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58
– 39화에 계속 –
2부 39화 테러
영국발 ‘러시아의 세계 정복 음모’와 ‘러시아 스파이’ 기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나라는, 영국과 러시아, 청국과 한국도 아닌 일본이었다.
일본 우익과 팽창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의문이었던 온갖 문제의 근원이 밝혀진 기분이었다.
「러시아의 세계 정복 음모가 천하에 밝혀졌다! 더 놀라운 것은, 청국 북양대신 고(故) 이홍장과 한제(韓帝) 이선이 로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에 본지는 영국 글로브지의 기사 전문을 번역 공개한다. ……」
일본 언론은 단순히 번역만 하지 않았다. 독자적인 의견이 첨부되었음은 물론이었다.
「로탐이 청국과 한국 핵심부를 장악했다는 건 이웃나라의 국민으로서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범세계적 음모에 일본이라고 안전할까? 물론 일본에도 로탐은 존재한다. 여러 정황 증거를 보건대, 본지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메이지 24년(1891)의 러시아 황태자 방일과 오쓰 사건의 충격적인 기억을 잊은 일본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누가 이익을 보았나? 황태자의 목숨을 구했다는 완화군 이선이다. 러시아는 암살 미수를 일본 애국자들의 음모로 간주하여 내정간섭을 강요했다. 오늘날 그들은 러시아 차르와 한국 황제가 되었다. 러시아의 지배자와 그 이익을 집행하는 로탐으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누가 이익을 보았나? 육군의 대부 야마가타 원수, 오야마 원수에게 정계 은퇴를 강요받았다. 야마가타 원수의 은퇴로 가장 이득을 보고, 러시아에 굴욕적인 외교를 거듭 해 온 자 – 그가 바로 로탐이다. 그렇다. 일본 로탐의 수괴는 바로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 후작이다!」
「이토 후작은 유명한 공로증 환자다. 러시아에 관해서라면 기를 펴지 못한다. 우리는 그동안 이 노인이 전쟁을 두려워하는 새가슴이라, 서양에 굴종하는 사대주의자라 비판해 왔지만, 실상은 로탐의 수괴로서 암약하며 일본의 앞길을 막아 왔던 것이다.」
「오쓰 사건의 후속 처리 당시, 이토와 마쓰가타는 러시아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였다. 메이지 28년 시모노세키 조약 이후, 러시아가 부당하게 삼국간섭을 주도하여 제국의 정당한 전리품인 요동반도 반환을 압박했을 때, 총리 이토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메이지 33년 북청사변(의화단 전쟁) 이후 러시아가 만주를 점령했음에도, 총리 이토는 이를 용인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러시아에 기울어진 결정을 내리는 이토의 정체는 무엇인가?」
「러시아가 만주를 넘어 동양 전체를 지배할 야욕을 드러냈음에도, 이토는 오히려 일로협상을 주장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여 차르를 알현했다. 이토가 러시아 최고 훈장을 수여 받은 건 명목상의 이유인 양국의 우호친선에 기여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해 온 밀정 짓의 대가로 받은 것이다. 이토는 일로협상을 주장하며 일영동맹을 방해했고, 대로개전을 향한 우리 군과 국민의 분연한 의기조차 짓밟았다. 그가 로탐이 아니라면, 누가 로탐이겠는가!」
일본 정계의 최고 원로인 이토의 행각을 하나하나 지목하며 러시아 스파이로 통렬하게 탄핵한 ≪도쿄아사히≫는 당일자로 정간 처분을 받았지만, 이런 조치는 오히려 의혹을 더하는 꼴이 되었다.
“뭐야, 이토 후작이 로탐의 수괴였다고? 이게 말이 되나?”
“초대 내각 총리대신, 추밀원 의장, 헌법의 기초자가 로탐이면 이 나라가 대체 뭐가 되나?”
“이렇게 증거가 많지 않나! 틀림없어. 이토가 로탐이야.”
“하긴, 이토라면 선황(고메이 천황)의 시해 의혹도 받은 적 있지.”
“이런 죽일 놈. 황은을 입고 온갖 요직을 도맡으며 정부를 지배해 온 놈이, 천황과 국민을 저버리고 외적의 밀정 노릇을 해?”
“바로 정간하는 거 봐. 사이온지 내각도 이토의 조종, 아니 러시아의 조종을 받는 게 틀림없어.”
“로탐은 처단해야 한다!”
여론은 뒤숭숭했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우익 성향의 신문들은 계속 의혹을 더했다.
그런데 그 논리라는 건 조악하기 짝이 없는 확증편향에 불과했으나, 이미 인지부조화에 빠진 자들의 눈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유능하다 알려졌던 이홍장이, 왜 삼국전쟁 당시 회군과 북양 함대를 아끼려는 졸렬한 지도력으로 전쟁을 말아먹었나? 종전 이후에는 왜 러시아를 방문하여 밀약을 맺었나?
답. 러시아 스파이라서.
이선은 어떻게 러시아에서 돌아와 권력을 잡았나? 어떻게 오쓰 사건을 막을 수 있었나? 러시아의 삼국간섭은 왜 조선만 비켜 갔나? 러시아는 왜 조선과 이선에만 무제한적인 호의를 베풀었나?
답. 러시아 스파이라서.
이토는 어떻게 정적 야마가타를 권력에서 밀어낼 수 있었나? 어떻게 일본 정치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는가? 삼국간섭과 만주점령에도 대응하지 않고 러시아의 만주 지배를 용인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 러시아 스파이라서.
1885년 천진 조약과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은 모두 공교롭게도 이홍장-이선-이토가 각국의 대표였다. 청조일전쟁은 조선의 독립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청나라를 대신해 러시아가 동양의 패권자로 떠오르게 만들려는, 3인의 합동 모략이었다. 시모노세키는 이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1896년 이홍장과 이선의 러시아 방문, 1901년 이토의 러시아 방문은 모두 국빈으로서 차르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그 직전에 삼국간섭과 만주점령이 있었다. 바로 스파이 행위를 치하받고, 러시아의 동양 지배를 완성하기 위한 방문이었던 것이다.
동양 삼국은 러시아 스파이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이게 무슨 미친 개소리야! 내가 유신 이전부터 40년 넘게 일본을 위해 헌신했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이 나를 로탐으로 몰아!”
이토는 격노했다. 자신의 정치 인생은 모두 일본의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을 달성해, 유신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급적 전쟁을 피하려는 온건파 역할을 맡았지만, 이는 이토가 진심으로 평화주의자라서가 아니었다. 그는 전임자 오쿠보 도시미치의 내정우선론을 계승하여, 일본의 국력 한계를 인지하고 내실을 닦은 후에 국외로 팽창하자는 것이었다.
때때로 서양에 굴욕적인 자세를 보이긴 했지만, 1864년 4국의 조슈 침공을 기억하는 이토로서는 서양 열강과는 어떻게든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서양과의 전쟁은 멸망으로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정치 행위가 러시아를 위한 간첩 행위라고 규탄 받으니, 이토로서는 격분할 만 했다.
“왜 하필 나냐? 왜 나만 갖고 음모론을 펼쳐? 제기랄, 생사람 잡지 마라!”
이토는 1867년, 메이지의 부친인 고메이 천황을 시해했다는 의혹을 오랫동안 받아 왔다.
에도 막부와 토막파의 대결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에,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지지하던 고메이가 급사하고 어린 메이지가 즉위한 건 두고두고 의혹을 낳았다.
흑막 이와쿠라 도모미가 천황 시해를 주도하고, 이토가 실행범이 되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당시만 해도 신분제 사회였는데, 천한 신분이었던 이토가 급격하게 출세를 한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정부는 유신 반대 세력이 퍼트린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치부했으나, 당사자인 이토로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이런 개소리의 배후에는 춘산장 영감과 육군이 있는 게 틀림없어. 미친 영감탱이 같으니, 나를 끌어내리자고 나라를 이런 평지풍파로 몰아? 벌써 노망인가?”
이토는 로탐 의혹을 제기하는 배후에 야마가타와 육군을 의심했다.
한때 고향 친구이자 유신 동지였던 이토와 야마가타의 관계는 최악을 향해 가고 있었다.
오쓰 사건 이후 러시아에 의해 10년간 은퇴를 강요받았던 야마가타는, 그 한을 풀려는 듯 강경한 대러시아 여론을 주도했다. 젠쇼마루 사건 이후에는 아예 개전을 부르짖고 있었다.
이토가 지명한 후계자인 사이온지를 끌어내리고, 야마가타의 심복이자 육군과 조슈벌을 대표하는 가쓰라를 총리에 앉히려는 공작을 벌였다.
“나를 쓰러트려 내각을 무너트리려고 하는 모양이지? 어림도 없다, 암! 성심을 내가 잡고 있는 이상 야마가타가 뭔 짓을 해도 안 된다.”
이토는 천황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정치에 가급적 개입하기를 꺼리는, 대인기피증이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정치인들은 더욱 만나기를 꺼리는 메이지였지만, 유독 이토만큼은 신뢰했다.
이토는 젊은 시절부터 메이지의 ‘술친구’나 다름없었고, 오랫동안 형성된 신뢰관계는 다른 이들이 넘볼 수가 없었다. 이토가 일본 정계의 정점에 있는 비결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상황 전개는 이토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이토 후작이 황공하게도 천황 폐하의 특별한 총애를 믿고 그사이에 함부로 입을 놀려 국시 단행을 방해함으로써 국가 백 년의 대계를 그르치는 일이 있으면, 그 죄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국민의 공분을 이토 후작에게 경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판단하여 경고문을 공표하는 바이다.」
대외강경파, 특히 러시아와의 전쟁을 부르짖는 대로동지회(對露同志會)가 공개적으로 이토를 규탄하는 경고문을 발표했다. 여러 우익단체가 결합된 대로동지회는 당시 가장 강력한 재야집단이었다.
이토를 러시아 스파이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국정에 개입하지 말고 닥치라 경고한 것이다.
“말뿐인 경고만으로는 안 돼. 이토를 처단하여 로탐을 징벌하고, 러시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막부 말기 이래 암살자를 ‘지사(志士)’라고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혼란의 막말에는 수많은 이들이 정치적 암살을 당했고, 유신 이후에도 10년간은 요인 암살이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반정부 세력에 의한 유신 정부 요인 암살은 1878년 권력의 정점에 있던 내무경 오쿠보 도시미치의 암살로 정점에 이르렀다. 오쿠보는 도쿄 한복판 백주대낮에 불평 사족에게 참살당했고, 이는 유신 1세대의 퇴장과 2세대인 이토와 야마가타가 급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쿠보 암살 이후 충격적인 요인 암살은 없었으나, 정치인에 대한 암살 기도는 계속 이어졌다.
이런 경향은 20세기에 들어와도 달라지지 않았으니, 1901년에 4차 이토 내각의 체신대신이었던 호시 도루(星亨)가 검객에 의해 참살당했다. 이유는 ‘부패 혐의’였다.
“각하, 공공연히 로탐 처단을 운운하는 자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외출은 자제하심이…….”
“막말과 유신 초의 혼란기도 살아남은 나일세. 그깟 미치광이들이 두려워서 집에 틀어박혀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사이온지는 이토에게 암살 시도를 경고했지만, 이토는 개의치 않고 정치 행보를 이어 나갔다.
4월 29일 아침, 이토는 외무성을 방문하기 위해 저택을 나섰다. 외무대신 고무라를 만나, 젠쇼마루 사건 후속처리를 위한 러시아와의 협상에 훈수를 두기 위함이었다.
경호원을 대동한 이토의 마차가 외무성 정문에 들어설 무렵.
프록코트를 입고 실크해트까지 쓴 양장 차림의 중년 사내가 회중시계를 살피는 척했다.
워낙 잘 차려입고 있는 데다 태도도 정중해서, 외무성 정문 경비원조차도 그가 고위 관료라고 여길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국적(國賊) 이토, 천벌이다!”
경비원이 의식할 틈도 없이, 사내는 품속에서 폭렬탄을 꺼내 마차를 향해 투척했다.
콰앙!
순식간에 외무성 정문은 아수라장이 됐다.
폭렬탄은 마차의 바로 밑에서 터져 버렸다. 마차 안에서 서류를 살피고 있던 이토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혼절했다. 마차 후방의 디딤대에 서 있던 경호원들은 폭발에 휘말려 튕겨 나갔다.
“으아아! 이랴, 이랴아앗!”
폭발에서 살아남은 마부가 말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불타는 마차는 외무성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대일본제국 만세!”
아수라장을 뚫고 경비원들이 잡으러 오자, 암살자는 단도를 빼 들어 자신의 목을 찔렀다. 피가 목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테러 소식은 빠르게 타전되었다.
“호외요! 호외!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 후작, 외무성 정문에서 폭탄에 맞아 중상!”
“범인은 현장에서 자결! 국적 이토 운운!”
범인의 정체는 곧 밝혀졌다. 구루시마 쓰네키(来島 恒喜), 우익 운동가. 전 현양사, 대로동지회 회원. 얼마 전 대로동지회를 탈퇴했다. 범인은 사전에 작성한 성명문에서 자신이 단독범임을 주장했다.
「4월 29일은 소위 오쓰 사건 13주년이다. 이토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암살 사건을 조종하여 일본에 굴레를 씌운 바로 그 날이다. 13주년을 기해, 매국노 이토를 로탐 혐의로 처단한다!」
범인의 특이사항은 15년 전, 당시 외무대신 오쿠마 시게노부의 조약 개정에 반대하여 테러를 모의하다 체포된 적 있으며, 재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오랫동안 경찰의 요시찰 인물로 찍혔던 바 있었다.
“위수령 중에, 요시찰 인물이 폭탄으로 원로대신을 공격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폭거란 말인가!”
사이온지가 격분하여 외쳤다. 이토의 피습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역시 사이온지였다.
“불행 중 다행히도, 후작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다만, 뭐가 문젠가?”
“후작을 살리기 위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한동안 치료에 전념해야 합니다.”
“젠장, 노인네가 말년에 고생이시군.”
사이온지는 혀를 찼다. 죽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중상이었다. 당분간 이토의 정치 행보는 봉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범인이 단독범임을 주장했지만, 사이온지는 즉각 배후를 의심했다.
이토가 쓰러짐으로써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자, 치안을 책임지지만 암살 사건을 막지 않은 자.
‘춘산장 영감과 육군이 아니겠나? 내무부를 야마가타 앞잡이인 가쓰라에게 계속 맡겨 둔 게 실수였다. 진작 교체했어야 했는데.’
야마가타 및 육군과 지나치게 대립하는 모양새가 될까 봐, 사이온지는 가쓰라의 경질을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사이온지는 주한 공사 하라에게 즉시 귀국을 명했다. 현재 사이온지가 가장 믿을 만한 정치가는 하라였다.
“이토가 나와 함께 러시아 스파이로 몰려 피격이라. 참 역사의 변화라는 건 역설적이기 짝이 없어.”
이토 테러 사건은 즉각 대한제국에도 보고가 됐다.
보고문을 받은 이선은 기묘한 기분이었다.
이토가 이선과 함께 일본에서 러시아 스파이로 몰려, 일본 내에 강경한 여론이 책동되고 있다는 건 분명 한국에게 위기로 보였지만, 이선은 위기를 기회로 포착했다.
일본은 마치 유신 초의 혼란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 혼란을 이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