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21
– 102화에 계속 –
2부 102화 공세종말점
“돌격!”
“고지를 점령하라!”
일본군 우익, 5군의 공격으로 봉천전투의 첫 시작이 이뤄졌다. 주 공세가 될 좌익의 서부전선 진격 양동작전으로, 우익이 맡고 있는 동부전선은 산악지대라 공세를 서두른 것이다.
말이 좋아 ‘제5군’이지, 실상은 상비군 1개 사단과 후비군 2개 사단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후비군은 대부분 30대 이상의 병사들로 구성됐고, 생업을 하던 중에 처자를 두고 끌려온 이들의 사기는 낮았다. 보충병인 신병들도 비슷해서, 훈련이라곤 90일 받고 전선에 투입된 것이었다. 조직력도, 사기도 현저히 낮았다.
장교의 문제는 더 심각했으니, 전쟁 이래 잦은 돌격으로 하급 장교의 소모가 너무 많았다. 여순 공방전이 끝날 때까지 3군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장교가 10여 명에 불과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늙은 예비역을 복귀시키고, 고학력자로 1년간 복무한 예비역 소위를 재임관하고, 대학생을 단기 교육으로 장교로 임관시켰다. 이들이 장교로서의 자질이 어떨지는 뻔했다.
“제기랄, 더럽게 춥네.”
“이런 추위에 꼭 전쟁을 해야 하는 건가?”
일본군이 공세를 서두른 건, 봄이 오기 전에 전투를 끝내길 원해서였다. 아직 도로와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 군대가 움직이기 용이했다. 해빙되면 길은 온통 진창이 될 터였다.
2월 하순이 되어 날이 좀 풀렸다고는 하나, 여전히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가 계속됐다. 1월에는 영하 20도, 심지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참호에서 동사하는 병사들이 허다할 지경이었다.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았다. 제대로 된 방한복도 부족했고, 전투 중에 동상환자가 속출했다
“전군, 총공격하라! 4군이 적 중앙을 맡는 동안, 좌익과 우익을 돌파하라!”
2월 24일, 본격적인 양익기동작전이 개시됐다.
남만주 철도와 봉천 대로를 사이에 두고, 좌측에는 3군과 2군이 배치됐다. 중앙 대로에는 4군이, 우측에는 1군과 5군이 배치됐다.
즉 3-2-(도로)-4-(산악)-1-5군의 순서였다.
러시아군의 사령부는 인구 30만인 봉천 성내에 있었고, 그 남쪽의 혼하(渾河)를 따라 참호와 방어선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요컨대 봉천 회전은, 10년 뒤에 유럽에서 모습을 드러낼 참호전의 효시가 될 전투였다. 다만 러시아군의 기관총이 부족하여 효과적인 참호 방어가 되지는 못했지만, 공격자에게 불리한 건 당연했다.
“좌익, 3군과 2군의 우회 기동에 아군의 운명이 걸려 있다! 빠르게 기동하라!”
일본군의 작전은 도박이었다. 2군이 러시아 우익을 붙들어 놓을 동안, 3군은 크게 우회하여 러시아군을 돌파하고 본대의 배후를 찔러야 했다.
“진짜 이걸 할 수 있는 건가?”
“명령인데 어쩌겠나. 죽으라면 죽어야지.”
여순 공방전에서 큰 손실을 입은 3군에게는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다. 3군은 상비군 3개 사단과 후비군 1개 사단, 기병과 포병 각 1개 여단으로 구성되었지만, 서류상의 편제와 달리 실제 병력은 3만 5천에 불과했다.
진격이 길어질수록 2군과 3군 간에는 전선이 종잇장처럼 얇아질 터였다.
그 종잇장으로 러시아군이 밀고 들어오면 끝장이었다.
“병력의 부족은 기동의 신속함과 작전으로 해결한다.”
그렇기에 일본은 끊임없이 기만작전을 벌였다. 병력이 부족한 일본으로서는 기만작전에 의존했다.
우익, 1군과 5군의 공세 전체가 러시아군의 주력을 붙들기 위한 양동작전이었고, 서부전선으로 향할 병력을 빼돌리기 위한 부대였다. 서부전선이 흔들리면, 동부전선에서도 총공세를 펼쳐 양익포위를 완성할 계획의 일환이었다.
아키야마 요시후루가 지휘하는 기병지대는 서부전선 좌측에서 크게 우회 기동하여 러시아군을 기만했고, 기병 1만과 만주 의군 2만이 장춘 방향으로 진격한다는 헛소문도 흘렸다. 실상은 기병 3천이요, 전선에서 따로 놀고 있는 마적들도 5천 정도였다.
서부전선의 기병 1만과 만주 의군 2만 외에도, 동부전선에도 자치령 의용군 3만이 길림 방향으로 진격해 러시아군의 배후를 끊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의용군에게는 우익에서 유격대 역할을 맡아 주길 바란답니다. 크게 우회하여 무순을 해방하고 적의 배후를 공격해 달라고.”
“으음.”
일본군 최우익에는, 자치령 의용군이 있었다.
대한제국군 7사단, 6사단과 8사단에서 의용군으로 자원하여 차출한 부대, 구 만인대까지 합쳐 대략 2만여 명이었다.
봉천 전역에 의용군까지 합치면 일본군 단독이 아니라 연합군으로, 병력은 총 27만에 달했다.
일단 전열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일본군은 의용군을 신뢰하지 않았다.
본 전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하고 알아서 하라는 태도였다.
한국군의 의도와 전력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육군과 해군, 육군 내에서도 대본영과 만주군, 조슈와 비(非)조슈 출신 간에 파벌 갈등이 있는 일본 육군이 외국군을 신뢰할 리가 만무했다.
예컨대 새로 편성한 제5군은 만주군 사령부가 아니라 대본영 직속으로 편제하여 배치했다. 도쿄에 있는 야마가타가 전선에 직접 개입할 목적으로 신설한 부대였다.
만주군 사령부가 격분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야마가타 영감탱이, 드디어 미쳤나? 도쿄에서는 방구석에서 지도 보면서 전쟁하나?”
대본영의 태도에 신물이 나긴 했지만, 어쨌건 병력이 하나라도 부족한 이상, 5군에게는 1군의 우익에서 공세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겼다.
5군 사령관 가와무라 가게아키(川村景明) 중장도 멀리 떨어져 있는 대본영보다 사령부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걸 선호하여, 그나마 갈등은 최소화됐다.
같은 일본군끼리도 이럴 진데, 일본군에 지휘권이 없는 의용군과 유기적인 협력이 될 리가 만무했다.
“뭐, 일본군도 저런 태도라면, 참전만 했다는 것으로도 체면치레로는 충분하겠지?”
“예, 폐하께서도 절대 교전에 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일본군이 적극적인 공세를 요청해도 형식적인 태도로만.”
전 7사단장, 의용군 사령관 권동진 참장은 관전무관단장 노백린 부령의 방문을 받았다. 노백린은 황제의 특명을 갖고 왔다. 권동진은 순순히 황명을 따르고, 노백린에게 실질적인 참모장 역할을 맡겼다.
무순을 ‘해방’시키고 싶은 과격파들은 공세를 원했지만, 권동진과 노백린이 억눌렀다.
“자국 군대끼리도 파벌 갈등이 있는데, 이래서야 대한이 정식으로 참전했어도 일본이 제대로 도움이나 받으려 했겠나? 지휘권 문제로 서로 멱살이나 잡고 말았을 거요. 참전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
한국이 참전했더라도, 지휘권을 독점하려는 일본군과 갈등만 빚다가 지리멸렬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북진회가 아무리 의용군 내부에서 영향력이 크다고 해도, 사령관과 황제의 신임을 받는 노백린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의용군은 연합군의 일원이지만, 사실상 중립이었다.
2월 27일, 전 전선에서 일본군의 총공세가 이뤄졌다.
콰앙! 콰앙!
타다다다다당!
포성이 설원을 뒤흔들고, 총성이 끝없이 이어졌다.
러시아군은 열기구를 관측기구로 사용했다.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 저 멀리 전선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기이한 절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참으로 뭐라 말하기 어려운 광경이로군.”
만주의 하얀 설원에는 곳곳에 땅이 파여 들어가 있고, 군데군데 붉은 액체와 검은 점들이 물감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양군 병사들이 흘린 피와 시체였다. 특히 공세 측인 일본군이 흘린 피가 많았다.
직접 열기구에 올라 전선을 시찰한 브론스키 대령은 확신을 얻었다.
“사령관이 우려하는, 일본군의 대규모 예비대 같은 건 없다.”
3월 1일, 일본군의 공세가 정점에 도달했을 무렵. 브론스키는 새로운 작전을 고안해 총참모장 사하로프 중장을 찾았다.
“정보부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적은 양익 포위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력이 적기 때문에, 동서 전선은 길어져도 밀도가 얇습니다. 이제 아군이 역으로 공세에 나서 적을 포위 섬멸해야 합니다. 아군 우익의 제2군이 공세를 펼쳐 적 좌익의 전선을 무너트리고, 좌익의 제1군도 일단 방어를 유지하다가 적 좌익이 무너질 때 공세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때 중앙의 제3군과 예비대가 적 중앙을 돌파하면…….”
사하로프는 브론스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작전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 사령관 쿠로파트킨에게 보고했다.
이때까지 러시아군은 전 전선에서 방어에만 치중했고, 서부전선에서 공세를 벌이겠다는 당초의 계획을 취소하고 동부전선을 보강했다. 일본군의 기만작전에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5군이 후비군으로 구성된 약체라는 사실, 의용군은 참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적의 의도만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본군이 겨우 25만 정도일 거라고? 아무리 많이 쳐줘도 27만이다? 그럼 27만으로 36만을 상대로 양익포위전을 시도하는 미친놈들도 있단 말인가?”
쿠로파트킨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건 자신이 아는 전술의 상식에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군은 동부전선의 좌익에 1군 12만을, 서부전선의 우익에 2군 11만을, 요새화된 중앙에 7만을 배치했다. 그리고 후방에 예비대를 넉넉히 6만이나 배치하고 언제든지 전선을 돌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규모 병력으로 대규모 병력을 포위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전략이었다. 쿠로파트킨은 일본군을 30만 이상으로 추정했고, 당연히 5만 이상의 예비대를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예비대라곤 후비사단 하나가 전부였다. 일본군은 전 전선에 총력을 건 도박을 했다.
“랴오양 회전에서도, 일본군은 13만으로 20만의 아군에게 양익포위전을 시도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이건 그냥 일본군이 미친놈들이 맞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상식을 뛰어넘는 전략을 구사하는 거라고 봐야 합니다.”
1만 5천의 기병군단을 이끄는 브루실로프 소장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이끄는 기병대는, 그나마 러시아군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보였던 미셴코 중장이 지휘했던 혼성 기병부대였다. 미셴코가 1월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는 바람에 브루실로프가 지휘를 대행했다.
실제 역사대로라면 차석인 파벨 폰 렌넨캄프(Pavel von Rennenkampf) 소장이 지휘했겠지만, 역사의 변화로 인해 브루실로프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쿠로파트킨은 브루실로프의 기병군단을 예비대로 두고 전선 정찰만 하게 했다. 브루실로프로서는 갑갑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말도 안 돼. 그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 소수의 부대로 양익기동하여 다수의 부대를 포위섬멸한다니, 이런 건 전쟁사에서 듣도 보도 못했어! 포위섬멸작전에 능했던 나폴레옹과 몰트케조차도 언제나 전선에서는 병력의 다수를 점하려 했다고!”
쿠로파트킨은 분명 사관학교와 전쟁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참모와 군사행정가로서의 능력이 탁월하여, 참모총장과 육군대신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총사령관으로서는 낙제였다는 걸 전쟁으로 증명했다. 언제나 전쟁교본에 집착했고, 자신이 짜 놓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임기응변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신경과민은 극에 달해서 언제나 퇴로를 끊길 걸 우려했고, 그 결과 일본군의 기만전술에 계속 놀아났다.
계속 후퇴하여 일본군의 보급선을 최대로 늘인 후에 유럽에서 도착한 원군과 함께 격멸한다는 기존의 계획에서 물러나지 않으려 했다.
만약 국내에 혁명과 같은 위기가 없었더라면 쿠로파트킨이 계획한 장기 소모전이 필승의 카드가 될 터였다. 일본은 장기전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그렇지만 러시아도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었다.
“사령관 각하. 기병대의 적전 시찰, 열기구의 관측, 정보부의 정보 획득, 그리고 제가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일본군은 25만 내외가 분명합니다. 대규모 예비대 같은 건 없습니다. 마적 2만이 장춘에서 배후를 습격하네, 한국군 3만이 길림에서 배후를 습격하네 하는 건 모두 기만전술에 불과합니다. 병력을 집중시켜서 한 점에서 쳐야 합니다!”
“귀관이 획득했다는, 그 한국인들이 줬다는 정보 말인가? 그게 역정보인지 어떻게 아나? 애초에 귀관은 2월 초에 만주에 도착했을 뿐이야. 전선 상황에 대해 얼마나 아나? 그렇게 전공이 탐나는가?”
브루실로프는 혈압이 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군대는 계급이라, 꾹 참고 사령부에서 물러났다.
“미치는 줄 알았소. 용케 그동안 참고 살았구려.”
브루실로프가 브론스키에게 하소연했다. 브론스키는 헛웃음을 흘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보드카 진탕 마시고 미친 척하고 사령부에다 총기난사하고 싶을 때가 있지요. 랴오양에서 퇴각할 때는 정말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 심정 이해하오. 하지만 총은 적에게 난사해야지. 결국 기회가 오고 말 거요.”
브루실로프는 의지를 굳혔다. 후방에서 시간낭비하려고 온 만주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분명히 적의 급소가 보였다. 그 급소를 쳐야 했다.
“공격! 공격을 멈추지 마라!”
“돌격!”
“천황 폐하 만세!”
3월 1일부터 일본군 좌익, 3군의 우회기동이 본격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3군에서도 가장 선봉에 있는 9사단은 악전고투하며 러시아군 전선을 뚫고 있었다. 9사단은 아군과 적군의 피로 칠갑을 하며 계속 전진했다.
최전방의 아키야마 기병지대는 크게 우회하여 마침내 러시아군 후방까지 인접하는 데 성공했다. 이대로 가면 일본군의 기만전술에 러시아군이 꼼짝없이 걸려드는 상황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기병만큼은 러시아가 일본보다 확실한 우위에 있었다. 그 기병전술조차도 밀린다는 건 러시아 기병의 자존심에 큰 상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이제 공세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른바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좌익의 공세는 한계에 도달해 기진맥진해 있었고, 사상자가 너무나 누적되어 있었다. 포탄의 부족도 심각해 계산해서 아껴 가며 써야 할 지경이었다.
3월 4일, 계속 진격을 독촉받던 3군은 사령부에 사정했다.
「공세 능력이 한계에 도달. 철령 진격은 불가능함. 우회 폭을 줄여 봉천으로 진격하겠음.」
「무슨 소리냐? 그럼 명령을 내린 사령부의 위신은 어찌 되느냐? 2군이 도우러 가고 있다. 양군이 합류하면 편익포위가 완성 가능하다! 최후의 일인까지 힘을 내주길 바란다!」
“확실합니다! 적 좌익의 전선이 너무 길고 얇게 늘어졌습니다. 바로 이 지점, 이 지점을 공략해 적 좌익을 분단시켜야 합니다.”
브루실로프가 지도에서 가리킨 지점은 2군과 3군의 거리가 벌어진, 작은 마을이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지점이 된 간홍둔(干洪屯)이었다.
쿠로파트킨도 이제는 공세에 동의했다. 공세를 독촉하는 차르의 명령 전문이 또다시 도착한 데다, 전황을 볼 때 공세를 펼치지 않으면 계속 뒤로 밀릴 상황이었다. 부하들의 진언도 근거 없는 게 아니었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좋다. 카울바르스 대장의 제2군 3개 군단은 공세로 전환한다. 1군단장 게른크로스 중장이 선봉을 맡는다. 브루실로프 소장의 기병군단은 적전을 돌파하여 적을 분단시킨다. 전선에서 공세를 퍼부어 적의 좌익을 무너트려라! 적의 좌익이 무너지면, 전 전선에서 총공세를 개시한다.”
“예!”
일본군이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 마침내 러시아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이 순간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일본군의 공세종말점은 봉천 회전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대륙으로 나아가 웅비하겠다는, 일본 팽창론자들의 구상 자체가 종말점에 이르고 있었다.
[봉천 회전 참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