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95
– 76화에 계속 –
2부 76화 돈의 전쟁
개전 초기의 전쟁은 일본 해군의 여순항 기습과 포위만 진행되고, 육군의 만주 공세는 4월 이후로 예정되었다. 날씨가 풀린 후에 공세를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동원령에서 투입에 이르는 시간이 참모본부의 당초 예상과 달리 오래 걸렸던 것이다.
러시아 태평양 함대는 여순항에 틀어박혀 일본 해군의 함대결전에 응하지 않고, 극동군도 시간을 최대한 벌려는 목적에서 극력 전투를 회피한 채 동청철도를 중심으로 방어 진지를 굳혔다.
자연히 개전 초기의 양상은 열강의 지지를 얻기 위한 외교전, 최대한 외채를 많이 확보하려는 경제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메이지 38년(1905) 3월, 일본.
봄을 맞이한 일본의 여론은 그야말로 환호 일색이었다.
대본영은 여순항 해전에서 대승을 거뒀고, 육군도 만주를 향해 진격 중이라고 발표했다. 보도 통제로 인해 일본 국민은 승리 소식만 들었다.
참모총장 오야마 이와오 원수가 야전군을 총괄하는 만주군 총사령관으로, 참모차장 고다마 겐타로 대장이 총참모장으로 임명되어 도쿄를 떠났다.
만주군 지휘부가 도쿄에서 히로시마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역마다 환영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무정차로 지나는 역조차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천황 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
“충용무쌍한 일본 육해군 만세!”
“각하, 일본 국민에게 승리를 안겨 주십시오!”
“여순과 블라디보스토크를 넘어,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까지 진격하라!”
대체 언제 정부 타도 여론이 일었냐는 듯, 일본 국민은 전쟁에 환영 일색이었다.
철저한 황민화 교육의 영향도 있겠으나, 그동안 무거운 세금에 짓눌려 가며 쌓였던 불만이 승전으로 해소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컸다.
“전쟁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지난 세월의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다.”
“암! 러시아에게 배상금을 단단히 받아 내야지!”
“러시아가 청국보다 훨씬 돈이 많으니, 내야 할 배상금도 그만큼 많겠지.”
10년 전 단기간의 승전으로 청나라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뜯어낸 것처럼, 이번에도 러시아를 무찌르고 배상금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대일본제국의 승리를 부정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일본인이냐!”
“저놈, 전쟁에 반대하는 비국민이다! 로탐이다!”
‘로탐 색출’의 광풍이 다시 불었다.
호헌파, 민권론자, 반전론자들은 열렬한 전쟁 환호 여론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역시 전쟁을 진작 했어야 해. 정부와 군에 대한 충성을 확보하는 길은 역시 전쟁이다.”
야마가타와 가쓰라는 여론의 환호에 안심했다.
4월로 예정된 중의원 선거에서 호헌파 정당들이 압승하긴 하겠지만, 이런 분위기에선 가쓰라 내각에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의회 소집과 동시에 내각 불신임을 예정했던 호헌파 정당들도, 결국 굴복하여 전쟁에 적극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 반드시 이겨야 하오.”
“패하면 책임을 통감하고 할복할 각오로 만주로 갑시다.”
전제조건은 어디까지나 승리였다. 일본은 승전에 모든 판돈을 걸었다. 패하는 순간, 열렬한 환호의 여론은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몰랐다.
아니, 여론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이 이대로 패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상존했다.
군 지휘부는 막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지면 끝장이다. 군사적 불리함은 외교로 극복해야 한다. 어떻게든 열강과 주변국의 지지를 얻어야 해.”
전시 일본 외교를 총괄하게 된 이토 히로부미는 여전히 승전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장차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협상에 나갈 수 있도록 판을 짜놔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야. 전비를 어떻게 감당하지?”
대한제국 앞에서는 1년 예산이 2억 엔이라고 낮춰 불렀으나, 실제 전년도 일반 예산은 2억 6천만 엔이었다.
올해는 전시 특별 예산 1억 엔이 추가되어 3억 5천만 엔이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얼마나 돈이 더 들지는 미지수였다.
그에 비하면 1904년도 러시아 일반 예산은 20억 루블로, 엔과 루블이 거의 같은 가치를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의 재정 규모는 일본의 7배에서 8배였다.
“단기간에 승리하여 배상금을 얻어 낼 터이니, 군비는 아낌없이 쓰도록 합시다. 군은 전선에서 분투할 터이니, 관료들도 책임지고 군비를 확보하시오. 돈 없어서 전쟁 못 하는 일은 없게 해야 하오. 러시아에서 따서 갚으면 될 것 아니오?”
군부는 호언장담을 했지만, 문민 관료들은 불신했다.
온갖 특별세를 제정해 국민을 쥐어짜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앞으로 전비의 대부분은 국채와 전쟁공채 발행, 차관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외국도 애초에 일본의 승전 가능성이 보여야 공채를 매입하든가 차관을 제공해 주든가 할 게 아닌가?”
이토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열강, 특히 영미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이 전쟁은 수행할 수가 없어. 일본의 사활이 걸렸다.”
이토는 자신의 최측근이자 루스벨트 대통령의 하버드 대학 동문인 가네코 겐타로를 주미 공사로 보내,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애썼다.
동시에 자신의 사위이자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인 스에마쓰 겐초를 영국에 보내, 지지를 호소했다.
일본은행 부총재인 다카하시 고레키요도 외채 모집의 책임을 지고 영국으로 떠났다.
앞으로 외채 없이는 전비 조달이 힘들었고, 전비 조달이 힘들면 전쟁 수행 능력이 급감한다. 어떻게든 외채를 확보해야 했다.
* * *
러일전쟁에 대한 서구 여론의 반응은 반으로 나뉘었다.
“야만적인 러시아 놈들, 폴란드와 발트 지역에서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나? 50년 전 크림전쟁에서 패배하고 러시아가 비로소 개혁에 나섰지. 그때처럼 한번 뜨거운 맛을 봐야 해. 그래야 러시아가 정신을 차리지.”
“어쩌니저쩌니 해도, 러시아는 백인 기독교 문명이다. 영국도 엄연히 백인 기독교 문명이거늘, 이에 반대하여 황인종을 지지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바르샤바 학살이 촉발한 반러시아 여론과, 러일전쟁이 인종과 종교의 전쟁이라는 여론이 부딪혔다.
“이 전쟁은 유럽 기독교 문명과 아시아적 야만이 충돌하는 전쟁이다. 백인종과 황인종의 전쟁, 기독교와 불교의 전쟁이다. 백인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황인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성전을 벌이는 러시아를 지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전쟁은 결코 황인과 백인의 전쟁이 아니며, 불교와 기독교의 전쟁도 아니다. 일본은 러시아인과 동방 정교회에 적의를 갖고 있지 않다. 서양과 기독교에 적대할 뜻이 없으며, 오직 러시아 전제정을 적으로 한다. 오히려 일본이야말로 서구 문명의 적자(嫡子)로, 서구 입헌정치를 받아들인 일본이 전제정치의 러시아와 싸우는 것이다.”
러시아와 일본은 서구를 상대로 치열한 선전전을 벌였다.
러시아가 당시 서구에 만연해있던 황화론과 인종전쟁론의 프레임을 제기했다면, 일본은 입헌정치와 전제정치, 자유와 전제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일본이 진짜 서구 자유주의의 적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헌법과 의회도 없는 전제정인 러시아보다는 우월하다는 선전이었다.
영국, 런던.
러일전쟁 발발에 대한 영국 정부의 반응은, 당혹감이었다. 작년이라면 모를까, 올해는 극동의 전쟁을 원치 않았다. 일본이 영국의 조언도 무시하고 개전을 결심하고 기습을 벌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연합왕국 정부는 동맹국인 일본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각하! 일본의 승리는 동맹국 영국의 승리나 마찬가지가 될 겁니다. 그렇다면 부탁드렸던 공채 매입과 차관은 어찌 되었는지요?”
어찌 되었건 동맹이었기 때문에, 일단 영국 정부는 일본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보수당 내각은 반러시아 여론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외채 모집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아, 내각에서 논의하였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차관은 어렵습니다. 보어전쟁의 여파로 정부는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있습니다만, 독일의 건함경쟁에도 대처해야 합니다.”
“차관이 어렵다면, 영국 정부가 보증하여 금융시장에 공채를…….”
“유감입니다만, 정부는 민간 금융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입니다.”
밸푸어 내각은 차관도, 런던 금융시장에 내놓을 일본 전쟁 공채의 보증도 거절했다.
영국의 전비 지원 거부에 일본은 당황했다.
당대 일본 최고의 금융 전문가인 다카하시는 영국의 자본가들을 만나 공채 매입을 권했지만, 거듭 거절만 당할 뿐이었다. 자본가들은 일본의 승전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이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일본의 모험에 가담할 생각이 없었다.
다카하시는 곧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영국이 동맹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거 아닙니까? 러시아가 선전하는 황화론 때문일까요?”
“황화론은 둘째치고, 영국은 일본을 신뢰하지 않는 거야. 일본의 승전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거지. 패전할 나라를 대체 뭘 믿고 돈을 빌려 주겠나?”
다카하시는 낙담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영국에서의 외채 모집은 실패했지만, 미국으로 가서 2차 외채 모집에 나서기로 했다.
“기르던 사냥개가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니, 어찌 먹이를 주겠나? 좀 굶어 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영국 정부의 냉정한 반응은, 상위 파트너의 허가 없이 멋대로 전쟁을 벌인 일본을 길들이기 위함이었다. 러시아의 남하 저지선인 일본이 패하는 것까진 원치 않았지만,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사냥개가 되려면 충격요법이 있어야 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이 오히려 더 말이 잘 통하네. 한국이 러시아와 확실히 선을 그은 걸 보면, 러시아의 속국이란 건 편견에 불과했고.”
「대한제국 정부는 상호방위조약에 의거, 일본에 우호적 중립을 표명하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지원을 약속하였습니다. 러시아가 이 전쟁으로 만주에서 철수하게 된다면, 동양의 평화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한제국은 귀국이 동양의 평화를 원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일의 공격적인 건함정책이 귀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으며, 귀국과 우호협약을 맺은 프랑스 공화국이 이 전쟁을 원치 않았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 전쟁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대한제국은 대영제국의 대외정책을 언제나 지지하며, 충실한 동맹으로서 대영제국 정부의 동양 정책에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개전 직후, 주영공사 윤치호가 보낸 이선의 친서는 영국 정부를 만족시켰다.
영국은 한국의 조심스러운 처신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만약 한국이 한영일동맹을 저버리고 러시아에 붙었더라면, 영국은 가차 없이 철퇴를 가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편에 가담해서 러시아에 선전포고하여 동양의 전쟁을 더 큰 규모로 확산했더라면, 이 또한 일본과 다를 바 없는 모험주의로 규정되었을 것이다.
“황제가 눈치를 잘 봐서 일본처럼 모험적이지도 않아. 차라리 앞으로는 한국이 더 충실한 사냥개가 될 수도 있겠어.”
영국 입장에서는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는 나라라면, 청나라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1894년 이전까지는 청나라에 힘을 실어 줬으나 전쟁으로 그 허약한 실체가 드러난 후에는 일본에 힘을 실어 줬다. 하지만 국력이 성장한 일본은 상위 파트너의 조언을 무시하고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이르렀다.
“동맹이 일본밖에 없나?”
보수당 내각은 여전히 영일동맹을 치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정치적 이유 때문에라도 일본을 저버릴 수 없었지만, 자유당은 입장이 달랐다.
자유당은 러시아 차리즘을 혐오했지만 보수당보다 유화적이었고, 극동 방위는 일본과 한국에 위탁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둘 중에 더 고분고분한 나라에 마음이 가는 게 당연했다.
의친왕 이강과 참서관 이승만은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긴 처칠을 통해 자유당 중진들과 ‘개인적이고 비공식적인’ 친분을 트게 되었다.
“영국 자유주의야말로 세계 문명의 표준이니, 한국도 장차 영국의 표준을 따르고자 합니다. 비록 지금은 준비가 부족하여 때를 기다려야 하나, 언젠가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도입하여 민의에 충실한 정부를 설립하는 게 황제 폐하의 복안이십니다.”
“한국 황제 폐하께서는 참으로 현명하십니다. 왕실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러시아식 전제정, 프로이센식 외견적 입헌군주정은 끝내 자유주의의 물결에 패배할 것이요, 국가와 황실을 튼튼히 하는 길은 결국 영국식 제도를 택하는 길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옳은 말씀. 군주제가 민의에 기초할 때, 진정으로 영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당의 총아 로이드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선은 차기 총선에서 정권이 자유당에게 돌아가리라 예상했다. 역사대로라면, 현 총재 애스퀴스와 로이드조지가 잇달아 총리를 맡아 1922년까지 장기집권 할 자유당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자유당의 대외정책이 장차 세계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니, 이선이 미리 선을 대는 건 당연했다.
미합중국, 워싱턴.
3월 4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2기 행정부가 출범했다.
1904년 대선에서 가뿐하게 재선에 성공한 루스벨트는, 야심 찬 대내외적 정책을 이어 나갈 것을 천명했다.
국내 정치에서는 진보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루스벨트는, 반독점법(Antitrust Laws)을 제정해 규제받지 않던 대자본의 횡포에 재갈을 물렸다. 건국 이래 일관되게 시장 불간섭주의 입장을 고수하던 미국이, 자유방임주의에 수정을 가해 정부가 통제를 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국제 정치야말로, 루스벨트의 진정한 야망을 실현하는 장이었다.
“미국의 미래는 대서양보다는 태평양에서 어떤 입지를 차지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 태평양 연안에서 미국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는 게 내 꿈이다. 2기 행정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2기 임기와 함께 시작된 러일전쟁 발발은, 루스벨트의 야망을 실현할 장이 되어야 했다.
루스벨트는 강력한 미국,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미국을 원했다.
“일단 러시아가 태평양에 진출하는 건 막아야 한다. 만주와 중국에서 사라져 주면 더 좋겠지. 일본인의 피로, 러시아를 구축(驅逐)한다.”
루스벨트는 동아시아-태평양을 향해 거침없이 ‘달러 외교’를 벌일 생각이었다.
1903년, 미국은 프랑스 회사로부터 파나마 운하 공사와 운영권을 사들였다. 미국 금융 자본은 동아시아로 침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본을 이용하여 러시아를 만주에서 몰아내고, 러시아의 빈자리를 미국이 차지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예컨대 러시아가 보유한 동청철도 운영권은 미국이 차지해야 했다.
“터키인이나 아랍인보다는 차라리 일본인과 한국인의 정서가 더 백인에 가깝지. 아니, 야만적인 러시아 전제정보다 차라리 동아시아 입헌정치가 더 우월하다.”
미국의 지원을 바라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도 미국을 동아시아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루스벨트는 철저한 사회진화론자로, 앵글로색슨 문명이야말로 문명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앵글로색슨 문명의 제자를 자처하는 황인종’들이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언컨대, 20세기는 태평양의 세기, 더 나아가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