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15
– 96화에 계속 –
2부 96화 피의 일요일
율리우스력 1905년 12월 25일, 그레고리력 1906년 1월 7일 일요일.
대부분의 나라는 이미 새해에 접어들었지만, 율리우스력을 고수하는 러시아는 아직 1905년이었다.
바로 이날은 크리스마스로, 독실한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에서 가장 크게 기념하는 날이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평소라면 어느 때보다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 시즌이지만, 올해는 달랐다.
예상치 못한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도시에 물류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전쟁 특수를 맞이한 일부 군수공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산업은 1903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불황의 여파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도처에서 실업자와 식량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추운 겨울철, 한 줌의 빵도 얻지 못해 굶주리는 이들이 허다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들려오는 소식은 불리한 전황뿐이고, 여순이 함락되었다는 급보는 후방의 사기에 더욱 영향을 주었다.
이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신부님, 전쟁에서 승리하면 분명히 달라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은 달라진 게 전혀 없습니다.”
“공장주들의 부당해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찌해서 우리들의 자비로운 차르께서는 외면하고 계신 겁니까?”
러시아 공장노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신부 가폰에게 노동자들의 청원이 이어졌다. 가폰이 이끄는 어용노조의 영향력은 계속 약해지고 있었고, 사회민주노동당의 영향을 받는 노조의 세력이 강해지고 있었다.
러시아 중공업을 상징하는 최대 금속공장 푸틸로프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환경 개선 요구에 공장주는 해고로 답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 파업이 확산됐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10만에 달했다. 가폰은 당국 못지않게 위기의식을 느꼈다.
“우리들의 자비로운 어버이, 차르께서는 결코 자식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청원하면, 차르께서는 답해 주실 겁니다.”
“그렇다면 어버이 차르께 우리를 인도해 주십시오!”
“그럽시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다 함께 겨울궁전으로 나아가 어버이 차르께 청원합시다.”
가폰은 크리스마스에 예배와 청원을 겸하는 행렬을 준비했다.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에는, 그 엄혹하던 시절에도 영주가 농노에게 자비를 베푸는 관습이 있었다.
모스크바 대공국 시절부터 신민이 차르에게 청원을 하는 관습이 있었고, 차르는 이를 듣고 은혜를 베푸는 형식적 절차를 통해 차르 숭배를 강화했다.
기독교 전통과 차르 숭배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러시아 신민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계획이 없었다.
차르가 신민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면, 신민들의 충성은 손쉽게 되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폐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과 주민들은, 저희의 아내, 자녀, 연로한 부모와 함께 정의와 보호를 청하러, 저희들의 차르께 찾아왔나이다. 저희는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억눌려 있습니다. 과중한 노역의 부담을 겪고 있고, 모욕적인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폭정과 무법 속에서 질식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력도 없고 인내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 폐하, 명령을 내리시어 저희의 탄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그러면 폐하는 러시아를 행복하고 영광되게 할 것이며, 폐하의 이름은 영원히 우리의 가슴속에 새겨질 것입니다. 그러지 아니하신다면, 저희는 차라리 이 궁전 앞 광장에서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절절하게 자신들의 사정을 호소하고, 겸손하게 개혁을 청원했다. 비록 어조는 강할지라도, 결코 충성심은 저버리지는 않은 청원서였다.
가폰 신부는 ‘어버이 차르’가 자신들의 편지를 읽고, 크리스마스에 응답해 주리라고 믿었다. 전 러시아 공장노동조합의 이름으로, 겨울궁전에 정중하게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차르는 청원서를 읽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당일.
니콜라이 2세는 오전 일찍 황실 예배당에서 예배를 보고, 가족들을 대동하고 겨울궁전을 떠나 차르스코예 셀로의 별궁으로 향했다.
이유인즉슨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예년처럼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겠다는 게 이유였지만, 전시의 특수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폐하, 페테르부르크의 민심이 심상치 않습니다. 올해는 부득이 휴양을 취소하심이 어떠신지요.”
“황후와 공주들에게 약속했는데, 저버릴 수가 없네. 다들 힘들어해. 크리스마스라도 좀 마음 편하게 쉬고 싶군.”
“하오나 폐하께서는 겨울궁전에 거처하심이…….”
“으음.”
차르는 만류를 듣고 가족들만 보내고 본인은 잔류하려고 하였으나, 차리나(황후)의 잔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니키! 올해는 전쟁이라고 크림반도로 휴양도 못 떠났는데, 바로 지척에 있는 차르스코예 셀로도 못 가게 해요? 크리스마스라고 아이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 니콜라이는 백기를 들고 겨울궁전을 떠났다.
“숙부님께 맡겨 놨으니 잘하시겠지. 며칠만 쉬고 돌아오겠네.”
바로 이 중요한 시기에, 니콜라이는 수도와 신민을 저버리고 가족들과의 휴가를 선택했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아버님, 며칠간 황제 폐하를 대리하시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니키도 참, 이 시국에 속도 편해. 크리스마스 휴가라니, 나 원.”
니콜라이의 숙부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 페테르부르크 군정장관으로 차르를 대리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여순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키릴 대공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대공 전하! 정오부터 시내에 군중이 결집하고 있습니다. 군중은 겨울궁전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습니다!”
“군중 행진? 계엄령인데 집회라도 한단 말인가? 파업 주동자들인가?”
갑작스러운 보고에 블라디미르 대공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닌 것 같습니다. 보고에 따르면 신부가 주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군중은 황제 폐하의 초상화와 이콘을 들고 행진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 숫자가 얼마나 되나?”
“대략 3만 이상이라고 합니다!”
“뭣이, 3만 이상? 이거 심상치 않은 일이군. 당장 겨울궁전으로 가 봐야겠어.”
문제의 청원서는 군정장관이나 정부 인사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다.
전 내무대신 플레베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공안당국은 어용 노동조합을 확실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플레베가 암살당한 이후에 통제의 끈이 느슨해졌고, 중간 연결고리도 사라지고 말았다.
가폰은 집회 전, 내무부에 분명히 청원서를 보냈다.
하지만 하필 그때는 크리스마스에 연말까지 겹쳤다. 청원서를 받은 내무부 관료는, 차후에 보고할 생각으로 읽어 보지도 않고 서류함에 던져 버렸다.
“아버님, 심상치 않습니다. 폐하께 보고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겠지. 뭐 그래 봐야 알아서 하라고 하겠지만.”
키릴 대공은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평양에서 한국 황제를 알현할 때, 그가 경고했던 게 생각났다.
“전황이 좋지 못한 채로 전쟁이 장기화되면, 국민들이 견디지 못하고 들고 일어날지 걱정됩니다. 짐이 보기에, 러시아 국민들은 여전히 차르께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소박한 믿음을 활용해야 합니다. 동양에서는 백성들이 집단으로 상소를 올리면, 군주가 읽어 보고 가납(嘉納)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러시아에도 비슷한 전통이 있습니다. 신민이 청원하면 차르가 자비를 베푸는.”
“바로 그걸 활용해야 합니다. 결코 바르샤바 사건처럼 국민에게 총을 겨누면 안 됩니다. 특히 수도 페테르부르크에서만은 절대 안 됩니다. 대재앙이 되고 말 겁니다. 진압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적당한 타협도 필요한 법입니다. 꼭 폐하께 전해 주십시오. 폐하의 선택에, 전쟁 승리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키릴은 사촌형 니콜라이에게 용맹을 치하받고,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만찬에서 키릴은 니콜라이에게 이선의 말을 전했다. 순간 차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짐이 그토록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러시아를 저버리고 일본 편을 들더니, 조언을 빙자해서 간섭은 계속하려고 드는군.”
“폐하. 제가 경험한바, 한국 황제께서는 여전히 러시아와 폐하께 깊은 호의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조언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그가 짐의 통치에 계속 관여할 이유는 못되네. 그런 물러 터진 방식은 짐의 통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니콜라이는 이선의 조언에 선을 그었다. 키릴도 결국 입을 다물어야 했다.
키릴은 수도 치안을 책임진 아버지에게라도 이선의 충고를 상기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대공의 반응도 냉소적이었다.
“그 배신자가 말은 잘하는군. 선제 알렉산드르 2세께서 그토록 은혜를 베풀고, 3대에 걸쳐 한국에 호의를 베푼 결과가 뭐냐? 러시아의 적인 영국과 동맹을 맺고, 일본에 협력하고 있지 않나!”
“아버님,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닙니다. 한국 황제가 아니었더라면 전 일본군 포로가 됐을 겁니다. 두 분 차르의 암살을 막은 그는 최소한 로마노프 황실의 벗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 백번 양보해서 그건 맞다 치자. 실제로 그가 선제, 즉 내 아버님을 살렸으니. 하지만 선제께서는 그토록 천한 놈들을 위해 관용을 베풀었지만, 돌아온 건 결국 폭탄뿐이었어! 불령한 놈들을 다스리는 방법은 채찍이지, 어설픈 양보가 아니다.”
“아버님! 시위대가 모두 테러리스트는 아닙니다!”
“됐다. 더 말하지 마라. 당국에서 논의하여 결정할 거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아들의 말을 묵살하고, 겨울궁전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오후. 한겨울의 추운 날이었지만, 햇빛만은 쨍쨍했다.
시위자들의 긴 행렬은 빙판길을 가로질러 겨울궁전을 향해 행진했다.
행렬 앞에는 신부 예복 차림의 가폰 신부는 십자가를 높이 들었다. 첫 줄에는 주일(主日) 정장 차림의 여성과 아이들이 서 있었다. 시위대가 아니라 성당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 같았다.
「군인은 인민에게 발포하지 않는다!」
행렬 첫 줄의 깃발에는 군인들에게 호소하는 문구가 새겨졌다.
차르의 초상화와 이콘(성화)이 높이 세워졌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 충성스러운 러시아 신민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결코 군인들의 적이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노동 조건 개선, 임금 인상, 일요일 휴식 보장, 일 8시간 노동, 전쟁 종식, 국민교육 실시, 토지개혁, 집회와 결사의 자유, 헌법 제정, 의회 개설, 참정권 도입.」
시위대의 요구는 포괄적이었다.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해 주고, 민의를 대표할 수 있는 기관을 세워 달라는 것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의 요구와도 비슷했지만, 그들은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회민주노동당과 사회혁명당 조직은 청원을 ‘구걸’이라고 비웃었다.
혁명가들의 기치인 붉은 깃발은 어디에도 없고, 오직 흰 깃발과 러시아 국기만이 휘날렸을 뿐이다.
인파는 점점 불어났다. 그 수는 물경 5만에서 6만을 넘겼다. 거대한 인파의 겨울궁전 접근에, 경찰은 당혹감을 느꼈다. 결국 경찰을 대신하여 근위대가 출동했다.
“장군, 진압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공포를 사격하여 해산을 유도하되, 끝내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해도 좋다고 합니다!”
“뭐라고? 정말인가?”
근위기병사단장 아나톨리 브론스키 소장은 발포 명령에 놀랐다.
“허어, 정말이군. 아무래도 궁전에서는 현장 상황을 모르는 것 같은데.”
명령서를 읽은 브론스키는 군중의 대열을 살펴보았다. 여성과 아이, 차르의 초상화와 이콘을 전면에 앞세운 시위대는 어디에도 위험성이 없어 보였다.
“명령 철회를 요청해야겠군. 아니, 내가 직접 설명해야겠어. 궁전에 다녀오겠네. 그동안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도록.”
브론스키는 부사령관에게 현장을 맡기고 겨울궁전으로 향했다.
하지만 발포명령은 최고 윗선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블라디미르 대공이 진압을 결정했고, 전화로 차르의 동의를 구했다. 가족들과 놀이 중에 전화를 받은 차르는 별생각 없이 진압을 승인했다.
어리석음과 무책임의 극치, 최악의 선택이었다.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강인하고 강대한 군주여, 우리의 영광 위에 군림하소서!”
“차르는 정교회의 수호자이시니. 하느님, 차르를 보호하소서!”
시위대는 러시아 국가와 찬송가를 부르며 천천히 궁전에 접근했다.
열다섯 살 소년 이반 일리치도 군중의 행렬 속에서 국가와 찬송가를 불렀다. 그의 곁에는 공장 노동자 동료인 아버지 일리야도 함께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함께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더 없는 신앙심과 존경심이 깃들어 있었다. 하느님과 차르를 향한 그들의 믿음은 굳건했다.
탕! 탕!
시위대가 겨울궁전 광장의 나르바 정문에 이르자, 공포(空砲)가 잇달아 쏘아졌다.
행렬의 맨 앞줄은 공포에 움찔했지만, 상황을 모르는 후열에서는 계속 앞으로 나갈 것을 채근했다.
“그대들은 허용되지 않은 불법 집회를 하고 있다! 즉시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진압하겠다!”
카자크 기병대가 채찍을 휘두르고 칼등으로 위협하여 쫓아내려 했다.
공포탄이 또다시 발포되었지만, 그럼에도 시위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병사들이여, 그대의 형제자매인 인민을 쏘지 말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행렬의 앞에 있던 이반은, 병사들을 가까이 볼 수 있을 정도까지 접근했다.
바로 그때였다.
빰빠라바바밤!
탕! 타다다다당!
나팔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는 공포가 아니었다. 실탄이 근거리의 시위대를 향해 쏟아졌다.
처음엔 주저하던 병사들도, 결국 공황상태에 빠져 군중을 향해 총을 마구잡이로 쏘았다.
“으아아아!”
“꺄아아악!”
“아버지! 어머니!”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그래도 총성은 멈추지 않았다.
수십 명이 즉사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사람들은 달아나려고 버둥거렸다. 인파가 몰리면서 수많은 사람이 쓰러지고 짓밟혔다.
“하느님 맙소사! 어떻게 이럴 수가!”
떠밀려 넘어지는 바람에 가까스로 총탄을 피한 가폰 신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비로운 어버이 차르가 신민에게 크리스마스에 총탄을 퍼붓다니.
사람들은 울부짖었다. 신앙심 깊은 이들은 성호를 긋고 신의 자비를 요청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학살이 끝나고 생존자들이 사상자로 뒤덮인 현장을 보게 되었을 때, 마침내 가슴 속에서 분노의 감정이 솟구쳤다. 지울 수 없는 증오와 원한이 새겨졌다.
“이 개자식들, 동포에게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더 이상 신은 없다! 더 이상 차르는 없다!”
이반은 아버지 일리야가 보호한 덕에 총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피를 철철 흘렸다. 불행 중 다행히도 본인의 피는 아니었지만, 동료의 피를 뒤집어쓰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아들아, 보았느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렸는지 똑똑히 보았지? 오늘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해라! 아들아, 이 원수를 잊지 말고 반드시 복수해라! 반드시 차르에게 갚아 주겠다고 맹세해라!”
아버지의 피맺힌 외침에 이반은 맹세했다.
“예, 아버지! 차르에게 반드시 복수할게요!”
피의 일요일, 크리스마스 학살.
단 몇 분 만에, ‘선한 어버이 차르’를 향한 민중의 소박한 믿음이 깨지고야 말았다. 러시아 제국, 아니 모스크바 대공국 이래 수백 년간 내려온 신화였다.
그 신화는 후진적인 체제를 지탱하는 중대한 기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제정은 스스로 그 기둥을 걷어차고야 말았다.
이제 혁명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러시아 역사의, 아니 세계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광무 7년(1903) 동아시아 세력도] [러일전쟁 직전(1904) 만주 세력도] [러일전쟁 발발(1905) 요동 세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