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0
– 40화에 계속 –
40화 노벨 형제
갑작스러운 이선의 관심에 루트비히 노벨은 놀라워했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어린 왕자의 일시적인 관심사로 보였던 것이다.
“왕자께서 석유 산업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으신지…….”
“자세한 건 몰라도, 석유가 근대 산업의 꽃이 되리라는 건 압니다. 석유는 석탄을 제치고 다가오는 20세기의 핵심 자원이 될 겁니다.”
단언하듯 말하는 이선으로 인해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아냐는 눈빛이었다. 이선은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많죠. 그래서 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좀 더 설명을 해드리지요.”
뜻밖의 지원군을 얻게 된 노벨은, 왜 자신의 회사에 투자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나갔다.
본래 노벨 가문은 잘 알려져 있듯, 스웨덴계이다. 발명가였던 임마누엘(Immanuel)은 러시아로 이주했고, 자신이 발명한 기뢰를 크림 전쟁 중의 러시아 제국에 납품하면서 명성을 알렸다.
부친으로부터 가업을 이은 로베르트와 루트비히 형제는 군수 산업을 더욱 발전시켰다. 크림 전쟁에서 최근의 러시아-튀르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노벨 형제는 러시아 제국에 막대한 군수품을 납품했고, 기업은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다.
노벨 형제는 새로운 사업에 눈을 돌렸고, 그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석유였다.
노벨 형제는 카스피해의 바쿠 유전을 탐사했고, 러시아 제국의 특허를 받아 유전 개발권을 얻었다.
1875년에 처음 생산에 돌입한 이래, 노벨 가문의 석유 산업은 발명가답게 혁신을 거듭했다.
“우리 회사는 러시아 최초로 송유관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세계 최초의 유조선을 건설하여 수상 운송에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석유 운송은 철도나 마차 같은 육로 수송이나 소규모 바지선에 의존했는데, 노벨 형제는 1878년 세계 최초의 현대적 대형 유조선 를 건설하여 운송의 혁신을 일으켰다.
산업이 궤도에 오르자, 루트비히는 동생 알프레드의 조언을 받아 1879년 주식회사 를 발족시켰다. 이 과정에서 장남 로베르트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전권을 루트비히에게 넘겼다.
“주식회사 노벨 형제는 300만 루블의 자본금으로 출발해, 투자자는 1년 만에 모든 이익을 회수했습니다. 적어도 향후 수년간은, 매년 50%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본금은 총 300만 루블로, 루트비히가 100만 루블을, 빌더링(Bilderling) 남작이 30만 루블을 투자했다. 지분의 53%는 대주주 루트비히가 소유했고, 2대 주주 빌더링 남작이 31%, 알프레드가 3.8%, 경영에서 물러난 로베르트가 1.7%를 보유했다.
루트비히의 호언장담대로 투자자들은 1년 만에 이익을 회수했고, 2년 차인 올해도 크게 성장 중이었다.
하지만 거듭되는 기술 혁신과 투자로 인해 자금이 부족해졌고, 루트비히는 자금 유치를 위해 노력했다.
“남작께서는 미처 모르셨겠지만, 사실 전 이미 석유 산업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바쿠 유전에 대해서라면 더욱 흥미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투자하고 싶습니다.”
“오, 그러셨습니까. 이거 미처 몰라뵈었군요.”
이선의 관심이 단수한 흥밋거리가 아닌 걸 알게 된 노벨은 반가워했다.
“그럼 먼저 우리 회사의 주식을 구매하시지요. 개인은 5천 루블까지 투자 가능합니다.”
노벨 형제는 페테르부르크의 주식거래소에 상장을 했으나, 투기를 막기 위해 1인당 주식 투자를 최대 5천 루블로 제한했다.
“5천 루블은 너무 적군요. 공동 출자자로서 투자할 수 있는 최저 금액이 얼마입니까?”
“2만 5천 루블입니다. 이 금액 이상을 투자하면, 사외이사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럼 20만 루블을 투자하지요.”
얼마 전, 이선은 황제로부터 은사금으로 20만 루블을 하사받았다. 더 놀라운 건, 이건 ‘황제 구원’의 공으로 받은 일시금이고, 황제는 러시아 대공의 신분에 준하여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러시아에서 20만 루블은 상당한 거액이었다.
예컨대 1881년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밀무역 규모가 45만 루블이었는데, 그중에 러시아가 수입한 조선 소 4500마리의 금액이 20만 2500루블이었다.
말하자면 이선은 소를 중요한 자산으로 여겼던 조선으로 치면, 소 4500마리를 보유한 대부호가 된 셈이었다.
이선은 일단 황립은행에다 넣고 사용처를 고민했다. 가장 유망한 사업에 투자하려던 이선의 복안은, 노벨을 만나고 투자처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남자라면 올인이지!’
“20만 루블이요?”
투자액의 규모에 오히려 루트비히가 더 당황했다. 창립자인 로베르트가 투자한 금액이 10만 루블이었다. 그런데 동양에서 온 왕자가 20만 루블을 투자하겠다니.
‘이 왕자가 돈이 많긴 많구나. 즉석에서 20만 루블 투자를 결심하다니.’
이선이 자신이 가진 모든 자본을 투자하려는 걸 모르는 유수포프 공작가의 사람들도 확신을 갖게 되었다.
유수포프 공작은 오늘 이선이 자신의 딸보다 노벨과 석유 산업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에 약간 실망했지만, 어린 나이에 이만한 포부를 보이는 것에 내심 감탄했다.
“왕자, 석유 산업이 그렇게 유망하리라는 확신을 어떻게 갖고 있습니까?”
공작의 물음에 이선은 대답을 고심했다. 앞으로의 역사 전개를 안다고 대답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황제 폐하의 암살 계획을 예견했던 것처럼, 제게 어떤 계시가 왔습니다. 이건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것을.”
“…….”
어떤 근거도 없는 말이었지만, 뜻밖에 대부호 유수포프 공작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좋소. 왕자께서 그 정도 투자한다는 데 내가 그냥 지켜만 볼 순 없겠지. 그럼 나는 40만 루블을 투자하겠소. 어떻소, 남작?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투자가 되겠소?”
단숨에 60만 루블 투자를 받아내다니, 루트비히는 기대 이상의 성과에 기쁠 따름이었다.
“흔쾌히 투자해 주신 두 분께 브라노벨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루트비히 노벨은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를 표했다.
루트비히는 이선을 별도로 자신의 자택에 초대했다. 이선이 아니었더라면 유수포프 공작의 투자도 그렇게 흔쾌히 이끌어내지 못했을 터였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동양에서도 석유 산업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동양에서 관심이 있다기보단, 제가 관심이 있죠. 노벨 가문에 대해서도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어째서 우리 가문에 관심이 있으신지?”
‘다이너마이트와 노벨상의 알프레드 노벨이 있잖아. 사실 그게 아니라면 어찌 알았겠나.’
물론 이선은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
“근래 외국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가문을 꼽으라면 단연 노벨 가문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외국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총아가 되었죠.”
“하하, 그렇군요. 하지만 벼락출세한 졸부 가문이라고 경멸하는 귀족들도 적지 않습니다.”
스웨덴계로 러시아에서 크게 성공한 루트비히 노벨은, 러시아 상류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러시아로 귀화하고 남작 작위를 사들였다.
혈통을 중시하는 러시아 귀족 사회에서 벼락출세한 졸부라고 노벨 가문을 질시하는 이들도 많았다.
“뭐, 그렇게 따지면 동양에서 온 듣도 보도 못한 왕자가 황실의 총아가 된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겠죠.”
이선 역시 언제나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가끔 질시와 경멸의 시선을 느낄 때가 있었다. ‘너는 우리와 다르다, 네가 있던 곳으로 꺼져라.’하는 시선.
“그렇겠지요. 공작께서는 참으로 대범하십니다. 외국인으로서 성공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시선을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아무것도 못 할 겁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러시아는 외국인에게 상당한 기회의 땅이지요.”
“그러니 저도 러시아로 온 것 아니겠습니까?”
루트비히와 이선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웃었다.
“노벨 가문은 투자 못지않게 자선을 중시합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 제 저택에서 자선 파티가 열립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면 공작께서도 오시겠습니까?”
“자선 파티라, 훌륭한 생각이군요. 꼭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
이선은 노벨 가문의 자선 파티에 참석했다. 자선은 상류 사회에서 중요한 의무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노벨 가문은 기술뿐만 아니라 사고방식도 혁신적이었다. 당시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우 선진적인 복지 체계를 도입하여 노동자를 우대했다.
노벨 형제는 노동자들의 급료를 인상하고, 주말 휴일을 보장했다. 송유관과 유조선으로 인해 기존에 운송업을 맡던 마부들이 대량 실직 위기에 놓이자, 노벨 형제는 이들을 송유관 경비 및 항만 관리자로 재고용했다.
노동자에게 일 16시간 노동이 강요되고 자본가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최악의 노동환경인 러시아에서 이는 엄청나게 선진적인 조치였다.
1880년에는 바쿠 인근에 ‘노벨 마을’을 건설하여 노동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했다. 아름다운 정원을 보유한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저택은 노벨 가문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고, 도서관, 테니스장, 당구장 등 각종 복지 시설이 노동자에게 주어졌다.
노벨 형제는 노동자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가 곧 회사의 성장 동력이라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노벨 가문은 자선도 아끼지 않았고, 알프레드 노벨이 자신의 전 재산으로 노벨상을 제정한 데에는 이런 가문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알프레드! 어서 와라. 파리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다이너마이트의 제왕, 알프레드 노벨도 손님 중 한 명이었다. 형제는 모처럼 재회를 축하했다.
“스웨덴 가는 길에 잠깐 들렸어. 우리의 브라노벨은 번영하고 있는 것 같군.”
“이제 막 걸음마 단계지. 아, 오늘 온 손님 중에 새로운 투자자가 있다네.”
루트비히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동양인 소년을 가리켰다.
“저 소년이? 아, 그 동양 왕자인가? 어린 나이에 20만 루블을 한 번에 투자하다니, 돈이 많긴 많나 보군.”
“맞아. 어린 나이에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식견이 보통이 아니야. 장차 큰 인물이 될걸.”
주위에 있던 귀족들과 별로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이선이었다. 이들은 자선 파티 그 자체보다 사교계의 총아로 떠오른 이선에게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흥, ‘죽음의 상인’이 오셨군.”
“알프레드 노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선은 알프레드 노벨을 만나고 싶었던 차에 반가웠다.
“맞습니다. 온갖 위선은 다 떨지만, 결국 무기를 팔아서 부를 축적한 인간 아니오? 저 작자가 전쟁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얼만데.”
“사실 위선 떠는 건 그 형인 남작 나리도 마찬가지지. 혼자 고고한 척, 노동자들을 생각해 주는 척하고. 저 작자가 윤리 경영 어쩌구 하면서 모든 귀족과 자본가들을 도적처럼 만든다니까.”
“애초에 남작이라는 것도 웃겨요. 러시아 제국에 무기 팔아서 산 남작이 진짜 남작인가? 벼락출세한 졸부지.”
“…….”
이선은 경멸감을 느꼈다. 노벨 가문의 윤리적인 경영에 존경심을 보이기는커녕, 시기와 질시를 보이는 귀족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기껏해야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도 무기상 출신이다, 귀족 출신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네놈들이 노동자, 농민을 개돼지 취급하니까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 나도 너희 같은 놈들과 상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란 듯이 노벨 형제에게 인사하러 갔다.
“안녕하십니까, 남작님. 형제분께 저를 소개해 주십시오.”
“오오. 알프레드, 이선 공작이시네. 공작님, 제 아우 알프레드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이선과 알프레드는 우의의 뜻을 담아 악수를 하였다.
“공작께서 브라노벨에 투자했단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 저는 석유 산업의 미래를 믿습니다. 뛰어난 발명가인 노벨 가문의 혁신적이고 선진적인 경영법에도 확신이 있지요.”
이선은 노벨 가문의 윤리 경영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노벨 형제는 돈이 아니라 이상을 높이 평가하는 이선의 관점에 만족을 표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노벨 가문에 관심이 있는 건 유럽에서 손꼽히는 군수상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저는 무기가 필요합니다.”
“어째서 무기가 필요합니까?”
알프레드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전쟁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죽음의 상인’이란 호칭은 달갑지 않게 여겼다.
“수천수만의 제 동포들이 극동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페테르부르크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극동으로 가서, 변방을 개척하고 있는 제 동포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이선은 자신의 포부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치안이 부재하지요. 마적의 온갖 횡포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군대를 조직해서 동포들을 지켜낼 생각입니다. 평화를 지키려면, 무기가 있어야지요. 무장의 우위 상태에 있을 때 진정 평화가 유지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