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11
– 92화에 계속 –
2부 92화 세계전략
1905년 2기 임기를 시작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카이저 못지않게 러일전쟁 발발 소식에 기뻐했다. 독일이 러시아의 관심을 극동에 돌리기 위해 러일전쟁을 원했다면, 미국은 새로이 추진하는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러일전쟁을 원했다.
루스벨트는 먼로 독트린을 탈피해 새로운 세계전략을 추구했고, 미국이 태평양의 독점적인 지배자가 되는 날을 꿈꿨다.
“쌍방이 피폐할 대로 피폐해질 때까지 러시아와 일본과의 전쟁이 장기화해야 하오. 전쟁이 최대한 교착 상태에 빠졌다가, 강화가 체결된 후에도 세력권이 중첩되어 계속해서 대립한다면 더 좋겠지. 이게 바로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전쟁의 양상이자, 결말인 것이오.”
전쟁이 발발하자 루스벨트는 일본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속내는 러일 양국이 최대한 소모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항상 전쟁의 준비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의 욕망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오. 즉, 일본인은 키아우초우(교주만)의 독일인이나 필리핀의 미국인을 위협할 수 없을 것이며…….”
“러시아의 관심은 유럽에서 극동으로 돌려져 그곳에 못 박히게 되겠지요.”
“그렇소.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지.”
개전 초기, 루스벨트는 주미 독일 대사 폰 슈테른베르크(Hermann Von Sternberg)를 불러 속내를 털어놨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2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독일과 세계 제1의 공업국으로 성장한 미국은 20세기의 떠오르는 국가였고, 각자 영국의 해상 패권에 도전해 대서양과 태평양의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즉, 1905년 시점에는 독일과 미국이 대립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로코 위기가 발생하자 루스벨트는 독일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요새 카이저 때문에 매우 짜증 나는구려. 카이저의 돌발 행동, 예컨대 모로코 정책이나 황화론에 대한 연설은 멍청한 초선 의원의 장광설 수준이기 때문이오. 나는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좌충우돌하는 인간의 정책을 진지하게 수용할 생각이 없소. 이런 수준의 인간이 유럽 최강국의 황제라니!”
루스벨트는 외교관들에게 카이저에 대한 경멸감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카이저의 유명한 황화론 연설에 대해서 루스벨트는 ‘머저리(duncehead)’ 한 단어로 평가했다.
“만약 이대로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을 공격하면 어찌합니까?”
“장담하는데 그럴 일 없소. 카이저는 비스마르크가 했던 것처럼 먼저 프랑스를 안심시킨 후에 오스트리아를 치고, 다음으로 러시아를 안심시키고 프랑스를 친다는 식의 계획을 세울 능력이 없소. 카이저는 지나치게 자주 급변하고, 오류투성이라 그런 정책을 구상하고 실천할 수 없지. 다 허세에 지나지 않소. 도대체 영국은 왜 이런 수준의 인간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소.”
루스벨트는 혀를 찼다. 영국의 패권에 도전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는 루스벨트와 달리 카이저는 무계획하게 좌충우돌할 뿐이었다.
“만약 영국과 독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건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리라’는 공포에 전염되어 서로 공격할 경우가 될 거라 전망합니다. 일종의 예방전쟁이겠지.”
루스벨트는 슐리펜의 전쟁 계획을 몰랐지만, 놀라울 정도로 날카롭게 독일의 행보를 분석했다.
모로코 문제가 점차 전쟁 위기로 확대되자, 루스벨트는 러일전쟁이 독불전쟁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경계했다. 극동의 전쟁인 러일전쟁과 달리, 독불전쟁은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만약 독일이 프랑스를 굴복시키고 유럽의 패권을 독점한다면, 미국의 세계전략은 시작부터 꼬이게 되는 것이었다. 미국의 태평양 독점을 위해선 유럽의 세력균형이 필요했다.
“이따위 하찮은 이유로 전쟁을 시작한다면, 세계의 그 누구도 독일을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미합중국은 영국과 함께 프랑스의 편에 서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소.”
모로코 위기가 절정에 달할 무렵, 루스벨트는 독일 대사 슈테른베르크를 불러 프랑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밝혔다.
러일전쟁 개전 초기에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리라고 친근하게 대했던 태도는 전혀 없었다.
슈테른베르크의 보고를 받은 카이저는 당황했다. 아무리 미국을 대서양 건너편 2류 열강으로 취급했다지만, ‘러시아가 떨어져 나간 프랑스는 고립무원’이라는 군부의 예측이 틀린 것이었다.
미국의 단호한 태도는, 가뜩이나 영국과의 전쟁을 원치 않았던 카이저로 하여금 전쟁 욕구를 포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독일에 강력한 경고를 발산한 루스벨트는, 1905년의 주관심사인 러일전쟁을 살폈다.
막상 개전 이후에 일본의 버팀목이 되어준 건, 동맹인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영국이 전쟁공채 매입과 차관 제공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미국이 대신 나섰다.
뉴욕의 유대계 금융자본가, 제이콥 시프(Jacob Schiff)가 외채 모집에 나선 다카하시 고레키요를 만나 협력을 약속했다.
시프의 협력 덕에 일본은 2억 달러, 4억 엔의 전시 공채를 판매할 수 있었다. 월스트리트에서 일본의 채권이 떠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세상에 공짜란 없어서 금리 6.5%의 고율로 제공되었지만, 만약 시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전비가 바닥난 일본은 전쟁 수행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일본에 협력하는 건, 재작년 키시네프 학살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오. 러시아 차리즘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유대주의 정책을 쓰고 있고, 극우파들을 선동해 포그롬(박해)까지 벌이고 있소. 차르 정권은 망해야 하오.”
시프는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러시아 차리즘을 극도로 혐오하기 때문에 협력했다. 그는 일본에만 협력하는 게 아니었다. 러시아 전제정에 반대하는 혁명 조직에게도 은밀히 자금을 대주고 있었다.
미국 자본가들이 일본의 전쟁 공채를 매입하는 건 시프의 적극적인 주선뿐만 아니라, 백악관의 은근한 암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러시아 전제정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는 건, 루스벨트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한 사회진화론자인 루스벨트는 앵글로색슨 문명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정점이라 보았다. 차리즘으로 대표되는 슬라브 문명은 백인일지라도 서구 문명의 일원이 아니었다.
“러시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세계 문명에 큰 위협 요인이 될 것이오. 나와 미국 국민은 러시아의 팽창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소. 만약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한다면 문명세계에 큰 타격이 되리라 우려하고 있소.”
대부분의 서양인이 ‘이교도 황인종’ 일본과 싸우는 러시아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루스벨트는 앵글로색슨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러시아의 패배를 기원했다. 애초에 그 자신이 미국 내에서 ‘친일파’로 유명하기도 했다지만, 물론 이보다 현실적인 동기가 있었다.
“만약 전쟁이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주는 러시아에 실질적으로 합병될 것이오. 한국이 현재는 친영이지만, 다시 친러 정권이 수립되어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들어가겠지. 철도 확장을 통해 만주와 중국이 연결되고, 청국 조정은 러시아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 일본은 육군과 함대를 해체당하고, 대륙에서 영영 철수하겠지.”
러시아가 만주를 합병하고, 철도의 힘으로 만주를 넘어 장강까지 전진할 것이다. 청국과 한국은 러시아의 꼭두각시가 되며, 일본은 3류 국가로 전락한다.
‘러시아 공포증’에 입각해 러시아의 팽창 욕구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결론이었지만,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악몽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동아시아를 제패한 러시아는 마침내 태평양으로 진출하여, 알래스카를 다시 러시아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싶겠지. 결국 우리와 충돌하게 될 것이오. 그러니 이 전쟁에서 결코 러시아가 이겨서는 안 되오.”
루스벨트에게 있어 러일전쟁은 미국의 대리전이나 다름없었다. 일본은 미국이 달러로 고용한 용병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후의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승전 후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 의사에, 일본이 반색하며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이토 히로부미의 측근이자 루스벨트의 하버드 대학 동문인 주미 일본 공사 가네코 겐타로는 머리를 조아려 가며 미국의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
일본의 ‘은인’으로 떠오른 루스벨트 본인은 속으로 냉소했다.
“일본인의 피로 러시아를 저지합시다. 겸사겸사 태평양의 경쟁자가 될지도 모를 일본의 힘을 이번 기회에 빼놓는 것도 좋겠지.”
‘친일파’ 루스벨트에게 중요한 건 미국의 현실적인 이익이었다.
러일전쟁은 최대한 장기전으로 끌게 되어 러시아와 일본의 힘을 모두 빼놓는, 승자 없는 전쟁이 되어야 했다.
이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대한제국 황제 이선이었다.
* * *
주미 한국 공사관, 각국의 제국익문사 지부로부터 올라온 보고서를 통해 이선은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러일전쟁의 장기화를 원하고, 러일전쟁을 기회로 삼아 독일이 유럽에서 전쟁을 도발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영국을 대신해서 동아시아의 지배적 열강으로 대두하고, 태평양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생각이겠지.”
주미공사 서재필은 이선의 지시대로 루스벨트 대통령 및 미국 상류층들과 친분을 다졌다. 미국 정치 명문가를 처가로 둔 서재필은 손쉽게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의 루스벨트는 외국인들 앞에서도 정견(政見)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는지라, 서재필은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진출이라. 역사보다 40년은 빠른데……. 실제 역사에서는 일본을 믿고 동아시아 정책을 위임했다면, 여기서는 직접 나서겠다는 것인가.’
결국 미국을 끌어들여 세력균형을 이루려는, 이선의 적극적인 대미 외교가 성과를 발휘한 셈이었다.
이선의 집권 이래, 한국은 미국을 향해 계속 추파를 보냈다. 한국이야말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충실하게 보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장차 일본이 미국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은근히 암시하는 것은 덤이었다.
“일본의 주권선과 이익선 개념은 팽창 정책을 정당화합니다. 만약 러시아를 만주에서 몰아낸다면, 일본이 거기서 만족할까요? 아닙니다. 승전에 기고만장하게 될 일본은 결코 만족을 모를 겁니다. 일본은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타이완과 하이난을 통해 필리핀으로, 오가사와라 제도와 마리아나 제도를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 끼어들어, 미국의 필리핀 완전 병합을 제지하고 괌을 제외한 마리아나 제도 전역을 차지해 간 건 루스벨트에게 있어 썩 불쾌한 기억이었다. 일본이 끼어들지 않더라도 미국은 스페인을 일방적으로 격파할 수 있었다.
러일전쟁으로 일본의 관심사를 북쪽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할지라도, 해양세력 일본은 언젠가 미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한국은 바다로 나갈 생각이 없습니다. 오직 북방, 조상들의 고토인 만주로 나아가길 바랄 따름이지요. 러시아든 일본이든 한쪽이 승리하면 만주의 이권을 독점하려 들 겁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우리는 만주의 문호개방을 원합니다. 이미 한국령 남만주에서 미국 자본가들은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지요. 만주의 철도와 광산은 진취적인 미국 자본가들에게 좋은 투자처가 될 겁니다. 만주는 미국의 뉴 프런티어, 새로운 서부가 될 겁니다.”
이선은 주한 미국공사 알렌을 매수해 두었고, 재한 미국인들에게도 특혜를 베풀었다. 거물급 정치가나 자본가들과도 로비를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두었다.
대한제국 황제와 한국인들을 칭송하는 서한이 미국을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미국의 전략을 이토록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당한 이권을 내밀다니. 한국 황제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상황 판단이 빠르단 말이야.”
“22년 전인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명성이 자자했지요. 그때는 10대 소년이었는데도, 어찌나 명석하고 영민하던지.”
“기특한 일이군.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겠지.”
이러니 백악관에서 한국과 이선을 ‘기특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본래 루스벨트의 저울은 일본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지만, 근래 들어 무게추가 한국으로 평형이 맞춰지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전쟁부장관 윌리엄 태프트가 필리핀 방문을 하는 김에, 연말에 일본과 한국에 들러 러일전쟁에 대해 논의하도록 명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전쟁 상황을 확인하기 위함이지만, 전후에 일본과 한국이 각각 미국에 무엇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 탐지하기 위함이었다.
‘태프트가 한국에 온다고? 하필 그 태프트가,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온다니. 그만큼 미국의 몸이 달았단 말인가?’
실제 역사대로라면 포츠머스 강화회담을 앞두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는데, 여기서는 전쟁이 한창인 중에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물론 역사가 한참 바뀌었기에, 일본에 한국을 팔아넘기는 일은 없을 터였다.
이선은 미국이 러일전쟁에 개입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탐지했다. 미국이 직접 참전할 가능성은 없어도, 한국에 참전을 종용할 수는 있었다.
‘아쉬운 건 일본이니 그쪽 요청이야 거절할 수 있지만, 혹시 미국이 일본의 패전을 막기 위해 참전을 요청하면…….’
미국이 일본의 패전, 보다 정확히 말하면 러시아의 승전을 원치 않는 건 분명했다.
전쟁의 균형추를 맞추기 위해 한국의 참전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이선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올라탈 생각이었지만, 끌려 다닐 생각은 없었다.
‘20세기는 틀림없이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전략에 협력해야 한국의 지역패권도 확립되겠지만, 어디까지나 중요한건 우리의 국익이다.’
이선은 태프트, 아니 그를 파견한 루스벨트에게 내놓을 카드를 계산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윌리엄 태프트는 한국인 입장에서 매우 거북한 이름이었지만, 이미 역사는 바뀌었기에 상관없었다.
이제 한국도 플레이어의 일원이었다.
‘그렇다면 백악관에게 적당한 패를 보여 줘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