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13
– 94화에 계속 –
2부 94화 종말의 서곡
“제3군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이래서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가!”
날이 갈수록 사상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도, 후비군이 계속 3군에 보강되어 채워졌다.
그래도 3군의 공세는 거듭 실패했다. 도쿄의 대본영은 미칠 노릇이었다.
“이제는 전략을 넘어서, 국가의 위신 문제다! 4만이 죽건 5만이 죽건, 무조건 여순을 함락시켜! 여순만 함락시키면 적 요새와 함대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러시아 제국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다!”
일본군은 그야말로 여순에 국가의 운명을 걸고 있었다.
대본영은 여순 함락을 닦달했다. 3군뿐만 아니라 만주군 사령부에도 압력을 가했다.
“제기랄, 도쿄에서 지도나 쳐다보고 있으면서 만주 상황에 대해 뭘 안다고 큰소리야? 야마가타 놈, 직접 지휘해 보라고 해!”
만주군 총참모장 고다마 겐타로 대장은 분통을 터뜨렸다.
“도대체 노기는 뭘 하고 있는 거야! 답답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여순으로 간다!”
고다마는 결국 직접 3군의 지휘권을 인수하기로 했다. 총참모장이 3군의 지휘권을 빼앗는다는 건 월권이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고다마는 총사령관 오야마의 승인을 받아 여순으로 떠났다.
“대본영과 사령부에서는 제3군 탓만 하지만, 애초에 무리한 명령 아닙니까! 적 요새가 얼마나 두터운지 직접 보십시오! 대포, 포탄, 의약품, 모든 게 다 부족합니다!”
사실 3군의 항변도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3군은 신속한 전투로 도저히 여순을 함락 못 시킨다고 결론을 내리고 장기 포위전을 준비했으나, 대본영에서는 끊임없이 조속한 함락을 요구했다.
공격 명령만을 내리는 대본영, 태평양 함대의 격멸을 원하는 해군, 여순을 함락시키고 주 전선에 합류하길 원하는 만주군 사령부 모두 3군을 압박했다.
그 결과가 이 참사였다.
“사령부에서는 3군에 해 줄 수 있는 걸 모두 다 해 주고 있다! 귀관들의 무위무능으로 얼마나 많은 병력과 군비를 희생시켰나! 이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3군 참모장 이지치 소장의 반박에 고다마는 계급으로 눌러 버렸다. 이유야 어찌 됐건 3군 지휘부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지휘로 사상자만 무수히 늘리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고다마와 노기는 조슈 동향 사람으로, 오랜 벗이었다. 고다마는 노기의 양해를 얻어 3군의 지휘권을 대행했다.
“이제부터 전 병력을 203고지에 집중시킨다. 포병은 아낌없이 포탄을 고지에다 퍼부어라. 돌격하는 아군이 맞아도 상관없다. 203고지만 함락시키면 전방을 감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병사의 희생이…….”
“지금까지는 희생을 해도 실패만 거듭하지 않았나! 병사의 희생은 성공이 있어야만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수단 가리지 말고 반드시 성공시켜라!”
11월 22일, 일본군의 5차 총공세가 개시됐다. 전 전선에서 포격이 쏟아졌지만, 특히 여순 서북방 203고지에 집중되었다. 203고지를 담당한 7사단과 9사단은 그야말로 모든 힘을 쥐어짜 내 돌진했다.
“전군, 포격 개시!”
“사단, 돌격하라!”
포탄과 탄환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일본군은 다시 죽음을 향해 돌진했다.
“비소카야 산(203고지)을 내줄 수는 없다! 반드시 고지를 사수하라!”
여순의 러시아군 사령부도 203고지의 중요성을 파악했다. 러시아군이 203고지로 계속 보강되었다.
1주일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다.
“突擊!”
“天皇陛下萬世!”
9사단 소속 사토 히로시 중위는 중대원들과 함께 고지로 돌격했다.
제5차 총공세에 이르기까지, 용케 살아남고 있는 하급 장교였다. 특히 위관급 장교의 소모율이 너무 높아 ‘하루살이 소위’가 허다했다. 장교가 부족해 하사관을 현지 임관하여 소대장을 맡기면, 그조차도 곧바로 죽어 나갔다.
사토의 얼굴과 몸에 난 자상과 총상이 험난한 생존 투쟁을 간접적으로 암시했다. 사실 부상을 감안하면 이미 후방으로 전환될 수 있음에도, 사토는 전방에 남았다. 중대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사토는 자신의 중대에 얼마나 많은 병사가 왔다 갔는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너무 많이 죽어 나가는 바람에, 이제 죽음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졌다.
남은 건 적군 러시아군에 대한 증오, 그리고 무능한 지휘부에 대한 혐오였다. 할 수만 있다면 지휘부를 끌어내서 최전방에 세우고 싶었다.
쾅! 콰아아아앙!
타다다다다다다당!
부대는 고지로 돌격했다. 지뢰와 포탄으로 산산 조각나고, 철조망에 걸린 채 총탄에 찢겨 나가고, 온갖 비참한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군은 광신적으로 돌격했고, 쓰러진 아군의 시체를 넘으며 계속 전진했다.
“撃て(쏴라)!”
“死ね(죽어라)!”
선혈이 용솟음치고, 살점이 흩날렸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 살아 움직였을 인간의 흔적이 조각조각 나 버렸다.
악에 받친 병사들은 참호에 접근하여 수류탄을 던졌다. 신관의 길이가 짧아 근접해서 던져야만 명중할 수 있었기에, 척탄병의 희생은 특히 컸다.
콰앙!
“着劍! 突擊!”
일본군은 참호의 러시아군에게 달려들었다.
백병전은 특히 잔혹했다. 멀리 있는 적을 총이나 대포로 죽이는 것과 달리, 눈앞의 적을 찌르고 베어 죽이는 건 생생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총검과 군도, 야전삽과 깃대가 휘날리며 서로를 내려찍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난 이들이 악에 받쳐 서로를 죽이고 죽였다.
숱한 사투를 넘으며, 사토의 중대는 마침내 정상에 돌입했다.
피에 물든 일장기가 고지 전면에 휘날렸다.
“203고지 재점령! 지원 요청 바랍니다!”
“좋다! 결코 다시 빼앗기면 안 된다!”
기껏 엄청난 희생을 내고 점령했음에도, 러시아군의 반격으로 한 번 빼앗겼던 203고지였다. 러시아군은 재탈환을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
11월 30일, 치열한 격전 끝에 한계가 도달한 러시아군은 탈환을 포기하고 퇴각했다. 마침내 일본군은 무수한 희생을 내고 203고지를 확보했다.
“7사단의 손실은?”
“총원 1만 5천 명 중, 현재 잔존 병력은 2천 명입니다.”
“그래……. 홋카이도 친구들의 희생이 컸군.”
전선에 가장 마지막에 투입됐기에, 203고지 점령에 전력이 집중된 7사단의 희생은 엄청났다.
불과 1주일 만에 7사단의 잔존 병력은 전체 1할로 줄어들어 있었다. 사실상 전멸이었다. 홋카이도의 청년들, 특히 아이누들은 왜 이곳에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한 줌의 흙이 되었다.
203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일본군은 1만 5천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다. 러시아군 사상자는 5천이었다. 그야말로 피로 피를 씻는 혈투였다.
“병사들의 희생을 값지게 하자! 203고지에 포대를 설치하고 항구를 포격하라!”
12월 2일, 여순 내항에 정박하여 해상포대 역할을 하던 태평양 함대를 향해 포격이 가해졌다. 그로부터 1주일간 엄청난 수의 포탄이 쏟아졌다.
콰앙! 콰앙!
“전함 폴타바, 침몰!”
“전함 레트피잔, 대파!”
203고지의 항구 관측 사격은 일본군의 기대와 달리 높은 성과를 보이진 않았다. 포탄은 빗나가기 일쑤였고, 불발탄이 속출했다. 일본군의 포탄이 명중한 건, 이미 해전에서 중파되어 항행능력을 상실한 전함들이었다.
일본군이 기대했던 ‘태평양 함대 전멸을 위한 감제고지’로서의 가치는 실제로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두 차례의 해전으로 전투력의 절반을 상실하고, 포위로 인해 탈출조차 막힌 태평양 함대는 고지에서 포탄이 쏟아지자 전의를 상실하고 자침(自沈)을 결정했다.
“항행이 가능한 전함은 최후의 탈출을 시도하고, 파손된 전함은 남은 포탄을 모두 적에게 발사한 후 자침하라.”
12월 8일, 태평양 함대에 종말의 날이 다가왔다. 외항에는 일본이 설치한 기뢰와 연합함대로 인해 탈출조차 용이하지 않았다.
러시아 국가(國歌)가 구슬프게 연주되는 가운데, 해군을 상징하는 성 안드레이 깃발이 서서히 내려갔다. 태평양 함대의 전함들은 스스로 가라앉는 길을 선택했다.
오직 전함 세바스토폴만이 살아남아 불침함으로 해상포대 역할을 계속했다.
“비록 함대는 종말을 맞이했지만, 아직 요새는 버틸 수 있다. 병사들의 사기는 어떤가?”
“예전만 못합니다만, 아직 충분히 싸울 수 있습니다.”
203고지는 빼앗겼지만, 여순 요새는 아직 버티고 있었다. 일본군이 요새를 함락시키려면 무수한 희생을 각오하고 총공세를 또 벌여야 할 상황이었다.
문제는 러시아군의 보급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이었다.
여순이 포위된 지 어언 6개월, 육상과 해상의 교통로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포탄은 아직 넉넉히 남아 있었지만, 문제는 식량과 의약품이었다.
육류는 애초에 다 떨어져 말을 잡아 고기를 분배했고, 그마저도 부족했다.
더 심각한 건 신선한 채소와 과일류의 부족으로 인한 영양 불균형, 괴혈병의 확산이었다.
일본군이 각기병으로 쓰러져 나가는 동안, 러시아군은 괴혈병(壞血病)으로 쓰러져 나갔다. 일본군에게 비타민 B1이 부족했다면, 러시아군에게는 비타민 C가 부족했다.
“괴혈병으로 인한 손실이 너무 큽니다.”
“제기랄, 20세기에 괴혈병으로 고생할 줄이야.”
포위된 여순 내에 남아 있는 중국인 노동자들은 괴혈병에 거의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콩나물을 재배해 비타민 C를 섭취했다. 각기병이든 괴혈병이든, 아직 비타민의 개념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 의외로 전통적인 민간 예방법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동양인들이 먹는 콩나물이 괴혈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배를 늘려 전군에 배급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과학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았네. 그리고 이런 건 동양인이나 먹는 거지, 러시아인이 어떻게 먹나?”
러시아군은 콩으로 스프를 끓이는 방법밖에 몰랐다. 콩나물이 괴혈병에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 지휘부는 외면했다. 그 결과 괴혈병 환자가 속출했다.
“남은 식량은?”
“밀과 보리가 약 4주에서 5주 치 남았습니다. 최대한 아껴서 분배하면 최대 두 달은 버틸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2월까진 버틸 수 있겠군. 하지만 그 이상은…….”
열악한 상황에도, 관동군 사령관 스미르노프 중장과 요새 방위 사령관 콘트라첸코 소장은 결사항전을 선언했다.
“러시아 국기가 한 번 올라간 곳은 결코 내려가지 않는다. 포트 아르투르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틴다. 적에게 마지막까지 손실을 안겨 주자!”
“예!”
일본군의 기대와 달리, 요새의 러시아군은 203고지가 함락되고 함대가 붕괴해도 항복하지 않았다.
“지독한 놈들……. 누가 이기는지 어디 끝까지 가 보자!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함락시켜라!”
만약 포위된 요새의 식량과 질병 상황을 알았다면, 한두 달만 더 포위하면 러시아군은 결국 백기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급증에 걸린 일본군은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다.
결국 요새를 점령하기 위한 6차 총공세가 개시되었고, 12월 내내 여순 요새를 놓고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다.
이 기간 동안 일본군의 희생이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였다.
“콘트라첸코 장군께서 전사하셨습니다!”
“뭣이?”
요새 방위 사령관 콘트라첸코 소장이 전방 토치카에서 직접 지휘를 하다 포탄에 직격되어 전사했다.
요새 방위의 버팀목이었던 콘트라첸코의 전사는 지휘부의 전의를 꺾게 했다.
해상 봉쇄로 치면 10개월, 육상 전투로 치면 6개월 차에 접어든 여순은 고립무원이었다.
러시아 만주군의 전선이 봉천 일대에서 묶인 이상, 당분간 어떤 지원도 없을 터였다.
“이만하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황제 폐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12월 25일, 요새의 러시아군은 항복을 결정했다. 치열한 혈투를 벌인 장교와 병사들은 요새를 적에게 그냥 넘겨 주고 싶지 않았으므로, 군비의 폐기처분에 들어갔다.
요새 방위와 관련된 문서들은 모조리 소각되었다. 최후까지 남은 군함들은 모조리 자침되었다. 보루와 대포가 파괴되고, 탄약을 바다에 던져 폐기했다. 그야말로 최후의 요새 파괴전이었다.
12월 30일, 스미르노프 중장은 노기 대장을 만나 정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일본군은 마침내 무수한 희생을 내고, 여순 포위 10개월 만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허, 이렇게 많은 희생을 내고 마침내 쟁취했구나.”
3군 지휘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여순이 함락되었고, 러시아 태평양 함대는 소멸했다. 대본영과 만주군 사령부도 만족했다. 이제 3군은 만주 전선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일본군이었다.
러시아 요새방위군 5만 명 중, 사상자는 약 3만이었다. 요새 방위군은 모두 포로로 잡혔으니, 러시아군은 최종적으로 태평양 함대와 5만 병력을 상실했다.
일본군은 20만 명을 투입시켜, 무려 60%를 희생시켰다.
전사자만 2만 5천, 부상자는 6만이 넘었다. 질병으로 인한 손실도 3만 5천에 달했다. 그중 각기병 환자만 2만이 넘었다.
최종적으로 3만이 넘는 병사가 여순의 흙으로 돌아갔고, 전투능력이 상실된 병력은 무려 12만에 달했다.
여순 공략에 이만한 희생을 낼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어찌 됐건 승리는 승리였다.
「마침내 여순 함락! 러시아군 항복! 포로 4만!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멸!」
「비록 희생이 큰 승리였지만, 최후의 승전이 머지않다!」
승전보의 나팔을 부는 것과 달리, 일본은 거듭 한국에 참전을 요청했다.
“비록 승리했지만 사상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동맹의 위급을 지켜만 보시렵니까? 부디 도와주십시오.”
“안타깝지만 한국으로선 외지에서 전면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총력을 동원해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5개 사단, 아니 3개 사단만이라도 파병을!”
“흠, 검토해 보지요.”
일본은 한국에 파병을 구걸하다시피 했다. 물론 이선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일본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 대도, 이선은 귀를 봉하고 있었다.
1905년은 개항 30년 만에 최초로 한국이 대일 무역에서 흑자로 전환한 해였다.
한국은 일본군의 피와 땀으로 공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여순 공방전이 길어질수록 일본은 막대한 군수품을 한국에 요청했고, 한국의 조병창과 군수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일본은 전비가 부족해지자 돈 대신 전쟁 공채를 내밀어, 나중에 갚겠다는 조건으로 군수품을 사들였다.
그동안 일본이 한국의 채권자였지만, 이제는 한국이 일본의 채권자로 상황이 역전되고 있었다.
일본이 한국에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된 이상, 일본은 한국에 강짜를 부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 만약 일본이 진짜로 파산해서 채권을 못 돌려받는다고 쳐도, 손해 볼 건 없다. 일본군이 파멸하고 관계가 역전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무수한 희생을 낸 여순 공방전은, 일본의 전쟁 수행능력 붕괴를 암시하는 종말의 서곡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러시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러시아는 일본에 비해 전쟁수행능력이 충분했지만, 여순 함락과 태평양 함대의 소멸로 인한 위신의 타격은 피할 길이 없었다.
차르 정권은 위신 추락을 극복할 능력이 없었다.
아니,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종말의 서곡을 작곡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