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73
– 54화에 계속 –
2부 54화 약육강식
1904년, 대청 광서 30년.
광서제가 즉위한 지 어언 30년이었다. 그중 절반인 15년은 양모 서태후의 공식적인 섭정 기간이었고, 1889년 친정을 시작한 후에도 실권은 없었다.
비로소 광서제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시작한 1898년의 무술변법도, 1년 만에 서태후와 수구 세력의 반격으로 실패로 끝나야 했다.
1900년 의화단 전쟁의 파국으로 서태후와 수구 세력이 몰락하여, 비로소 광서제는 30세의 나이에 이르러 진정한 친정 체제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신정을 선포한다! 이제 개혁이 중단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1901년 1월, 새로운 세기의 시작에 맞춰 광서제는 신정(新政)을 선포했다.
광서제가 주도하는 독판정무처는 광범위한 개혁에 돌입했다. 군제개혁, 교육개혁, 식산흥업, 행정개편, 헌법도입준비 등 다양한 개혁이 이뤄졌다.
1904년에는 가장 저항이 컸던 과거제 폐지와 서양식 관료임용제 도입도 성사시켰다. 광서제의 다짐대로, 개혁에는 중단이 없었다.
하지만 의화단 전쟁으로 황도 북경이 9개국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는 수모를 겪고, 지방 총독들과 변경이 공공연히 조정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광서신정은 한계가 있었다.
지방 권력을 장악한 각 성의 총독과 순무는 겉으로만 조정에 충성하고, 사실상 자신들의 소(小)왕국 건설에 나섰다. 티베트, 몽골, 신강과 같은 변경은 아예 독립까지 부르짖고 있었다.
조정의 명령은 북경과 하북, 하남, 산서, 산동, 최대 강소와 안휘에까지만 미치는 게 현실이었다. 동남 호보를 주도한 강남 지방은 사실상 반(半)독립 상태였다.
심지어 중앙권력도 광서제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정에서 수구파가 쓸려 나갔다고는 하지만, 경친왕과 장지동을 대표로 하는 양무파 관료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광서제는 수구파들의 기해정변으로 처형당한 변법파 관료들을 신원하고, 해외로 망명한 강유위·양계초·황준원 등을 사면하여 귀국을 허용했지만, 양무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권비의 난을 불러일으킨 건 실로 수구 세력의 어리석은 작태였지만, 기해정변이 발생한 건 강유위 등 급진세력의 망동 때문이었습니다. 황상께서 이들을 사면하신다면 신하된 도리로 따르겠습니다만, 다시 중용하신다면 신등은 이들과 함께 일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 사직하고 낙향하겠습니다.”
무술변법과 기해정변에서 드러났듯이, 오랫동안 실무를 이끌어온 양무파의 협조 없이 국정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변법파의 이상은 훌륭해도, 이들은 중국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
결국 강유위 등이 관직에 다시 오르는 걸 포기하고 언론 활동에 종사하기로 함에 따라 갈등은 봉합됐다.
광서제로서는 외롭기 짝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을 다독였다.
‘북경이 함락됐을 때 만약 태후의 뜻대로 서안까지 끌려갔다면, 결코 이럴 기회도 없었겠지. 여전히 태후의 꼭두각시로 남았을 터. 끔찍하군.’
대한제국군이 광서제를 구출한 덕에, 황제는 옥좌에 복귀하여 북경을 점령한 연합국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광서제가 한국에 고마움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광서제는 북경을 찾은 이선은 직접 회견한 후에는 더욱 그에게 매료되었다.
자신을 핍박하는 양모에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어 권력을 쟁취했고, 수구파를 몰아내고 개혁에 성공하여 낡은 국가를 일신했으며, 마침내 부국강병과 승전의 길로 이끈 이선은 광서제에게 깊은 공감을 줬다. 그는 자신이 못해 낸 걸 해냈다.
‘짐보다 겨우 세 살 많을 뿐인데, 그는 이미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넘긴 거인이다. 짐은 제국의 황제였지만, 그는 제후의 서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제국을 쟁취했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국 황제는 자신에게 권력을 되찾게 해 준 은인이자,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보여 준 모범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이 두 번이나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영토를 할양해 갔다는 건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청의 성지인 봉천과 요양만 지켜낼 수 있다면, 국경지대 일부를 내준 건 감내할 수 있었다.
만주를 호시탐탐 노리는 나라 중, 한국은 이를 최대한 이해하고 존중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런 것도 없었다. 만주를 점령하고 상국처럼 구는 러시아에 광서제는 강한 반감을 느꼈다.
“언젠가 대청이 다시 힘을 되찾게 된다면, 아라사 오랑캐는 반드시 몰아내고 말리라!”
티베트를 점령하고 조약을 강요한 영국도 불쾌하지만, 만주를 점령하고 철수하지 않는 러시아는 더 위협적이었다.
더욱이 달라이 라마가 몽골로 피신하자, 몽골 왕공들은 달라이 라마를 떠받들며 노골적으로 북경에 반기를 들 기미를 보였다.
북경은 대청 황제가 티베트 불교의 보호자이자 몽골인의 칸임을 강조하며 달라이 라마의 폐위를 위협했지만, 몽골 왕공들은 무시했다.
광서제는 몽골의 불온한 행위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다고 확신했다. 러시아는 만주 점령에 이어 몽골의 분리 공작도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1904년, 러시아가 끝내 3차 철군 기한도 지키지 않자, 광서제는 이홍장이 체결한 1896년 러·청·조 삼국 조약에서 탈퇴했다. 이제 러시아는 우방이 아니라 적이었다.
“영국, 일본, 한국이 아라사에 맞서는 동맹을 체결했다고! 하늘이 아직 대청을 저버리지 않았구나!”
모처럼 열강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호기롭게 조약에서 탈퇴한 것과 달리, 청나라는 러시아의 보복을 우려했다. 만약 러시아가 만주를 영구 점령하고, 북경을 위협해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북양신군을 제외하면 제대로 맞서 싸울 군대라곤 없었다. 결국 열강들에게 외교적으로 호소하는 길뿐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한·영·일 삼국이 동양 평화와 청나라의 영토보전을 명분으로 들고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니, 청나라는 조약의 목적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 만주를 되찾게 해 주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대청 또한 동양 평화를 위한 삼국의 상호방위조약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오. 귀국 황제께 짐의 축하를 전해 주시오.”
광서제는 한영일동맹 체결을 통보하는 주청한국공사에게 축하의 뜻을 전했다.
공사는 고개를 조아린 후 정중히 화답했다.
“대한 황제께서는, 동양 평화와 세력균형, 대청 황실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폐하께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오오,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오. 가능하다면 대청도 동맹에 참여하여, 아라사를 만주에서 몰아내고 싶소. 그래야 진정한 동양 삼국 연대, 동양 평화가 가능하지 않겠소? 귀국 황제께 짐의 뜻을 전해 주시오.”
“폐하, 외신이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한영일동맹은 상호방위조약이지, 아라사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라사 또한 대한의 우방이니, 어찌 적이라 하겠습니까? 또한 동맹에는 영국이 포함되어 있으니, 반드시 동양 연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라사가 스스로 깨달아 만주를 환부(還付)하게 만들겠사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공사는 정중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청나라는 조약 당사국도 아니었다. 청나라가 삼국동맹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건, 김칫국 마시는 것에 불과했다.
더욱이 세력권을 규정한 비밀 조항에 따르면 중국의 분할을 암시하고 있었다. 청나라가 동맹에 낀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구려. 과연 대청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 먼저 신정을 진행하여 국가를 일신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오.”
민망해진 광서제는 개혁을 외쳤다. 그러자 공사가 다시 예의를 갖추어 다독였다.
“대한 황제께서는 폐하께서 신정을 완수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십니다. 그날은 머지않아 도래할 것입니다. 동양 삼국이 모두 부강해져 진정한 동양 연대가 가능하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중국은 광활하여 인재와 물산이 풍부하며, 폐하께서는 현명하십니다. 신정으로 경장과 유신을 이룰 수 있다면, 대청은 다시 강성해져 서양 열강과 대등하게 맞설 날이 올 것입니다. 짐은 먼저 그 길을 걸은 사람으로서, 폐하께서 성공하시리라 믿습니다. 짐은 언제든지 폐하께 조언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광서제는 이선이 보낸 친서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은 귀국 황제 폐하의 호의에 늘 감사드리오. 공사도 짐을 많이 도와주시오.”
“예, 폐하. 만주와 조선은 본래 그 뿌리가 같은 형제의 나라나 다름없으니, 대한은 대청의 번영을 바라마지 않나이다. 비록 외신이 타국의 신하이오나, 도울 수 있는 일은 모두 돕겠습니다.”
혀를 착착 굴리며 좋은 말만 하는 공사를 보면, 혹자는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 의심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선의 선의를 믿어 의심치 않는 광서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고맙소, 공사. 과연 청한 양국은 형제의 나라나 다름없으니, 그간의 불화가 있었더라도 깨끗이 씻고 만대에 걸쳐 새로운 우호를 만들어 나갑시다. 짐은 한국 황제 폐하를 깊이 존경하고 있소.”
“황공하옵니다.”
공사는 거듭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지만, 속으로는 냉소했다.
겉으로는 더없이 정중하지만 속으로는 냉소를 품고 있는, 주청한국특명전권공사의 이름은 이완용이었다.
공사관으로 돌아온 이완용은 피식 웃었다.
의화단 전쟁 이후, 북경 공사관 구역은 완벽한 치외법권 구역이 되었다. 각국 호위병이 공사관 구역을 지켰다.
과거에 북경에 오는 조선 사신은 신하의 처지였으나, 치외법권을 적용받는 주청 한국 외교관은 열강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 오히려 중국인들을 부릴 수 있는 위치였다.
미국 유학에 이어 서양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며, 철저한 서양식 사회진화론자가 된 이완용에게 이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당연한 이치다. 대한은 서구화의 세례를 받아 강성해졌고, 청국은 구습에 얽매이다 쇠락을 거듭했으니, 어찌 과거의 조선과 중국이라 하랴?’
주미공사와 주독공사를 지낸 후에 작년에 주청공사로 임명된 이완용은, 처음에는 자신이 뭘 잘못했나 싶었다.
워싱턴과 베를린의 깨끗한 거리를 보다가 북경에 도착한 이완용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면서 손수건으로 코를 감싸 안았다.
‘20년 전, 경장 이전의 조선을 보는 것 같군. 조선이 탈바꿈하는 동안, 여긴 도대체 뭘 했단 말이냐? 허송세월이나 했지. 시대에 뒤떨어진, 이 더럽고 냄새나는 나라는 망하는 게 당연하다.’
청나라에 대한 멸시와 혐오의 감정을 느끼던 이완용은, 광서제가 한국에 보내는 호의를 받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청나라와 광서제에게 호의를 느꼈다는 게 아니라, 이용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청 황제가 성상께 깊은 호의를 느끼고 있으니, 외교를 하기에 더 없이 유리한 환경이 아닌가.’
오랫동안 외직을 떠돌고 있는 이완용은, 공사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출세를 열망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위직은 개화당 핵심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완용도 갑신경장 이후 개화당에 가입하긴 했지만, 개화당이 정권을 잡은 후에 늦깎이로 들어온 그가 핵심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다.
눈치 빠른 이완용은 개화당 지도부에 대한 이선의 깊은 신뢰를 읽었다. 자신은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시대의 대세로 떠오른 서양 공부에 매진했다. 다른 사대부들과 달리 누구보다 앞장서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미국 유학과 외국 생활을 자처했다. 최소한 실무 관료 중에서는 최고가 되어 이선의 눈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김홍집과 시무개화파가 개화 1세대라면, 현재 집권 중인 김옥균과 문명개화파는 개화 2세대였다.
2세대에는 끼지 못했다면, 3세대의 선두가 되어야 한다. 이게 이완용의 생각이었다.
‘1세대와 2세대의 사명이 자주독립과 문명개화였다면, 3세대의 사명은 무엇이겠나? 대한의 국위를 떨치고 제국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완용이 내심 3세대의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는 윤치호가 주영공사로서 한영일 동맹을 성사시켰다. 국내외에서 윤치호의 주가가 크게 오르자, 이완용은 몸이 달았다.
‘흠, 대단한 공로임에는 틀림없지만, 결국 동맹이라는 건 수단이다. 보다 중요한 건 대한의 국위를 어디에 떨칠 수 있냐는 거지.’
외무부 고위관료 신분이기에 이완용은 극비로 부쳐진 한영일 상호방위조약 제2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이완용은 확신이 들었다. 황제의 성심이든, 정치가들의 복안이든, 국민의 열망이든 간에 대한제국이 나아갈 길은 만주 점령과 중국 분할이었다.
‘과연 대한이 강성해지는 길은 만주로 나아가고 중국을 분할하는 길 밖에 없다. 이를 수행하는 관리는 곧 대한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관리겠지. 내가 그걸 앞당기겠다.’
광서제가 한국에게 호의적인데, 그 호의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만주 점령과 중국 분할을 획책한다면, 일반적인 사람은 미안한 감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완용은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 강자가 곧 정의였다. 지금으로선 서양 열강이 강자의 위치에 있으니, 강자의 사냥개가 되어 약자를 물어뜯은 후에 보상을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병탄하는 건 당연한 이치. 나는 언제나 강자의 편에 설 것이다. 아니, 가능하면 강자의 선봉에 서야지.’
이완용은 실제 역사처럼 ‘매국노’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제국을 무너트릴 야심을 품었다.
철저한 사회진화론자, 제국주의자로 탈바꿈한 이완용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