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The Age of Revolution RAW novel - Chapter 450
– 131화에 계속 –
2부 131화 한러밀약
이 무렵, 표트르 바드마예프는 이른바 ‘녹룡(綠龍, Зелёный дракон)’이라는 티베트 불교의 밀교적 종파를 기원으로 삼는 신비주의 결사의 지도자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온갖 신비주의 오컬트 집단이 서양 귀족 사회에서 발흥했는데, 러시아 일각에서는 1880년대 이후 티베트-몽골풍 신비주의가 유행했다. 이를 선도하고 있었던 이가 바로 바드마예프였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귀족과 관료, 부르주아지가 결사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빛은 동방으로부터! 러시아의 미래는 바로 동방에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를 새로운 빛의 세계로 인도해 주실 분을 동지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대한제국 황제 폐하이십니다! 제가 폐하를 대리하여 새로운 천명을 낭독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드마예프는 이선이 니콜라이에게 보냈던 서한의 일부를 낭독했다. 결사의 일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청취했다.
「유라시아의 천명을 계승하실 분은 오직 칭기즈칸의 정통 계승자인 하얀 칸, 차르뿐입니다. 만주인이 찬탈한 칭기즈칸의 제위를 되찾고, 티베트와 몽골의 독립을 이끌어 주실 분은 오직 차르이십니다…….」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몽골 지배기를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르며 혐오했지만, 녹룡 결사원들은 달랐다. 이들은 진지하게 러시아는 유라시아를 지배할 운명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선례는 몽골제국이었다.
‘하얀 칸(белый хан)’은 러시아 차르가 킵차크 칸국의 후계자로서, 칭기즈칸을 계승해 장차 모든 유목민의 대칸으로서 유라시아를 지배하리라는 이론이었다.
「폐하와 짐은 1868년에 태어났습니다. 무진(戊辰), 황룡의 해지요. 용은 동양에서 군주를 상징합니다. 그중에서도 황룡은 황제를 상징합니다. 폐하께서는 황제로 태어날 운명을 타고 나신 겁니다. 1904년 갑진(甲辰)은 청룡의 해입니다. 청색은 곧 동방과 생명의 시작을 알리기에, 청룡은 황제의 후계자를 상징합니다. 황룡의 후계자는 청룡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드마예프는 차르에게 보내는 이선의 서한을 낭독하면서 자신이 더 도취해 버렸다.
동양에서도 유통기한이 족히 수백 년은 지난 오행이론과 도참사상이, 동양풍 신비주의에 빠진 러시아 귀족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렇습니다! 우리 비밀결사, 녹룡이 황룡과 청룡을 보좌하여 새로운 제국을 건설합시다! 동양의 백성들은 하얀 칸의 출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칭기즈칸의 계승자는 바로 하얀 칸이니, 러시아가 유라시아 제국을 지배하리라! 시베리아와 투르키스탄을 넘어, 몽골과 티베트까지!”
“하얀 칸 만세!”
바드마예프의 선언에 환호가 쏟아졌다. 예언, 신비주의, 지정학, 팽창주의, 슬라브주의, 유라시아주의가 기이하게 결합된 이론이었다.
‘예언’에 도취된 이에는 황후 알렉산드라가 있었다. 그녀는 직접 녹룡에 가담하진 않았지만, 바드마예프를 통해 ‘비의(秘儀)’를 받아들였다.
“한국 황제께서 말씀하셨듯이, 황룡의 후계자, 청룡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 분이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이십니다. 황태자께서는 동양의학의 신비한 힘으로 치유 받으셨으니, 태어날 때부터 이어진 운명이 마침내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분은 아시아를 지배할 새로운 하얀 칸이 되실 겁니다!”
바드마예프는 라스푸틴을 대신하여 알렉산드라에게 기이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예전부터 종교적 신비주의에 집착하던 알렉산드라는 ‘비의’에 넘어가고 말았다.
“니키, 한국 황제가 당신에게 보낸 서한을 어째서 내게는 알려 주지 않은 건가요? 하마터면 알료사의 운명을 점지한 신성한 예언을 모르고 살 뻔했군요!”
“알릭스, 그건…….”
니콜라이는 난처했다. 그는 예언이니 비의니 하는 건 믿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선의 예견은 다 맞아떨어졌지만, 그건 이선에게 신성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명함과 통찰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예카테리나 대제께서는 언젠가 이교도들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되찾게 될 날을 기원하면서, 첫째 손자에게 알렉산드르, 둘째 손자에게는 콘스탄틴이란 이름을 주셨지요.”
18세기 러시아의 황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는, 손자들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정했다. 맏손자 알렉산드르(알렉산드로스)는 제3의 로마 러시아를, 둘째 콘스탄틴(콘스탄티누스)은 ‘러시아에 의해 수복될 제2의 로마, 콘스탄티노플’을 다스릴 운명이 되리라고 작명했다.
독일 출신 황태자비에서 러시아를 지배한 여제가 된 예카테리나 2세는, 역시 독일 출신인 알렉산드라에게 큰 영감을 주는 선조였다.
“예카테리나 대제께서는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어요. 니키, 당신은 후계자에게 위대한 제국을 물려줄 사명을 갖고 있죠. 저 드넓은 아시아가 자신들을 지켜 줄 새로운 황제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어요. 바로 당신의 아들, 수호자 알렉세이가 그들의 황제가 될 운명이라고요!”
알렉세이(알렉시우스)에게는 ‘수호자’란 의미가 있다. 니콜라이는 예카테리나 2세와 달리 특별한 이유를 갖지 않고, 로마노프 왕조 2대 차르 알렉세이의 이름을 따서 작명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에게는 모든 게 다 예정된 신의 계시와도 같았다.
“콘스탄티노플은 신기루일 뿐이에요. 작고 골치 아픈 발칸반도에 집착할 이유가 없죠. 제국의 새로운 영광은 아시아에서 찾을 수 있어요. 제너두의 황금옥좌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어요!”
제너두(Xanadu)는 몽골제국 쿠빌라이 칸의 여름 수도였던 상도(上都)를 의미한다. 마르코 폴로가 처음 소개한 이래, 제너두는 부와 영광이 넘치는 동양의 이상향으로 상징되었다.
물론 20세기 몽골에는 그런 게 없었으니, 실체가 분명한 콘스탄티노플에 비하면 신기루는 오히려 제너두였다. 그럼에도 동양 신비주의에 단단히 취해 버린 알렉산드라는 남편을 꼬드겼다.
“으음……. 생각해 보리다.”
아무리 귀가 얇은 니콜라이라지만, 제국의 황제로서 현실감각이란 게 존재했다.
만주에서 팽창을 시도하다 러일전쟁과 혁명의 참화를 겪은 니콜라이로서는, 모험적인 동양 정책을 추진하기엔 부담이 컸다.
니콜라이는 이선에게 상담을 청했다. 현실주의자인 이선이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리라 믿고.
“호오, 황후께서 그런 말씀을.”
“그 몽골 노인네가 알릭스를 꼬드기고 있는 모양일세. 황후를 통해 몽골과 티베트 독립을 청원하려는 속셈이겠지. 근래 달라이 라마와 몽골 왕공들이 계속 러시아에 독립을 청원하고 있네. 바드마예프도 그들과 한패일 거야.”
사실 바드마예프를 조종하고 있는 건 이선이지만, 처음 알았다는 듯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황제 폐하의 고견은 어떠신가?”
“몽골과 동투르키스탄(신강)이 러시아에 인접하고 있으니 러시아 세력권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건, 정부와 군부 모두 일치하네. 하지만 독립은 다른 문제야. 청국과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네. 티베트는 영국이 노리고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로의 팽창을 부르짖는 군부 일각과 달리, 총리 스톨리핀과 외무대신 이즈볼스키는 현실적인 외교를 주장했다. 모험적으로 중국 분할을 시도해 영국과 미국을 자극하는 건 불필요한 행위였다. 일단 차르도 총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만약 청국이 곧 붕괴한다면, 러시아는 어찌하는 게 좋겠는가?”
“그 잔해 위에서 최대한 이익을 챙겨야겠지. 하지만 청국이 붕괴한다니,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제국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아. 터키(오스만)도 망한다는 말이 100년 전부터 돌았네. 하지만 아직까지도 버티고 있지.”
청나라가 망조가 들었다고는 하지만, 니콜라이는 곧 멸망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유럽의 병자’ 오스만제국도 이미 19세기 초부터 멸망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아직도 버티고 있지 않은가?
“나는 청국이 5년 내로 붕괴할 것이라 확신하네.”
“대체 무슨 근거로?”
“오래전부터, 중국에는 천명(天命), 하늘의 명령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네. 천명이 끝나는 순간, 왕조의 운명도 끝이지. 중국의 천명은 주기적으로 순환했네. 일반적으로 250년에서 300년 정도지.”
청조는 혁명으로 무너질 터였다. 하지만 니콜라이가 혁명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선은 일부러 혁명이란 단어는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5년 이내인가?”
“청나라 이전에는 명나라가 있었네. 1368년에 건국해 1644년에 멸망했지. 갑자(甲子), 즉 60년이 4번 돌았고, 간지(干支), 즉 12년이 3번 돌았지. 그 천명은 276년이었네. 청나라는 1636년에 건국했네. 거기서 276년을 더하면…….”
“5년 후, 1912년이군. 설마 그래서 하늘의 명령이 276년 만에 재현된다는 건가?”
서양에서 유행하던 수비학(數祕學)적으로 그럴싸한 말이긴 했으나, 합리적 근거는 없는 말이었다. 여기서 끝나면 허황된 예언에 불과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지.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보세. 1900년, 의화단 전쟁으로 청조는 사실상 중국의 통제권을 상실했네. 더 이상 지방이 통제가 안 돼. 신정개혁으로 최후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너무 늦었지. 지방 총독과 지배층들은 이미 그 지역의 통치자나 다름없네. 중앙집권화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만 낳고 있네.”
물론 이선의 ‘예언’은 끝이 아니었다. 그는 중국 정세를 정확히 분석했다.
“대청국은 이전의 중국 왕조와 다른 점이 있네. 청조, 즉 만주 황실은 중국 인구의 절대 다수인 한족들과는 다른 이민족 지배자야. 오랫동안 중국을 다스려 온 천자들과는 성격이 다르지. 대청 황제는 중국의 천자이자, 만주와 몽골의 대칸이요, 티베트의 전륜성왕이자 신강 무슬림 제후들의 보호자이지.”
“흐음, 러시아 황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군.”
“그렇다네. 러시아의 황제는 폴란드의 국왕, 핀란드의 대공, 정교회의 수호자, 투르키스탄 무슬림 제후들의 보호자이지.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어. 러시아제국을 구성하는 데 있어 러시아인은 과반이 넘는 다수이지만, 대청국의 만주인은 극소수에 불과하지. 그동안은 천명의 도움을 받아 다수민족을 지배계급에 포섭해 왔지만, 그게 무너지고 있네.”
이선의 알아듣기 쉬운 비유에 니콜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남중국의 한족들은 만주족에 대한 반감이 엄청나다네. 개혁에 매진하는 현 황제(광서제)가 재위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버텨 보겠지만, 안타깝게도 황제의 건강이 매우 안 좋다네. 오래 버티긴 힘들 것 같네. 그런데 황제에겐 후계자가 없지. 최후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거야.”
역사가 바뀌긴 했어도, 이선은 청조의 운명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데 걸었다.
“그럼 그다음은 어찌 되겠나?”
“청조를 대신할 한족의 중국이 탄생하겠지. 새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제국보다는 공화국이란 형태로. 중국 혁명가들은 멸만흥한, 만주를 멸하여 한족국가를 재흥시키자는 주장을 하네. 중국의 지방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만 충분히 유지된다면, 허울만 남은 만주 황제를 몰아내도 상관없네. 그러니 청조는 버틸 수가 없어.”
이선은 자신의 분석을, 니콜라이에게 듣기 좋은 형태로 가공하여 설명했다.
“한족의 새로운 국가가 세워졌다고 가정해 보세. 만주인은 말할 것도 없고, 대청국을 구성하고 있던 몽골인, 티베트인, 신강의 무슬림은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이들은 청조에 의해 병합됐고, 대청 황제 개인의 권위로 지배받았을 뿐, 중국의 지배를 받은 건 아니지. 그다음 수순은 독립일세. 몽골과 티베트에서 독립을 원하는 것도, 청조의 신정개혁이 필연적으로 한족 중심의 국가로 이어질 거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러시아에 독립 청원을…….”
“그들은 중국과 정치적, 경제적으로 밀착해 있는 영국보다는 러시아가 낫다고 판단하는 거지. 종합해 보면, 청조의 붕괴는 러시아에 있어 굉장한 기회가 될 수 있네.”
니콜라이는 이선의 설명과 예견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선의 ‘예언’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러시아보다는 대한에 있어 더 굉장한 기회겠지만, 혼자 힘으로는 무리이니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뒷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선은 러시아를 이용해 만주·몽골·신강·티베트 등이 한족의 중국에서 분리할 계획을 세웠다. 청조가 혁명으로 붕괴하는 순간,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소수 민족의 자결’을 옹호할 계획이었다.
이들 국가의 독립이 러시아 제국주의의 야욕으로 보이지 않도록, 민족자결과 문호개방을 내세워 프랑스와 미국도 끌어들일 계획도 세워두었다.
“자네 이야기는 들을수록 눈이 떠지는 느낌이야. 그렇다면 미래를 대비해 어찌하는 게 좋겠는가?”
“음, 내 생각은 이러하다네…….”
이선과 니콜라이는 모종의 밀약을 맺었다. 한국과 러시아 정부 당국 양쪽도 미처 알지 못하는, 군주 간의 밀약이었다.
한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 간의 협약은, 보다 공개적이고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 고려되었다.
이선과 민영환, 스톨리핀과 이즈볼스키는 만주와 몽골 문제를 놓고 세력권 분할을 고려했다.
“러시아는 한국의 남만주 세력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한국은 러시아가 북만주와 외몽골에서 특수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또한 한국은 러시아와 미국, 러시아와 영국의 관계를 주선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스톨리핀과 이즈볼스키는 한국의 협조적인 태도에 만족감을 표했다. 한국은 남만주 세력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러시아가 원하는 걸 내놓았다.
1907년 9월 14일(율리우스력 9월 1일).
대한제국과 러시아제국은 마침내 협약 합의에 도달했다.
1. 러시아제국과 대한제국은 대청국 주권의 독립성과 완전성, 영토의 불가침성을 존중한다. 중국의 무역과 산업에서 동등한 기회의 원칙, 문호 개방의 원칙을 인정한다.
양국이 발표한 공개협약은 여기까지였다. 실질적인 조항은 비밀에 부쳐졌다.
2. 만주는 북위 44도선을 경계로, 북만주는 러시아제국의 세력권으로, 남만주는 대한제국의 세력권임을 상호 인정한다.
3. 양국은 만주에서 철도 및 전신 이권을 타국에 양여하지 않는다. 국제 신디케이트의 운영은 남만주 철도로 한정한다.
4. 대한제국은 외몽골 지역에서 러시아제국이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협력하도록 한다.
5. 러시아제국은 대한제국 황실이 대청국 황실과 특수한 관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향후 중국의 정치 변동이 있을 시에 양국은 긴밀하게 협력한다.
1907년 9월 1일(율리우스력), 광무 11년 9월 14일.
러시아제국 외무대신 이즈볼스키
대한제국 특명전권대사 민영환.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세력권이었던 남만주를 자국의 세력권으로 인정받는 대가로, 러시아가 원하는 걸 내놓았다.
조항 외에도 대한제국은 러시아제국이 미합중국, 대영제국과의 외교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구두 합의도 있었다.
강대국 러시아에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내놓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양국 정부도 미처 알지 못하는 황제간의 밀약, 즉 밀약 속의 밀약이 맺어졌기 때문이었다.
카이저와 차르의 밀약, 비외르쾨 밀약이 실패로 끝난 건 국가 간의 이익이 크게 충돌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선과 니콜라이의 밀약은 그렇지 않았다. 밀약이 공개되는 시점도 ‘청조에 붕괴의 위협이 발생할 때’로 한정했다.
그때가 되면, 역사를 바꿀 밀약이 세상에 공개되리라.