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33
– 114화에 계속 –
2부 114화 1906년 혁명
총파업은 10월에도 계속되었다. 10월 1일(그레고리력 14일), 민중의 항의는 최고조에 도달했다.
“전제정을 타도하자!”
“인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라!”
“보통선거에 의한 제헌의회 설립!”
“8시간 노동제 성취!”
노동계급과 중산층을 넘어 상류층까지 집회에 동참했다.
잘 차려입은 신사와 숙녀들도 가슴에 붉은 리본을 달고 ‘자유 만세’를 외쳤다. 고등교육을 받은 부르주아지도 시대착오적인 전제정에 갑갑함을 느끼는 건 매한가지였다.
교수, 변호사, 의사, 엔지니어 등 전문직도 총파업에 동참하고, 황립극장의 배우와 발레리나도 공연을 거부했다. 예술인들도 조합을 결성해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문자 그대로 ‘전 인민의 투쟁’이었다.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가 출범하였음을 선포합니다!”
10월 2일(15일), 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소비에트가 결성됐다. ‘평의회’란 의미를 가지는 소비에트(Soviet)는 각 직종과 공장에서 선출된 노동자 대표로 집행위원회를 구성했다. 지금까지 러시아에 등장한 그 어떤 조직보다 민주적인 조직이었다.
“근위대의 장교와 병사 여러분! 민주공화국의 수립이 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손으로 혁명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무기고의 열쇠를 인민의 손에 넘겨주십시오! 인민에게 겨눈 총을 거꾸로 들어 압제자를 향하게 하십시오! 동지들이여! 함께 차르를 타도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갑시다!”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부의장, 26세의 청년 혁명가 레프 브론시테인(Lev Bronstein), 혹은 트로츠키(Trotsky)는 대담하게도 근위대 앞에서 일장연설을 했다.
평상시에 이런 연설을 들었더라면, 차르의 충성스러운 근위대는 즉각 연설자를 체포했을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은 물론이요, 장교들조차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경청했다. 체제에 가장 충성스러운 이들조차도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였다.
“수도를 소비에트와 사회민주당이 장악한 느낌이야. 1789년의 파리가 이랬으려나? 인민의 힘이란 정말 대단하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혁명이 성공할지도 모르겠어.”
표면적으로는 특파원 기자, 실상은 익문사 요원인 조한민이 현황을 판단했다. 러시아 혁명 조직 전문인 조한민은 눈앞에서 보는 총파업과 투쟁의 폭발력에 감탄했다.
“이래서는 곤란한데…….”
“왜, 자네 애인이 귀족 고위관료의 딸이라서? 걱정하지 말게. 현 단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야. 혁명이 성공해도 숙청은 최소한으로 끝날 거야. 차르를 끌어내리고 귀족들의 특권을 제한하면…….”
이위종의 걱정에 조한민이 다독였다. 이위종은 고개를 저었다.
“성상께서는 러시아 황제가 권좌에서 유지되시길 바랍니다.”
“차르가 성상과 오랜 벗이긴 하나, 구제불능이라는 걸 입증하지 않았나.”
“단순히 친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차르가 버텨 줘야 합니다.”
“하긴, 대한에는 러시아가 필요하지…….”
혁명의 심정적 동조자인 조한민도 대한제국의 계획에 제정 러시아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했다.
“그런데 차르가 저래서야 되겠나?”
“어떻게든 설득해 봐야죠. 성상께서 특별 임무를 맡기셨으니, 내일 당장 황제를 알현할 예정입니다.”
이위종, 아니 이선은 니콜라이 2세에게 최후의 설득을 할 계획이었다.
로마노프 왕조는 건국 300여년 만에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총파업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철도와 통신이 마비되고, 수도와 전기가 끊긴 다음에야 비로소 궁전 속의 차르도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폐하, 이제 파국적인 혁명을 막기 위한 선택은 둘 중 하나일 뿐입니다. 군사 독재자를 내세워 총칼로 혁명을 진압하거나,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광범위한 개혁을 채택하거나.”
10월 1일, 비테는 차르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니콜라이의 취향이 어느 쪽이냐 하면 당연히 전자겠지만, 현 상황에서 무력진압이 능사가 아니라는 건 본인도 깨닫고 있었다.
개인적 영역이나 외교의 영역에서는 우유부단하여 양보를 해도, 정치에서는 전제군주의 자리를 절대 양보 안 하려고 했던 니콜라이조차 개혁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3일만, 딱 3일만 더 심사숙고해 봅시다.”
“폐하, 결단이 늦어질수록 결과는 파국…….”
“알고 있소! 그러니 사흘 내로 결단을 내리겠소.”
여전히 ‘신에게 맹세한 신성한 전제군주의 의무’에 집착하는 니콜라이는 최종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황태후조차 개혁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했으나, 니콜라이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황후 알렉산드라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 말라고 종용했다.
“니키! 저 악독한 반역자들이 누굴 죽였는지 잊었어요? 당신의 삼촌, 내 언니의 남편도 테러리스트에 의해 산산조각 났던 걸! 아, 불쌍한 언니!”
니콜라이의 숙부이자, 알렉산드라의 언니 엘리자베트의 남편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은 모스크바 총독으로 재임 중 사회혁명당 전투조직에 의해 암살당했다. 마차 안에서 폭탄을 맞은 세르게이 대공은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 나 버렸다. 체포된 암살자 이반 칼랴예프는 ‘피의 일요일’에 대한 복수를 달성했다고 선언하고 총살당했다.
사빈코프가 이끄는 사회혁명당 전투조직은 러시아 전역에서 테러를 계속했다. 광신적인 혁명가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혁명가들도 직접 테러에 나섰다. 실패가 반복되고 10번에 1번만 성공할 지라도, 러시아 귀족사회와 관료들에게 주는 공포는 굉장했다.
“알릭스, 나도 숙부님의 죽음은 안타깝고 복수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소. 정말로 싫은 일이지만, 양보를 해야 할 것 같소.”
“니키, 당신은 전제군주라고요! 채찍을 휘두를 때가 되면 주저하지 말고 휘둘러요! 천한 것들에게 필요한 건 양보가 아니라 채찍이란 말이에요!”
니콜라이의 이성은 비테의 말대로 개혁을 받아들이라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알렉산드라의 말을 듣고 나니 또 감정적으로 흔들렸다.
니콜라이는 우유부단의 극치를 보여 줬다. 군대를 동원하여 단호하게 총칼로 찍어 내릴 자신은 없지만, ‘천한 것들에게 굴복’하기도 싫었다.
“폐하, 한국 공사관의 외교관이 알현을 청하고 있사옵니다.”
“그래, 오늘 보기로 했었지. 알겠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외국 외교관이라고 만나고 싶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이위종은 예외적이었다. 내무부 공안질서수호국(오흐라나)로부터 이위종이 포섭된 요원이고, 그가 내놓은 정보가 봉천 회전에서 승리했다는 데 기여했다는 극비 보고를 받은 니콜라이는 크게 기뻐하며 치하한 바 있었다.
차르의 신임을 얻게 된 이위종은 원하는 때에 알현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황제 폐하, 강녕하셨사옵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상황이 이래서 유감이오.”
파업으로 페테르부르크의 모든 교통, 수도와 전기마저 끊어지는 바람에 궁전조차 모든 걸 수동으로 하고 있었다.
“아무튼, 짐은 그대의 노고를 잊지 않고 있소. 그대의 신분과 공로를 밝힐 수만 있다면, 저 어리석은 신민들에게 본받으라고 하고 싶소. 러시아 여인을 사랑한 외국인조차 러시아를 위해 헌신하거늘!”
니콜라이는 ‘오흐라나 요원’ 이위종을 러시아에 매수된 배신자가 아닌, 진정으로 러시아에 감화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폐하께서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하온데 저는 한국 외교관인 동시에 러시아를 사랑합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제 의무도 저버리지 않고 싶습니다. 한국과 러시아 모두를 위하여, 일본의 패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짐이 그래서 그대를 좋게 생각하는 거요. 오히려 한국인인 그대가 러시아의 이익만을 위하려 한다면, 믿을 수 없는 배신자로 여겼겠지.”
우호적인 분위기에, 이위종은 마침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대한 황제 폐하의 전언을 바치고자 왔습니다.”
“이선이? 뭐라고 하든가?”
이위종은 정중한 태도로 차르에게 문서를 전달했다. 문서를 받아든 차르가 놀랐다.
“이, 이건…….”
“그렇습니다. 일본군의 극비정보를 제게 전달하도록 명하신 건 바로 대한 황제 폐하이십니다. 만주에 요원을 파견하여 협력을 지시한 분도 폐하이십니다. 러시아의 승리를 위하여.”
이위종은 마침내 진실을 밝혔다. 이선은 자신의 도움을 묻어 둘 생각이었지만, 이 사실을 밝히지 않고 니콜라이에게 조언하면 효과가 없으리라는 판단에 어쩔 수 없었다.
“대한제국이 영국 및 일본과 동맹을 맺은 건, 일본을 제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대한 황제 폐하께서는 러시아의 지원을 잊지 않고 계시며, 언제나 러시아 황제 폐하를 벗으로 여기십니다. 일본을 제어하지 못해 끝내 전쟁이 발발하여 러시아의 피해가 커지니, 대한 황제 폐하께서는 동맹국을 배신했다는 오명을 쓰는 걸 각오하면서까지 러시아의 승리를 염원하신 겁니다.”
이위종은 이선의 이중플레이를 고뇌에 찬 구국의 결단으로 미화시켰다.
“짐은 그런 줄도 모르고……. 하긴 이선 그 친구는 할아버님의 암살도 막고, 내가 일본에서 광인의 습격을 받아 죽을 뻔했을 때도 나를 구했지.”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던 니콜라이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은 채 감동을 받았다. 러시아인들 모두가 자신을 배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직 이선만은 우정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근래 멀어지긴 했어도, 이선은 자신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다.
“대한 황제 폐하께서는, 로마노프 왕조의 안위를 위하여 무엇이든 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이위종은 이선이 작성한 상세한 전문을 니콜라이에게 전달했다. 정치적 해법이 담긴 조언이었다.
「…… 폐하, 짐은 1882년의 일이 떠오릅니다. 러시아에서 막 귀국했을 때지요. 수도에서 병사와 빈민들의 반란이 일어나 궁궐이 점령당했습니다. 왕조 500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요,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기회가 되었습니다. 짐은 이 사건을 통해 변혁을 향한 국민의 여망을 활용하여 권좌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반란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짐과 대한제국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는 역설적으로 기회입니다. 타협하십시오. 정치는 타협의 기술입니다. 폐하의 선제 알렉산드르 2세께서 그리하셨듯이, 시대착오적 반동주의자들은 멀리하십시오. 견실한 보수주의자들을 우군으로 삼고, 개혁적 자유주의자들을 끌어들이십시오. 제정과 타협하지 못할 정치세력인 급진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을 막아 내려면, 자유주의와의 연합은 필수입니다. 이들은 광범위한 정치적 개혁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것입니다.
…… 폐하의 결단에 로마노프 왕조와 러시아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저는 언제나 폐하의 편에 서 있겠습니다.
폐하의 좋은 형제, 이선.」
이런 내용이라면 평상시의 니콜라이라면 불편함을 느꼈겠지만, 이번만은 꼼꼼히 정독했다.
“이선, 아니 귀국 황제 폐하의 조언은 깊이 새겨 두겠소. 폐하께 고맙다고 전해 주시오. 짐 또한 폐하를 형제로 생각하며, 언제나 폐하의 편에 서겠다고.”
“황공하옵니다, 폐하!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니콜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그는 결단을 내렸다.
10월 4일(17일), 겨울궁전.
주요 대신과 황족, 군부 사령관들이 궁전으로 모여들었다.
비테와 자유주의적 귀족 오볼렌스키(Alexei D. Obolensky) 공작이 기초한 선언문에 마침내 차르가 서명하는 날이었다.
가장 반동적이어야 할 헌병대장과 비밀경찰 총수조차도 타협을 지지했다. 그만큼 상황은 긴박했다.
니콜라이는 선언문에 서명하기 전, 미련이 남았는지 최후의 질문을 던졌다.
“니콜라이 대공, 만약 짐이 타협이 아니라 대공을 군사 독재관으로 임명하고 진압을 명령한다면, 혁명을 막을 수 있겠소?”
차르는 첫 번째 제안, ‘군사 독재자를 내세워 총칼로 혁명을 진압’한다는 방안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었다.
독재관 후보로 추천된 차르의 당숙,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저는 폐하의 신하로 명을 충실히 따르겠습니다만, 폐하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수 있도록 먼저 제 머리에 총을 쏘겠습니다.”
니콜라이 대공의 단호한 말에, 차르는 충격을 받았다.
관료, 귀족, 경찰, 군부, 심지어 황족조차도 개혁을 선택하라고 등을 떠밀고 있었다.
차르는 성호를 그으면서 선언문에 서명했다.
“하느님께서 러시아와 러시아 신민을 보우해 주시길.”
당일로 차르의 조서는 공표되어, 시내 곳곳에 뿌려졌다.
「신의 은총에 의해, 전러시아의 황제이자 전제군주, 폴란드의 왕, 핀란드의 대공, 기타 등등인 니콜라이 2세는, 현재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을 끝내고 국가의 안녕을 되찾기 위하여, 짐의 충성스러운 신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
1. 시민적 자유의 대원칙 – 천부인권의 불가침,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국민에게 부여한다.
2. 국가두마(의회)를 개설하고 전국 단위의 선거를 실시한다. 선거권을 확대하여 인구의 모든 계층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3. 헌법을 제정한다. 국가두마의 동의가 없는 법률은 무효화되며, 선출된 국민의 대표는 국정을 감독할 수 있다는 원칙을 확립한다.
재위 13년 10월 4일, 겨울궁전에서 서명함. 니콜라이 2세.」
이른바 ‘10월 선언’은 러시아가 민의를 존중하는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하게 됨을 의미했다. 비유하자면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과 유사한 선언이었다.
러시아 제국이 인민의 요구에 굴복하여 개혁을 약속한 건 최초였다.
“마침내 인민이 승리했다!”
“자유 만세!”
“국민의회 만세! 헌법 만세!”
러시아 인민은 열광적인 환호로 화답했다. 거리에서는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겨울궁전 앞에 모여들었다. 비까지 내리는 10월의 쌀쌀한 날씨에도, 거대한 인파가 모여들었다.
군중이 든 붉은 깃발에는 즉흥적으로 ‘결사와 집회의 자유 만세!’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불과 9개월 전 ‘피의 일요일’ 학살이 벌어졌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인민의 승리가 상징적으로 선언되었다.
“일어나라 조국의 아이들아, 영광의 날이 왔도다!”
승리에 도취된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행진했다.
‘인민의 승리’라는 거대한 일체감이 사람들을 지배했다. 계급의 구분이란 무의미했다. 사람들 사이에 구분이란 없었다.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과 신사복 차림의 부르주아지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정장 차림의 교수들도, 메이드복을 입은 하녀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사교계 부인들도, 제복을 입은 병사들과 장교들조차도 함께 손을 잡고 자유를 외쳤다.
“아나스타샤 안드레예브나, 여기서 뵙는군요.”
“아, 무슈 리. 아니, 시민 동지(citoyen). 반가워요!”
이위종은 아나스타샤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백작가의 영애인 아나스타샤의 드레스 가슴에도 붉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붉은 리본이 잘 어울리네요.”
“마침내 자유의 날이 도래했으니까요! 황제 폐하께서 늦게라도 현명한 선택을 하셔서 다행이에요.”
아나스타샤는 10월 선언에 환호했다. 그녀는 자신의 백부가 시위 진압에 관여했다는 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마침내 그 죄책감을 덜어 낼 수 있었다.
“그렇지요……. 현명한 판단을 하셨지요.”
차르의 선언 발표로 상황이 한순간에 뒤집혔는데, 이위종은 차르가 왜 지금까지 완고하게 고집하고 있었는지가 이해가 안 될 지경이었다.
“시민 동지도 함께 외쳐요! 자유 만세!”
“하하, 자유 만세! 앞으로 러시아의 자유가 영원하길 바랍니다.”
아나스타샤는 순수하게도 진정으로 자유의 날이 도래했다고 믿었다. 이위종은 미소를 지었다.
1차 러시아 혁명, ‘1906년 혁명’의 국면은 10월 선언으로 반전을 맞이했다.
러시아 국민은 마침내 자유와 평등, 헌법과 의회, 천부인권을 인정받았다.
총파업은 중단되었다. 수도와 주요 대도시는 빠르게 정상화되었다.
하지만 ‘인민의 승리’라는 거대한 일체감은 환상에 불과했다. 정치적 자유를 외친 부르주아지는 원하는 바를 얻었다. 노동자와 농민이 얻은 건 거의 없었다.
환상이 깨질 때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