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34
– 115화에 계속 –
2부 115화 일도양단
전제군주국 러시아를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할 뜻을 밝힌 10월 선언으로, 혁명이 일단 진정세에 접어들었다는 보고를 받은 이선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 타협은 정치의 기술이라고. 타협해나가면서 국가를 안정시켜야지. 하지만 혁명의 가능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최대 10년의 시간을 얻은 것이니, 그 기한 안에 유의미한 개혁을 하지 못한다면…….’
일단 군대·관료·지주·자본가의 충성을 유지시켜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지만, 인구의 다수인 노동자와 농민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다시 위기는 되찾아올 것이다.
이어서 일본 정세에 대해 보고를 받은 이선은 냉소를 흘렸다.
‘내가 손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자멸의 길을 걷는군. 아주 바람직해.’
사태 해결에 골머리를 앓는 사이온지 내각에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일본인들의 분노는 시작에 불과했다.
공사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은 일본계의 이민 거부로 이어졌다. 미일관계의 파탄은 곧 한미관계의 증진으로 이어질 터였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일본인들이 비난의 화살이 외국에 돌아갔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번벌 정부와 군부에 있다는 걸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터였다.
‘권력에 순종적인’ 일본인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좌절감과 분노를 맛보았을 때 어떤 선택을 취할 것인가?
러시아는 혁명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으므로, 당분간 공격적인 대외정책은 구사하지 못할 터였다.
일본과 러시아가 국내의 혼란에 빠져 대외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건, 대한제국으로선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었다.
이선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 껐다.
이미 장작과 불씨는 갖춰져 있었다. 담뱃불과 약간의 바람만으로도 대형 화재를 저지를 수 있다. 이선은 불을 저지를 시기를 가늠했다.
* * *
계엄령 선포로 폭동은 잠잠해졌지만, 일본인들의 분노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신문에는 하루가 다르게 격론이 쏟아지고, 의회에서는 정부와 군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번벌 정치 타도! 군비 축소! 증세 철회! 선거권 확대! 사회적 불평등 해결!”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12만에 달했다. 전쟁 이전 상비군의 60%에 달하는 수치였다. 사상자를 총합하면 30만에 달했으니, 일본 육군의 근간이 무너졌다.
20억 엔이라는 막대한 전비도 문제였다. 목표했던 배상금도 받지 못했으니 당분간 막대한 외채에 허덕여야 했다.
배상금도 요동도 받아 내지 못하고 대신 가라후토(사할린)를 받아 낸 게 전부라는 말에, 국민은 분노했다.
일본 정부는 화급히 청나라를 압박하여 복건의 복주와 아모이 조차권을 받아 냈으나, 이 정도로는 국민의 분노를 막지 못했다.
“얼음덩어리 오지 가라후토?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이거냐?”
“홋카이도나 지시마(쿠릴)도 살 만한 곳이 못 되는데, 그보다 북쪽에 있는 가라후토? 제기랄, 정부 놈들이나 가서 살라고 해라!”
“도대체 아모이는 이 전쟁하고 무슨 상관이야? 요동을 내놓으라고, 일본인 10만이 죽어 간 요동을!”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식민지는 없어도 좋아. 배상금을 받아 냈어야지! 빌어먹을, 외채 갚는다고 또 세금 올리기나 해 봐라!”
정부는 진퇴양난이었다. 사이온지 내각은 군비 축소에 들어갔다.
“돈 나올 구석은 없는데,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려면 증세도 불가능하다. 답은 군비 축소뿐. 그동안 군비가 너무 방대하게 들어갔어. 번벌 정치에서 벗어나려면 군부의 힘도 빼야 하고. 육군부터 쳐 낸다.”
지난 10년간 예산의 50% 이상을 차지하던 군비를 절감시켜 재정 균형을 이루고, 육군의 항명으로 권력을 상실한 바 있었던 사이온지와 하라는 확고한 군부 통제를 위해서라도 군축이 절실했다.
“향후 군의 목표는 공세가 아닌 방위다. 전쟁 기간 신설했던 6개 상비사단은 해체한다. 사단은 평시 13개로 한정한다. 상비군은 평시 18만을 넘길 수 없다. 비용이 많이 드는 요구는 모두 취소하거나 연기한다.”
최초 비(非)삿쵸(사쓰마·조슈) 출신, 최초 육사 출신인 육군대신 이시모토 신로쿠(石本新六)는 군축에 나섰다. 기존의 장관들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유신의 공을 세운 정치가에 더 가까웠기에 직업군인형 장관은 처음이었다.
육군 장교들로부터 배신자 소리 들었지만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사이온지는 아예 10개 사단 이하로 줄이라고 했지만, 그나마 육군성이 저항해서 13개로 유지된 것이었다.
“해군도 군축에 동의합니다. 군함 10개년 계획을 완료한 이상, 당분간 추가 건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해군대신에 유임된 야마모토 곤노효에도 군축에 동의했다.
군함 10개년 계획, 8·8함대 계획은 이미 완성됐다. 비록 를 포함해 전함 3척을 전쟁으로 상실하긴 했지만, 여순과 쓰시마 해전에서 항복한 러시아 군함들을 해군에 편입시켜 숫자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에 요구했던 중립항 도주 군함은 받아 내지 못했지만, 해군은 여순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군함들까지 인양해 가며 재개장에 나섰다.
그 결과 일본은 동아시아 해역에서는 최강자가 틀림없었고, 세계 5위의 해군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군비 증대에 급급할 이유가 없었다.
“육군은 무능함의 극치로 수많은 청년을 죽게 만들었지만, 해군은 일본 역사상 가장 빛나는 승리를 이루었다!”
여순 공방전의 참상과 쓰시마 해전의 압도적인 승리는, 육군과 해군의 오랜 경쟁관계를 끝냈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 대장은 ‘군신’으로 칭송받으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승리의 주역인 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 중좌와 사토 데쓰타로 대좌의 주가도 치솟았다. 특히 이론가였던 사토는 해군성으로 부임, 전후 국방 정책의 이론을 제공했다.
“이제 일본은 전쟁 억지(抑止)를 목표로 한다. 군비는 어디까지나 자위(自衛)를 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국 국방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군비는 해군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해군 이기주의가 아니냐는 육군의 비난을 사토는 단숨에 일축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보았듯이, 한정된 경제력과 인구를 지닌 섬나라 일본이 강대한 대륙국가처럼 육군을 갖는 것은 무리다. 해군력에 중점을 두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강력한 해군이야말로 일본의 평화를 보장한다.”
“그럼 대륙은 방기하자는 말이오?”
“그렇소. 오히려 일본은 한국 육군의 성장을 기원해야 하오. 한국은 일본의 동맹이자 대륙국가이니, 그들이 강력한 육군을 양성하여 러시아를 막는 방파제가 된다면 오히려 더 좋은 일이오.”
이순신 숭배자인 사토는, 공교롭게도 충무공 탄일에 벌어진 쓰시마 해전의 대승 이후 더욱 확고한 숭배자가 되었다.
일본이 해상력 장악에 사활을 기울이고, 대륙 방위는 동맹인 한국 육군에 외주를 맡겨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영불협상이 일한관계의 모델이 되어야 하오. 해군강국 영국과 육군강국 프랑스가 손을 잡아 독일의 패권을 견제하고 있듯이, 일본과 한국이 손을 잡으면 아시아의 평화를 지켜 낼 수 있소. 동맹인 영국과의 관계를 튼튼히 하고, 미국과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유지하여, 현재 확보한 해상권을 확실히 지켜 내야만 하오.”
이제 대륙을 향한 침략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열도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생각도 아니었다.
해군력을 통해 사할린-홋카이도-혼슈-규슈-대만-해남도로 이어지는 ‘섬 제국주의’를 충실히 유지하고, 대륙의 기지로 확보한 아모이와 복주를 기반으로 복건의 세력권을 잠식해 나가는, ‘해주육종’과 ‘북수남진’이 전후 일본의 새로운 방책으로 채택되었다.
“해군 놈들, 육군을 정말로 고사시켜 버리려고 하는구나.”
군축과 해주육종으로 육군은 불만이 자자했지만, 성난 민심 앞에서 죄인이 되어 버린 그들로선 반격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3군 사령관 노기 마레스케 대장이 희생양이 되지 않았더라면, 육군 장성에 대한 테러도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강화조약 체결 후, 만주에 파병되었던 군대가 순차적으로 귀국하였다. 보무당당하게 깃발을 치켜들고 대륙으로 나아갔던 군대는 참담한 꼴로 되돌아왔다.
“여순에서 10만이나 죽인 노기는 어디 있느냐!”
“내 아들 살려 내라, 이 무능한 도살자야!”
여순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분노는 3군 사령관 노기에게 집중되었다.
귀국한 노기가 여순과 봉천에서 전사한 두 아들의 유골을 들고, 전사자 유족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유족들의 분노도 잠잠해졌다.
노기는 두 아들을 모두 잃어 ‘의무’를 다한 것이었다. 그 자신도 책임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얼마 뒤, 만주군 총참모장이었던 고다마 겐타로 대장이 급사했다. 향년 55세. 공식적인 사인은 뇌출혈이었지만, 울화와 스트레스가 겹쳐 죽음을 앞당긴 셈이었다.
그런데 고다마가 책임을 지고 자살했는데 자연사로 덮였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사실상 만주군의 지휘자였던 고다마였던 만큼, 책임론이 제기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참모장인 고다마 대장이 그렇게 자살했다면, 총사령관인 오야마 원수도 할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야마로 되겠나? 전쟁을 주도한 야마가타, 가쓰라야말로 할복해야지.”
“맞아, 그들이야말로 책임자지. 겨우 은퇴하면 다야?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살아 있는지…….”
자살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뒤숭숭한 상황에서 소문은 빠르게 번져 나갔다. 불똥은 육군 지휘부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기 마레스케가 유서를 남기고 할복자살했다.
「오오키미(천황)께 죄스럽다. 폐하의 자식들인 장병들을 수없이 죽게 만들었으니, 어찌 폐하를 다시 뵙겠는가. 이 죄는 죽음으로 갚을 수밖에 없다. 불초 마레스케는 죽음으로 속죄한다.」
노기는 천황의 어진 아래에서 정좌한 채로 할복자살했다. 뒤이어 부인 시즈코도 음독자살했다.
“호외요! 호외! 노기 대장 할복! 부인도 자결!”
아무리 할복이 일본의 ‘전통 문화’라지만, 최후의 사무라이 반란이었던 세이난 전쟁(1877) 이후에는 사라져 가는 풍습이었다.
“장렬한 최후다. 가히 최후의 사무라이로군.”
“세상에, 아직도 할복하는 사람도 있나?”
여론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순사(殉死)’라고 치켜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근대적인 악습을 따르는 시대착오로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노기가 할복하니, 그 윗선인 오야마도 책임을 지고 할복하려 했다. 그러자 할복을 금지하는 메이지의 명령이 떨어졌다.
“경들의 어려운 심경은 이해하나, 할복은 용납하지 않겠다! 살아서 책임을 지도록 하라!”
메이지는 노기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할복에 찬사를 보내진 않았다.
“국가의 대업은 망쳐 놓고 죽음이라는 도피처로 향한다고? 참 속도 편하군.”
육군이 나라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이토 히로부미는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폐하께옵서 할복 금지 명령을 내리셨으니, 전쟁이 잘못되면 책임을 지고 할복하겠다는 춘산장 영감은 얼마나 좋을꼬? 처음부터 죽을 생각 없었던 영감인데. 부하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비록 최악의 위기에 몰린 일본이지만, 야마가타와 육군이 두 번 다시 정치판에 끼어들지 못하리라 생각하니 이토는 기분이 홀가분했다. 더욱이 총리 사이온지는 자신이 지명한 후계자가 아닌가?
정작 그 사이온지는 원로 자체를 적폐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이토도 뒷방 늙은이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당장 정적의 몰락은 깨소금 맛이었다.
“야마가타 원수 은퇴, 오야마 원수 은퇴, 가쓰라 대장 은퇴, 고다마 대장 사망, 노기 대장 할복. 상비사단 감축, 군비 축소, 현대화 취소. 문민 관료들과 해군 놈들이 작정하고 육군의 뿌리를 뽑으려고 작정했군.”
“우리만 잘못했나? 관료 놈들도 거지같은 외교로 이렇게 만든 거 아닌가!”
“육군은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상대했지만, 해군은 7개월간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와 힘이 빠진 적을 섬멸했다고 자랑하는 게 아닌가?”
육군은 부글부글 끓었다. 노기의 할복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결집시켰다.
“비국민과 불순분자들이 날뛰는데도, 유약한 정권은 구경만 하고 있다.”
“이러다간 유신의 대업이 다 어디로 가겠는가? 애국적인 군부가 국체를 지켜 내야 한다.”
육군의 주류를 지탱하는 사상은 기타가 주장하는 ‘순정사회주의’가 아니라, 팽창주의와 프로이센식 권위주의에 더 가까웠다. 이들은 폭발하는 민심에 동조하기보다는 공포감을 느꼈다.
“군사정권을 세워야 한다. 어설프게 항명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변을 일으켜 사이온지와 각료들을 끌어내리자고.”
“그럼 경찰과 해군 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러니 내무성과 해군성부터 장악해 버려야지! 수도가 제압되면 해군이 지상에서 뭐 어떡할 거야?”
“해군에 대한 국민적 신망은 높지만 우린 그렇지 않아. 여론이 우리를 지지하겠나?”
“여론 따위 총칼 앞에서 기능이나 하겠나! 의회 해산, 언론 폐간, 집회 금지시키면 무지한 백성들이 뭐 어떡하겠나?”
육군 일각은 막 나가고 있었다.
군부 내 불평불만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이는, 다름 아닌 전 총리 가쓰라와 전 육군대신 데라우치였다.
“이대로 가다간, 영원히 문민관료와 해군에게 짓눌리고 만다. 칼 가진 자를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사이온지 도련님에게 똑똑히 보여 주자.”
가쓰라와 데라우치는 팽창주의고 프로이센식 권위주의고 간에, 이대로 육군과 조슈벌이 몰락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파벌주의야말로 이들의 진정한 원동력이었다.
“이봐, 경거망동하지 말게. 이미 전쟁으로 국력을 소진시켰는데, 내란으로 더 혼란에 빠트릴 생각인가?”
“내란을 촉발시킬 놈들은 ‘주의자’ 놈들입니다! 이놈들은 국체를 무너트릴 놈들입니다! 하지만 무능하고 유약한 사이온지 정부는 제대로 대처조차 안 하고 있으니…….”
“주의자 무리야 한 줌에 불과해. 언젠가 놈들을 때려잡긴 해야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정세가 유리해질 때까지 은인자중하도록.”
뜻밖에도 영수인 야마가타는 은인자중(隱忍自重)을 요구했다.
나이 70, 유신 1세대인 야마가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이미 국가가 위기에 몰린 상황, 이대로 큰 평지풍파 없이 육군의 세력을 보존했다가 언젠가 다시 올 전쟁의 기회를 노려야 했다.
“춘산장 영감도 이제 늙었군. 칼 빼 들고 막부를 뒤엎은 패기는 어디로 가고 저런 힘없는 소리라니?”
“이토 그 색마 영감의 영향을 받았나 봅니다. 쯧,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더니…….”
“영감이 없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육군의 인맥은 조슈벌을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비록 우리는 물러났지만, 그동안 우리가 발탁하여 진급시켜 준 군인들이 얼마나 많나? 이들을 포섭해서 대업을 도모해 보세. 일도양단! 단숨에 베어 버리자고.”
“알겠습니다, 각하.”
가쓰라와 데라우치는 어둠 속에서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들 딴에는 칼 가진 자의 ‘일도양단(一刀兩斷)’일지 몰라도, 실상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의 발악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