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96
– 77화에 계속 –
2부 77화 0차 세계대전
프랑스 공화국, 파리.
러일전쟁 발발 소식에, 전쟁 당사국을 제외하고 가장 경악한 나라는 프랑스였을 것이다.
프랑스의 유일한 군사동맹이자, 프랑스 금융자본이 대거 진출해 있는 러시아가 극동에서 전쟁을 벌이는 건 결코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프랑스에게 있어 러시아란, 숙적 독일을 포위하여 유사시 함께 전쟁을 해야 할 나라였다.
그렇기에 지난 15년간 러시아에게 막대한 차관 대부(貸付)와 투자를 하며 러시아의 산업 진흥을 도운 것이 아닌가. 해외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는 프랑스 자본가들의 수익 목적도 있겠으나, 전시에 필요한 러시아의 산업을 성장시킬 목적이 컸다.
“결국 일본이 사고를 치는군. 영국은 일본도 관리 못하나? 일본이 하는 짓도 괘씸하지만, 이래서 러시아가 만주를 점령하면 안 되는 거였어. 차라리 한국에 만주 경영을 위탁했더라면 영일동맹에 합류하지도 않았을 터.”
외무장관 델카세가 혀를 차며 한탄했다.
프랑스는 진작부터 러시아에 만주에서 철수할 것을 권했다. 대신 한국에 남만주 관리를 맡기자고 제안했다. 파리 금융자본은 서울에도 침투했고, 노불동맹의 하위 파트너 역할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한국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제국의 위신에 집착하여 끝내 철수할 것을 거부했고, 그 결과 일본은 물론이요 한국까지 영국 편에 붙고야 말았다.
영불협상이 체결되면서 프랑스는 극동의 전쟁 가능성이 줄어들었다고 안심했다. 러시아는 프랑스의 동맹이요, 일본은 영국의 동맹이니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일본의 통제에 실패했다. 러시아의 혁명적 위기가 발생하자마자 일본은 바로 전쟁을 택하고야 말았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곤란한데…….”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역시나 러시아는 프랑스에 손을 벌렸다. 전쟁 공채를 사달라고 파리 금융시장에 손을 내민 것이다.
“귀국도 단기전을 원하리라 생각합니다. 러시아가 단기간에 승전하려면, 프랑스의 지원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러시아 각료평의회 의장 비테가 직접 파리에 와서 사정했다. 비테는 재무대신 시절에 프랑스 자본을 대거 러시아로 끌어들인 공로자였다. 프랑스는 극동의 전쟁에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제안을 외면할 수 없었다.
“프랑스 공화국 정부는 동맹국 러시아의 승전을 기원하며, 신용을 보증합니다.”
“러시아 제국은 프랑스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1905년 4월, 파리 금융시장은 러시아 재무부가 발행한 3억 루블의 전쟁 공채를 구매했다. 연리 5%라는 고율이기는 했으나, 재정적자 상태의 러시아에는 큰 도움의 손길이었다.
“제발 독일이 사고 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할 텐데!”
프랑스에게 최악의 악몽은, 러시아가 극동 전선에 발목을 묶인 사이에 독일이 전쟁을 도발하는 것이었다. 독일이 프랑스의 세력권인 모로코에서 심상치 않은 동태를 보인다는 정보가 포착됐고, 프랑스는 영국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영국과 맺은 우호협약을 군사동맹으로 격상시켜야 해. 어떻게든 영러 간의 화해도 주선해야 하고.”
러일전쟁 발발과 함께, 프랑스 외교관들의 행보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독일 제국, 베를린.
과연 러일전쟁 발발 소식에 가장 쾌재를 외친 나라가 독일이었으니, 프랑스의 우려는 근거 없는 기우가 아니었다.
“아주 좋아. 이왕이면 전쟁을 질질 끌어서 장기전의 진흙탕에 빠졌으면 좋겠군. 러시아가 독일 국경의 군대도 대거 극동으로 보낼 수 있도록.”
독일 군부는 환호했다.
참모본부 4국 1부(러시아 전담)에 근무하는 팔켄하인 중령은 당시 군부 내에서 최고의 극동 전문가로 통했으므로, 개전 이후 가장 바쁜 장교이기도 했다.
러일전쟁과 관련된 보고서와 브리핑을 하는 나날이 이어지다가, 참모총장 슐리펜 상급대장의 호출을 받았다.
“중령, 지난번에 내가 곧 다시 부를 거라고 했지?”
“예, 각하.”
“결국 전쟁은 일어났네. 귀관의 예측대로 초반에는 일본의 우세로 시작되는군.”
“그렇습니다. 일본은 단기결전을 노리겠지만, 러시아는 초반에 교전을 회피하고 최소한 3개월에서 6개월은 전투를 회피하려고 할 겁니다. 유럽에 있는 군대를 만주까지 수송해 편제하려면.”
“바라던 바지.”
팔켄하인의 예측은 슐리펜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모본부는 만주에 관전무관을 파견하기로 했네. 귀관이 관전무관단장을 맡아서 전선을 살피도록.”
“예. 러시아 측입니까, 일본 측입니까?”
“일본이 좀 더 협조적이더군. 호프만 대위가 귀관을 보좌할 것이다. 이상.”
“예, 각하!”
팔켄하인 중령과 호프만(Maximilian Hoffmann) 대위가 이끄는 독일 관전무관단이 극동으로 향했다.
팔켄하인으로서는 한국을 떠난 지 불과 몇 달 만의 귀환이었다.
“러시아가 극동의 진흙탕에 발목을 잡히는 올해가 예방전쟁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러시아군이 만주로 본격적으로 병력을 보내 교전을 벌일 시기는 8월경으로 추정된다. 그리되면 동부전선에서 받는 압력이 줄어들고, 군대를 서부전선에 집중시킬 수 있다. 빠르면 9월, 늦어도 내년 봄에는 프랑스를 공격해 굴복시킨다.”
슐리펜은 프랑스를 상대로 예방전쟁을 계획했다.
대외강경책을 주도하고 있는 외무부 정치국장 홀슈타인(Friedrich von Holstein)도 슐리펜의 계획을 지지했다.
“결국 영국은 프랑스에 가담하고 말 것입니다.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프랑스를 분쇄해야 합니다. 프랑스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전쟁에는 명분이 필요했다. ‘예방’은 명분이 되기엔 부족했다.
홀슈타인은 프랑스가 개혁을 명분으로 모로코의 독립을 유명무실화하고 보호국화를 추진 중인 것에 주목했다.
카이저가 탕헤르를 방문해 모로코의 독립을 천명하면, 프랑스는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영국이 프랑스의 모로코 식민화를 돕기 위해 독일과 전쟁까지 각오하진 않을 것이다. 전쟁 위기를 발생시킨 후, 프랑스를 선제공격한다.
당분간 러시아에는 우호의 손짓을 보내, 러시아가 계속 극동의 전쟁을 수행하도록 하게 만든다.
“필요하다면 베를린 금융가에서 러시아 전쟁 공채도 사고, 차관도 제공합시다.”
빌헬름 2세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모로코 방문에도 동의했다. 하지만 전쟁 계획에 대해선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입장이었다.
“좋아. 이번 여름휴가는 지중해와 모로코에서 보내도록 하지. 러시아는 짐이 직접 설득하겠네. 전쟁 없이 외교적 조치로 프랑스와 영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그게 최선 아니겠나?”
거침없이 드러내는 카이저의 호전적인 허세는 내면의 소심함이 공존했다.
재보장조약 파기가 노불동맹을 이끌었고, 카이저가 추진하는 건함정책이 영국을 자극하여 영불협상까지 가게 만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평화적 수단으로 독일의 지배적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굳이 전쟁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러시아를 설득해 불가침조약을 맺으면, 프랑스도 독일에 대한 적의를 꺾을 수밖에 없다. 영국은 결코 러시아와 손을 잡지 못한다. 프랑스가 결국 영국을 택한다면, 러시아와 자연히 멀어진다. 러시아가 핵심이다. 삼제동맹으로 돌아가, 니키만 끌어들이면 돼.”
카이저는 차르에게 친서를 보내 올해 중 정상회담을 요청했다. 만날 기회만 주어진다면, ‘순진한 사촌 니키’를 세치 혀로 끌어들일 자신이 있었다.
* * *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전쟁 발발로부터 시간이 흐르면서, 개전 당시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잠잠해졌다.
그래도 분명히 전쟁 초기의 효과는 있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잠잠해지고, 농촌의 저항도 사라졌으며, 부르주아지의 정치개혁 요구도 쑥 들어갔다.
여전히 폴란드, 발트 지방, 핀란드에서는 파업과 소요가 이어졌지만, 계엄군의 주둔과 진압으로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진 않았다.
내무대신 플레베가 예측한 대로, ‘일본에 거둘 단기간의 승리’는 러시아를 단결시킬 것이다.
하지만 전제조건은 어디까지나 러시아가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었다.
“대러시아가 작은 섬나라 원숭이 따위에게 지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차르 니콜라이 2세를 정점으로, 정부와 군부 그 누구도 일본에게 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승리까지 소요되는 시간의 문제였다.
“일본 따위야 올해가 가기 전에 이길 수 있지 않겠소?”
자신만만한 인사들과 달리, 군부 수뇌부는 최소 1년에서 2년은 필요하리라 계산했다.
“극동군은 전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결국 유럽에 주둔하는 군대가 만주로 이동하여 싸워야 하는데, 주적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존재를 생각하면 단숨에 많은 병력을 뺄 수도 없다. 순차적으로 차분히 병력을 집결시켜야 한다.”
전선을 책임질 만주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육군대신 쿠로파트킨 대장의 전쟁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포트 아르투르(여순)과 묵덴(봉천)을 요새로 삼아, 방어로 일관해 지연전을 벌이며 일본군의 출혈을 도모한다. 단기결전을 원하는 일본군을 최대한 북쪽으로 유인하여 소모시킨다. 필요하다면 하르빈(하얼빈)까지 끌어들인다. 충분한 병력이 모이면, 공세로 전환하여 소모된 일본군을 섬멸한다.”
쿠로파트킨의 계획은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극적이었다.
러시아의 경제력, 군사력이 일본보다 강해 전쟁수행능력이 훨씬 우월하니, 장기전으로 일본을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러시아의 장기인, 시간과 공간을 벗으로 삼아 내륙으로 끌어들이고, 청야작전도 계획했다. 청야작전은 작전 지역의 극심한 손해를 각오해야 하지만, 어차피 만주는 청국 영토요 주민은 청국인이니 알 바 아니었다.
분명 이 계획은 일본의 전쟁수행능력을 소모시키고, 끝내 파산과 항복으로 끌어낼 작전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재현이었다.
문제는 러시아도 사정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신민에게 조속히 승리라는 결과를 안겨 주어야 한다. 무조건 올해 안에 결판을 내야 해!”
“장기전은 재정에 치명타를 안겨 줄 겁니다. 가뜩이나 만성적자인데…….”
“일본도 단기간에 제압하지 못한다면, 열강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소?”
프랑스가 3억 루블의 전쟁 공채를 구매하여 당장 전비는 한숨 돌렸다지만, 문제는 러시아의 만성적인 재정적자였다.
예컨대 작년의 경우 세입은 20억 루블이지만 세출은 22억 루블이었고, 지난 10년간 매년 적자가 반복됐다. 적자는 죄다 내국채 발행과 외채 모집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이자만 해도 상당한 액수였다.
일본이야 만주 전선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러시아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발칸, 캅카스, 중앙아시아에 걸쳐 모든 영역을 신경 써야 하니 일본과의 전쟁에만 집중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정치적 불안성은 차르의 실정으로 인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위에 있는 것과 같았으니, 문자 그대로 경찰과 관료에 대한 혁명가들의 폭탄 투척은 비일비재했다.
“나는 군인으로서 승리에 필요한 작전만 짤 뿐, 정치와 경제의 문제는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단기전에 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만주로 향한 쿠로파트킨은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친애하는 짐의 형제, 니키!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고심이 많습니까?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한 일본의 비열함은 과연 황인종의 야만적인 행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이 홀로 전쟁을 결심하지는 않았을 터, 일본의 동맹인 영국이 조종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영국은 진작부터 러시아의 전진을 경계하며 온갖 악선전을 해온바, 교활한 영국의 부추김에 넘어간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 짐과 독일은 폐하와 러시아를 확고히 지지합니다. 저 야만적인 황인종을 무찌르고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것이, 폐하와 러시아의 사명입니다. 러시아의 전쟁 승리를 위하여 독일은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베를린 금융가는 언제든지 러시아를 위해 개방되어 있습니다. 전선이 안정되면, 짐이 러시아를 방문해 확고한 지지의 뜻을 보이겠으니, 방문을 허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폐하의 좋은 형제, 빌헬름 2세」
독일이 언제 일본의 러시아 공격을 부추겼냐는 듯, 카이저는 전쟁 책임을 영국에게 떠넘겼다.
카이저는 러시아의 승리를 염원하고 지원을 약속하니, 독일이 일본 육군의 배후에서 개전을 부추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니콜라이 2세로서는 카이저의 호의적인 반응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빌리가 허풍이 심하긴 하지만, 사람이 참 신의는 있어. 프랑스에 이어 독일도 우리를 지지한다면, 이 전쟁은 반드시 이기리라.”
소심하고 점잖은 니콜라이는 ‘허풍쟁이 사촌 빌리’와 천성적으로 잘 맞지 않았지만, 빌헬름의 그 당당함과 언변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
차르는 프랑스를 믿지만 영국은 불신했고, 영국과 손을 잡느니 차라리 독일과 손을 잡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카이저가 제시한 반영 대륙동맹, 러시아-독일-프랑스 동맹은 차르에게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문제는 프랑스와 독일의 대립 관계로 인해 성사될 수 없는 동맹이지만, 차르는 자신이 직접 주선하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러시아를 기만하는 독일의 이중 플레이였지만, 차르는 카이저의 친서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차르를 향한 이중 플레이는 카이저만 하는 게 아니었다.
「…… 짐은 폐하께서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평화를 중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한국이 러시아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지만, 이는 결코 짐의 본의가 아닙니다. 단지 한국의 국력이 약해, 일본의 압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본군의 진주를 거절했더라면 저들은 한국의 중립을 짓밟고, 결국 한반도가 전장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국은 일본과 전쟁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짐의 신민들을 지키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임을 이해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짐은 언제나 폐하의 좋은 형제이며, 러시아가 승리하리라 믿습니다. 신께서 폐하를 보우하시길!」
이선은 거듭 비밀리에 친서를 보내 니콜라이에게 해명했다. 이선의 ‘배신’을 괘씸하게 생각했던 니콜라이도, 분노가 한풀 풀려 있었다.
‘폴란드 애인의 꼬드김’에서 벗어난 이선이 이성을 되찾고, 차르에게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겠다고 위협했다면, 한국 입장에서 전쟁을 피하기 위해 선택이라는 데 이해할 수 없는 바도 아니었다.
일본이 한국과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고, 이선도 죽을지언정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이중 플레이였다.
아무튼 니콜라이는 편리하게 생각했다.
“일단 일본을 이기는 게 우선이다. 한국 문제는 다음에 생각하지.”
1905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은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었으나, 한국과 청나라가 관여되어 있고, 그 배후에는 영국·미국·프랑스·독일의 이해관계가 춤을 췄다.
1차 세계대전의 전조가 될, 열강 간의 균열과 전선이 나뉘어졌다.
가히 ‘0차 세계대전’이라 부를 만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