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94
– 75화에 계속 –
2부 75화 전쟁과 국가
여순 공격에 이어, 선발대인 일본군 12사단 14연대가 21일 진남포에 상륙했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말이 있듯, 대략 2월 하순이면 대동강의 결빙이 풀렸다. 하지만 이해 겨울에는 추위가 계속되어 아직 대동강 결빙이 풀리지 않았다. 심지어 진남포 항구의 결빙도 아직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일본군은 외해에서 하선하여 보트로 운송을 해야 했다. 병사들은 일본과 차원이 다른 한반도의 추위에 새삼 기겁했다.
“여긴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조선이 이렇게 춥다면, 만주는 도대체…….”
본래 기타규슈에 주둔하는 12사단 병사들은 대부분 규슈 태생으로, 일본에서도 따뜻한 지역 출신이라 추위를 체험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평안도의 추위는 만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으니, 앞으로 경험할 이들의 고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전시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과 지방의 행정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했다.
정부는 일본군 경로에서 전시 행정을 맡을 접반사(接伴使)를 임명하고, 군부는 혼성부대의 지휘관, 관전무관을 선발했다.
일본군의 행군로가 서북 지역에 집중됨에 따라 서북 출신 무관들이 우선 선발되었다.
“혼성연대의 지휘관에는 이동휘 부령.”
공병대, 치중대, 군의대 등 비전투요원들과 보병대로 구성된 혼성연대장에 이동휘가 임명되었다. 정보국에서 근무하며 만주 지역을 답파, 군부 내 만주 전문가라 할 수 있었다. 혼성연대에는 이동휘 이하 정보장교들이 대거 배속되었다.
“관전무관단장에는 노백린 부령. 동시에 노백린 부령은 일본군 1군을 전담한다.”
미국 주재무관을 마치고 귀국한 노백린이 관전무관단장에 임명되었다. 유학파나 전쟁대학 출신의 엘리트 장교로 20명을 엄선한 대한제국 관전무관단은 일본군 행로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근대전을 직접 경험함과 동시에, 일본군을 은밀히 감시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접반사는 황족 중에서 임명하고, 그 아래에 실무진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선은 남만주 자치령 고등판무관을 지낸 이재순(李載純)을 임명하려고 했는데, 본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고사했다.
“신에게 맡겨 주십시오. 부족하오나 신은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일본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운현궁의 이준용이 일본 유학과 주일 공사 경력을 내세워 접반사 역할을 자처했다.
이선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선을 꺼려했다. 강경 국수주의 정당인 제국당의 실질적인 지도자에게 접반사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이준용은 만주 진출을 공개적으로 부르짖었고, 러시아가 만주에서 철수하지 않는다면 일전도 각오해야 한다고 진작부터 떠들어 왔었다.
대신 영국 유학 경력이 있는 종정원경 이재각(李載覺)을 임명하려고 하니, 뜻밖의 인물이 접반사를 희망했다.
“폐하, 황공하오나 접반사는 신이 맡게 해 주십시오. 신이 비록 어리고 무지하지만, 지금껏 국가를 위해 하는 일이 없어 부끄러웠는데, 마침내 대한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감읍할 따름입니다.”
바로 영친왕 이영이었다. 이선은 국정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막내아우가 나섰다는 데 내심 놀랐다.
“너는 올해 영국 유학을 예정하지 않았더냐? 전쟁은 길어질 것이다. 하물며 접반사는 전장으로 향하는 군대와 협의하는 어려운 일을 맡게 될 터, 네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 된다.”
“유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으나, 국가의 대사는 시급합니다. 의친왕 형님이 겉으로는 한량처럼 보여도, 실은 국가를 위해 외교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신은 지금껏 궁궐 안에만 살며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어 심히 부끄럽습니다. 신과 동년배의 젊은이들은 병역의 의무가 있습니다. 신이 비록 북방에서 총을 쥘 수야 없겠으나, 붓은 쥘 수 있나이다.”
이영의 나이 19세, 과연 징병 적령기였다. 황족인 그에게 당연히 병역 의무 같은 건 없었으나, 황족으로서 국가를 위한 의무를 다하고 싶었다.
이선은 그 마음을 기특하게 여겼다. 어차피 황족 접반사는 이선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이영은 충실한 대리인이 될 자질이 있었다.
“네 뜻이 그러하다면, 접반사로 임명하겠다. 다만 만사에 실무진과 협의를 하고, 그들의 의견을 따르도록 하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영을 보좌할 부사로 궁내부 예식원 과장 양기탁(梁起鐸)을 임명했다. 평양 출신인 양기탁이 실질적인 업무를 맡게 될 터였다.
친왕부무관(親王附武官)에는 근위기병대 참령 윤치성(尹致晟)을 임명했다. 윤치성은 전 군무대신 윤웅렬의 아들이자, 주영공사 윤치호의 아우였다.
인선을 마치고, 접반사 일행과 관전무관단, 혼성연대 장교들은 즉각 평양행 기차에 올랐다.
한편, 러일개전과 대한제국 중립 소식에 대한 국내 여론은 어땠는가 하면.
대부분의 국민은 10년 만에 발발한 대규모 전쟁에 불안했다.
하물며 10년 전에는 청나라였지만, 이번에는 북방의 강대국 러시아가 아닌가.
“왜놈들, 괜히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리는 거 아닌가? 대체 저 강대한 아라사를 어떻게 이기나?”
“괜히 불똥이 대한에 튀길까 걱정이네. 만청이 압록강을 넘어 침략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만약 아라사가 일본군을 격파하고 대한까지 위협하면 어떡하지?”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 중립을 선포하신 게 아닌가. 그럴 일은 없어.”
“암, 어련히 잘하시겠나.”
대역 음모 사건 이후 침묵하고 있던 아시아주의자들은 마침내 발언권을 얻었다. 그동안은 ‘역적’들과 엮이기 싫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러일개전 소식은 아시아주의자들에게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일본이 동양을 대표하여 마침내 서양 열강과 일전을 벌이다!”
“마침내 일본이 러시아를 향해 칼을 빼 들었다. 청국도 러시아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할 것이다. 한청일 삼국이 연합하여 동맹을 맺고, 힘을 모아 용기를 북돋우며 전진하자!”
“동양 평화, 삼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위하여! 아시아 해방 만세! 대한 동포여, 아시아에서 서양 제국주의를 몰아내자!”
아시아주의자들은 우호적 중립이 아니라, 일본과 동맹하여 러시아군을 격퇴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만약 정부가 군대를 동원하지 않는다면, 의용병이라도 구성하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순진한 걸까, 어리석은 걸까? 일본이 정녕 동양 평화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하는 건가?’
일본 군부나 언론은 동양 평화를 위한 성전이라고 부르짖지만, 일본 정부는 어떻게든 인종 전쟁으로 규정되는 걸 막으려고 노력했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에 ‘앵글로색슨 문명의 대리인’이라는 점을 강조해가면서 영미의 호의를 사기 위해 안달이었다.
이선은 아시아주의자들을 가볍게 무시했다. 어차피 이들은 지식인 일부에 불과했고,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았다.
오히려 팽창주의적 국수주의자들이 더 문제였다.
“우리 대한은 당당한 독립 제국이다. 만주는 대한의 고토이자, 제국의 사활이 걸린 핵심 이익선이다. 그런데 아무런 역사적 연고가 없는 러시아가 만주를 강점하였으니, 이 얼마나 무례한 모욕인가?”
“대한이 주도하여 만주를 수복하고, 시베리아 철도를 부수고, 러시아를 우랄산맥 너머로 쫓아내야만 동양의 대국(大局)을 지킬 수 있다!”
“독립전쟁과 북벌전쟁에서 승전한 대한은 어엿한 동양 군사강국의 하나이거늘, 어찌하여 애매모호한 중립 정책을 쓰는가? 우리는 승리, 더 위대한 승리를 원한다! 대한 동포여, 만주로 진격하자!”
아시아주의자들과 달리 국수주의 여론은 강성했다. 공감하는 이들도 훨씬 많았다.
청조일전쟁과 의화단전쟁의 손쉬운 승리는, 한국인들로 하여금 대한제국의 국력이 실제 이상으로 강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다른 곳도 아닌 ‘만주’에서 전쟁을 벌이는데, 대한제국이 왜 중립을 지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만주야말로 한국의 고토이자 수복해야 할 영토요, 제국의 위상을 뽐낼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대한에는 10만의 상비군, 전시 30만의 군대가 있다. 그동안의 막대한 군비 증강은 바로 전쟁을 위함이 아니었는가?”
“일본이 승전한다면 만주로 진출하려고 할 것이요, 러시아가 승전한다면 만주는 저들의 것이 되고 말리라. 마땅히 대한도 참전하여 만주를 확보해야 한다.”
“물론 수많은 전상자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피를 흘리는 게 두렵다면, 어찌 군인이라 하랴? 전쟁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군대라 하랴?”
조선의 허약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장년 세대나, 서양 열강과의 격차를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는 군부 엘리트들과 달리, 승승장구하는 역사만 봐 온 소장파 청년 장교들은 중립이 불만스러웠다.
청국을 상대로 이룬 단기간의 승리처럼, 러시아를 상대로도 이길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아니,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만주 진출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참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열강과 싸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신 상승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고방식이 완전히 일본 육군과 다를 바가 없군. 근대전의 무서움을 된통 겪어 봐야 전쟁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
장차 관전무관이 보내는 보고서는 장교라면 모두 열람하게 될 것이다. 기관총과 참호가 공격자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위력을 과시하는지, 생각이 있는 자라면 깨닫게 될 것이다.
‘중국혁명과 세계대전을 기다리면, 열강의 방해 없이 만주 진출 가능하다. 러시아와 일본이 양패구상(兩敗俱傷)한다면, 장차 만주가 열강의 무주공산이 될 수도 있지.’
“대한국은 상호방위조약과 한일의정서에 의거하여, 중립을 엄정히 지킨다. 중립 구역으로 설정된 대한국의 국토가 침범당하지 않는 이상, 참전은 없다.”
이선은 황제이자 대원수로서 중립을 강조했다. 정부와 군 통수권을 확실히 쥐고 있는 이상, 일부의 참전 여론 따위는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대부분의 국민은 피 흘리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고 있었다.
3월 3일, 구로키 다메모토(黒木為楨) 대장이 이끄는 일본군 1군 근위사단과 2사단에 진남포에 상륙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실제로 히로시마에서 출항을 개시한 건 1주일이 지난 10일이었다.
봄이 오고 눈이 녹을 시기에, 천산산맥 마천령을 넘어 남만주에서 일전을 벌이는 게 1군의 목표였다.
3월 초순까지, 1군 선발대인 12사단은 진남포를 통해 상륙하여 평양으로 집결했다. 평양 외곽에는 일본군이 일시 주둔했다.
“한국은 동맹국이다. 절대로 민폐가 없도록 하라.”
“기본적인 한국어 회화는 숙지하라. 한국인을 대할 때에는 주의하라.”
“특히 한국인의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 것. 한국인의 문화를 무시하지 말 것.”
황민화 교육의 영향으로 주변국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으로 무장한 이들이 적지 않았기에, 한국을 통과하는 1군 사령부는 주의사항을 숙지시켰다.
일본군이 딱히 한국을 존중해서라기보다는, 보급선 역할을 맡을 한국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일본군은 지난 청조일 전쟁에서 병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기에, 보급선 확보에 만전을 꾀했다.
보급을 돕는 한국군 치중대 외에도 1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 인부를 고용하여, 철도가 없는 만주 지역에서 짐을 운송하도록 했다. 인부들의 임금은 현지 평균 임금보다 높게 책정하여 후대했다.
“10년 전 만청 오랑캐놈들하고는 완전히 다르구만. 그놈들은 온갖 약탈을 저질렀지.”
“침략자하고 동맹국이 같을 수가 있나.”
현지에서 마련한 식량과 보급품도 일본군이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쳐서 구입하니, 평양은 갑작스럽게 전쟁 특수를 맞이했다.
“군대 상대로 납품하니까 이문이 쏠쏠해. 대한국군도 아니고, 외국군이 도움이 될 줄이야. 하하.”
“한몫 잡으려고 군납업자들이 전국에서 평양으로 몰려들고 있네.”
“내가 군무부에 인맥이 닿는데, 특히 평양이 보급의 중요지가 될 거라 하더라고. 그래서 그렇겠지.”
“앞으로 어디에 투자해야 할까?”
“지금이야 주로 식량, 목재, 우마차, 겨울용 피복이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총포와 탄환까지 필요할 거야.”
“그건 전부 국영회사 관할 아닌가. 우리가 손을 댈 수는 없는 건데.”
“이 사람아, 만주까지 운송은 누가 할 거야? 전선이 북으로 갈수록 운송이 더 힘들 텐데, 중립을 선언한 정부가 하겠나? 결국 운송은 민간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 그걸 따내야지.”
“아, 그렇군! 그럼 어떻게든 정부에 선을 대야겠군.”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문은 더 커질 거야. 그러니 러시아가 너무 일찍 이기면 곤란해. 일본군의 선전을 기원하자고, 하하!”
가장 먼저 이익을 본 건 평양의 토착 자본이었지만, 곧이어 중앙의 자본들도 평양으로 몰려들었다.
막 도약기에 접어든 군수산업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일본군이 신사적이군요. 지난 전쟁 때 청국에서는 그리 고압적이더니.”
“그야 대한의 협력을 얻지 못하면 곤란하니까요.”
접반사 일행은 평양 흥경궁에 거처를 두었다. 영친왕 이영이 직접 접반사를 맡은 덕에, 황제에 대한 지지도가 유독 높은 평양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어서 오십시오, 친왕 전하! 전하께옵서 친히 서경 평양부를 찾아주시니 광영이옵니다. 주연을 준비했사오니…….”
“전시에 주연이라니, 호의는 감사하나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평양에서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성상의 명을 받아 온 신하의 처지니, 관찰사께서는 같은 신하의 예로 대해 주길 바랍니다.”
아직 약관(弱冠)도 지나지 않은 이영은 나이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처세를 했다.
황제의 순방에 동행하여 평양을 방문한 바 있었지만, 자신이 최고위로서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변의 경의와 환대가 클수록, 이영은 처신을 조심히 했다.
“먼 길을 떠나게 되었으니, 어미가 걱정이 큽니다. 자청한 만큼 나랏일은 어련히 잘하시겠으나, 혹여 국가에 누가 될 일이 있으면 아니 됩니다. 맡은 바 일에 충실하고, 자중자애하십시오.”
황태후는 여러 아들 중 유일한 친아들인 이영을 누구보다 아끼긴 했으나, 언제나 처신을 조심히 하라고 강조했다.
창경궁에 은둔 중인 순친왕 이척이나 외국에 체류 중인 의친왕 이강과 달리, 태상황과 황태후의 적자인 영친왕 이영은 주목받기 좋았다.
대역 음모 사건 이후 황태후는 더욱더 몸을 사렸고, 이영이 접반사를 자처한 것도 내키지 않은 일이었으나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나 또한 황실의 일원이거늘, 어찌 국가를 위해 쓰임이 없겠는가? 언젠가 국가를 위해 일을 한다면, 국무와 전쟁도 체험해 봐야 한다.’
이영은 존경하는 황형(皇兄)의 권력에 도전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장차 황제가 될 조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총명함이 타고난 데다 열심히 학문을 탐독해 온 그로선, 순친왕처럼 은둔하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인생 즐기며 사는 의친왕처럼 한량 흉내를 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선은 19살 어린 막내아우를 꽤나 아꼈고, 황형의 호의적인 태도에 이영도 자신감을 얻었다.
이영은 황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고대하던 영국 유학도 뒤로 미루고, 고된 일이 될 접반사를 자처한 것이었다.
‘대한과 황실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