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60
– 41화에 계속 –
2부 41화 어부지리
“호외요! 호외! 야마가타 아리토모 후작, 자택 앞에서 폭탄에 맞아 중상!”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 무정부주의자로 추정!”
테러 사건에서 채 3주도 되지 않아, 유사한 내용의 호외가 도쿄 시내에 뿌려졌다.
“세상에, 또 테러야?”
“이거 나라꼴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암살이 난무했던 유신 초로 돌아간 느낌일세.”
이토 히로부미에 이어 야마가타 아리토모까지 피습을 당하자, 일본 정계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이토와 야마가타는 메이지 유신의 원훈이요, 문관과 무관을 대표해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해 오던 인물들이었다. 각 파벌을 대표하는 두 노인이, 불과 17일 사이에 모두 테러로 불구가 되었으니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야마가타 원수께서는 불행 중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단, 왼쪽 팔이 직격을 맞는 바람에 절단해야 했습니다. 당분간 치료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군의총감의 보고를 받은 사이온지는 기시감을 느꼈다.
“알겠소. 군의총감이 책임지고 치료를 전담하시오. 절대안정이 필요하니, 바깥세상의 일로 원수의 심기를 어지럽혀서는 안 될 것이오.”
군의총감이 경례와 함께 물러나자, 곁에 있던 하라가 직언했다.
“총리대신, 과연 불행 중 다행입니다. 만약 이토 후작만 쓰러진 상황이었다면, 야마가타 원수가 어떻게든 내각을 무너트리고 군부 인사를 총리로 내세웠을 겁니다. 원수가 쓰러진 지금이 기회입니다. 머리를 잃고 혼란에 빠진 조슈벌을 제압해야 합니다.”
“원수가 피습당하자마자 공세를 펼친다면, 저들의 반발이 크지 않겠소?”
사이온지는 주저했다. 그는 육군 수뇌부와 결정적으로 대립하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야마가타가 비웃어 온 ‘손에 흙 묻히기 싫어하는 귀족 도련님 근성’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평민 출신 하라는 달랐다. 그는 대립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야마가타 원수 없는 조슈벌은 머리 잃은 손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쓰라 대장의 머리가 외관상 크긴 하지만, 절대 본인이 머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총리께서는 원로들을 맡아 주십시오. 제가 입헌정우회와 중의원을 맡겠습니다. 사건 처리를 제게 맡겨 주십시오.”
마침내 사이온지는 결단을 내렸다.
“좋소. 개각을 단행하지. 하라 군, 그대를 내무대신으로 임명하고, 예전처럼 정우회의 간사장도 맡기겠소. 함께 이 위기를 헤쳐 나갑시다.”
“신명을 다해 총리를 보좌하겠습니다.”
테러 다음 날인 5월 16일, 내무대신과 경시총감 교체가 발표되었다.
“내무대신과 경시총감은 국가의 치안을 책임져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신의 두 원훈이 괴한에게 피습당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책임을 물어 경질한다. 후임 내무대신으로는 전 체신대신, 주한 전권공사 하라 다카시를 임명한다. 경시총감의 직무는 당분간 부총감이 대리한다.”
치안을 책임져야 할 내무대신이 책무를 다하지 못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교체 명분이 없었다.
그동안 온갖 문제에도 자리를 유지해 오던 가쓰라는, 보호자인 야마가타를 잃자 대처할 틈도 없이 그대로 경질되었다.
조슈벌에 속하는 경시총감까지 교체되자, 신임 내무대신 하라는 재빨리 경찰력을 장악했다.
“원로 여러분. 현재 일본은 유신 이래 미증유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두 분의 원훈이 습격당해 중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 계시니, 이 후배의 마음도 찢어질 듯 아픕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일부 어리석은 국수주의자, 과격한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혼란이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긴모치, 삼가 황명을 받아 총리에 임명된 이상, 결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토와 야마가타의 피습으로 다음은 자기 차례가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원로 마쓰가타 마사요시 전 총리와 이노우에 가오루 전 총리, 육군을 대표하는 참모총장 오야마 이와오 원수, 해군을 대표하는 야마모토 곤노효에 해군대신이 총리의 말을 경청했다.
과연 ‘삿쵸 번벌 정권’이라는 비판처럼, 피격당한 원로 이토와 야마가타, 이노우에는 조슈, 마쓰가타·오야마·야마모토는 사쓰마였다.
“우리 원로 일동은 내각을 확고히 지지하며, 총리에게 상황을 해결할 전권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대일본제국 해군은 정부의 명령에 언제나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노우에가 조슈 출신이긴 해도 이토와 정치적 행보를 늘 같이해 왔으니, 당연히 사이온지를 지지했다.
북수남진과 해주육종을 대표하는 마쓰가타와 야마모토는 당연히 내각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제 좌중의 시선은 오야마에게 쏠렸다. 사쓰마 출신이긴 해도 오쓰 사건 이후 러시아에 의해 야마가타와 함께 정계은퇴를 강요받았다 복귀한 오야마는, 야마가타 못지않은 대러 강경파였다.
“대일본제국 육군은 오직 천황 폐하의 명령을 받을 뿐입니다. 폐하께서 칙명으로 조각(組閣)을 명하셨으니, 어찌 정부를 따르지 않겠습니까?”
오야마도 내각 지지 의사를 밝혔다. 육군이 상대적으로 찬밥 취급을 받고 있지만, 계속 해군 및 정부와 대립하여 혼란을 이어 나가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그는 육군의 이익보다 대국적인 결단을 내렸다.
“원로 여러분의 지지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어떠한 흔들림 없이, 사태 해결에 매진하겠습니다.”
사건 해결을 맡은 내무대신 하라는 굉장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중의원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입헌정우회 의원들을 설득해 확고한 의회 지지 기반을 만들고, 군부가 아니라 내무부가 사태 해결을 주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놓았다.
“정부는 우익과 좌익에 의해 공격을 받았습니다. 전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은 소수의 극단주의자에 불과합니다. 정부는 안정을 수호할 의무가 있으며,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를 믿고 생업에 종사해 주십시오.”
혁명적 위기가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는 러시아와 달리, 일본은 아직까지 안정적이었다. 국민 대다수는 극단적 좌우익에 의한 테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토 테러에 연루된 대로동지회는 해산 처분을 받았고, 우익 단체들은 오쓰 사건 이후 최대의 된서리를 맞았다.
야마가타 테러에 연루된 좌익 단체들을 상대로도 검거 열풍이 불었으나, 하라는 사태를 키우지 않았다.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을 분리해서 다스리게. 사회주의자들이 골방의 급진적 지식인이 아니라, 직공빈민을 견실히 대표하는 건 바라던바. 일부 과격한 무정부주의자들만 단속한다.”
하라의 판단에는 야마가타를 공격한 테러범 미야가와가 단독범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모진 심문을 받으면서도, 미야가와는 횡설수설을 반복했다.
“나는 민중의 영웅이다! 배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단지 국제 우인이 나를 도왔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놈이 대체 누구냐고?”
“세계혁명을 위해 싸우는 동지다. 러시아에서 배운 폭탄 제조법을 내게 알려 주었다. 러시아 황제와 대신들을 폭탄으로 날려 버린 것처럼, 나는 일본의 혁명가로서 똑같은 일을…….”
「진정한 민중의 영웅이 되려면, 배후 같은 건 없어야 합니다. 우익들이 구루시마를 영웅화하는 걸 보지 않았습니까? 구루시마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죽음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혁명가에게는 오직 강철 같은 의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민중은 동지를 위대한 혁명가로 기억할 것입니다.」
미야가와는 ‘국제 우인’의 말을 떠올리며 버텼다. 자신은 영웅이지, 동지에게 책임을 떠넘길 소인배가 될 수 없었다.
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특별고등경찰 이쥬인 가케아키 경시(경정)는 내무대신에게 직접 보고했다.
“정황상 범인은 단독범인 것 같습니다. 다른 주의자들하고는 무관합니다. 다만, 폭탄 제조를 알려 줬다는 국제 우인이란 자가 범인의 망상에 불을 붙인 건 확실합니다.”
“그자의 흔적은 찾았나?”
“자칭 러시아 혁명가라는데, 추적해 본 결과 김로만이란 이름을 쓰는 러시아 국적의 조선인으로, 유학생 자격으로 입국했습니다. 5월 14일, 사건 발생 하루 전에 요코하마를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습니다.”
“러시아 국적 조선인? 그렇다면 배후에 러시아와 한국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있겠군.”
러시아 국적의 조선인이라면 연해주 거주민이었다. 하라가 한국에서 파악한 바로는, 이들 대부분은 대개 충성스러운 러시아 국민이었다.
“소관의 생각으로는, 테러의 행태가 러시아 과격파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폭탄 테러는 러시아 과격파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지요. 범인도 러시아 과격파들을 숭앙하고 있습니다.”
“굳이 한국이 야마가타 원수를 공격할 이유가 없지. 원수가 대러 강경론을 부르짖고 있으니, 러시아 정보부가 암살을 기도한 거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지. 제길, 정말로 로탐이 횡행하고 있군. 언젠가 러시아에 대가를 청구해야겠어.”
하라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러시아 배후의심은 발표하지 말게. 가뜩이나 언론의 로탐 타령에 여론이 불안정한데 불에 기름을 부을 수 있으니. 자칭 혁명가 광인의 단독 범행으로 처리하자고, 알겠나?”
“예,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나쁘지 않다. 야마가타가 쓰러진 덕분에, 조슈와 육군의 기가 꺾였으니까. 확고한 문민 통제를 이룰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참모총장 오야마는 물론이고, 군부 실세인 참모차장 고다마 겐타로가 조슈 출신임에도 정부를 확고히 지지함에 따라, 머리를 잃은 조슈 번벌은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경질된 가쓰라는 은인자중하며 자택에 칩거했고, 가쓰라의 똘마니인 육군대신 데라우치도 정부에 복종했다.
각자 오른쪽 다리와 왼쪽 팔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이토와 야마가타 두 노인은, 사태 전개를 무기력하게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정부와 군부 일각에서는, 이토와 야마가타의 피습이 상대방에 의한 음모가 아닌지 상호 불신이 만연했지만, 공공연히 의심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결국, 두 원로 테러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사이온지와 하라가 되었다. 원로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군부와 번벌 세력의 반발을 꺾었으며, 비록 혼란을 겪기는 했지만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현재 정국을 주도하는 건 원로와 군부가 아니라 내각과 의회였다.
특히 정치력과 수완을 발휘해 사태 해결을 주도한 하라의 정치적 위상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었다. 정당 중심의 입헌 정치, 확고한 문민 통제를 추구하는 하라의 목표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 * *
대한제국, 황성.
“하라 공사의 귀임 기념 선물이 잘 도착했군. 본인은 선물이라는 건 인지 못해 줬으면 좋겠지만. 경의 노고가 컸네.”
“황공하옵니다. 폐하께서 명하신 대로 이행했을 뿐입니다.”
이선의 치하에 제국익문사 독리 김학우가 고개를 숙였다.
미야가와를 충동질한 ‘국제 우인’은, 김학우가 직접 선발한 연해주 출신 고려인이었다. 표면적으로 러시아 국적이었으나, 실상은 대한제국에 충성하는 제국익문사 요원이었다. 그는 테러 발생 직전 일본을 떠나 연해주로 잠입했다.
일본 내 공작을 주도한 건 표면적으로는 통신사 특파원 이회영이었고, 그 주도면밀한 처신은 일본 당국의 의심을 받지 않고 있었다.
‘야마가타는 오쓰 사건 때 진작 날려 버렸는데, 이렇게 돌아와서 전쟁을 획책하면 곤란하지. 내가 심지에 불은 붙였지만, 뒷일은 사이온지와 하라가 알아서 하겠지. 예전에는 암살을 막아 이익을 얻었다면, 이제는 암살을 획책해 이익을 얻었군.’
암살 사건은 이선의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르 2세와 니콜라이 황태자 암살을 막아 막대한 이익을 얻었던 이선이었다.
일본 정치의 역학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이선은, 약간의 조종만으로 폭탄을 터트리는 데 성공했다.
‘당분간 일본은 사태를 수습하느라 전쟁을 도발하지 못할 거고, 문민 정권이 확고하게 굳어지면 대륙 침략의 망상도 사라지겠지. 문제는 러시아인데, 국내 사정이 혼란하니 동양에서 무리한 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터. 애초에 결단력 부족한 니콜라이가 선제공격을 할 리가 없지.’
러시아는 혁명적 위기에 접근했다. 폴란드와 핀란드에서는 총파업과 시위가 잇달아 벌어지고 있었고, 캅카스와 우크라이나에서는 농민 반란도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정부 당국자를 노리는 테러는 오히려 일본보다 러시아에서 빈번했다.
청나라의 혼란상은 말할 것도 없었다. 광서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경 조정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만주 점령과 영국의 티베트 침공은 청나라의 권위를 바닥까지 떨어트려 버렸다.
‘한국만 반란과 혁명의 무풍지대인가? 우리만 어부지리를 얻는다면, 주변국의 질시를 받을 텐데. 국내 공안 보고서를 보면…….’
제국익문사와 내무부의 보고서를 모두 살펴봐도, 아직 대한제국에서 정치적 위기라고 지칭할 만한 사건은 없었다.
기껏해야 아시아주의와 팽창주의에 선동된 일부 지식인이 한일동맹과 대러 강경론을 부르짖는 정도인데, 대다수 국민에게는 무관심한 사안이었다.
이선이 러시아 간첩 운운했던 영국 신문의 보도는 국내에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일개 언론의 왜곡 보도에 심각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 영국 정부와는 무관한 일이다. 대한과 영국은 긴밀한 우방이니, 일을 더 크게 만들지 말라.”
잠시 격렬하게 일었던 반영 여론도 이선이 영국 공사관을 보호하고 나서자 수그러들었다. 영국은 이선에게 사의를 표했다.
반정부세력이라 부를 정파도 없었다.
20세기 초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노동운동은 한국에서는 아직 미약한 단계에 불과했고, 가장 폭발적인 사안이 될 수 있었던 농민운동도 토지개혁과 전봉준의 노력 덕에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면서 불씨를 제거했다.
참정권 확대 운동이 점차 세를 얻고 있긴 했지만, 이선 역시 다음 선거에서는 참정권을 확대할 의사가 있었으므로 큰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1904년 5월 현재 대한제국은 위기의 무풍지대였다.
하지만, 수면 밑에서는 모종의 음모가 논의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