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75
– 56화에 계속 –
2부 56화 군주의 감정
한영일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전국이 기뻐했지만, 이선은 안주하지 않았다.
한영일동맹의 적이 러시아가 아님을 주지시켜야 했다.
동맹을 공표한 직후, 이선은 주한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를 경운궁으로 불러들였다.
“공사, 귀국 황제 폐하께도 이미 말씀드렸지만, 이 조약은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안보 위협을 덜어 내 대륙 침략을 사전에 저지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해 체결한 조약입니다. 귀국의 양해를 바랍니다.”
“폐하, 저는 극동에 머무르고 있고, 현 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양해할 수 있습니다만, 본국의 생각은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본국의 훈령을 따를 뿐입니다.”
“이해합니다. 본국에 짐의 뜻을 전해 주십시오.”
파블로프는 한국에 친화적인 온건파이긴 했지만, 정책결정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하는 바였다.
이선은 동맹을 공표하기 전, 이미 러시아로 보낼 특사를 선발했다.
러시아어가 유창하고, 러시아 공사를 재임하며 차르 및 고관들과 친분 관계를 돈독히 구축한 궁내부 특진관 김학우였다.
“경의 러시아행에는 두 가지 임무가 있네. 하나는 특사로서 러시아를 안심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제국익문사 독리로서 유럽의 정세를 확인하고 유럽 조직을 관리하는 것. 전자도 중요하지만, 후자도 은밀히 수행하도록. 짐은 경을 믿네.”
“황공하옵니다. 마땅히 그리하겠습니다.”
“경이 러시아에 가 있는 동안, 익문사 관리는 이회영에게 맡기도록 하지. 일본 역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으니까.”
“우당이라면 이미 능력을 충분히 입증했지요. 신이 부재해도 걱정이 없겠습니다.”
이회영은 야마가타 테러 공작을 성공리에 마치고 귀국했다. 그가 구축한 일본 내 조직은 발각되지 않고 계속 암약 중이었다.
“동양의 전쟁 가능성이 확연히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 배제할 수는 없네. 전쟁은 모두에게 손해지. 전쟁에 동참하게 된다면, 한창 발전하고 있는 대한의 자본주의에 타격이 오겠지. 일본도 열강과의 전쟁을 수행할 경제력이 안 되니, 외채를 엄청 지게 될 거고. 러시아는 혁명에 불을 지를 테니 더 위험하네. 이걸 확실히 주지시켜야 하네.”
“예, 폐하! 러시아 황제 폐하 및 대신들과 회동하며 평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겠습니다.”
“비테 의장과 람스도르프 외무대신은 이해할 거야. 그들과 잘 이야기해 보도록. 그럼 원로에 행운을 비네.”
“삼가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김학우는 황제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독일의 야망과 열강의 패권경쟁이 있는 이상, 결국 세계대전은 피할 수가 없을 터. 1914년에 발발한다고 가정하고, 앞으로 한 10년 정도 충실히 국력을 키운 후에 세계대전에 대비해야지.’
이선의 초점은 이제 세계대전에 맞춰져 있었다. 역사대로 1914년에 발발할지, 아니면 앞당기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 *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10월의 페테르부르크는 어느덧 초겨울로 접어드는 듯, 눈이 내리고 있었다.
김학우는 대련을 출발, 동청철도와 얼마 전 개통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해 단 15일 만에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예전처럼 배를 타고 갔더라면 6주는 걸렸을 터인데, 절반 이상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확실히 철도의 힘이란 대단하군.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단 보름이라. 장기적으로 러시아가 동양에 가할 압력이 커지긴 하겠어.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지정학의 창시자 매킨더가 주장한 ‘대륙 세력(land power)’이 시베리아 횡단철도 개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대륙 횡단철도의 힘으로 해양 세력을 압도할 수 있는 환경이 처음 조성된 것이다.
‘근데 그것도 국내가 평안해야 가능한 일이지.’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익문사 현지 조직의 보고를 받으니, 러시아의 혼란상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도처에서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인민주의자들은 각지에서 테러를 감행하고 있었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 파업을 주도했고, 차르의 권위에 복종하고 있던 자유주의자들도 정치개혁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러시아 외부의 분리주의 세력은 무장봉기 직전까지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차르는 타협하지 않고 강경책으로 일관했다.
아직까지는 내무대신의 호언장담대로 경찰과 헌병만으로 불만을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수세대에 걸쳐 쌓여 온 불만이 폭발한다면, 군대를 동원해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말도 마세요. 상호방위조약을 처음 알렸을 때, 러시아의 반발이 아주 컸습니다. 한국이 배신자 아니냐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왔으니까. 다행히도 황제께서는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만.”
주러시아 공사 이범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명을 받들어 특사로 왔으니, 러시아와의 관계를 최대한 회복해야지요. 일단 황제 폐하를 알현해야겠습니다.”
김학우는 겨울궁전에 알현을 요청했다.
니콜라이 2세는 흔쾌히 알현을 수락했지만, 궁전의 공기는 전과 달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황제 폐하, 한국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특파전권대사가 삼가 국서를 봉정합니다.”
“고맙소, 특사. 귀국 황제께서는 안녕하신지?”
“예, 두루 평안하십니다. 황제 폐하, 황후 폐하, 황태자 전하의 안녕을 여쭈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좋소. 요새는 황태자를 보는 낙으로 산다오, 하하.”
차르는 이선의 국서를 선 채로 읽었다.
「…… 영국 및 일본과 체결한 조약은 결코 러시아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일본의 공격성을 묶어 두기 위한 조약입니다. 이 조약이 상호방위조약인 이상, 먼저 공격을 당하지 않는 한, 일본이 선제공격을 해도 한국과 영국은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도 이를 알고 있기에, 결코 러시아를 향해 선제공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로써 동양의 평화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폐하께서는 안심하시고 제국을 경영하셔도 됩니다.
…… 짐과 한국은 언제나 폐하와 러시아의 충실한 벗으로 남을 것입니다. 폐하의 좋은 형제, 이선.」
차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예전처럼 우호적인 반응은 없었다.
“귀국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겠소. 짐은 결코 먼저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없소. 일본이 먼저 도발하지 않는다면야. 이 조약이 일본의 공격성을 잠재울 수 있다면, 우려하는 전쟁은 없을 것 같군.”
“현명하십니다, 폐하. 한국은 동양 평화와 각국의 우호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좋소. 회의가 예정되어 있으니, 회견은 여기서 마칩시다. 내일 저녁에 특사를 환영하는 만찬이 준비될 터이니 참석해 주길 바라오.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나눕시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차르의 우호적인 반응에 김학우는 내심 기뻤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각부 대신들에게 잇달아 회견을 요청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준비해야 했다.
겉으로 보이는 우호적인 태도와 달리, 니콜라이는 내심 상실감을 느꼈다.
“동맹 프랑스에 이어, 그토록 신뢰했던 한국까지 영국에 붙었단 말인가.”
1904년, 영불협상에 이어 한영일동맹까지 잇달아 체결되면서 러시아는 외교적 고립을 느꼈다.
물론 프랑스와 한국 모두 사전에 러시아에 양해를 구해, 결코 러시아에 적대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한영일동맹이 체결되자, 프랑스는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가 유럽 문제에 집중하길 바라는 프랑스로서는, 동아시아에서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다면 바라던 바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프랑스가 해명한 대로 독일을 견제하기 위함이고, 한국이 해명한 대로 일본을 묶어 두려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프랑스와의 관계를 위해 독일과의 관계를 희생했고, 짐이 한국에 그토록 은혜를 베풀었는데, 결국 영국에 붙어?’
차르의 불편한 심기를, 궁정 내 친독반영파들은 재빨리 파악했다.
프랑스와 동맹이 체결되기 전까지, 전통적으로 러시아 제국은 친독 정책을 써 왔다. 감정적으로 민주공화국 체제인 프랑스에 혐오감을 느끼는 반동파 귀족들도 많았다.
“폐하,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은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프랑스는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한 나라입니다. 파리는 불온분자의 온상입니다. 프랑스가 퍼트렸던 자유주의, 사회주의의 독이 러시아를 덮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독일과 적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독일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한국도 믿지 못할 나라입니다. 선제 알렉산드르 2세 폐하 때부터, 저 극동의 작은 나라에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어 왔습니까. 폐하께서도 한국의 부탁이라면 얼마나 흔쾌히 들어주셨습니까. 하지만 이제 이용가치가 사라졌다고 여겼는지, 영국에 붙고야 말았습니다.”
“결국 이 모든 배신의 배후에는 영국이 있습니다. 저들은 러시아가 세계정복을 원한다는 악선전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프랑스, 일본, 한국, 청국을 모두 조종해 러시아에 적대하는 동맹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더러운 계략을 분쇄해야 합니다.”
러시아 궁정 일각의 이런 분위기를, 독일이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역전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영불협상의 체결로 가장 낭패를 보고 있는 건 독일이었다. 만약 영불협상과 노불동맹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독일 포위망이 완성되는 셈이었다.
독일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영불협상에 합류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아니, 만약 러시아를 독일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외교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친애하는 짐의 형제, 니키! 얼마나 상심이 컸습니까? 러시아는 영국과 거대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데, 러시아의 동맹이라는 프랑스가 영국에 가담한다는 건 명백한 배신입니다. 영국 금권주의자들,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은 결코 우리 군주들이 신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들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신성한 군주정을 파괴하려 합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독에 맞서, 신성동맹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짐의 조부이신 빌헬름 1세, 폐하의 조부이신 알렉산드르 2세께서 함께하셨던 삼제동맹이라는 훌륭한 선례가 있습니다. 독일은 대서양에서, 러시아는 태평양에서 영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짐은 대서양의 제독이, 폐하는 태평양의 제독이 되어야 합니다.
…… 잊지 마십시오. 독일과 러시아의 연합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폐하의 좋은 형제, 빌리.」
전에 없이 친근한 카이저의 친서에, 귀가 얇은 니콜라이의 마음이 흔들렸다.
차르는 국무회의를 소집해 독일과의 동맹 가능성에 대해 의논했다.
“안 됩니다, 폐하! 독일과의 동맹은 결코 프랑스와의 동맹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대립하는 이상, 오직 양자택일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러시아가 독일과 프랑스와 관계를 중재해 주면 되지 않겠소? 빌헬름은 프랑스와 적대할 마음이 없소. 오직 영국이 주적이지. 영국에 맞서는 대륙 동맹을 우리가 주선할 수 있소.”
“그건 카이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독일은 프랑스에 치욕을 주었고, 알자스-로렌을 빼앗았습니다. 프랑스는 결코 원한을 잊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영국과 협상한 건, 먼저 러시아를 배신한 게 아닌가?”
차르의 감정적인 판단에, 외무대신 람스도르프와 국무회의 의장 비테가 잇달아 난색을 표했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건, 다름 아닌 선제 알렉산드르 3세이십니다. 선제께서는 공화주의를 그토록 혐오하셨는데도, 왜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겠습니까?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폐하, 프랑스가 지난 15년간 제공한 차관의 액수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러시아가 발행한 국채의 대부분이 파리에 있습니다. 얼마 전 개통한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프랑스 차관이 없었으면 부설도 불가능했습니다. 국가 전반에 프랑스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합니다. 독일은 결코 이 공백을 메울 수 없습니다. 만약 프랑스와의 동맹이 결렬되면, 러시아는 파산입니다.”
10년 넘게 러시아 경제를 책임져 온 비테로서는, 프랑스 자본의 존재가 러시아에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판단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군사적으로도, 독일과의 연합은 불가능합니다. 독일의 동맹인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가 함께할 수 없습니다. 발칸 문제는 서로에게 타협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만약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저버린다면 논의할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할 것입니다.”
육군대신 쿠로파트킨도 냉정하게 동맹 가능성을 일축했다.
러시아가 세르비아·불가리아·루마니아·그리스 등 발칸 국가들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는 이상,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연합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삼제동맹도 결렬되지 않았던가.
“아니, 어찌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비교대상이 됩니까? 독일이 러시아와 손을 잡는 게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다면, 오스트리아도 저버릴 것입니다. 독일과 러시아가 연합한다면, 세계의 그 어떤 적도 막을 수 없습니다.”
내무대신 바체슬라프 폰 플레베만이 독일과의 동맹을 옹호했다. 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독일계 러시아인이자 친독파였다.
“1890년에 먼저 재보장조약을 깨트린 건, 독일과 카이저였습니다. 카이저를 어떻게 신뢰해서 동맹인 프랑스를 저버린단 말입니까?”
“현재의 동맹 체제를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프랑스를 통해 영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게 더 현명한 방안입니다.”
대신들의 압도적인 반대에, 아무리 전제군주인 차르라도 뜻을 꺾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소. 이 문제는 다시 고려해 보리다. 그러면 극동 문제는 어찌하는 게 좋겠소?”
차르는 주제를 극동으로 전환했다.
“극동에서 저들 동맹이 적대할 나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삼국 방위조약이 결국 러시아를 겨냥한 건 틀림없습니다.”
“하오나, 동맹이 방위조약으로 한정된다면, 러시아가 먼저 적대할 이유도 없습니다. 한국의 주장대로 일본의 공격성을 제한할 수 있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약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주를 지배하고 있는 건 여전히 러시아입니다. 저들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러시아의 만주 지배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기세가 오른 청국이 영국을 믿고 만주 반환을 거듭 요구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조약을 다시 맺어 형식적으로 반환을 하되, 철도 경비 목적으로 계속 주둔을 하면…….”
“동청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모두 개통한 지금, 평화적으로 아시아에 침투해야 합니다.”
대신들은 대부분 삼국 조약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자는 입장이었다.
니콜라이는 대신들이 비테의 주장에만 공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감정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