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35
– 116화에 계속 –
2부 116화 유신혁명
군부 일각에서 착착 쿠데타가 모의되었지만, 문민 정치가들은 군부보다 민심의 동태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제 불만은 영토의 문제가 아니었다. 러시아 혁명의 여파는 일본까지 불어 닥치고 있었다. 점점 극단화되는 여론에 정치가들은 불안을 느꼈다.
“보시오, 여러분! 번벌 정권은 지난 수십 년간 학정과 증세로 국민을 쥐어짜고, 수십만 청년들을 이국의 땅으로 끌어내 고혼(孤魂)으로 만들었소. 그런데도 책임을 지려 하는 자가 누가 있소?”
“썩어빠진 정치가, 무능한 장군, 정권과 결탁해 재산을 불리는 정상(政商), 제 뱃속만 채우면 그만인 지주들! 모두 척결해야 하오!”
사회주의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목소리를 냈다. 1905년 이전까지 일본의 좌익을 주도하는 건 미국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계 협동 사회주의였지만, 이제는 유럽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등장했다.
창당과 동시에 해산됐던 일본 사회당이 재등장했다. 고토쿠 슈스이와 사회당 지도부는 일본 사회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러시아를 보라! 저 낙후한 전제정의 러시아도, 민중의 힘이 승리한다는 걸 입증하지 않았는가! 일본이라고 해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스트라이크! 총파업 투쟁으로 나서자!”
근래 사회당의 선명성이 분노한 국민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곤 하지만, 이들은 소수파에 불과했다. 일본 노동 계급의 발전은 아직 취약한 단계였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지사(志士)’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으므로, 오히려 테러리스트가 더 인기를 끌 여지가 있었다.
“폭탄 열사를 본받자! 다이너마이트로 쾅!”
전쟁 전 이토의 다리와 야마가타의 팔을 날려버린 ‘폭탄열사’들이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 사회혁명당 테러리스트들처럼 테러로 권력자들을 날려버리자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이 전쟁은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不具)의 승리로 끝났다. 불구의 승리를 진정한 승리로 만들어야 한다.”
전전(戰前)과 다른 점은, 상극처럼 여겨졌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 선봉에는 24세의 청년 기타 데루지로(北輝次郎)가 있었다.
「어일신(御一新, 메이지유신)은 군주국가에서 공민국가(公民国家)로 전환하는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그런데도 제국헌법에서 규정한 국체론은 철저히 반혁명적이다! 어일신의 완수는 유신혁명이다. 유신혁명의 진정한 가치는 데모크라시(democracy)에 있다. 천황의 국가, 천황의 국민이 아닌, 국민의 천황, 국민의 국가가 되어야한다.
공민국가의 확립을 위해 보통선거를 도입하고, 노동자와 농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라.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사회주의를 구현하자.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자본가와 노동조합, 지주와 농민조합이 협력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하면, 국민의 생활이 향상되고 궁극적으로 국가 전체가 강화되리라.
…… 그렇다. 나는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고백한다. 나는 사회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제국주의를 버릴 수가 없다. 아니, 나는 사회주의를 위해 단연코 제국주의를 주장한다.
아시아의 황인종은 프롤레타리아트 민족이다. 서양 열강이라는 부르주아지 민족에 맞서 단결하여 아시아를 지켜내야 한다.
유신혁명은 한국과 중국, 더 나아가 러시아의 혁명을 촉발할 것이다. ……」
기타 데루지로가 펴낸 ≪국체론과 순정사회주의≫는 단숨에 주목받는 저작이 되었다.
좌익 내셔널리즘과 국가 코포라티즘(corporatism, 협동조합주의)의 기묘한 조합.
파시즘의 아시아적 기원이 될 ‘순정사회주의’의 탄생이었다.
1906년 기타 데루지로가 펴낸 ≪국체론과 순정사회주의≫은 판매 1주일 만에 불온서적으로 찍혀 출간 정지되었다.
비교적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이온지 내각이라 할지라도, 이런 ‘불경한 책’이 나도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금서가 되면 더욱 관심을 끌게 되는 법이다. 곳곳에 해적본이 돌아다녔다.
1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은 가뜩이나 복잡한 철학적 사유로 읽기 난해했지만, 문장에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결합. 작금의 일본에 이보다 더 필요한 주장이 어디 있겠나!”
“일본 국민의 주권을 함양하고, 동시에 국위를 떨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천황 폐하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썩어빠진 간신들을 때려잡아야 한다!”
“진정한 일군만민은 혁명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니!”
황민화 교육의 주입으로, 불평분자들에게도 천황은 ‘신성한’ 존재였다.
군주와 국민 사이를 가로막는 ‘간신’들을 제거하고, 천황에게 대권(大權)을 넘겨 일대 혁명에 돌입하자는 주장이 흘러나왔다.
물론 일본 정계의 주류에게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고, 재야세력에서조차 이단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전쟁으로 크게 상처를 입은 일본 청년들, 특히 전쟁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청년들에게 새로운 길잡이가 되고 있었다.
숱한 격전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은 사토 히로시 중위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래, 혁명이 필요하다. 썩어빠진 놈들은 일도양단으로 베어버려야 해!”
25세의 히로시는 자신과 동년배인 기타 데루지로의 저작을 읽고 감탄했다.
히로시는 진심으로 정부와 대본영을 증오했다. 숱하게 죽어간 전우들을 생각하면, 무모한 전쟁을 기획한 정부와 무모한 작전을 강요한 대본영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일본을 정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군이 바로서야 해. 특정 파벌의 이익으로 전쟁이나 도발하는 무리가 아니라, 진정 일본 국민을 위한 군대……!”
히로시는 군도를 바라보았다. 만주에서 무수히 많은 러시아인의 피로 물든 군도.
이제 일본인을 베어, 일본을 정화시키는 데 사용해야 했다.
다사다난했던 메이지 39년(1906)도 12월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메이지 40년의 전망도 암울하긴 매한가지였다.
“내년도 예산은 긴축, 긴축, 긴축이오. 올해 예산의 6할을 차지한 군비 예산은 2할로 줄일 거요. 그러니 의회의 협조를 바랍니다.”
메이지 39년도 예산의 무려 60%가 군비였다.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일본으로선 저 방대한 군비부터 줄여 재정난을 해결해야 했다.
“적극 찬성! 특히 육군 군비는 9할을 삭감합시다.”
중의원의 정당들은 예전부터 군비 절감을 외쳐왔다. 그런데 정부가 앞장서서 군축을 하겠다니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다.
“아니, 육군과 해군이 반씩 책임을 부담하고 예산을 절감하든지. 왜 육군만 9할이나 삭감하는 거요?”
“육군 지도부의 헛짓으로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죽었으니, 전사자 유족과 부상자들에게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하려면 단기에 지출해야할 비용이 얼마인지 아시오?”
이때까지 일본은 제대로 된 전몰자 부조(扶助)도 없었다. 천황이 내리는 약간의 ‘은사금’이 전부였다.
청조일 전쟁이나 미서일 전쟁만 해도 사상자가 많지 않아 큰 부담이 없었지만, 러일전쟁은 사상자가 30만에 육박함에 따라 강력한 여론의 압박이 들어왔다.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에서 가장을 잃고 생계의 위기에 내몰린 가정이 부지기수였다.
“최소한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은 장병들의 가족들이 굶어 죽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겠소!”
아무리 재정난에 시달리는 정부라지만 이런 호소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세금과 내국채 발행으로 예산을 충당해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긴 했지만, 국민도 전몰자 유족과 전상자를 위한 부조금에는 동조했다.
“그럼 왜 해군은 특별 대우하는 거요!”
“알다시피 전함 유지비라는 게 좀 많이 듭니까? 설마 군함들이 고철덩어리로 항구에 쳐박혀있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일본의 국방에 해상권 장악보다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까?”
중의원도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해군을 무시할 순 없었고, ‘합리적인’ 수순에서 예산 절감이 이뤄졌다.
육군은 참패하고 해군은 압승했으니 타당한 귀결이라 할 수 있겠지만, 육군 지도부는 격분했다.
“내년도 예산안 봤나? 이제 정말 노골적으로 육군 죽이기에 나서는군!”
“전쟁 전에도 군비의 7할은 해군이 받아썼다! 그러니 8·8함대도 만들고 러시아 함대도 격파할 수 있었던 거 아니냐!”
“육군에게도 그만한 예산을 들어 상비 사단 20개를 줬어봐라! 만주에서 병력이 부족해서 졌겠나?”
“이대로 가다간 영국처럼 징병제도 폐지하고 내지에 몇 개 사단 남는 게 전부겠구만!”
파벌에 상관없이, 육군 장성들은 일제히 분개했다. 육군대신에게 포화가 집중돼서, 견디다 못한 이시모토는 사표를 내밀었다.
실제 역사와 달리 ‘육해군대신 현역무관제’가 없기 때문에, 육군대신의 사퇴로 내각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정부는 얼마든지 대체인력을 쓸 수 있었다.
“뭐, 할 수 없지. 정 그렇다면 임시로 해군대신이 육군대신을 겸임하지.”
“아예 육군성과 해군성을 국방성으로 통합하면 어떻겠습니까? 육해군의 대립으로 불필요한 지출과 희생이 많았습니다.”
“호오, 좋은 생각이오. 근데 육군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터인데?”
“이번 겸직 조치를 시험지로 삼아 한번 파악해보지요.”
‘임시’ 딱지를 붙이긴 했지만, 해군대신 야마모토 곤노효에가 육군대신을 겸직했다. 원로와 해군은 사이온지 내각의 조치를 확고하게 지지했다.
“하다하다 못해 육군대신까지 해군대신이 겸해? 아예 육군을 폐지하자고 그러지!”
“도저히 못 참겠다! 사이온지, 하라, 오쿠마, 야마모토를 처단하자!”
“그 배후에 있는 이토와 마쓰가타도 제거하자!”
육군의 쿠데타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도쿄를 방어하는 근위사단은 하세가와 대장이 7년이나 사단장을 맡았지. 근위사단의 장교들은 대부분 하세가와 대장의 영향력에 있소.”
“근위사단을 움직여, 내무성과 해군성부터 제압합시다.”
“시일은 언제가 좋겠소?”
“2월 11일, 기원절이 어떻겠소? 기원절에는 관례적으로 천황 폐하께옵서 근위사단의 열병식을 친림하셨으니.”
“그거 좋겠군. 먼저 천황 폐하만 확보할 수 있다면, 놈들을 역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쉽지.”
가쓰라와 데라우치는 하세가와 요시미치 대장을 포섭했다. 조슈벌의 일원인 하세가와도 정부의 압박으로 보직 대기상태였지만, 과연 가쓰라의 예상대로 근위사단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근위사단 전체를 동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사안은 많이 알수록 불리합니다. 열병식을 맡을 근위보병 1연대만 동원해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옳으신 말씀이오.”
사이온지 정부도 도쿄를 지키는 근위사단의 장악에 공을 들여 황족인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閑院宮載仁親王)을 사단장으로 임명했지만, 그 휘하의 장교들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세가와의 옛 부하들이 실질적으로 사단을 장악하고 있었다.
“2월 11일, 근위보병 1연대를 동원해 군사혁명을 완수한다.”
정변을 성공시키면, 가쓰라, 데라우치, 하세가와가‘3두’를 구성해 육군 주도의 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정했다.
쿠데타 모의는 착착 진행되었다. 여론몰이를 위해, 가쓰라와 데라우치는 ‘전쟁 영웅’들을 초청하여 격려했다.
이게 결정적인 실패의 원인이 되리라곤, 미처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친애하는 전우 여러분! 본관 가쓰라는 육군 창설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육군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어일신 이래, 육군은 각지의 반란을 제압하고, 청국과 스페인, 러시아를 격파하며 싸웠습니다. 북으로는 만주에서 남으로는 남양군도, 동으로는 가라후토에서 남으로는 해남도까지, 천황 폐하의 육군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왔습니다.”
정변 계획을 세운 기원절을 보름 앞둔 메이지 40년(1907) 1월 26일. 이 날도 가쓰라는 참전 장교들을 불러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작금의 정부는, 저 유약한 문민과 탐욕스러운 해군의 연립 정권은! 지난 40년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온 육군을 폐지시키려 합니다. 만주에서 죽어간 12만의 원혼을 깡그리 잊으려고 합니다. 국가를 지키려한 군대는 부정하면서, 국체를 부정하고 국가를 한없이 약화시키려는 자들에게는 꼼짝도 못합니다! 우리는 군인이자 일본의 애국자로서, 어찌 이와 같은 폭거를 지켜만 보고 있겠습니까!”
가쓰라의 일장연설에 참전 장교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가쓰라와 데라우치는 장교 한 사람씩마다 악수하고, 격려하고, 금일봉을 건넸다.
도열해 있는 장교단의 끝에는 사토 히로시 중위도 서 있었다. 젊고 계급은 낮았지만, 여순과 봉천에서 숱한 부상을 입어가며 전공을 세운 공훈을 높이 평가받아서였다.
“반갑네. 귀관은?”
“9사단 33연대 소속 사토 히로시 중위입니다.”
“사토 중위는 여순 전투, 특히 203고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장교입니다.”
“오, 그래! 귀관은 정말 제국 육군에 귀감이 될 장교일세!”
“…….”
히로시는 일본의 ‘정화’에 동조하기는 했지만, 그 주체가 가쓰라와 데라우치가 된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전쟁을 주도한 정부와 대본영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바로 야마가타, 가쓰라, 데라우치가 그들이었다.
“그래, 그럼 이 부상은 여순에서 입은 건가?”
“하나는 여순 203고지에서, 하나는 봉천에서 퇴각 중에 얻었습니다.”
히로시의 얼굴에는 큰 자상(刺傷)이 두 개 그어져 있었다. 하나는 여순 203고지에서 육박전을 벌이다, 하나는 봉천에서 퇴각 중에 카자크 기병대의 칼에 스쳐서였다. 가까스로 살아남긴 했지만, 얼굴과 정신에는 다시없을 상처를 입었다.
“하하, 그거 대단하군. 내가 지휘했더라면 봉천에서 러시아군도 격파할 수 있었을 거야. 러시아 놈들을 베고 나도 승리의 훈장으로 이 정도 부상은 입었을 터인데! 아쉽게 됐어.”
가쓰라는 친근감을 표현한답시고 히로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떠들어댔지만, 그게 바로 히로시의 역린을 건드리게 되었다.
‘씨발, 네놈들의 개같은 명령으로 죽어간 전우들이 몇인데, 뭐가 어쩌고 어째……?’
전우와 적들의 피로 물든 자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히로시의 이성이 끊어졌다.
“이야아아앗!”
히로시는 차고 있던 군도를 빼들어 일도양단으로 가쓰라의 목을 베어버렸다. 크기로 유명한 가쓰라의 머리가 피를 내뿜으며 떨어져버렸다.
“무, 무슨…….”
“죽어라, 개새끼들아!”
히로시는 데라우치에게도 달려들어 베어버렸다. 데라우치는 즉사하진 않았지만,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자, 잡아…….”
“저새끼 잡아!”
순식간에 벌어진 참상에 장교들은 어안이 벙벙하다가, 허리에 차고 있던 군도를 빼들었다.
“전우들의 복수다! 유신혁명이다! 내가 일본을 정화한다!”
히로시는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모두 예복에 군도를 패용하고 있어서, 권총을 차고 있는 장교들이 아무도 없었다. 격렬한 칼싸움이 벌어졌다.
생사를 오가는 숱한 칼싸움으로 단련된 히로시의 광기를 당해낼 장교는 없었다. 히로시는 가쓰라와 데라우치의 피로 물든 칼을 휘두르며 자리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