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397
– 78화에 계속 –
2부 78화 양패구상
1905년 4월. 일본군이 동원과 편제를 대부분 마치고, 본격적으로 만주를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먼저 동원이 완료된 1군이 평안도에서 압록강을 넘어 봉황성으로 진격했다.
압록강 철교를 넘어 봉황성까지는 안봉선 철도가 개통되어 있었다. 한일의정서 체결 후 일본의 자금지원을 받은 대한제국 철도국은 철도 부설을 신속히 이어 나가 하마참역(下馬塘駅)까지 부설되었다.
하마참역을 지나면 바로 연산관과 마천령(摩天嶺, 모티엔)으로, 천산산맥의 요충지였다. 마천령은 조선시대 연행사가 압록강을 넘어 산맥을 넘은 뒤, 요동평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마천령을 넘으면 빠르게 안산과 요양으로 접근했다.
일본군과 러시아군이 지상전에서 첫 충돌을 예상하는 장소가 바로 이 마천령 일대였다.
“동청철도 남만주지선의 보호를 위해 안산 돌출부를 확보했으니, 요동평야를 보호하기 위해선 전략적 요충지인 모티엔 고개(마천령)를 미리 확보해야 합니다.”
교통의 요지란 곧 군사적 요충지를 의미했다. 청조일전쟁 당시 마천령과 팔반령은 요동으로 진격하던 조선군의 주요한 통로였으며, 청군이 마천령과 팔반령의 방어를 포기하는 바람에 조선군은 빠르게 요동평야로 진격할 수 있었다.
러시아 만주군은 남만주 철도의 안전을 위해 안산에 이어 마천령 점령을 주장했다.
안산 돌출부를 지키던 대한제국군 6사단은 개전 초기 상부의 명령을 받아 순순히 러시아군에게 넘겨주고, 천산산맥 이남으로 철수했다. 러시아군은 종전 후 안산을 고스란히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근래 한국이 개발한 안산 철광도 계속 소유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모티엔 점령이라, 그리되면 한국의 중립을 무시하는 게 될 텐데.”
“이미 한국은 일본에 기울어졌거늘, 무슨 중립입니까? 말만 중립이지, 일본군에게는 온갖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의 중립을 이해하며 존중할 의사를 보인 차르와 달리, 러시아 군부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아무리 봐도 일본 쪽으로 기울어진 중립이었다.
“모티엔을 우리 군이 확보해야 요동평야로의 적 진격을 막습니다.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휘하 장교들의 건의와 달리, 만주군 사령관 쿠로파트킨 대장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어차피 일본군을 계속 북쪽으로 끌어들여 계속 지연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쿠로파트킨은, 마천령 방어에 집착하지 않았다.
“전술적 요인만 판단할 때가 아닐세. 섣불리 모티엔을 점령하려 했다가, 현지를 지키는 한국군 6사단과 교전이라도 벌인다면?”
가뜩이나 참전을 외치는 한국 여론을 자극할 수 있었다. 한국이 중립을 포기하고 아예 일본의 편에 서는 건 최악의 결과였다.
“모티엔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남만주 자치령도 속히 확보해야 합니다. 자치령 바로 서쪽이 묵던(봉천)이요, 북쪽은 기린우라(길림)입니다. 만약 일본군이 이 지역을 선점한다면 작전수행에 타격을 입을 겁니다.”
남만주 자치령은 법적으로는 청나라, 실질적으로는 대한제국이 관리하는 지역이었다. 두 나라 모두 중립을 선언한 상황이라 자치령도 중립을 유지했다.
“자치령은 어찌 됐건 청나라 영토이니, 먼저 청 조정의 허가를 받도록 하지. 당장 일본군이 접근하고 있지 않으니 점령은 하지 않는다.”
쿠로파트킨은 거듭 신중함을 보였다. 7만km2에 달하는 자치령 점령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한국군 7사단이 자치령에 주둔 중이니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고, 용케 타협을 보더라도 자치령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만주인들이 점령에 반발하여 게릴라전을 벌일 수도 있었다.
이미 만주 마적들은 러시아군의 배후에서 날뛰고 있는 상황이었다.
“켈러 장군. 장군에게 2개 사단을 맡기겠소. 모티엔을 점령하지는 않되, 요동평야로 이어지는 길목을 확보하도록 하시오.”
“예, 각하!”
표도르 켈러(Fyodor Keller) 중장이 2개 사단을 이끌고 마천령에서 요동평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기로 했다. 켈러는 쿠로파트킨과 가까운 사이로, 사령관의 신중한 전략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모티엔에서 목숨 걸고 싸울 필요는 없소. 일본군에게 적당한 타격을 입힌 후, 적의 공세가 본격화되면 안산으로 퇴각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쿠로파트킨은 최소 9월까지 지연전을 계획했다. 그 과정에서 요양과 봉천까지는 내줘도 할 수 없었다. 일본군을 최대한 북쪽 내륙으로 끌어들여 보급선을 길게 늘여놓고, 공세종말점에 도달했을 때 역습을 가해 궤멸시킬 전략이었다.
요새화된 요동반도의 여순과 금주, 만주군 본대가 주둔하는 요양과 봉천에서 일본군의 희생을 최대한 늘릴 것이다.
“일본군 따위에게 왜 이리 겁을 먹는단 말인가? 화끈하게 대규모 회전을 벌여서 섬멸해야지!”
쿠로파트킨의 신중한 전략에 휘하 장군들 사이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명목상 군 통수권자이기는 하나 전략에 대해 무지한 차르 니콜라이 2세는, 자신이 임명한 쿠로파트킨에 대한 굳건한 신임을 보였다.
“짐은 쿠로파트킨 대장을 신임한다. 휘하 장성들은 사령관의 지시에 따르도록 하라.”
한국령 요동과 남만주 자치령 점령에 대한 요구에서도, 차르는 일단 한국과 청나라의 중립을 존중할 뜻을 보였다.
러시아는 야만적인 일본과 달리 국제법을 철저히 준수하며 싸운다.
이게 차르의 구상이었고, 세계에 보내는 선전 메시지이기도 했다.
“전략적으로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점령을 허용하지 않겠다. 점령은 최후의 수단이다. 한국과 청국의 중립을 침해하여 그들을 적으로 돌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러시아가 일본군을 만주에서 대파하면, 한국이 알아서 친러국가로 되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청나라도 러시아의 위용에 조아릴 것이며, 일본은 고립되고 말 것이다.
“섬나라 원숭이 놈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다시는 대륙에 손을 뻗지 못하게 만들어 주지.”
니콜라이는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런 판단의 근거는 차르와 정부, 군부 고위인사만 공유하는 게 아니었다.
객관적인 관찰자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 일본 따위가 감히 서양 열강에게…….”
러시아는 일본에 비해 인구가 3배, 경제력은 7배, 공업 생산량은 10배, 육군은 6배, 해군은 3배였다.
이러니 러시아가 승리를 자신하는 건 당연하게 보였다.
문제는 러시아의 국력 9할이 우랄산맥 서쪽 유럽 러시아에 있다는 점이었다. 우랄 동쪽 아시아에는 러시아 국력의 1할에 불과했으니, 결국 러시아가 얼마나 빠르게 유럽의 전력을 아시아로 수송을 할 수 있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었다.
* * *
청나라, 북경.
명목상 청나라 영토인 만주가 최전선이 되었지만, 정작 북경 조정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2월 23일, 청나라는 중립을 선언했다. 다만 동삼성(만주) 전역을 전쟁 구역으로 선포, 이 지역에서 전쟁을 ‘허용’했다.
물론 러시아와 일본은 청나라가 허용하거나 말거나, 만주에서 전투를 벌일 생각이었다.
개전 이후 일본 원로 이노우에 가오루가 북경을 방문하여, 조건을 내밀었다.
“일본은 러시아군을 무찌르고, 러시아가 불법 강점한 만주에서 몰아내려 합니다. 그리되면 만주는 대청국에 환부되겠지요.”
“러시아가 조차한 여순과 대련, 동청철도는 어찌 됩니까?”
“이 역시 전후 강화조약을 통해 반환을 제기할 것입니다. 물론 전제조건은 일본의 승리입니다. 그러니 귀국도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은 이미 일본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동양의 형제국가로서, 대청국은 일본의 승리를 기원하겠습니다. 만주의 우리 백성들도 일본을 지지할 것입니다.”
청 조정은 명목상 중립이지만, 일본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전쟁 끝나고 만주를 돌려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러시아도 명분 확보를 위해 전쟁이 끝나면 만주를 청나라에 돌려주겠다고 선언했으나, 이미 북경의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아라사는 믿을 수가 없다. 마음만 같아선 아라사에 선전포고하고 싶으나…….”
“이이제이, 북쪽 오랑캐는 섬나라 오랑캐에게 맡기시지요.”
광서제는 러시아를 상대로 직접 일전을 벌여 만주를 되찾고 싶었으나, 한창 뒤늦은 개혁에 나서고 있는 청나라에는 그럴 국력이 없었다.
대신 전통적인 ‘이이제이’를 선택해, 일본을 이용해 러시아를 제압한다는 방책을 세웠다.
“러시아와 맺은 방위조약을 파기한다. 공개적으로 발표하라.”
1896년, 이홍장이 러시아에서 체결한 러청조 방위조약이 총리아문의 발표로 공식적으로 파기되었다. 이미 러시아의 만주 점령에 분개하여 청나라가 탈퇴했고, 한국도 영일동맹에 합류하면서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 조약이었다.
그럼에도 공개적으로 파기를 선언한 건, 러시아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대내외에 표명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전제조건은 일본의 승리, 그리고 승리 후에도 일본이 약속을 지키느냐에 달린 문제였다.
“폐하의 단호하고도 현명한 판단에, 외신은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외신은 비록 타국의 신하이나, 중화를 경모해마지않는 이로써 대청의 유신과 고토 수복을 바라마지않나이다.”
주청한국공사 이완용은 광서제의 결단을 칭송했다.
이완용은 근래 광서제가 가장 만나기를 선호하는 외국 공사였다. 서양 열강은 하나같이 청나라를 기만하며 영토와 이권을 탈취해 가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었다. 일본조차도 청나라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했다.
광서제가 일본도 호의적으로 대하기는 했지만, 보다 선호하는 건 한국이었다. 한국군 덕에 서태후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한국 황제 이선은 언제나 존경스러운 모범이었다.
“고맙소. 귀국 황제께서도 일본을 지지하고 계시니 반가울 따름이오. 동양 삼국이 단결하여, 함께 동양에서 서양 침략자를 몰아냅시다.”
본래 유학을 익힌 유학자 출신인 이완용의 예의 바른 처신과 탁월한 언변은 광서제의 심중에도 꼭 맞는 것이었으니, 자연히 이완용은 광서제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만주는 대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설령 일본과 아라사가 전쟁 후에 태도를 바꾸더라도, 대한은 대청의 만주 수복을 위하여 노력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오, 이렇게 고마울 데가. 과연 그리할 수 있겠소?”
“대청과 대한은 오랜 우의를 다져왔으며, 만주인과 한국인은 본래 형제의 민족이니, 어찌 형제의 곤욕을 지켜만 보고 있겠습니까?”
“참으로 그렇소. 역시 짐이 믿을 수 있는 국가는 귀국뿐이오.”
“황공하옵니다. 대청의 안전이 곧 대한의 안전과 직결되니, 힘껏 돕도록 하겠습니다.”
이완용은 겉으로는 더없이 정중하고 깍듯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으나, 알현에서 물러나며 속으로 냉소했다.
‘암, 대청의 안전이 대한의 안전이고말고. 만주를 러시아나 일본이 차지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러려면 일단 원주인인 청국에게 돌아와야지. 그 청국 황제를 지지하는 건 대한이니, 만주의 온갖 이권을 쟁취하여 실질적인 지배자는 대한이 되는 것이다. 1등 공신은 당연히 내가 되는 거고.’
이완용은 러일 개전이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이미 그는 계산을 마친 상황이었다. 러시아가 이기든, 일본이 이기든 간에 ‘만주의 주권’을 청나라에 되돌려놔야 했다.
‘이왕이면 일본이 이기는 게 낫지. 일본보다는 러시아가 더 두려운 적이니, 일단 러시아를 만주에서 몰아내야 하니까. 청국에 만주를 돌려주고, 만주에 진출하길 원하는 미국과 연대하여 실질적인 이권을 쟁취하는 거다.’
주미공사도 지낸 바 있는 이완용은 미국 정가의 목표를 파악했다.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아시아 진출을 원하고, 미국 자본은 만주에 진출하길 원한다.
비록 출세를 위해 개화당에 입당하여 김옥균·박영효 등 주류에 선을 대고 있는 이완용이지만, 본래 소장파인 외무대신 서광범·법무대신 유길준·주미공사 서재필·주영공사 윤치호처럼 친미파에 더 가까웠다. 이들은 모두 미국 유학과 외교관 재직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같았다.
다만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서재필 등이 미국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경도되어 있다면, 이완용은 단순히 미국의 힘을 높이 평가할 뿐이었다.
‘지금은 영국의 시대지만, 미국의 빠른 성장을 보면 장차 미국의 시대가 올 게 틀림없다.’
그렇기에 소장파들이 개화당에서 분리하여 독립당을 창당했을 때도, 오히려 이완용은 개화당 주류에 접근하여 권력에 복종하는 길을 선택했다.
‘성상께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대미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시겠나. 미국의 의중을 빨리 파악할 수 있으면서도, 대한의 이익선인 만주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최일선에서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외교관. 그게 바로 나다.’
기민할 정도로 눈치가 빠른 이완용은, 결국 황제가 러시아 패권을 대신해 영국 패권과 미국 패권을 등에 업고 만주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판단했다.
아시아주의에 공감하는 개화당 주류, 영미 자유주의에 공감하는 독립당과 달리, 이완용에게 중요한 건 국가와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느냐였다.
‘그러니 미리 청제(淸帝)에게는 약을 쳐 놔야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는 속이는 놈이 나쁜 게 아니라, 속는 놈이 어리석은 거지.’
이완용을,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완용을 공사로 파견한 이선의 선의를 신뢰하는 광서제에 대한 인간적 미안함 따위는 전혀 없었다.
‘피는 너희들이 열심히 흘려라. 너희들의 시체와 피가 거름이 되어 꽃을 피리니, 나는 그 과실이나 챙기련다.’
이완용은 만주 전선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양패구상(兩敗俱傷)을 고대했다. 그래야 한국이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었다.
과연 이완용의 기민한 예측대로, 양패구상과 어부지리는 바로 이선의 복안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