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77
– 58화에 계속 –
2부 58화 헌정 위기
상선 격침 사건으로 러일 관계가 한창 악화될 무렵, 도쿄제국대학 교수 7인이 정부의 ‘굴욕 외교’를 비난하며 즉각 개전을 주장한 바 있었다. 이른바 ‘7박사 의견서’였다.
최고 엘리트들이 공개적으로 언론을 통해 전쟁을 주장한 7박사 의견서는 여론을 떠들썩하게 하긴 했지만, 정부는 무시했다. 어차피 구속력 없는 민간인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부의 요구는 차원이 달랐다.
12월 2일.
육군 최고 지휘부 7인이 연명으로 서명한 유악상주(帷幄上奏)가 메이지 천황에 상주됐다.
「…… 러시아는 삼국간섭을 주도해 요동 반도를 탈취하고, 만주를 점령해 동양 평화를 침해하고, 군함으로 상선을 포격해 제국 국민을 살해하며, 황도(皇都)에서 불순분자를 배후조종해 국가 원로를 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로적(露賊, 러시아 도적)의 죄가 하늘을 찌르는 지경에 이르렀고, 국민은 원수를 토벌하기 원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유약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러시아에 굴욕적인 태도를 보일 뿐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군비 증강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 결과 막강한 육해군이 구성되었습니다. 하오나 외적이 제국을 모욕함에도 맞서지 아니한다면, 도대체 군대의 존재 의의가 무엇이겠습니까?
국가의 치욕은 군부(君父)의 치욕이요, 곧 신자(臣子)의 치욕입니다. 신등은 국가의 치욕을 감내해 가며, 감히 대원수 폐하의 군대를 더 이상 이끌 수가 없습니다. 이에 폐하께 전원 사직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원수 야마가타 아리토모 (추밀원 부의장)
원수 오야마 이와오 (육군 참모총장)
대장 가쓰라 다로 (전 내무대신)
대장 고다마 겐타로 (육군 참모차장)
대장 노기 마레스케 (도쿄 위수총독)
중장 데라우치 마사타케 (육군대신)
중장 하세가와 요시미치 (근위사단장)」
군 통수권이 정부가 아니라 대원수인 천황에게 있었기에, 군 원로인 원수와 참모총장은 정부를 거치지 않고 천황에게 직소할 수 있었다. 이른바 유악상주였다.
황궁에 이어 즉각 사본이 추밀원과 내각에 전해졌다. 정부는 발칵 뒤집혀졌다.
메이지 유신 이후 군부가 정부와 마찰을 빚은 건 여러 번이었지만, 일본에 내각제와 입헌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군부가 정부에 명백히 반기를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직 운운하지만, 내각을 무너트리려는 시도 아닌가!”
간단히 사직을 윤허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저들은 모두 육군의 핵심이었다. 문민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 군부 인사는 군인이 독점하고 있었다.
이대로 사임하고 후임 대신과 참모총장을 지명하지 않는다면, 내각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래서 진작 조슈벌은 모두 군부 요직에서 교체했어야 했는데! 빌어먹을 춘산장 영감탱이!”
야마가타 파벌인 가쓰라·데라우치·하세가와가 동조한 건 그렇다 쳐도, 사쓰마 원로 오야마와 야마가타 파벌이 아닌 고다마·노기가 가담한 건 충격적이었다.
육군의 핵심인 참모본부가 정부를 확고히 지지한다면, 야마가타 파벌도 어쩔 수 없으리라는 게 사이온지의 복안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정부가 아닌 육군을 택한 것이다.
“결국 군인 놈들은 어쩔 수가 없군. 육군의 이익이 국익보다, 정부보다 더 위에 있다 이거지.”
“이건 명백히 육군이 정부를 상대로 선전포고한 겁니다. 그렇다면 맞서 싸워야 합니다. 소원대로 전원 사표 수리하고, 후임자 임명을 정부가 강행하지요!”
내무대신 하라가 강경론을 펼쳤다. 그는 이런 사태를 대비해 진작 문민통제와 군부 인사 교체를 주장하고 있었는데, 사이온지가 어물쩍거리다가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야 만 것이다.
“그럴 수가 없소. 야마가타 일파는 그렇다 치고, 군부에서 신망 높은 오야마 원수와 고다마 대장까지 합류했으니 사실상 모두 저들에게 넘어간 거요. 육군 내 조슈벌은 말할 것도 없고, 사쓰마 출신들도 다 지지할 터. 참모본부도 완전히 저들이 장악했지. 대체 누가 후임자 임명에 응하려 하겠소?”
사이온지는 극도로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그는 도저히 육군을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총리대신, 해군은 정부를 확고히 지지합니다. 결코 육군의 망동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신하된 처지로 감히 성심을 살피기는 황공한 일이나, 천황 폐하께서도 용인하지 않으실 겁니다.”
해군대신 야마모토 곤노효에가 해군을 대표해 정부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해군은 육군이 주도하는 사태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해군의 지지는 고맙지만, 육군과 정부가, 육군과 해군이 계속 대립하는 모양새가 되면 국가에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오. 내가 총리에서 사임하는 게, 더 이상의 갈등을 피하는 일이오. 폐하께 내각 총사퇴를 상주하겠소.”
“총리대신! 이건 총리 한 사람의 거취에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군부가 마음만 먹으면 정부를 무너트린다는, 나쁜 선례를 두고두고 만들게 되는 겁니다. 그야말로 국가에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이제 막 시작된 입헌정치의 근간이 무너지는 겁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하라가 거듭 읍소했다. 사이온지는 숙고하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대신과 참모총장이 모두 사임하고 후임자 지명을 하지 않는다면, 뾰족한 수가 없소.”
“군부 인사가 응하지 않는다면 민간인을 육군대신으로 임명하면 될 일 아닙니까? 참모본부는 정부를 지지하는 장군을 앉히면 되지요!”
실제 역사와 달리 육해군대신 현역무관제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이라,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민간인도 대신으로 임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육군의 극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육군 파벌의 수장, 군령권과 군정권을 집행하는 참모본부 총장과 차장, 후임자 추천을 하지 않아 정부를 무너트릴 수 있는 육군대신, 도쿄에서 당장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위수총독과 예하 근위사단장.
만약 이들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가 군사반란이라도 발생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려운 일이오. 내가 사임하는 게 낫소. 원로들에게 중재와 후임자 인선을 요청합시다. 지금으로선 군부를 상대할 수 있는 건 그분들뿐이오.”
사이온지의 ‘귀족 도련님 근성’은 끝내 갈등을 피하려고만 들었다. 그는 육군과 극단적인 갈등을 벌일까봐 두려웠다.
육군 수뇌부가 예상한 대로였다.
문관을 대표해서 이토 히로부미와 마쓰가타 마사요시, 무관을 대표해서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오야마 이와오.
원로 4인이 ‘사태 해결’을 위해 한 자리에 앉았다.
이토와 마쓰가타가 불쾌한 표정인데 반해서, 야마가타는 의기양양했다. 오야마는 침묵을 지켰다.
“원수, 설마하니 일을 이런 식으로 꾸밀 줄은 몰랐소. 도대체 유신의 대의는 어디로 저버린 거요?”
이토의 힐난에 야마가타가 정색했다.
“유신의 대의를 저버린 건, 후작과 현 정부 아니오? 일본을 서양 열강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강국으로 만드는 게 유신의 목표 아니었소?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을 보시오. 막대한 군비를 지출해서 강군을 건설하고도, 열강의 눈치를 보는 건 똑같지 않소!”
“제기랄, 지금은 일본이 서양과 맞설 때가 아니라는 걸 그렇게 설명해도 못 알아듣소! 원수가 개인 원한으로 이러는 걸 모를 것 같소? 러시아에 대한 원한으로 전쟁을 벌이자는 거 아니오!”
“허, 내가 개인감정으로 이런다고?”
“오쓰 사건으로 러시아가 원수를 지목해서 은퇴시켰지. 심지어 러시아 정보부로 추정되는 자가 원수에 대한 테러까지 획책했소. 팔까지 잃었지. 원한이 골수에 찬 건 이해하오. 하지만 나도 부당하게 로탐으로 몰려 극우파에게 다리를 잃었지만, 개인감정으로 정치를 하지는 않소!”
이토의 거듭된 힐난에 야마가타가 탁자를 쾅 내리쳤다.
“후작, 나를 그따위 졸장부로 만들지 마시오! 제국의 미래를 위하여 내린 결단을, 원한 따위로 치부해 모욕하지 마시오. 만약 그럴 목적이라면 어째서 여기 계신 참모총장을 비롯해 군의 핵심 인사들이 모두 동조했겠소? 정부와 해군이 러시아에게 굴복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한국 따위에게 끌려 다니고! 육군을 해군의 종으로 삼으려고 하니 차라리 사직하겠다고 한 거 아니오?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우리 모두 경질하시오. 육군도 모조리 해산시켜 버리고. 섬나라라고 어디 해군만으로 국방을 할 수 있는지 봅시다.”
야마가타의 태도에 이토와 마쓰가타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요구사항이 뭐요?”
“간단하오. 첫째, 내각 총사퇴, 후임자는 원로회의에서 선출. 둘째, 2개 상비사단 증설. 셋째, 러시아에 대해 조속히 개전을 결심할 것.”
“첫째와 둘째는 받아들일 수 있소. 하지만 셋째는 절대 안 되오.”
“뭐, 좋소. 그건 정세의 변화에 따라, 후임자가 결정하도록 하지.”
“그럼 이쪽도 요구사항이 있소. 첫째, 육군은 다시는 정부를 위협하지 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히 한다. 둘째, 상호방위조약 비준은 계획대로 한다. 셋째, 전쟁과 같은 중대한 사안은 반드시 내각과 원로 회의에서 동의를 얻어야 한다.”
문관파의 요구에 야마가타가 큰 인심을 쓴다는 듯이 답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당연히 육군은 언제나 정부를 확고히 지지할 것이오. 영국과 맺은 조약은 물론 준수해야지. 전쟁도 합의로 결정해야 하고. 모두 동의하오.”
밀실회의나 다름없는 원로회의에서, 정부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12월 7일, 총리 사이온지는 내각 총사퇴 의사를 메이지 천황에게 상주했다.
이 모든 일이 천황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천황 본인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메이지 헌법 도입 15년 만에, 일본의 헌정은 위기에 처했다.
* * *
대한제국, 황성.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를 보고 받은 이선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가 일본은 군부 통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나! 총리라는 작자가 군부의 반기에 맞설 용기도 없이 그냥 항복을 해!”
“폐하, 일본에서 통보하기를, 후임 내각도 전임 정부의 뜻을 계승하여 상호방위조약을 비준하고 동맹을 준수하겠다고 합니다.”
김옥균이 마치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송구해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총리. 군부가 마음만 먹으면 정부도 뒤엎을 수 있는 나라에서, 러시아에 대한 증오로 전쟁을 획책하는 자가 정부를 주도하게 된다면, 조약이라고 제대로 지킬지 의문이오. 물론 영국이 조약을 함께 맺고 있으니 뒤엎지는 않겠지만, 일본이란 나라의 한계를 잘 알겠소.”
이선은 실망을 금치 못하다가, 근대 일본의 한계를 떠올리고 눌러 참았다.
‘일본이 그렇지 뭐. 실제 역사보다 20년은 빠르게 군부의 폭주가 시작된 건가?’
구조적으로, 정부가 군부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너무 취약했다. 군부가 통수권 독립을 운운하며, 총리에게 통수권이 전혀 없다는 건 치명적이었다. 하다못해 육해군대신을 지휘할 권리도 없어서, 사임하고 후임자 임명 안 하겠다고 꼬장을 부리면 해결책도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오히려 야마가타는 이런 짓을 안 했는데. 강제 은퇴 생활에 테러까지 당하더니 맛이 갔나?’
오쓰 사건으로 10년 강제 은퇴에, 러시아로 추정되는 배후단체에 의해 테러까지 당했으니, 러시아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찰 만한 상황이었다.
두 사건 모두, 야마가타는 이선이 개입했으리라곤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러시아가 벌인 음모라고만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사해지 해야겠군.’
이선은 일본 문제에 개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당, 일본으로 복귀해 공작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겠나?”
이선은 제국익문사 차장 이회영을 불러들였다. 그는 일본 공작을 성공리에 이끈 바 있었다.
“하명하신다면 따를 뿐입니다만, 잇단 피습 사건으로 저들의 신경도 곤두선 상태입니다. 헌병과 경찰의 감시가 삼엄합니다. 테러 공작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이회영은 새로운 테러 공작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건 이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겠지. 하지만 짐이 원하는 건 테러가 아닐세. 다른 방향이지.”
“하명하시옵소서.”
“저들이 어떤 명분을 대든 간에, 육군이 헌정 질서를 흔들고 정부를 무너트린 건 틀림없네. 그에 불만을 품은 여론이 없을 리가 없지. 당장 여당인 입헌정우회는 물론이고, 야당도 함께 군부를 규탄하려 들 거야. 해군도 육군의 폭주를 용인하기 어렵겠지. 진보 성향의 언론과 여론은 앞장설 것이고. 이들이 군부에 맞설 수 있도록 하고 싶은데.”
이회영이 숙고한 다음에 답했다.
“그럼 일단 언론부터 시작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익문사에 협조하는 영국 상인과 기자가 있습니다. 영국인을 내세워서 운동을 시작한다면, 아무리 일본 군부라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좋은 생각이야. 안 그래도 영국 정부와 이 사태에 대해 협의할 계획이 있으니, 표면적으로 영국인이 나선다면 절대 건드리지 못하겠지. 대한은 결코 어디에도 개입되어 있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다면 공작에 뭐가 가장 필요하겠나?”
“아무래도 자금입니다. 언론이든 집회든, 운동이 결집하려면 돈이 필요하지요.”
“아, 돈 걱정은 하지 말게. 자금은 넉넉히 지원해 줄 테니까, 보안을 철저히 지키면서 일을 추진해 보게.”
“예, 폐하! 삼가 명을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이선은 일본의 ‘민주화’를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만약 성공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고, 실패하더라도 군부의 정당성을 파괴하여 민중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일본을 혼란에 빠트릴 수 있겠다.’
이회영은 신속히 대일 공작에 나서기 위해, 은밀히 일본행 기선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