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61
– 42화에 계속 –
2부 42화 역모(逆謀)
황성, 모처.
어두운 밤, 등잔불 사이에서 밀담이 오고 갔다.
“황제가 위대한 지도자, 애국자라고? 황제는 아시아의 배신자, 아시아의 적이다. 동양 삼국이 연대해야 하는데 황제는 청국을 분할하는 데 동참하고, 일본을 적대하고 있다. 동양의 존망이 달려 있는 시기에, 황제는 러시아와 밀착하여 동양 정복 음모에 가담하다니!”
“동양의 시국은 동양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한다. 백인종이 개입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서양 사대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동양 평화를 위해, 로탐의 수괴인 황제를 타도해야 한다. 그 후에 개화당 정부가 삼국 연대와 아시아의 성전에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김옥균과 개화당 정부도 황제의 총신이 아닌가? 그들이 황제를 대신해 정권을 주도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김옥균은 틀렸어. 개화당을 이끌던 청년 시절 패기는 어디로 가고, 지금은 황제의 개지. 차라리 금릉위가 수상으로 낫겠네.”
“아닐세. 군신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지. 러시아의 앞잡이인 황제만 사라져 준다면, 그들을 얽매는 의무도 없어진다. 황제 위에 한국의 이익, 한국의 이익 위에 아시아 동포의 이익이 있음을 그들도 깨닫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들으면, 경악을 금치 못할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태연히 오고 갔다.
“흠, 황제만 물러나 준다면……. 황자는 아직 태자에도 책봉되지 않은, 겨우 여덟 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절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지.”
“아우인 의친왕 이강은 해외를 떠돌며 여자나 쫓아다니는 한량에 불과하고, 영친왕 이영도 태후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아이나 다름없다. 황족들이 정치에 개입할 여지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잠깐, 그렇게 되면 태상황이 복귀하게 되는 거 아닌가? 태상황은 보수적인데, 동양 연대에 우호적이란 보장이 없지 않나?”
“이미 수족이 다 잘리고 은퇴한 뒷방 늙은이가 뭘 할 수 있겠나? 예전 대원군이라면 모를까, 태상황은 개화당에게 맞설 만한 인물은 못 된다. 여론 무마용 허수아비로 내세우면 된다. 걱정하지 말라.”
“그렇다. 결론은 황제만 사라져 주면 된다.”
문제는 ‘어떻게’였다. 황제는 정부와 군부, 국민의 압도적인 신망과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고 느낀 바가 없나? 한 사람의 의기로 도적을 제거하는 일이 가능하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토, 사이온지, 하라는 모두 로탐이야. 폭탄 열사 구루시마가 로탐의 수괴 이토를 날려 버렸지만, 아직도 로탐의 세력이 저리 강하네. 한국에서 로탐의 수괴를 제거하면, 일본에서도 열렬한 반응이 오겠지. 사이온지와 하라도 타도될 거야.”
“그래, 폭탄이 있네. 마침 5월 31일은 황제의 탄일, 건원절 행사가 예정되어 있지. 경운궁에 불을 질러 혼란에 빠트리게 한 후에, 폭탄을 터트려 어가(御駕)를 제압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 그건…….”
어지간한 ‘역도’들도 ‘대역(大逆)’에는 난색을 표했다.
“그건 무리야. 그 후폭풍은 누가 감당하나?”
“그래, 국민이 절대로 지지할 리가 없네.”
“어리석은 백성을 논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럼 황제가 순순히 물러나 주겠나? 어림도 없는 소리.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방법 밖에 없네!”
“정부와 군부 내 협력자들이 폭탄을 제공하고, 건원절 행사에도 참석하게 해 줄 거야. 충분히 가능성은 있네.”
“뒷일은 러시아가 벌인 일로 조작하면 되네. 러시아에 대한 분노로 폭발하겠지.”
“으, 으음…….”
“그래. 이제 비밀을 알게 된 이상 자네들도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네.”
주모자로 보이는 자는 칼을 빼들더니, 손가락을 찔러 피로 수결(手決)을 했다. 이윽고 강경파들이 모두 수결했다. 따르지 않으면 모조리 죽일 기세였다. 참석자들은 결국 모두 수결을 하게 되었다.
“수결을 한 이상, 동지들은 모두 일원일세. 누군가 배신하여 밀고를 한다 해도, 여기에 적힌 이들은 밀고한 본인을 포함해서 모두 대역죄로 처단될 거야. 그러니 배신은 생각지도 멀게.”
“동지들, 마침내 진정한 유신의 시기가 왔네. 로탐의 수괴, 황제를 제거하면 아시아 해방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야. 일본이, 아니 온 아시아가 우리를 지지하네. 동지들은 해방의 영웅들로 아시아 역사에 영원히 기억되겠지.”
“동양 연대 만세! 아시아 해방 만세!”
“도, 동양 연대 만세! 아시아 해방 만세!”
참석자들은 만세 삼창과 함께 해산했다.
집으로 돌아온 유신회(維新會) 비밀회원 김봉석 정위는 전율했다.
김봉석은 일본 육군 사관학교 유학파였다. 메이지 유신을 본받아 일본식 개혁을 추구하고, 동양 연대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동맹이 체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유신회 가입도 황제의 전제를 막고 친러파를 정부에서 몰아내며, 영국식 입헌군주정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였다.
현역 군인이란 신분 덕에 지도부로부터 더욱 신뢰를 받고, 자신을 유신회로 이끈 상관으로부터 장차 장군감이라는 칭찬까지 받았다.
그때만 해도, 유신회가 진보적 군인과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군사혁명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었다. 황제를 제거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일본 우익과 손잡고 황제를 암살한다고? 미쳤나? 군부에서도 황제를 얼마나 숭앙하는데? 뭐 이런 어설픈 계획이 다 있어. 민간인들은 형사재판이라도 받지, 나는 체포되면 군사재판에서 즉결처분일 텐데.’
다음날, 김봉석은 결심을 굳히고 안면이 있는 평리원 판사 박용화를 찾아갔다.
“김 정위,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인가?”
“판사 영감, 저 좀 살려 주십시오. 제가 비록 현역 군인 신분으로 정치단체에 가입한 건 어리석은 행동이었으나…….”
“뭔 헛소리인가? 알아듣게 말을 하게.”
“고, 고변(告變)입니다. 역모가 있습니다. 즉각 황제 폐하께 아뢰어야 합니다.”
“뭐, 뭣이?”
고변을 들은 박용화는 화급히 내무대신 박영효를 찾아갔다. 박용화는 박영효의 일족으로, 그도 개화당의 일원이었다.
“대감, 대감! 큰일 났습니다! 대역 음모입니다! 감히 성상을 시해하려는 역모가 있습니다!”
“뭐라고? 역모?”
박용화로부터 보고를 받은 박영효는 경악했다.
감히 황제를 시해하고 정부를 뒤엎으려는 음모도 기겁할 일인데, 역도들이 정부 수반으로 추대하려고 한 당사자가 박영효 본인이라는 것이다.
박영효는 부랴부랴 경운궁으로 달려갔다. 총리 김옥균도 거치지 않고, 즉각 황제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내무대신, 어인 일이오? 표정이 심상찮구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신이 내무대신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해 대죄를 청하옵니다.”
“그 무슨 말이오? 짐은 경이 딱히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가, 감히 대역이 모의되었다고 합니다. 신이 오늘 오전에 들은 바로는…….”
박영효가 자신이 들은 바를 황제에게 빠짐없이 보고했다.
그런데 정작 이선은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차갑게 웃을 뿐이었다.
“허어, 아직도 그런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니.”
“폐하, 맡겨만 주시면 신이 역도들을 즉각 소탕하겠습니다만, 역도들이 신을 차기 총리로 운운했다니 책임을 통감하고 피혐(避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죄를 청하옵니다!”
박영효가 무릎을 꿇고 죄를 청했다. 이선은 손을 내저었다.
“역도들이 수반으로 택했다고 해서 그게 경의 책임은 아니지. 개의치 마시오. 치안을 책임지는 내무대신인 경이 사건을 맡아야 맞겠으나, 피혐을 해야 하는 입장은 이해하겠소. 시종원경, 내무협판더러 입궐하라 하게.”
자신이 연루된 사건은 물러나는 게 피혐의 원칙이었다. 이윽고, 내무협판 민영환이 경운궁에 도착했다. 박영효로부터 상황을 전해 들은 민영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신 민영환, 저 간악한 역적 무리들을 일거에 소탕하고, 그 죄를 명백히 밝혀 내겠습니다!”
“좋소. 경에게 전권을 부여하니, 사건을 잘 해결해 주길 바라오.”
“삼가 명을 받드옵니다, 폐하!”
이 날, 황성에는 검거열풍이 불었다.
제일 먼저 경무청 순검들이 달려간 곳은 유신회 본부와 재한 일본인 신문사 한성신보였다.
사복 차림의 형사들은 한성신보 주필 구니모토 시게아키와 편집장 고바야가와 히데오를 체포했다.
“구니모토씨, 고바야가와씨? 경무청입니다.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한국 경찰에 의해 어째서 일본인을 체포할 수 있단 말인가!”
“구속 영장은 있나? 한국은 명색이 근대 법치국가라면서 영장도 없이 구속하나?”
“시끄러, 쪽발이 새끼야. 그나마 외국인이니까 점잖이 모셔 가는 줄 알아. 한국인이면 너흰 벌써 처맞고 시작했어.”
일본 기자들의 항의에, 정중한 어조였던 형사는 태도를 돌변해서 욕설을 내뱉었다. 그 흉흉한 기세에 기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순순히 체포됐다. 그들은 검은색 장막에 가려진 마차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갔다.
경무청 안가에는 핵심 피의자가 줄줄이 잡혀 왔다. 예비역 육군 정령 우범선(禹範善), 전 중추원 의관이자 유신회 회장 윤시병(尹始炳), 예비역 정위이자 사업가로 유신회 지역총회장 송병준(宋秉畯), 전 법무부 주임관이자 유신회 부회장 유학주(兪鶴柱), 기타 유신회 지도부였다.
“역적놈들, 경무청 신문과에 온 걸 환영한다. 나는 신문과장 안환이다. 다들 정관계에 있었으니 내 이름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겠지?”
경무청 신문(訊問)과장 안환(安桓)은 ‘경무청 염라’라고 불릴 정도로, 고문으로 악명 높은 경찰이었다. 신문실도 고문도구로 흉흉하고 살풍경하기 짝이 없었다.
“대한국은 법치 국가 아닌가! 어째서 혐의만으로 고문을 가한단 말인가!”
“닥쳐, 역적 놈의 새끼야! 의관 나리나 정령 나리라고 체면 세우고 싶은가 본데, 여기 들어온 이상 네놈들은 그저 대역 혐의자에 지나지 않아. 그럼 내가 묻는 말에 답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자, 진실의 시간이다!”
안환의 지시에 순검들이 일단 몽둥이로 혐의자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혐의자들로부터 비명이 쏟아져도, 몽둥이찜질은 멈추지 않았다.
“안 과장, 대한국은 헌법과 형법이 존재하는 법치국가이니 가급적 고문과 같은 악습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대역 사건만은 예외일세. 역도들을 발본색원하도록.”
“예, 각하! 명을 따르겠습니다!”
내무협판 민영환은 오랜 서양 유학과 외교관 생활로, 근대법체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는 상관인 박영효의 생각도 비슷했으니, 이들은 가급적 공안 조직을 온건하게 운영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시역(弑逆) 음모가 전례 없기도 했고, 황제가 전권을 맡긴 이상, 반드시 역적을 소탕해야 했다.
‘내게 거듭 대은을 베푸신 성상이시다. 어찌 충성을 다하지 않겠는가!’
임오군란을 촉발시킨 주범이자, 왕족을 모해하려한 혐의로 처단된 민겸호의 아들 민영환. 아비는 역적으로 단죄되었으니 그 집안 전체가 박살 날 상황이었지만, 완화군 이선은 ‘영환은 이미 다른 집안의 양자로 들어갔으니 그 죄가 연좌되지 않도록 한다’고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아우 영찬도, 가문의 그 누구도 연좌되지 않았다.
오히려 민영환은 특별한 배려를 받아 미국 유학을 떠났고, 외교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성은에 거듭 감읍했다. 민영환은 아비의 죄를 갚기 위해서라도 충군애국해야 한다고 여겼다.
마침내 황제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입증할 기회가 왔다. 결코 역적은 용납할 수 없었다.
“어이, 우씨. 육군 정령에 독립전쟁 참전자면 한때 애국자였는데, 어쩌다 역적 신세가 됐나? 일본이 그렇게 좋나? 쪽발이 앞잡이 하니까 좋아? 말해 봐, 일본한테 얼마나 받아먹었어?”
안환의 이죽거림에,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우범선이 안간힘을 쓰며 답했다.
“너, 너 같은 사람 백정 놈이 대의를 어찌 알겠느냐? 동양 평화와 아시아 해방은…….”
“아유, 그러세요. 근데 먼저 네 자신을 해방시켰어야지.”
퍼억! 안환은 우범선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우범선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예비역 육군 정령 우범선, 그는 한때 촉망받던 군인이었다. 중인 출신 무관으로 양반 세도가에 환멸을 느꼈던 만큼, 개화당의 일원이 되었다. 갑신경장 이후 군제개혁에 역할을 맡고, 독립전쟁 때도 연대장으로 일선에서 싸웠다.
하지만 이후에는 장성 진급 심사에서는 번번이 떨어지다, 한직을 떠돌다 결국 군복을 벗어야 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최상층부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우범선은 지나치게 친일 성향이니, 장성 진급은 불가하다. 군에서 내보내야 한다.”
최상층부란 바로 이선이었다.
우범선은 억울했다. 분명 자신은 일본을 모델로 근대화를 추구했고, 강력한 일본 지지자였다. 독립전쟁 때도 일본의 위력에 경탄하며 상부에 거듭 일본과의 동맹을 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게 숙청의 원인이 되었다니.
우범선은 결국 엇나가게 되었다. 일본으로 떠나 동아동문회에 가입했고, 일본 여인과 결혼했다.
아시아주의에 심취한 우범선은 마침내 흑룡회와 손을 잡고 국내 조직을 건설했다. 그게 바로 유신회였다.
유신회 조직의 재정을 맡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송병준은 일본이 강해 보이니 거기에 붙으려는 모리배에 가까웠다면, 우범선은 일종의 신념형 친일파였다.
“감히 황제 폐하는 왜 시역하려고 했나? 예전 같으면 삼족을 멸할 중죄야. 아, 처랑 자식은 일본에 두고 왔으니까 아주 눈에 뵈는 게 없으신가?”
“시역이 아니다! 경운궁에 폭탄을 터트리려고 한 건 인정한다. 정변도 모의했던 게 맞다. 하지만 결코 시역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들은 이야기가 다른데? 어이, 대질 신문 준비해.”
안환의 손짓에, 잠시 후 군복 차림의 사내가 한 명 들어왔다.
육군 참령 이희두. 일본 육사 출신이자 유신회 군사총책. 유신회에서도 가장 강경한 어조로, 경운궁에 폭탄을 터트려 정권을 뒤엎어야 한다고 외쳤던 자였다. 폭탄도 자신이 군대에서 빼돌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희두는, 고문 흔적도 없이 말끔한 군복 차림이었다. 체포되었다면 그 누구보다 극심한 고문을 받았어야 할 자가 아닌가?
“일본 흑룡회의 조종을 받는 역적 우범선과 유신회 일당이, 건원절에 경운궁에서 폭탄을 터트려 시역하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제가 직접 다 들었고, 수결도 확인했습니다.”
우범선은 마침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 이 개자식아! 네, 네놈이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우릴 충동했구나. 이, 이 황제의 개새끼야!”
“저, 저거 봐라. 역적놈의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얼마나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나?”
안환은 거듭 몽둥이로 우범선을 구타했다. 육체적 고통도 극심했지만, 우범선의 정신적 충격은 그보다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