
“예, 알겠습니다!”
이선은 상중(喪中)이라 상복을 입고 있음에도,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정부에 확실한 조치를 요구했다.
우려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었다.
경상남도 동래부 부산진.
부산은 본래 왜관(倭館)이 있었을뿐더러,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된 이래 일본의 대 조선 무역이 집중된 곳이었다.
부산 개항장에는 일본인이 다수 거주했고, ‘부산 땅 삼 분의 일은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부산의 경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대한제국 관리 입장에서는 영 거슬렸지만, 지금껏 일본인들이 딱히 사고 치거나 범법을 저지르는 건 없었으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동래부 주민 대부분이 대일 무역과 관계가 있었다.
3월 20일. 일본 열도의 불온한 공기가, 바다 건너 부산에까지 전이되기 시작했다.
“저놈, 로스케 놈이다!”
“죽여 버려!”
부산 주재 러시아 부영사 기르스는 개항장을 걷던 중에 공격을 당했다. 일본 거류민들이 돌을 던지면서 기르스를 공격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기르스는 부랴부랴 영사관으로 도주했다.
“이런 무례한 놈들! 당장 영사관을 보호하기 위해 출동한다!”
때마침 부산항에는 러시아 포함 보보르가 정박 중이었다. 외교관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병 수십 명이 상륙하여 영사관을 보호하려 했다.
소문을 들은 일본 거류민들이 대거 러시아 영사관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술에 취한 자들이 선동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비록 도쿄에서는 실패했지만, 여기서는 할 수 있다! 러시아 침략의 본거지, 영사관을 박살 내자!”
“와아아아!”
폭도로 돌변한 거류민들이 돌과 방망이를 휘두르며 영사관을 공격했다.
“응전하되, 발포는 하지 마라!”
수병들이 응전하여 폭도들을 몰아냈지만, 수백 명에 달하는 수에 압도되어 밀리기 시작했다. 두들겨 맞는 수병들이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탕! 탕!
공포(空砲) 소리와 함께 대한제국 경무서 순검들과 헌병들이 출동했다.
“러시아 영사관 주변의 일본 거류민은 즉각 해산하라! 해산에 불응하면 진압하겠다!”
“흥! 개항장은 치외법권 구역이니, 조선인들이 감히 무력을 쓸 수 없다!”
일본인들은 치외법권을 운운하며 해산에 불응했다. 그러자 마침내 진압이 개시됐다.
“우리는 충분히 경고했다. 폭도들을 진압한다!”
퍽! 퍼억!
헌병과 순검들은 소총 개머리판과 곤봉으로 폭도들을 무자비하게 때려 잡았다.
정규군의 무력 앞에 폭도로 돌변했던 거류민들은 모조리 진압되고, 굴비 엮듯이 묶여 개항장 감리서로 끌려갔다.
그때야 비로소 부산 주재 일본 영사 가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개항장은 치외법권 구역 아닙니까? 어찌 군대를 동원해서 거류민들을 공격한 거요! 즉시 석방시키시오!”
“바로 그 치외법권을 대표하는 영사관을 습격한 건 거류민들이오. 러시아 영사관의 구조 요청이 있었소이다. 우리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소.”
대한제국 관리들은 전에 없이 강경한 태도로 나섰다. 영사는 결국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두고 봅시다. 일본 정부의 강력한 항의가 있을 겁니다!”
과연 일본 언론은 부산 개항장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 군경, 러시아 수병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거류민들을 집단 폭행하고 검거!」
「이로써 한국이 누구의 편에 섰는지 분명히 드러냈다. 러시아 군인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민간인을 폭행하고 체포하다니, 한국은 러시아의 앞잡이인가?」
선후관계를 싹 빼고 왜곡보도가 이어졌다.
이른바 ‘러시아 앞잡이 조선’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지만, 일본 정부는 냉정하게 반응했다.
“만약 분쟁을 피할 길이 없다면, 한국은 무조건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렇소. 그래야 러시아를 막아 낼 수 있지.”
일본 정부와 군부 모두, 유사시 한국을 일본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데 일치했다.
한국 조야의 여론을 격동시키고 있다지만, 결국 국정을 책임지는 건 황제와 정부인 이상, 일본은 이선과 개화당 내각의 호의를 사기 위해 노력했다.
정부는 기껏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일개 거류민과 언론이 일을 망치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겨우 이따위 유치한 충돌로 외교관계를 해쳐서는 안 되오. 한국 황제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도 모자랄 판에, 이 무슨 멍청한 짓거리야!”
사이온지는 주한 공사 하라에게 즉각 훈령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